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90)화 (90/224)

90화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눈앞은 온통 초목이 무성했다.

버드나무 가지는 가지마다 연하고 부드러운 새잎이 푸르게 돋아나고 있었다. 또한, 금하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각양각색의 나무 모두 꽃이 피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아주 작은 꽃잎이 어지럽게 흩날려, 사람의 몸 위로, 땅 위로 떨어지고, 어떤 것은 강물을 따라서 멀리까지 흩날렸다.

바야흐로 강남의 풍경이 이리도 좋아,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구려.

- 두보, 강남봉이구년 江南逢李龟年 중

……금하는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마주 오는 사람이,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이가, 혹은 멀고 먼 다리 위의 지나가는 이가, 어쩌면 그중 하나쯤은 내 가족일지도 몰라. 각자가 모르고 있을 뿐일 지도…… 몰라.

그녀가 줄곧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카딸아!”

금하가 고개를 돌리고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개숙이 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에 온통 분홍색의 자잘한 꽃잎을 뒤집어쓴 그는 손에 닭발 하나를 쥐고 뜯어 먹는 모습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지금 동냥하시면서 닭도 드세요? 아저씨, 돈 많이 버셨어요?”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닭발을 보며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닭발이 너도 샘이 나는구나. 닭다리도 아닌데 뭘…… 하나 더 있는데, 너 먹을래?”

개숙이 자루를 뒤집자, 금하는 오히려 양악이 준 파전병을 품에서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거 드세요. 전 머리가 온통 복잡해서, 먹을 마음이 없어요.”

개숙이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힐끔 바라보고, 파전병을 받았다.

“왜 그래? 사건 때문에 생긴 일이야?”

“제겐 사건이 일이죠, 뭐. 참, 지난번 암기 건은 어쩌면 해독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찾으셨어요?”

금하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바로 이 일 때문에 널 찾았지! 해독약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단다. 그래도 다친 사람을 찾아 시험해 봐야 해. 네가 지난번에 이걸로 다친 사람이 있다고 했지?”

“맞아요. 제가 마침 그쪽으로 갈 일이 있으니, 저와 함께 가세요.”

금하는 개숙을 모시고 사가로 갔다. 가면서 대체 누가 해독약을 시험하고 있냐고 물었지만, 개숙의 입은 매우 무거워 조금의 낌새도 드러내지 않았다.

사가에 도착한 후, 문을 열러 나온 가복이 금하를 알아봤다.

“어르신과 도련님은 절에 가신다고 외출하셨습니다.”

“아. 어디로 가셨나요?”

“그건 소인도 잘 모릅니다.”

가복은 금하가 매우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고는 호의를 갖고 그녀에게 말했다.

“상관 당주께서 매일 이때쯤은 성 서쪽 나루터에서 상품을 점검하시죠. 만약 급한 일이 있으면, 그분을 찾아 상의하실 수 있으십니다.”

금하는 개숙을 모시고 곧장 성 서쪽 나루터로 달려갔다.

나루터는 사람으로 빼곡하여 금하는 샅샅이 뒤지고서야 근처의 정자에서 상관희의 모습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먼빛으로 보아선 누군가 그녀에게 보고를 하는 듯했다.

“상관 언니!”

금하는 소리쳐 부른 후 정자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자의 측면에서 돌아 나온 사람이 갑자기 그녀의 앞을 가려서 바라보니 바로 아예였다.

“난 상관 당주를 봐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요. 정말 아주 중요해요.”

그녀가 급하게 아예에게 말했지만, 그는 냉랭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키겠다는 뜻이 전혀 없는 것이다.

계단 아래 서 있던 개숙은 실눈을 뜨고 아예를 바라보았지만, 겉으로는 무료하기 짝이 없다는 듯 가려운 곳을 긁고 있었다.

“아예.”

상관희가 담담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부르자, 아예는 이때야 소리도 없이 옆으로 반쯤 몸을 비켰다.

그제야 정자로 올라간 금하도 상관희에게 예의 있게 말했다.

“상관 언니, 난…….”

상관희는 금하가 말을 다 하기도 전 손짓으로 그녀를 제지했다.

“나도 당신들을 찾아야 할 일이 있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 방금 받은 소식에 의하면, 고소로 보냈던 그 낭자가 실종됐습니다!”

“뭐라고요!”

금하는 일시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 실종됐어요?”

“고소에 도착한 둘째 날 밤에 실종됐어요. 수놓는 곳의 사람이 하루 가까이 찾아도 그녀를 찾지 못했네요. 그래서 서둘러 내게 소식을 보냈어요.”

“납치당한 건가요?”

금하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상관희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몰라요.”

“방안으로부터 발자국에 분명…….”

금하는 무언가 말하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수를 놓는 곳에 있는 사람은 포쾌도 아니었고, 전문 훈련을 받은 적이 없어서 무언가를 살펴보라 한다면 그녀에게 매우 어려운 일을 강요하는 것과 같았다.

금하는 자신이 고소에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으로 모질게 입술을 짓깨물었다.

그러면 적어도 현장이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었을 거고, 적란엽이 대체 스스로 도망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것인지도 판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적란엽이 정말 고소에 도착한 두 번째 밤에 납치당한 거라면, 그 사람은 그녀의 행방을 찾는 것에 매우 빨랐으므로 대략 범인은 내부 사람으로 좁힐 수도 있었다.

그때, 상관희의 말이 들렸다.

“이 일은 당신이 육 대인께 보고해 주세요.”

금하는 이 일이 만약 밝혀지면, 그녀와 양악 두 사람이 감당하고, 육 대인은 연루시키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었다.

“언니, 숨기지 않고 말할게요.”

금하는 대단히 미안해했다.

“이 일은 결코 육 대인의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와 양악은 이 일이 위험하여 언니가 맡아주지 않을까봐 걱정해서 고의로 육 대인의 이름으로 언니를 속였어요.”

금하는 우선 이 일에서 육역의 이름을 빼냈다.

“당신…….”

상관희의 눈 속에는 선명한 분노가 일었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놀아난 건가요?”

아예 역시 냉랭한 눈빛으로 금하를 주시했다.

“아니, 아니요. 나와 대양은 정말로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어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방법이 정당치 않아 언니에게 미안하고, 우리도 속으로 매우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상관희는 금하를 소원하고 냉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주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

맞은편의 금하는 그녀가 이리 보는 것에 온몸이 거북해졌다. 그래도 고개를 돌려 정자 밖의 개숙을 바라보고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사실 제가 오늘 온 건 다른 중요한 일 때문이에요. 동양인에게 다쳤던 귀 방의 동료 몇 명은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상관희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에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금하가 웃음을 띤 채 말을 이어갔다.

“제 쪽에 의원 한 분이 해독약을 배합하셨을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해독약의 효과를 시험할 부상자가 필요한데…….”

상관희는 금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 이미 냉랭하게 말을 끊었다.

“본 방의 일을 제삼자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요. 저는 다만…….”

“원 낭자, 당신은 아직 본 방의 소부인이 아니에요.”

상관희의 목소리는 묵직했고, 영문을 모른 채 멍해졌던 금하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게 무슨…… 그건 오해예요, 언니. 나는 소부인이 될 생각도 없고, 내가 오늘 온 것은 원래 사소에게 똑똑히 말해두고 싶어서였기도 했어요.”

“그건 당신들의 일이고, 나완 무관해요.”

상관희는 냉랭하게 말을 마치고 바로 돌아섰다. 당황한 금하가 급히 쫓아가려고 하자, 아예가 팔을 뻗어 막았다.

“당주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시죠.”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니요. 이 일은 언니가 오해했어요. 내가 당주께 설명하면 돼요. 알았으면, 빨리 비켜요!”

금하는 마음이 급해져 바로 아예의 손을 뿌리쳤다.

그때 순간, 아예의 눈 속에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보이지 않게 내력을 손으로 움직여, 맹렬한 힘을 뻗어냈다. 오히려 놀란 금하가 뒤로 두 보 물러섰다.

“당신은 왜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해!”

금하 또한 급히 앞으로 뛰어나갔고, 그를 밀치기 위해 손을 칼날처럼 쓰며 그의 얼굴을 직접 공격했다.

그러나 아예는 아래로 왼팔을 툭 내려뜨린 후, 빙글 돌며 그녀의 장풍을 피했다. 금하의 공격을 허사가 되게 한 것과 동시에 기세를 몰아 그녀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단숨에 앞으로 끌어당긴 그가 왼손으로 이미 그녀의 숨통을 단단히 조였다.

“흡!”

급소를 제압당한 금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예의 손은 마치 강철 같아,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정자 밖에서는 개숙이 손안에 작은 돌을 쥐고 그를 단단히 노려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잠시 후, 아예가 돌연 손을 풀었다.

그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다시 와 당주를 괴롭혔을 땐, 내 손이 사정 봐주지 않는다고 원망치 마라.”

아예는 그 말을 끝내고 돌아서 가버렸다.

* * *

목구멍이 너무 아픈 나머지, 금하는 목을 감싼 채 계속 기침을 해댔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아예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개숙은 작은 돌을 옆으로 던지고,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창피하다! 아저씨, 우스운 꼴 보여드렸어요.”

금하는 목덜미 쪽에 닿기만 해도 몹시 아픈 것이 분명 멍이 들었을 거라 짐작했다.

“창피할 거 없다. 아마 저 자식의 무공만큼 강한 건 온 양주성에서 다 찾아야 셋 정도일 거야. 물론 나는 포함이지.”

개숙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의 목덜미 상처를 보고는 쯧쯧 혀를 찼다.

“금강전사수金刚缠丝手,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이 무공을 수련하는 이는 절대 많지 않아.”

“그렇게 엄청나요? 그럼 저도 훈련할래요.”

“네가 훈련하고 싶어 한다고 어디 다 훈련할 수 있다던? 이 무공은 내가 알기론 세간에 전해지지도 않았어. 게다가 지나치게 억세고 다루기 힘들어 아가씨는 훈련할 수도 없지.”

개숙은 계속 쯧쯧거렸다.

“저 자식은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이런 무술을 할 수 있다니 놀랍군. 대단하군, 대단해!”

금하는 불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았다.

“아저씨! 재능있는 사람만 아깝다고 신경 쓰지 마시고요. 이 조카딸도 좀 가여워 해주시는 게 어때요? 전 오늘 하루 아직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가엽지, 정말 가여워…… 내가 닭발 줄 테니 뜯어 먹을래?”

“됐어요. 우리 심 씨 의관으로 가요. 거기 부상자가 두 명 또 있어요.”

금하는 상관희가 사라진 방향을 다시 보았다. 아쉽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녀는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돌아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