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그건 낭자를 망치는 거야!”
“대양, 날이 밝자마자 사람들은 적 낭자가 보이지 않는 걸 바로 알게 될 거야. 너 잊지 마. 저 여자의 양가는 양주지부의 막내 처남이야. 사람이 실종됐는데, 그대로 가만있겠니? 만일 그에게 우리가 사적으로 사람을 숨긴 것이 발각되면, 제멋대로 납치했단 죄명을 뒤집어쓰게 되고, 우리 둘은 뼈도 못 추려! 대양, 또 생각해야 해. 그때 대장은 어떡해?”
금하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 양악을 타일렀고, 마지막으로 초조한 어조로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는 결정적으로 낭자를 숨길만 한 곳이 없어!”
금하의 말을 다 듣고도 한동안 침묵하던 양악이 사납게 몸을 일으켰다.
“적 낭자가 여기 있으면 네가 말려 들어. 내가 데리고 가겠어!”
“오라버니……, 일단 앉아! 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금하는 가까스로 양악을 눌러 앉혔다.
“방법을 더 생각해보자. 반드시 무슨 수가 있을 거야.”
양악은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 *
“가만. 넌 낭자를 어딘가로 보내고 싶어 하지만, 이 일을 적 낭자에게는 물어본 적이 전혀 없잖아?”
금하가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적 낭자가 원하는 게 무언지 너도 알지 못해. 만일 그녀가 깨어나서 여전히 양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면, 어떡해?”
침상 위의 적란엽을 바라보며 양악은 정신이 멍하게 나갔다.
“그리고 넌 낭자가 왜 투신해서 자진하려 했는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해. 이렇게 낭자를 어딘가로 가게 했다가, 만일 그녀가 여전히 자살하려 하면 그땐 또 어떡해?”
금하의 말에 양악은 불안해졌다.
“그럴 리 없어…….”
“낭자의 생각을 누가 또 알아.”
금하는 바깥의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 있으면 날이 밝을 거야. 네가 적 낭자를 깨워. 반드시 제대로 알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안 그러면 우리도 완전히 헛수고하는 거야.”
양악이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네가 가서 불러봐. 나는 덩치가 커서, 아마 낭자를 놀라게 할 거야.”
금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침상 가로 가서 적란엽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런데 몇 번이나 불러도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
“안 되겠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금하는 어쩔 수 없이 엄지손가락에 힘을 줘 그녀의 인중을 눌렀다.
결국 적란엽의 아, 하는 작은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느릿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적 낭자, 깨어났군요.”
금하는 그녀가 놀랄까 걱정하며 가능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실내는 어두웠고, 적란엽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금하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아보지 못하여 어리둥절했다.
“당신은?”
“저는 육선문 포쾌예요. 적 낭자는 조금 전 강에 투신했고, 우리가 구했어요.”
금하는 그녀를 부축해 일어나 침상에 기대게 했다.
“적 낭자, 당신은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나요?”
“나는……, 당신들은 왜 나를 구했어요. 나를 그냥 죽게 할 순 없었나요!”
적란엽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연히 왜 죽으려고 해요? 언니는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태어났잖아요. 얼마나 많은 이가 부러워하면서도 언니처럼은 될 수 없는데요. 왜 그런 생각을 떨치고 일어나질 못해요?”
“이 외모가 무슨 소용이에요.”
적란엽은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낙담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그를 3년이나 기다렸어요. 줄곧 그가 날 데리러 와주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그!
설마 경성에서 온 그 공자를 말하는 거야?
그랬구나. 적란엽은 누군가에게 능욕당한 게 아니라, 사랑에 상처받은 거였어.
“언니가 마음에 차지 않는 사람도 있군요. 눈이 말도 안 되게 높네요.”
금하는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보며 눈치챌 수 없도록 신중하게 탐문했다.
“누구예요? 어쩜 이렇게 복이 없을까?”
그러나 적란엽은 더욱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아 떠보는 것이 통하지 않았다. 금하는 낙담하지 않고 계속 설득했다.
“언니, 내가 언니보다 조금 어리긴 하지만, 관청에 있던 이 몇 년간 겪은 일이 많아요. 내가 한마디만 할게요. 그가 언니를 맘에 들어 하지 않거나, 혹은 언니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그런 거 전혀 상관없어요. 그냥 당신들 사이에 연분이 없는 거예요. 연분이란 건 결국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건데, 언니가 이런 연분 때문에 강에 뛰어들어 자진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금하는 숨을 쉬기 위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제가 잘은 몰라도 연분이란 건 지금이 아니면 몇 달, 몇 년 지나서 아마 또 올 거예요. 언니 이번에는 성급하게 강에 뛰어들었어요. 이대로는 너무 분하잖아요.”
적란엽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더는 설득할 필요 없어요. 당신이 하려는 말은 나도 알아요. 나는 이미 한 번 죽었던 이상, 당연히 마음을 넓게 가질 거예요. 안심해요. 나는 다시 바보짓 안 해요.”
금하는 마음을 놓았고, 병풍 뒤에서 듣던 양악도 이제야 마음을 놓았다.
“이왕 이렇게 됐는데, 언니는 그래도 양부 댁으로 돌아갈 거예요?”
금하가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이 돌아가지 않으면, 다른 데 갈 데가 있나요.”
적란엽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손으로는 자신의 옷을 잡아 뜯고 있었다.
“당신들은 분명 나를 경멸하죠? 나 같은 사람은 기루 여자와 태생부터 같다고 생각할 테죠.”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금하가 재빨리 말했다.
“나와 대양은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정말요.”
“대양?”
“언니가 강에 투신한 걸 대양이 구했어요.”
금하가 밖을 향해 외쳤다.
“대양, 들어와.”
양악이 등불을 들고 병풍을 돌아 천천히 들어 오자, 적란엽은 그를 보자마자 알아보았다.
“다, 당신은 그날 육 대인 대신 향료를 가져온 사람이죠?”
“사실 그도 육선문의 포쾌예요. 다만 육 대인은 우리 직위가 낮다고, 자주 우리에게 자질구레한 잡일을 시키죠.”
금하는 대충 얼버무려 둘러대다가 적란엽에게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대양이 언니를 구했고, 계속 언니를 무척 걱정했어요.”
“감사합니다. 제가 갚을 길이 없어요.”
적란엽이 양악을 바라보자, 그는 긴장하여 손과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모르고, 얼굴이 온통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 아닙니다. 적 낭자, 전 보답을 바라고 한 게 아니에요. 나, 나, 나는 절대 분수에 맞지 않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절대 오해하지 마요. 나는 단지 낭자가 누군가에게 괴롭힘당했을까 걱정되어…….”
금하가 그 대신 말했다.
“양악은 언니가 잘못될까 불안해해요. 누군가 언니를 괴롭혔을까 몹시 걱정하고, 언니가 계속 죽으려 할까 걱정했어요. 그래서 언니를 구한 후, 바로 저와 의논한 거죠. 그는 언니를 몰래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어 해요. 이곳을 떠나, 양가를 떠나서 새로이 살아갈 다른 곳으로요.”
“정말 가능해요?”
적란엽의 말투에는 은연중 기대가 비쳤다. 그녀는 여전히 명치 쪽의 옷을 잡아 뜯고 있었다.
금하는 망설이다가 탐색하듯 물었다.
“언니,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적란엽이 고개를 저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가 나처럼 이렇게 팔려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생활을 원하겠어요. 게다가 적가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면, 그도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겠죠.”
양악은 미간을 깊게 찡그린 채 금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금하는 이미 그의 뜻을 알고 있었으니, 속으로 한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언니, 우선 쉬고 있어요. 내가 대양과 이 일을 좀 더 자세히 상의할게요.”
금하는 병풍을 돌아나가 초조하게 실내를 왔다 갔다 하며 서성거렸다.
양주 이곳에서 사람을 숨기고자 하면, 가장 좋은 것은 당연히 상관희를 찾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막 사수죽을 강탈했고, 거기다 운하 수리자금 건과 연루되어 있으니, 다른 이의 일을 더는 보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적란엽의 이 일은 그녀와 대양으로는 근본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다른 이를 찾아야 한다.
대장, 안 된다!
그는 적란엽을 집으로 돌려보낼 뿐 아니라, 돌아와 양악의 다리까지 부러뜨릴 거다.
유 상좌, 역시 안 된다!
그 인간은 문제가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이라,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육역…….
금하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 육역과 자신이 했던 대화를 돌이켜 떠올렸다.
‘적 낭자의 일은 네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 거라. 그건 네가 개입할 수 없는 일이야.’
분명 그는 적란엽의 뒤에 있는 사람을 알고 있고, 이 일에 자신이 개입하기도 원하지 않았다.
양악은 제 자리에 걸음을 멈춘 금하를 기대에 가득 차 바라봤다.
“왜 그래. 너 무슨 수가 생각났어?”
“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하가 바로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한 줄기 번개가 갈라 터진 뒤로 천둥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