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양정만은 순간 등이 뻣뻣해지고, 눈빛 속에 복잡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감정을 눌러 감춘 채 담담하게 물었다.
“네가 어떻게 단서를 찾았더냐?”
“찾은 건 아니고요. 제가 어제 육 대인과 이 얘길 했는데, 그분 말씀으로 봐선 제 친부모님 찾는 걸 도와주시겠다는 의미 같아요. 금의위는 눈과 귀가 많고, 정보력도 육선문보다 더 많이 갖췄으니, 그분이 이 일을 도와주신다면, 아마도…….”
금하는 문득 양정만의 얼굴색이 새파래지고, 이마에 어렴풋이 핏줄까지 돋은 것을 보고 말을 멈췄다.
“대장……, 왜 그러세요?”
“무릎 꿇어!”
양정만의 어조에는 하늘을 뚫을 듯한 노기마저 담겨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금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해도 그녀는 즉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아버지!”
양악도 그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지 못했다.
“육 대인께서 이 일을 도와주실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닌가요?”
“너도 무릎을 꿇어라!”
양정만은 화가 나 그를 두 눈 부릅뜨고 노려봤다.
양악은 온순히 무릎을 꿇었고, 뒤를 이어 양정만의 질책이 거듭됐다.
“하나가 생각이 없나 했더니, 둘 다 이렇게 생각이 없어! 내가 이 몇 년 너희를 헛되이 가르쳤구나! 육 대인이 누구냐, 그는 금의위야! 금의위와의 왕래는 반드시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고, 또한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고, 나는 여러 번이나 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팔려가는 것도 모르게 된다고!”
양정만의 불같은 화는 계속되었다.
“게다가 육역이 어떤 신분이냐. 그는 육병의 장자이지. 하지만 너는 육선문의 보잘것없는 포쾌의 신분에 불과해. 그는 네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고, 말을 하는 것에 절도와 예의가 있다는 건 그가 체면을 위해 보여 주는 것들이야. 좀 나쁘게 말하면, 그의 눈에 너는 한 마리 개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 잘하는 짓이다. 곁을 내줬다고 바로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뻔뻔하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아버지!”
양악마저 그의 말이 과하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금하가 설령 잘못한 일이 있어도, 아버지가 이렇게 심하게 그녀를 욕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넌 입 다물어!”
화가 난 양정만이 그에게 눈을 부릅떴다.
“내 오늘 말은 여기에서 끝내지만, 금하이든, 너이든 말과 행동 모두 엄히 본분을 지켜! 다시 내가 이런 도를 넘는 행동을 알게 되면, 너희들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양악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금하의 눈물 한 방울이 돌바닥 위로 떨어져 빠르게 스며들었다.
양정만은 금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가슴의 들썩거림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다시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한참이 지나서야 양정만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다 나가라.”
금하는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나 말없이 물러났고, 양악 또한 조금 망설이다가 뒤따라 물러 나왔다.
양악이 나가면서 닫은 문이 닫히고서야 양정만은 온몸의 힘이 모두 빠진 것처럼 배게 위에 몸을 기댔다. 눈은 조금 전 결코 드러낼 수 없었던 초조한 기색이 가득 드러났다.
* * *
“금하야……, 금하 어르신……, 우리 도련님…….”
양악은 담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던 금하를 찾아내 연신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이 며칠 하도 갑갑해서 분명 어찌 되신 거야. 매일 방안에만 계셔야 하고, 아직 약도 많이 드셔야 하잖아. 이러면 누구라도 난폭한 성미로 바뀔 거야, 안 그래?”
“근데 내가……, 친부모를 찾고 싶은 것도 틀린 건 아니잖아. 대장은 이전에는 날 막으신 적이 없으셨는데…….”
금하는 흐느끼며 말했다.
“내가 틀린 건 아니잖아!”
“그래, 그래, 누가 너 틀리대! 친부모 찾는 건 당연한 일이지. 요 몇 년 우리도 네가 찾는 걸 도왔잖아.”
양악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대장은 왜 저렇게 심하게 욕을 하셔?”
그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함을 느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버지는……, 분명 네가 무슨 손해라도 볼까 걱정하신 거야. 금의위가 또 보통 사람은 아니잖아?”
코를 훌쩍거리고, 눈물을 닦아 내고. 그러면서도 서러워 금하는 양악을 향해 돌아서 흐느껴 울었다.
“내가 유난히 뻔뻔해?”
“……그렇지 않아. 하지만 내 생각에…….”
양악은 해야 할 말을 심사숙고하여 골랐다.
“네가 요즘 육 대인과 너무 많이 가까워진 건 확실해. 그런 신분의 사람과는 그래도 멀리 있는 게 좋아. 네 생각은 어때?”
“나는 그분이 사실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아무리 좋아도 그 역시 금의위에 아버지는 육병이야. 잘 생각해보자. 사실 그런 신분의 사람에겐 아첨하려는 이들이 많아. 그들의 눈에 우리 둘은 강아지나 새끼고양이 같아서 아마도 어떨 땐 장난하며 놀기 매우 좋다 여길걸.”
양악이 그녀를 달랬다.
“그러니까 너도 너무 큰 희망은 품지 마.”
고개 숙인 금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연 그녀의 어조는 울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알았어.”
일어난 금하가 엉망이 된 얼굴을 소매로 문질렀다. 양악은 눈물 자국이 여전히 남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얼굴 좀 씻어.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만든 파전병 두 개 싸줄게.”
금하는 우물가로 가서 세수를 하고, 양악이 잘 싸준 파전병을 받아 품에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을 쓰는 것이 역력한 양악의 눈길을 받으며, 천천히 의관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도 금하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문득 사소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먹물은 벼루에서 벌써 말라가고 있었다. 황모필의 붓을 잡은 길고 섬세한 손가락은 종이 위에 반 촌이나 머물러 있었지만, 그로부터도 오랫동안 글을 써 내려가지 못했다.
육역은 희미하게 눈썹을 모았다.
창밖에선 불어온 청풍이 사삭 소리를 책장을 가볍게 들췄으나, 정신이 온통 무언가에 집중된 그를 방해하지 못했다.
육역은 매우 좋은 기억력의 소유자로 경성을 떠나오기 전 보았던 서류의 내용은 여전히 눈에 선했다.
- 양정만, 자는 소군邵君, 강서 임강인.
가정 17년에 과거에 합격하고 후에 금의위 경력에 임명되었다. 도, 검, 장창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담벼락을 나는 듯이 넘나드는 경공에 추종술 또한 정통하다.
가정 27년, 다리의 병이 낫기 어려워, 금의위 경력직을 사직하고, 육선문 포두를 맡는다.
이번 강남으로 내려오며, 육선문에 양정만을 수행으로 요구한 것은 사실 아버지였다. 양주에 도착한 후 양정만에게 심밀 의원을 찾아 다리의 병 치료를 받게 한 것 역시 아버지였고, 그 모든 것은 그분이 일찌감치 준비해 둔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육역에게도 정확한 이유를 알리지 않았다. 그저 양정만이 일찍이 금의위의 유능한 인재였건만, 그가 노년에 괴로운 것은 차마 보지 못하겠노라, 그러니 육역이 신경 써 대우하고, 그의 다리 병을 잘 치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을 뿐이었다.
양정만, 강서 임강인인 그는 왜 복건에서 여러 해를 살았을까?
육역은 양정만의 억양을 곰곰이 돌이켜 떠올렸으나, 그는 복건 말씨는 전혀 쓰지 않았다.
아버지는 양정만의 다리 병이 언제부터였는지 전혀 말씀치 않으셨고, 육역은 양주에 도착한 후 양정만이 무의식중에 말한 내용으로 그의 다리가 조옥에서 부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옥!
그곳이야말로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곳이었다.
설마 그때 아버지가 그의 다리를 부러뜨리신 건가? 그런데 이번에는 왜 또 그에게 양정만을 정중히 대하라 하셨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육역은 아버지에게 물을 수 없었다.
그는 이것이 아버지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로, 지금 죽는다고 해도 그분은 조금도 털어놓지 않으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금하, 원금하는……, 그는 차라리 붓을 놓고 근심스럽게 미간을 짚었다.
여 포쾌가 적긴 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여인은 금의위 밀정 중에도 적지 않았고, 그들이 칼, 창, 방망이를 잘 쓰고, 십팔 반 무예 같은 수련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육역이 경성에 있을 때, 양정만 수하로 여 제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도 특별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입양되었다는 것은 그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그때 문건 한 부를 더 살피지 않았던 것이 자못 아쉬워졌다. 그는 지금 양주에 있었고, 경성에 있는 공문서를 열람하려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시일이 좀 걸릴 터였다.
번화한 거리, 한 쌍의 돌사자.
육역은 깊은 근심을 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런 길, 이런 돌사자는 명나라 어디에서나 흔했다. 그녀의 엉성한 기억에 의지해 가족을 찾으려는 건 바다 밑에서 바늘을 건지는 것과 다름없을 만큼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찾는다고 다 좋은 일일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육역은 알고 있었다.
경성에는 지난번 형구 ‘애별리’의 행방 열람을 요구하며 편지를 썼으나,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육역은 고개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의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는 망설이지 않았다. 벼루에 물을 떨어뜨려 먹을 곱게 갈고는 단번에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육역이 한창 편지를 쓰는 중이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그의 창문턱에 멈춰서 꼬르륵꼬르륵 불렀다. 장거리 비행을 마친 걸까, 원래 깨끗하고 밝은 깃털이던 비둘기는 먼지투성이였다.
“마침내 왔구나. 동작이 점점 더 느려지는걸.”
붓을 놓은 육역이 가볍고 부드럽게 비둘기를 안아 올려 비둘기 다리에 매단 가느다란 통을 풀었다. 그리고 그는 통 안에서 가는 견직물로 둘둘 만 쪽지를 꺼냈다.
그는 서둘러 쪽지를 보는 대신 비둘기를 우선 대나무 새장 안에 넣었다. 비둘기가 넣어준 먹이와 물을 먹기 시작한 것을 보고서야 탁자로 돌아가 들고 있던 쪽지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