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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88)화 (88/224)

88화

“대인, 다시 한 입 드셔보세요.”

금하는 자신이 먹을 윤병을 재빨리 싸서 크게 한 입 깨물고는 육역을 격려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 그녀가 먹는 것을 보다 보니 맛있어 보이기도 하여 육역은 다시 한번 윤병을 깨물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간도 찌푸려야 했다.

“무맛이 너무 심해서 나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대인도 편식이 심하세요.”

금하는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흘끔 보았다.

“대인 이러시는 걸 보면, 어릴 때 분명 귀염성이 없으셨을 거예요.”

육역이 눈썹을 세우며 우스워했다.

“넌 어릴 때 아주 귀염성이 있었단 말로 들린다?”

“그야 당연하죠! 전 편식하지 않고, 주시는 대로 다 먹어요. 어른들은 키우기 수월한 걸 좋아해요.”

금하는 꽤 뿌듯해하는 말투였다.

“우리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시설로 아이 데리러 오셨을 때, 많은 아이가 한창 밥을 먹고 있었는데, 제가 제일 즐겁게 먹었고, 엄마는 첫눈에 제가 마음에 드셨대요.”

“시설……? 넌 입양된 거였군.”

육역은 다소 놀란 듯했고, 바라보던 금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윤병을 크게 물었다.

“몇 살 때 입양이 되었지?”

“저도 몰라요. 엄마 말씀으로는 제가 그때 앞니를 갈 때였으니, 대략 대여섯 살 즈음이었을 거래요.”

“대여섯 살이면, 그래도 기억하는 것들이 있어야 하지.”

육역이 미간을 찡그렸다.

“넌 유괴범에게 유괴된 것인가? 원래 집이 어디인지…….”

“잠깐만요, 잠깐…….”

금하는 육역에게 말을 멈춰달라 하며 귀밑머리 쪽의 머리카락을 헤쳤다. 그녀의 이마 가장자리에 한 줄기 엷은 흉터가 있는 것이 보였다.

“머리에 상처 있는 거 보셨어요? 근데 어릴 적 일은 어렴풋하고, 어수선해요.”

육역은 그녀의 이마 가장자리를 주시하며 잠시 침묵했다.

“더 기억할 수 있는 건?”

“매우 북적거리는 거리가 있었고, 많은 사람, 등롱도 많았던 걸 기억해요. 마치 명절을 보내는 것처럼……. 어느 집 앞에 한 쌍의 돌사자가 있는데, 전 손을 돌사자 입속에 넣어 돌구슬을 돌리며 놀았어요.”

그녀는 애써 생각해내려고 했다.

“다른 건 전혀 기억 안 나요.”

육역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만, 잔을 쥔 손끝은 저도 모르게 힘을 줘 하얗게 드러났다.

“대인 혹시 제가 가족 찾는 걸 도와주시려고요?”

문득 깨달은 금하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를 향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제가 사실 육선문에 있으면서 출장을 좋아하는 것도 이 일 때문이에요. 저는 늘 어떤 곳에 가면, 제가 특별히 익숙함을 느끼거나, 특별히 친밀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혹은 유난히 나와 생긴 것이 닮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요. 그들은 내 오라버니, 내 언니, 내 엄마, 내 아빠, 내 삼촌, 내 이모, 이모부일지도 모르죠…….”

“이모부?”

말을 하는 사이 금하는 서로 들고 있던 두 개의 윤병이 하나로 맞붙을 만큼 그에게 너무도 가까이 다가왔고, 그 덕분에 육역은 살짝 뒤로 몸을 젖혀야만 했다.

“누구든 상관없어요. 저와 닮았기만 하면, 한 사람도 놓칠 수 없어요.”

금하는 열정적인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대인, 전 금의위의 능력을 알아요. 그쪽의 정보망은 조선, 유구국琉球國(*현 오키나와 지역에 있던 왕국.)까지 다 깔려있죠. 만약 대인께서 의리로 도와주신다면, 저는 정말 가족을 찾을지도 몰라요……. 물론 제 가족이 조선인일 것 같진 않지만, 대인 생각은요?”

“넌 정말 가족을 찾고 싶나?”

그가 신중하게 묻자, 금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유난히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대인 도와주세요! 다음번에 식사 대접 다시 할게요!”

“이 한 상 가득한 무로 말이야? 난 이걸 또 먹어야 해?”

육역이 흥 소리를 냈다.

“내 짐작대로라면, 넌 이 무 또한 관역의 부엌에서 가져왔고, 본인은 동전 하나 쓰지 않았지?”

“…….”

금하는 멋쩍은 표정으로 몸을 바짝 세웠다.

“음…, 식사 대접은 돈을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그 마음에 의의가 있는 겁니다! 대인께서도 이런 것은 분명 이해하시잖아요.”

“식재료는 부엌에서 가져왔고 음식은 양악이 만들었고, 술은 내 것이지. 나는 네 마음을 보고 싶은데, 그건 어디에 있나?”

금하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반박했다.

“채소는 전부 제가 씻었죠. 이 탕도 제가 만들었는데, 때맞춰 온 대양이 일손을 거들었을 뿐이었죠. 본래 저도 혼자 요리할 줄 알지만, 대양 솜씨가 저보다 좋아요. 제가 대인 조금 더 맛있게 드시게 하려고 부탁한 거잖아요.”

금하의 말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인이 들고 있는 그 윤병! 그거 제가 말았고, 이런 것 모두가 제 마음이에요! 안 되겠다, 제가 다시 크게 하나 말아 드릴게요!”

금하는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미처 막지 못한 육역은 그녀가 이미 능숙하게 땅콩가루를 뿌리는 것을 눈 빤히 뜨고 지켜보며 참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무는 조금만 넣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대인 취향을 알죠. 두부채를 조금 더 넣고, 또 지단을 더…… .”

금하는 윤병을 주먹만큼 크게 말아서는 빙그레 웃으며 육역의 앞접시에 놓았다.

“대인께서 저를 여러모로 도와주시는데, 제가 다시 대인께 술 한 잔을 올리겠습니다.”

금하는 육역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고 했으나, 그가 눈치도 빠르게 술잔을 가져갈 줄은 생각지 못했다.

“넌 아가씨가 술은 무슨 술이야. 마시지 마라!”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대인은 제가 술주정이라도 할까 염려하세요? 괜찮아요.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취할 만큼 마셔본 적이 없어요.”

육역이 냉랭한 시선으로 그녀를 흘끔 보았다.

“내가 네게 주현이의 집에 가 보라 한 그 밤 너는 술 때문에 일을 그르쳤어.”

“…….”

금하는 말문이 막혔다.

“그, 그건 뜻하지 않은 사고입니다.”

“그날 밤은 사소가 너희에게 술을 샀지.”

육역이 금하를 보며 딱 잘라 말했다.

“이후 밖에서도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술 마시는 건 불허한다.”

“……음, 알겠습니다. 대인 말씀을 반드시 따르겠습니다.”

금하는 그에게 잘 보이려고 작심한 터라 기꺼이 육역의 의견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럼 저는 차로 술을 대신하여, 대인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기쁨으로 넘친 찻잔이 술잔에 맞부딪혀 맑고 깨끗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육역이 마셨는지 어떤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찻물만 꿀꺽꿀꺽 단번에 마셔버렸다.

“대인, 온종일 피곤하셨죠. 제가 어깨 좀 눌러 드리고,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금하는 마음이 앞설 뿐 정작 무엇을 해야 육역이 좋아할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되었다.”

“아니면 대인, 제가 머리 풀어드릴게요. 머릿속도 바람이 좀 통해야 편안해져요!”

“필요 없다.”

“대인, 제가 자리 깔아드릴까요?”

“필요 없다니까.”

“대인, 뜨거운 물에 발 좀 담그시겠어요?”

“……필요 없다!”

* * *

양악은 검은 옻칠한 소박한 상을 양정만 앞에 잘 놓아 주었다. 곱게 먹을 갈아 둔 벼루에 이어 편지지, 족제비 털로 촉을 만든 황모필도 건네드렸다.

날이 흐려 실내는 어두컴컴했고, 양악은 등잔도 옮겨 놓으려는데, 양정만은 필요 없다며 손짓했다.

“아버지, 사소의 일은 어쩌실 거예요?”

양악이 넌지시 묻자, 양정만은 그를 흘끔 보고는 말이 없었다.

“제가 보기에 금하는 사소에게 아무 생각이 없어요. 게다가 여긴 양주고 경성에서 너무 멀어요.”

“혼인은 대사이고, 부모의 명과 중매쟁이의 말로 결정된다고 하였는데, 네가 어딜 말참견을 해.”

양정만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저, 저는……, 그저…….”

아버지가 눈을 부라려, 양악은 한참이나 어물어물했다. 이대로 두면 뭔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차마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양악이 부친 옆에서 계속 목을 긁적거리고 있던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대장, 좀 좋아지셨어요?”

바로 금하의 목소리였다.

이 계집애, 그래도 때는 잘 맞춰.

양악이 열어 준 문으로 깡충깡충 뛰어들어온 금하는 싱글벙글 즐거운 얼굴이었다.

“입 찢어지겠네. 무슨 좋은 일 있어?”

“무슨!”

의아해하는 양악에게 금하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나 그런 표정은 오래가지 못하여 잠시 후 그녀는 여전히 입술을 늘여 웃었다.

“대장, 좀 나아지셨어요? 다리 아직 아프세요?”

환하게 웃는 금하의 얼굴이 기억 속의 그 얼굴과 겹쳐 보인 순간, 양정만은 눈앞이 어지러웠다.

“대장?”

금하가 의아해하며 양정만을 불렀다. 이내 빠르게 정신을 차린 양정만이 붓을 놓고 물었다.

“며칠 보이질 않더니, 또 무슨 일을 내게 속이고 있느냐?”

“아니에요! 아직 그 은자를 찾지 못했잖아요. 유 대인은 지금 뜨거운 솥 위에 앉은 말벌처럼 급하셔서, 누구든 잡히면 쏘세요. 매번 저를 보시면 한바탕 훈계를 하시지만, 육 대인한테는 차마 아무 말 못 하시고요.”

머리를 갸우뚱한 금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주 대인이 왜 죽었는지는 대략 파악했어요. 하지만 은자는 행방을 전혀 모르겠는 게, 진정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주현이는 왜 죽었느냐?”

양정만의 물음에 금하는 적란엽과 주현이 사이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양정만은 다 듣고도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듣기론 적란엽이 실종됐다고?”

금하는 신중하게 ‘네.’ 소리만 했을 뿐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더 할 수 없었다.

“넌 찾아보지 않았느냐?”

양정만이 이어 물었다.

“찾긴 했지만, 못 찾은 거죠.”

금하는 양악을 힐끔 보았다.

“듣기론 강에서 그녀의 옷을 발견했대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참, 대장, 제가 말씀드려야 할 좋은 일이 있어요!”

양정만이 더 물어본다면, 분명 허점이 드러날 것이 뻔한지라, 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무슨 일?”

“제 가족, 바로 친부모님에 관한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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