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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85)화 (85/224)

85화

금하는 적란엽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미 준비는 다 됐어요. 날이 밝으면 배가 언니를 고소로 데려다줄 거예요. 언니, 다시 생각하고 마음이 변해도 아직 늦진 않았어요.”

“고소.”

적란엽이 쓴웃음 지었다.

“왜 마음이 변해요. 나는 고소가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은 게 걱정될 뿐인데요.”

금하는 적란엽의 결심이 굳어진 것을 보고 더는 권하지 않았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았어요. 언니, 조금 더 쉴래요?”

밖에는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적란엽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집에서 빗소리를 듣던 그때를 떠올렸다.

이제 모두 옛일이 되고,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질 거다. 양부의 집을 떠나고, 매일 뱃놀이를 하며 남에게 값이 매겨지던 생활을 떠나고, 그 사람의 지배 아래 있던 날을 벗어난다.

그 사람을 떠나 멀고 먼 곳으로 도망가, 그 사람에게 자신이 결코 영원히 엎드려 복종하며 얌전히 그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해준다고?

적란엽은 안절부절 불안하면서도 또한 말로 표현 못 할 쾌감을 느꼈다.

금하는 적란엽에게 찻잔을 건네고 잠시 망설였지만, 기어이 말을 꺼냈다.

“언니는 곧 떠나야 하죠. 그 전에 나는 확실히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주현이, 주 대인에 관한 거예요.”

주현이…….

적란엽은 잠시 침묵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어봐요.”

“언니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는데, 왜 또 주 대인을 가까이했어요?”

“나는……, 주 대인 그분께 미안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나도 그가 그렇게 막다른 길로 갈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말을 하는 사이 적란엽은 저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주 대인은 언니를 아내로 맞이할 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아니에요. 대인은 후에 돈을 가져왔고, 나는 그분을 거절했어요.”

“에?”

적란엽이 금하를 바라봤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솔직하게 말할게요. 주 대인이 처음 양주에 왔을 때, 나는 그의 비위를 잘 맞춰 가깝게 지내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누구의 지시요?”

“그건 물어보지 마요, 나도 말할 수 없어요.”

적란엽이 고개를 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주 대인은 인품이 훌륭하셨어요. 제게도 시종일관 예의를 갖춰 대하셨고, 전 마음으로 그를 매우 존경했어요. 후에 그분은 본가에 편지를 썼다 하시면서, 돌아가 집안의 땅을 팔아 은자를 마련하면, 저를 아내로 맞을 수 있다고 하셨죠.”

“그분은 언니에게 진심이었군요.”

금하는 탄식했다.

“난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주인어른께 말씀드렸고, 주인어른은 주 대인에게 다른 댁 공자가 저를 이미 아내로 데려갈 것이니, 단념하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다음날 그분이 은량을 가져올 줄은 누구도 몰랐어요. 나는 당연히 그분께 시집을 갈 순 없어서 호되게 마음먹고 거절했죠.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요, 그 밤……. 그 밤, 그는 들보에 목을 매어 자진했어요.”

금하의 머릿속은 이미 대략의 내막을 그려내고 있었다.

주현이는 다음날 은자를 가져왔고, 그 은자는 분명 집안의 땅을 판 것이 아니라, 운하 수리대금의 일부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었다.

운하 수리대금은 십만 냥이 넘어. 남은 은자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당신들의 창문은…….”

금하가 넌지시 떠보며 묻자, 적란엽의 눈빛에 놀람이 떠올랐다. 그녀는 금하가 이 일도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맞아요. 내 집에서는 그가 사는 곳을 볼 수 있었어요. 망원통을 쓴다면, 훨씬 자세히 볼 수 있죠. 그때 그는 공무로 바빴어요. 하천을 실제로 확인하러 다녀야 해서, 매일 만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우리는 기회가 될 때 창문을 열고 멀리나마 마주 보았어요.”

“그날 밤 그는 고의로 창을 열어 당신에게 자신이 목매 자살하는 것을 보게 한 거죠?”

“나……, 나도 그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어요.”

적란엽은 가슴 쪽의 옷을 잡아 뜯으며, 눈썹을 찡그린 채 눈물을 흘렸다.

“내가 잘못했어요. 그분이 나를 원망하는 건 당연해요.”

“언니는 그에게……, 그의 무덤가에 향낭이 있었어요, 언니 거죠?”

“향낭까지 다 찾았어요?”

적란엽은 관부의 사건처리 수법이나 과정을 자세히 알지 못해 매우 의아하게 여겼다.

“맞아요. 내 거예요. 그 밤부터……, 바로 주 대인이 죽은 후부터 나는 계속 악몽을 꾸며 그를 보았어요. 후에 할멈이 그가 날 생각하고 있어서라며, 제게 머리카락 한 올을 잘라 그의 무덤가에 묻으라고 말해줬어요. 그럼 그가 안심할 거라고요.”

“향낭과 주 대인이 입은 옷의 바늘땀은 한 사람의 솜씨였어요.”

금하는 이제 더욱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생겼다.

“언니 아니에요?”

“아니요. 우리 집 할멈이에요.”

적란엽이 난감하게 말했다.

“그 옷……, 주 대인은 내가 만든 줄 알아요.”

금하는 당장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적란엽은 주현이를 버렸고, 그녀 자신은 또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 주현이는 목매어 죽었고, 그녀 자신도 강에 투신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이야기에, 금하는 인생의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 * *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 올 즈음, 양악이 돌아와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말했다.

금하는 미리 남장으로 꾸미게 한 적란엽과 나루터로 갔고, 양악과 함께 그녀가 배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뱃머리에는 아예가 서 있었다. 그를 본 금하는 상관희가 하는 일은 신뢰할 만하다고 탄복하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득 그녀와 마주친 아예의 시선은 험악했다. 왜 그런지는 금하도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관 당주 말이 고소 쪽에 수놓는 곳이 있대. 적 낭자는 가서 수를 놓는 수낭绣娘이 될 거야. 하지만 힘들고, 생활도 고생스럽겠지. 낭자가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양악은 적란엽이 선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 바람이 지나 모든 일이 조용해지면, 넌 낭자를 보러 갈 수 있어.”

금하는 배가 안정감 있게 출발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얼마 안 걸리겠지? 날이 밝으면 바로 도착하겠다.”

양악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배가 천천히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이틀 후.

무, 시금치, 버섯……, 그리고 참죽잎…….

금하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채소 광주리를 뒤적이며 세심히 확인하다가 부엌 역졸을 바라보며 웃었다.

“오라버니, 달걀 두 개도 줄 수 있어?”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난 후, 역졸은 금하가 고른 채소 한 광주리를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버섯, 죽순, 두부, 무, 달걀……. 다행히 이 채소들은 그다지 값어치가 나가지 않아 그도 눈감아 주었다.

“이번에 사찰 채식으로 상 차리게요?”

역졸이 그녀에게 묻자, 금하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늘이 재계斋戒하기 좋은 날로 십만 공덕을 쌓을 수 있어요. 오라버니도 채식으로 먹어요.”

“정말요?”

“당연히 정말이죠. 내가 특별히 책을 찾아봤어요.”

금하는 작은 광주리를 들고 부엌을 나와 곧장 육역이 머무는 작은 원院으로 다다다 달려갔다.

이 작은 원에는 원래 독립된 작은 부엌이 있고, 부엌 안에는 세간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육역은 이번 양주행에 가복을 거느리지 않아 지금껏 이 부엌을 쓴 적이 없었다.

금하는 우물물을 길어와 채소를 전부 정성 들여 씻고 골랐다. 두부는 우물물에 3번 담가 비린내를 빼고, 봄 죽순은 채를 썰어 버섯과 함께 탕으로 끓였다. 이어서 반죽한 면은 숙성이 되게 젖은 천으로 덮어 두고, 버섯의 청향을 맡아 보았다.

모든 준비를 끝낸 그녀는 매우 만족스러워졌다.

육역에게 식사를 대접하다.

이것은 그녀가 생각하기에 감사를 가장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동전 몇 개일 만큼 주머니 사정이 곤란한 그녀는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제일 난감했다. 가진 돈으로는 큰 생선이나 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채소와 과일도 한 상 차려내기가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금하는 관역의 부엌으로 가 배당분을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찾아본 책에서 오늘이 재계하기 적당한 날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야말로 마음으로도, 이치로 따져도 오늘은 식사에 초대하기에 가장 적합한 날인 것이다.

순식간에 하늘은 어두워졌으나, 어찌 된 일인지 육역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금하는 깨끗이 씻은 작은 홍당무를 깨물어 먹으며 바깥으로 머리를 빠끔히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마침 월아문 밖에서도 누군가가 기웃거렸다.

“대양!”

금하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불렀다.

“방금 네 거처에 찾아갔는데 없어서 분명 육 대인이 계신 쪽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양악은 원으로 들어오자마자, 단번에 향을 알아맞혔다.

“봄 죽순과 버섯으로 탕을 끓였구나?”

“응, 맛있겠지? 조금 이따가 두부피 넣어야 해.”

금하는 양악을 보며 몹시 기뻐했다.

“너 마침 잘 왔어. 내가 돼지기름으로 무를 볶으려는데, 이 무는 먼저 한 번 익혀줘야 해?”

“아니. 그렇게 하면 너무 물러.”

양악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습관적으로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을 씻은 후, 흰 무를 가져와 탁탁탁 크기가 일정한 조각으로 썰었다.

양악이 오니 금하는 이 일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그녀는 문설주에 기대어 작은 홍당무를 아작아작 깨물어 먹으며 혀 짧은 소리로 말했다.

“면은 내가 숙성시켜놨어……. 춘병을 만들려고……. 내가 기억하기론 얇게 해야 해서…….”

“알았어.”

양악이 젖은 천을 걷고, 반죽을 찔러 숙성 정도를 확인했다.

“육 대인을 초대하면서 채소요리만으로 술자리를 차리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 같지는 않다?”

“육 대인이 무슨 좋은 걸 안 드셔 봤겠어. 내가 가진 걸 모두 탕진해서 온갖 요리를 해도, 그분한테는 꼭 귀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

금하의 말은 그럴듯했다.

“내 호주머니는 비록 가난해서 검증할 수조차 없다 해도, 내 충심은 검증할 필요가 없지. 식사 대접 자체가 내 마음이야. 육 대인이 어떻게 모르시겠니.”

이때 월아문 밖에서는 누군가 천천히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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