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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84)화 (84/224)

84화

내리는 빗소리는 더욱더 요란해졌다.

오늘 밤, 육역은 잠을 자는 것이 편안치 않았다. 몸을 뒤척거리던 그는 빗소리에 섞인 어떤 소리에 예민하게 눈을 떴고, 고요히 몸을 굴려 일어나 경계 상태에 들어갔다.

빗장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문 여는 기술은 의외로 괜찮아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빗장이 끝까지 열린 후, 문이 열려 생긴 작은 틈으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머금은 그림자 하나가 매우 재빨리 몸을 빗겨 들어왔다.

그와 거의 동시였다.

미리 기다리던 육역이 신속하고도 맹렬하게 들어온 사람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단도 한 자루를 그녀의 목에 들이댄 채로…….

이처럼 가까운 거리, 서로의 눈이 마주친 채 얼음처럼 굳었다.

“너…….”

“쉿, 대인, 소리 좀 낮춰 주세요. 대인께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금하는 원래 손짓을 하려 했지만, 비수가 방해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거…….”

금하의 눈짓에 육역은 비수를 거두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가 의혹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나를 찾아와 의논하고 싶다면서, 꼭 못된 짓 꾸미는 것처럼 슬그머니 들어와야 하나?”

“저도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금하는 하려던 말의 반을 했을 뿐, 육역의 손이 자신의 이마를 덮은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당황스럽게도 금하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괜찮군. 열은 이미 내렸어.”

손을 거둔 육역은 조금 전 걱정하던 눈빛은 간데없이 그녀를 다시 무서운 눈으로 바라봤다.

“일찍이 내가 준 약을 썼다면, 전혀 열이 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 약은 보통 비싼 것이 아니겠죠!

금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대인, 불을 켜시면 안 돼요.”

금하는 육역이 부싯돌을 가지러 간 것을 보고 급하게 막았다.

“…….”

말없이 부싯돌을 내려놓은 육역이 유감스럽다는 농담을 던졌다.

“네가 상의하려는 것이 도둑질이냐, 아니면 일확천금할 노다지를 캐러 가자는 거냐?”

금하의 속은 매우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불안해하면서도 기어이 그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인, 적 낭자가 한밤에 강에 투신했고, 대양이 구해서 돌아왔어요. 지금……, 제 방에 있습니다.”

육역은 잠시 침묵했다. 다시 입을 열 때의 어조에는 조금 전의 가벼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네게 미리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적 낭자의 일은 네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소관 기억합니다. 그런데……, 왠지 지금 낭자를 돌려보내면, 낭자는 조만간 다시 죽으려 들 것 같아요. 그때도 그녀를 구해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육역이 차갑게 흥 소리를 냈다.

“양악이 그녀를 돌려보내기 아쉬운 것이지?”

“대양이 미색에 혹할 사람이 아니지만…….”

금하는 급하게 설명했다.

“그는 적 낭자가 유난히 불쌍하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불쌍한 사람들은 적 낭자가 아니라도 많아. 양 포쾌에게 성의 서쪽 교외에 가보라고 해. 동양인에게 지금 막 도륙당한 마을에는 불쌍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

육역의 어조는 차가웠다.

“대인 말씀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적 낭자를 다시 불 속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그 불 속에서 몇 년을 잘 지냈는데, 지금 넌 무슨 걱정이야?”

금하는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자신이 육역을 설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금의위로서 또 육병의 아들로서, 그의 감정은 일찍이 철처럼 단단해졌건만, 그런 그가 그녀의 말 한마디에 어찌 마음이 움직이겠나.

“대양은 적 낭자에게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에겐 그렇게 많은 은자도 없고, 자신이 양주 수마를 아내로 삼는 걸 대장이 동의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

금하는 양악을 매우 잘 알고 있어 한숨을 내쉬었다.

“양악은 그저 적 낭자가 제대로 살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렇게 돼야 그도 마음을 놓거든요.”

“사람마다 자신의 운명이 있어.”

육역의 말투는 무뚝뚝하며 간결했고, 그걸 듣는 금하는 말하는 것도 풀이 죽어 있었다.

“소관 알겠습니다. 제가 그에게 돌려보내라고 타이르겠습니다.”

양악은 평소 온순한 사람이지만, 정말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홉 마리 소로도 끌어낼 수 없다.

이를 아는 금하는 사실 어떻게 그를 설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밖에서는 또다시 번개가 번쩍거렸고, 육역은 금하의 얼굴에 나타난 근심스러운 빛을 아주 뚜렷이 보았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육역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말이 먼저 나왔다. 그에겐 결코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기다려!”

금하에게 육역의 말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원래는 어찌할 계획이었더냐?”

육역에게 어쩌면 가능성이 남은 걸까.

한가닥 기대에 금하는 급히 말했다.

“전 이렇게 생각했어요. 적 낭자는 원래 주현이 사건에 연루가 되어있었죠. 우린 그녀에게 의심되는 점이 있다며 대인의 이름으로 적 낭자를 잡아두고, 시일을 끌며 돌려보내지 않는 거예요. 그녀의 양가에게 어떤 동정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만약 동정이 없으면 다시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그건 충분히 남의 원한을 살만한 일이다. 넌 어째서 유 대인을 찾아가지 않았지?”

“유 대인, 그 담 작으신 분은 적 낭자의 양가가 양주지부의 막내 처남이라는 걸 아세요. 분명 그분은 지레 겁먹고 낭자를 돌려보내시겠죠. 어딜 감히 사람을 붙들어 놔요.”

금하도 이 일이 사실 육역을 곤란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적 낭자 배후에는 힘이 훨씬 센 인물이 있고, 대인께서는…….”

“사람을 잡아두는 건 며칠만 가능해. 그리고 결국은 돌려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육역은 미간을 찡그린 채 말이 없었다.

금하는 옆에서 그가 대책을 강구하는 중임을 짐작했다. 그래서 차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밖에서 조금씩 스며드는 한기로 실내는 점차 싸늘해졌고, 육역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양악에게 상관희를 찾아가라 해. 내 분부라 이르고, 상관 당주에게 적 낭자를 비밀리에 고소로 보내라고 해라. 반드시 누구의 눈에도 띄지 말아야 함을 기억해.”

“그렇게는 저도 생각해 봤지만, 상관 언니를 또 연루시킬까 걱정이 돼요. 어디까지나 오안방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잖아요.”

금하가 말했다.

“내가 있으니 문제 될 것 없다. 혹여 관청이 그들을 찾아 귀찮게 한다 해도, 보여주기 위한 것뿐이지.”

금하는 다소 안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육역을 바라봤다.

“고맙습니다, 대인……. 제가 비록 대단한 능력은 없지만, 대인께서 후에 무슨 일이 있으시면 어떤 일이든 얼마든지 시켜 주세요. 절대 마다치 않겠습니다!”

욱역이 그녀를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거라. 양악에게 상관희를 찾으라 하고, 너는 적란엽을 지키며 사람이 데리러 오길 기다려. 사고는 그만 일으켜.”

“소관 알겠습니다.”

금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나 나왔다.

문이 닫힌 후, 육역은 손끝으로 미간을 꾹 누르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육역은 지금 자신이 이 일에 개입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스스로 불로 뛰어드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적란엽, 그리고 '그'.

모든 조각이 맞추어져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됐던 그때부터 어쩌면 자신은 저울질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선택의 순간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순간을.

이제 그 순간을 더는 미룰 수 없음도 육역은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 있던 책꽂이로 다가선 그는 평범한 물건인 양 쌓아둔 두루마리를 중 하나를 집어 펼쳤다.

송나라 휘종의 추응도.

바라보는 육역의 눈빛이 밤빛보다 짙게 가라앉았다.

* * *

방으로 돌아온 금하는 우선 양악을 불러내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이 일을 설명했다.

그는 이 해결책을 육역이 안배했다는 말을 듣고는 의아한 의심이 들었다.

“육 대인이 낭자를 고소로 보낼 거라고 말씀하셨어?”

“적 낭자의 일은 보통과 달라. 그녀의 배후는 양가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아. 나는 육 대인이 매우 꼼꼼하고 빈틈이 없이 고려하셨다고 생각해. 그녀가 여기 머무는 건 어차피 어느 날 밝혀지겠지. 고소로 가는 것이 영구적인 해법이 아니라 해도, 지금은 우선 이렇게 할 수밖에는 없어.”

양악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육 대인 말대로 하자.”

“그리고 또 하나 있어.”

금하는 양악을 붙잡았다. 진중한 그녀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육 대인은 이 일에 있어선 우리를 위해 도와주시는 거고, 우리는 이미 그에게 엄청 큰 은혜를 빚졌어.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앞으로 만약 운이 나빠 죄상이 드러나면, 우리 둘이 이 일을 감당하자. 절대 대인을 연루시킬 수는 없어.”

“그거야 당연하지.”

양악이 재빨리 말했다.

금하도 그대로 대화를 끝내고는 뒷방으로 들어가 적란엽이 갈아입은 의복 등을 가져다 양악에게 건넸다.

“이 옷들을 강물에 버려. 가장 좋은 건 핏자국을 더 바르는 건데…….”

양악은 그녀의 의도를 이해했다.

실종된 적란엽의 옷을 관아의 관차가 찾게 된다. 그 후,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한참이 지나도 사람은 찾지 못한 채 그대로 사건은 종결될 터였다.

생각하면 이런 전개가 가장 좋으니, 옷을 잘 챙긴 양악은 날이 밝기 전에 급히 관역을 나가 상관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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