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의관에는 양주성을 반이나 돌아서 가까스로 도착했다.
그런데 건물 앞에서 의동에게 묻자마자, 그 부상자 두 명이 어제 이미 숨을 거둔 것을 알았다. 다른 이에게 전염될까 두려워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매장하였다고 했다.
“한발 늦었네! 하루 차이로……!”
금하는 심란하여 계속 이마를 문질렀으나,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오안방의 일에 대해 사소는 설령 말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지만, 사백리는 분명 결정권을 갖고 있다.
그녀는 개숙과 다시 사가로 갔으나 안타깝게도 가복은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 오늘은 정말 모든 일에 날이 아닌가 봐요. 전 운세 달력 좀 보고 다시 나와야겠어요.”
금하는 탄식했고, 개숙은 생각했다.
“동양인이 마을을 학살했다고 했지? 난 마을을 돌아보마.”
“맞아요! 전 이따가 사가에 다시 가볼게요. 만약 그들이 허락하면, 제가 다시 아저씨를 찾을 게요…… 맞다, 전 어떻게 아저씨를 찾죠?”
금하가 물었다.
“네가 머무는 관역에서 맞은편 사선으로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어. 너는 서쪽 벽 위에 내게 할 말을 남겨라. 뒤쪽에 닭다리를 그려 넣으면, 너라는 걸 바로 알아보마.”
“닭다리요? 좋아요!”
개숙과 헤어진 금하는 터벅터벅 발을 끌며 돌아갔다.
양주성 거의 곳곳을 뛰어다녔더니, 배는 진즉 고파 홀쭉해졌다. 그녀는 가슴을 더듬어 찾다가 양악이 싸준 파전병을 개숙에게 줬다는 걸 뒤늦게 떠올려 저도 모르게 한탄과 한숨이 터졌다.
진작 알았으면, 반은 남겼을 텐데.
* * *
관역으로 돌아온 금하는 우선 부엌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았다.
때는 이미 오후를 지나고 있었으나, 저녁 식사 시간은 아직 일러 부엌에는 당연히 찬 솥과 아궁이뿐이었다.
그녀는 부엌을 뒤적뒤적해서 차가운 만두 두 개를 찾아 찻물과 함께 꼭꼭 씹어 삼켰다. 그것이 오늘의 점심밥인 셈이었다.
곁채로 돌아가는 길은 육역의 작은 원을 지나게 된다. 금하는 대장의 말이 떠올라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곧 중요한 일이 떠올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또 되돌아갔다.
복도의 대나무 새장 안에는 비둘기만 꾸륵꾸륵 울고 있어, 정원은 한층 기이할 만큼 고요해 보였다.
설마 육 대인이 없어? 아니면, 오후 낮잠 중?
“육 대인?”
그녀가 작은 소리로 불렀다.
이때 육역은 서안 앞에 있었다. 익숙한 소리를 들은 그는 미세하게 눈썹을 들어 올리고, 몸을 뒤로 젖혔다. 창문을 통해 금하가 뜰 안에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다.
“육 대인?”
금하가 다시 한 번 불렀다. 여전히 대답은 없고, 방문은 닫혀있었으나, 걸쇠도 걸리지 않은 채 그냥 닫혀만 있는 것 같았다.
밀고 들어가? 아님 말아?
그녀는 갈등하는 중이었다.
만약 육 대인이 방 안에 있으면, 자신이 이렇게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게 선을 넘는 행동이 되나?
또 만약 육 대인이 방 안에 없다면, 자신이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게 사적인 침입이 되는 건가?
만약 대장이 여기 계시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해야 성실하게 내 분수를 지킨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문을 바라보면서, 계속 갈등했다.
저 문이 만약 열리지 않으면…….
사실 열리지 않으면 오히려 좋은 것이 선을 넘지도 않고, 또 분수도 아주 잘 지키게 된다.
근데 왜 난 저걸 열고 들어가려 하지? 아예 닫혀있어서 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그녀는 온갖 생각을 다 짜내며 갈등했다.
육역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금하를 지켜보고 있었다.
―― 금하는 복도에서 오도카니 얼이 빠져 있었다. 발끝으로 조약돌 사이사이를 꾹꾹 문지르며 한참이나 머뭇거리더니, 그런 후 그녀는 뜻밖에도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왜 저래?
육역은 그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원 포쾌!”
금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섰으나,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방 쪽을 보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문은 여전히 닫혀있었고 그녀는 지붕 쪽도 힐끗 보았다.
저 아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무뎌진 것은 조금만이 아니었으니, 저 모습을 보고 누가 포쾌라 하겠나.
미간을 찌푸린 육역이 거듭 기침을 해댔다.
그제야 그녀는 소리를 따라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창문가에 있는 육역을 보고는 한동안 얼이 빠졌다.
“대인, 알고 보니…….”
반가워 말을 시작했지만, 금하는 이 상황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멈춘 그녀는 문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바로 창 앞으로 다가갔다.
금하는 단정하고 바르게 육역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관, 경력 대인을 뵙습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눈매를 가늘게 뜬 육역은 여전히 태사의(*팔걸이 나무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가 앉은 이 각도에서는 금하의 목덜미에 푸르스름한 자국이 두어 군데 생긴 것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너 누구와 싸웠느냐?”
육역의 눈빛에 날카로운 한기가 스쳤고, 그의 목소리는 아래로 착 내려앉았다.
“아, 그게…… 오해였어요. 문제없습니다.”
금하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제게 대인께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육역의 대답 없이 그녀는 제가 알아서 말을 이어갔다.
“상관 당주가 소식을 받았는데, 고소로 보낸…….”
금하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게 억눌려 나왔다.
“그 낭자가 고소에 도착한 두 번째 밤에 실종됐답니다. 그녀 스스로 달아난 건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납치된 건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육역의 얼굴은 물처럼 무겁게 가라앉았고, 금하는 이어 말했다.
“저는 범인이 오안방 안에 있다고 의심합니다. 그리고 상관 당주께 말했습니다. 이 일은 저와 양악이 대인의 명성 뒤에 숨어 상관 당주를 속인 것이고, 사실 대인께선 내막을 잘 모르신다고요.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선 믿을 겁니다. 그러니 만약 상관 당주가 대인께 이 일을 언급한다면, 대인은 그저 모르는 척하십시오. 이래야 대인께서 말려들지 않으십니다.”
육역의 두 눈에 담긴 감정이 복잡해 졌다. 그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그래서. 넌 상관 당주와 싸우다 다친 건가?”
“아니요. 저는, 저는 그녀의 수하인 아예와 몇 초 겨뤘습니다.”
“네 그 어설픈 무공으로 아예와 겨뤄?”
육역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게 그냥 널 직접 한 대 치라 하는 것이 더 깔끔했을 텐데?”
금하는 고개 숙여 축 처진 모습이 되어 다시 습관적으로 벽돌 틈새를 발끝으로 문질렀다.
“그의 실력이 그렇게 좋은 줄 저도 생각지 못했어요.”
“이렇게 자기 수준을 몰라!”
“대인의 가르침이 맞습니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금하가 이전에 눈을 내리깔고, 순종하는 표정을 보인 것은 모두 그런 척한 것들로 이것을 육역이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이 모습은 목소리만 들어도 풀이 죽은 것이 느껴졌다.
육역은 그녀를 한참 동안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차라리 직접 물었다.
“너 대체 왜 그래?”
“괜찮아요. 저는 별일 없습니다…… 참,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어제…… 저, 제가 유달리, 유달리 분수를 몰랐습니다.”
그녀는 분명히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말도 더듬거렸다.
“대인께 제 친부모님 찾는 걸 도와달라 청한 그 일은 음… 제가 도를 넘었다는 것과 지금은 잘못한 것도 압니다. 대인께서는 이 일을…… 마음에 담아 두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제가 이후에는 다신 이렇게 분수를 모르지 않겠습니다.”
육역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침음했다. 그리고 그 또한 고의로 말을 만들어냈다.
“아, 알고 보니 그 일 때문이었군. 나는 어제 무심히 물었을 뿐 반드시 널 돕겠다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육역은 말을 하는 사이, 금하가 시선을 들어 재빨리 자신을 바라본 것을 알아차렸다.
짧디짧은 한순간,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 서린 물기가 묵직하게 그의 마음속으로 부딪혀 들어와 육역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움찔거렸다.
“그랬군요. 그럼… 그럼 잘 됐어요. 소관 물러갑니다.”
금하는 말없이 돌아섰고, 그렇게 채 반보도 떼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 잡아 당겨져 다시 돌아서야 했다. 뜻밖에 육역이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속으로는 분명 내가 도와주기를 바라면서 왜 이렇게 말하나?”
그가 화를 냈다.
“말은 그리하면서도 온통 울려고 하잖아?”
그가 말을 하자마자, 금하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져 내렸다.
“너…….”
육역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방법이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들어와. 할 말이 있으면 천천히 해.”
금하는 줄곧 고개를 저었을 뿐, 입은 다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빨리 들어 와라. 이건 명령이다.”
결국 육역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고, 금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앞쪽으로 한걸음 내디뎌 손발을 이용해 창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꼬맹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육역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문 안 잠겼다. 문으로 들어와.”
“아.”
금하는 이제야 돌아서 문 앞에 이르렀다. 문을 밀 때 여전히 주저했으나, 결국은 조심스럽게 밀어 안으로 들어섰고, 또 신중하게 물었다.
“대인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육역은 탁자 쪽으로 다가가 찻물을 따라놓고 그녀를 보고 또 보았다. 그 똑바른 시선에 금하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그는 말없이 일전 금하에게 준 것과 비슷한 자기 병 하나를 꺼냈다.
“몸조리하고 있으라는 말은 왜 안 듣지? 약은 갖고 다녀? 지금 없으면, 이걸로 발라.”
“괘, 괜찮습니다. 이따 돌아가 바르겠습니다.”
“잊기 전에 발라.”
여기서? 금하는 당황하여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못하겠으면 내가 바를 테니 상처를 내보여.”
“아닙니다. 정말 괜찮아요. 이건 도리에 맞지 않아요. 제가 돌아가 바르겠습니다.”
육역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는 대신 여전히 풀이 죽어 의기소침한 금하에게 물었다.
“너 성미가 왜 확 죽었는지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