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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92)화 (92/224)

92화

“제가 무슨 성미가 확 죽었나요?”

금하는 이 말에 공경이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해 다시 고쳐 말했다.

“소관은 성미가 확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찌 그리 느끼셨…….”

“네가 언제 내게 이렇게……!”

육역은 다급해지려는 마음을 꾹 눌렀다. 드러나지 않게 숨을 훅 들이켜 마음을 진정시켰다.

“공손했었지?”

“저는, 아니, 소관은 줄곧 대인께 마음으로부터 매우 공손했습니다. 그러나 출신이 미천하여 종종 말과 행동이 적합하지 않고, 무례를 범하곤 하니, 대인께서 너그러이 양해해주십시오. 이후 말과 행동을 반드시 조심하겠습니다.”

육역은 찻물을 마시고,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 훈계를 들었나?”

금하는 경계심을 갖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소관 스스로 반성한 겁니다.”

“유 대인? 아니다, 그의 말은 네가 듣지 않아. 그럼 양 포두겠군. 너 오늘 의관에 갔었나?”

금하는 얼버무리며 우물거렸다.

“의관에 갔었지만……, 이 일은 대장과 무관합니다.”

그녀의 말을 마치 듣지 않은 것처럼, 육역은 자신의 말만 이어서 천천히 말했다.

“넌 분명 양 포두와 무슨 말을 했을 거야. 그런 후 그에게 심한 질책을 들은 거다. 무슨 말을 했을까? 적 낭자의 일, 아니면 친부모를 찾는 일?”

금하는 여전히 부인했다.

“아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만약 적 낭자의 일이라면, 양 포두의 성격으로 봐선…….”

육역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마도 이리 간단한 질책으로 그치진 않았겠지. 게다가 내 짐작으로 너도 이 일을 그에게 말할 용기는 없어.”

금하는 육역의 앞에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친부모를 찾는 일이겠군. 그가 왜 질책했느냐? 네가 나와 너무 가까워졌다고, 이런 사적인 일로 왜 나를 귀찮게 하느냐 탓을 한 건가?”

육역은 형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봄과 동시에 직접 본 것처럼 이치와 근거를 맞춰 분석해 버리니, 금하는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대장께서 꾸중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소관은 이미 잘못을 깨달았고, 대인께서……, 이 일을 원래 염두에 두시지 않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육역이 냉랭하게 흥 소리를 냈다.

“다행? 너는 나를 피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지. 그건 오히려 나더러 네게 매달려 비위를 맞추라는 것인가?”

금하는 그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소관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양 포두의 한마디에 너는 나를 피할 수 없을까 두려워했다.”

육역이 일어서 북쪽으로 난 창문으로 다가가 길게 탄식했다.

“내가 도화림에서 널 구하고, 또 여러 번 도와줬던 것은 헛된 것이었나…….”

금하는 자신이 정말로 이쪽저쪽으로 원망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은 육역부터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대인,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나가 보아라.”

그가 담담히 말했다.

“대인 저는…….”

“나가거라.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

그가 이렇게 말하니, 금하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정말 대인께선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인, 화내지 마시고, 상심하지도 마세요.”

그녀가 방문을 닫는 소리를 듣고서야 육역은 돌아섰다.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마음으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양 포두의 병세를 살피러 가야 할 때가 된 듯했다.

* * *

하늘은 이제 막 어두워졌다.

아버지께 등잔을 켜드린 후 물러 나온 양악은 돌계단에 말없이, 그리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돌계단 사이의 암록색 이끼가 그의 옷자락을 물들이고, 근처에 돋아난 강아지풀 몇 개는 저녁 바람에 가벼이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그를 바라보던 양악은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 그와 금하는 이 강아지풀을 닮은 게 아닐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최선을 다하든, 결국 그들은 여전히 들풀이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그들은 누군가에게 허리를 굽혀야 했고 비굴하게 아첨하며 굽실거려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죽청색 암운暗云 무늬 옷을 입은 쭉 뻗은 몸이 양악의 눈앞에 나타났다. 시선을 든 그가 급하게 일어나 예를 올렸다.

“소관 육 대인을 뵙습니다.”

육역이 가볍게 지나가듯 얘기했다.

“내가 오늘은 저녁을 일찍 먹어, 산책을 나왔다가, 마침 기회가 되어 양 포두를 보러왔네.”

“대인의 염려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들어가 아버지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악이 급히 안으로 들어가 양 포두에게 고하고 다시 급하게 나와 육역에게 안으로 들기를 청했다.

“선배님, 편히 앉으십시오, 제가 온 것이 경솔했나 봅니다.”

방에 들어선 육역이 일어서려고 하는 양정만을 재빨리 눌러 앉혔다.

“절대 일어나지 마십시오, 아니면 후배가 잘못한 것이 됩니다.”

“제가 상황이 이래서……, 예의가 미흡한 것을 대인께서 용서하십시오.”

“선배님 무슨 그런 말씀을요.”

육역은 포를 걷어 올리고는 양악이 옮겨온 둥근 걸상에 앉았다.

“방금 제가 미리 심 의원께 여쭈었더니, 그의 말로는 선배님의 다리는 회복이 빠르지만, 휴양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아, 노쇠한 몸이라, 사실 별 중요하지도 않은데, 대인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이건 아버님이 분부하신 일로 아들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인사말이 끝난 후 잠시 망설이던 양정만이 물었다.

“요즈음 제 어린 제자가 대인께 폐를 끼쳤지요?”

육역이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어디까지나 나이가 아직 어리고, 무모한 면이 있어 하는 일 또한 어느 정도의 착오는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법 해내는 것이 있어 그런대로 가끔은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제자의 무공은 선배께서 가르치셨습니까? 권법은 제가 잘 모르나, 경공은 선배님과 비교하여 차이가 꽤 나더군요.”

양정만은 부끄러워 진땀이 났다.

“그 점은……, 이 아이는 성격은 활달하나, 무예 연마에는 게으릅니다. 저는 그 아이가 아가씨이고 장래 좋은 사람을 찾아 시집을 보내는 것이 제대로 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봐 주었던 부분이 있던지라, 대인께 부끄럽습니다.”

육역이 웃었다.

“선배님 지나치신 말씀입니다. 참, 듣기로 원 포쾌가 입양되었다더군요.”

“예……. 그 일에 대해선…….”

양정만이 계속 머리를 저었다.

“아이가 보기에 매우 영리하나 사실 철이 조금도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로 대인께 폐를 끼칠 수 있는지.”

“과한 말씀이십니다. 그 정도로 어찌 폐가 되겠습니까. 원 포쾌가 선배님의 제자인 이상, 저도 최선을 다해 원 포쾌의 부모를 찾아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대인, 이 일은 대인께서 관여치 말아 주십시오.”

여기까지 말한 양정만이 양악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다과를 내오지 않고 예서 무얼 하느냐. 차를 끓여 오너라.”

양정만은 양악이 방을 나서는 것을 보고서야 다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하아의 신상에 대해선 제가 진작 조사해 알고 있습니다만, 금하에게는 알려주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

“대인, 10년 전 경성 동시 납치사건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도적의 우두머리 고소풍이 대리시 우소경 동동의 부인과 아들을 납치하여 몸값을 받은 후에 인질을 살해했지요. 동 부인과 그의 아들의 시신은 열흘이 지나서야 산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건은 일찍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 훗날 고소풍은 경성에서 죽었으나, 그때 그가 받은 몸값은 종적을 알 수 없다고요.”

“맞습니다! 당시 사건의 상황은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혔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소풍이 동 부인을 납치한 건, 그 자신의 부인과 아이도 다른 이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강요당해 그리 한 것이지만, 그 몸값은 지금껏 되찾질 못했습니다.”

육역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이 사건과 선배님의 제자는 무슨 관계입니까?”

“고소풍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금하가 바로 그 딸입니다.”

양정만이 무겁게 내뱉은 말에 육역은 멍하니 굳었다.

“원금하가……, 고소풍의 딸?”

“그래서 저는 얘기해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친아버지가 도적이라니. 이걸 아는 건 마음이 괴로울 뿐 좋은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양정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금하의 양부모는 아이에게 매우 잘하지요. 사실 저는 금하가 다른 생각으로 더는 흔들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선배님의 마음 쓰심을 원 포쾌가 안다면, 분명 감사할 것입니다.”

양정만이 탄식하는 육역에게 말했다.

“세상일이란 것이 가끔은 사람을 희롱합니다. 그때 고소풍은 도적의 우두머리였는데, 누가 그의 딸이 포쾌가 될 줄 알았겠습니까.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일은 대인께서도 그 아이가 알지 못하게 말씀치 말아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시지요. 당연히 말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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