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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82)화 (82/224)

82화

사소는 멈칫하다가 이내 코웃음 쳤다.

“넌 정말 내 사저를 모르는구나. 누나는 여중 호걸이야. 그때 누나는 원래 혼인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 모두 양 집안 어른들의 강요였지.”

아예는 너무도 화가나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그에게 일장 초식을 날렸다.

“당신은 혼인에서 혼자 도망가려고 남은 책임을 당주에게 미뤘어요. 세상 어디에 당신 같은 파렴치한이 있습니까!”

그가 다시 주먹을 날리자, 사소도 화가 났다.

“너는 그 당시의 일을 전혀 몰라. 근데 본좌가 왜 너한테 설명해야 해!”

두 사람의 말은 어긋나기만 했다. 당연히 싸움으로 이어져 두 사람은 맞붙어 한바탕 난투가 벌어졌다.

아예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직 낫지 않은 어깨의 상처도 신경 쓸 마음이 없을 만큼, 그저 사소를 주먹으로 늘씬 패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반면 사소는 아예가 다친 몸이라는 것이 신경 쓰였다. 게다가 그는 아예가 상관희에게 지극히 충성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힘을 다 쓰지도 않았고 그와 싸우는 것도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소는 매 합마다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게 봐주다가 아예에게 몇 대 맞기도 했다.

“멈춰!”

그때, 맑은 여자의 목소리가 호통을 쳤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예의 몸은 한순간 굳어져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 사소는 발끈 성내며 손등으로 입가의 선혈을 닦아 냈다. 다급하게 달려온 상관희를 흘끔 바라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자식 미친 거 아냐! 얘 나한테 원한 있어?”

상관희가 사소의 앞으로 재빨리 다가왔다.

사소는 코가 파래졌고, 얼굴이 부은 데다가 입가와 눈가는 모두 찢어졌다. 비록 상처가 작다 해도, 사백리 앞에서 가릴 방법은 전혀 없었다.

상관희가 아예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냉혹한 얼굴로 거듭 그의 따귀를 내려쳤고, 분노하며 질책했다.

“누가 네 뒤를 봐주기에 네가 감히 소방주에게 손을 대는 것이냐?”

아예는 계속 맞아 얼굴 반쪽이 금세 높이 부풀어 올랐다. 서릿발 같은 상관희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숙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방주에 대한 불경은 지극한 하극상이다. 나는 우리 방에 너 같은 사람은 용납할 수 없으니, 지금 당장 짐을 챙겨 우리 방을 떠나!”

상관희의 어조는 더없이 가혹했다.

“누나, 이게……, 아니지…….”

사소는 그녀의 처벌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한판 붙어 싸운 것뿐, 그로서는 무슨 큰일이랄 것도 없었다.

아예는 떠나라는 상관희의 말을 듣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고 상관희를 바라보며, 천천히 꿇어앉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당주께서 벌하시면 어떤 벌이든 모두 달게 받겠으나, 제게 떠나라고만 마십시오.”

상관희는 마음이 혼란스러워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 너는 아무리 그래도 사내대장부인데…….”

사소는 아예가 무릎까지 꿇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누나, 우리 둘은 장난 좀 한 건데, 무슨 하극상이랄 게 있어. 됐어, 됐어. 소방주인 내가 됐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넘어가도 되는 거잖아? 이의 있어?”

상관희는 언짢은 기색으로 사소를 보았다.

“누가 감히 네 말에 다른 말을 해?”

“그럼 됐네. 넘어가.”

사소가 헤헤 웃었다.

“일어나. 이번뿐이다.”

아예는 사소의 말에는 꼼짝도 하지 않아 상관희가 말할 수밖에 없었다.

“소방주가 말씀하셨으니, 너는 일어나거라. 그러나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나는 더는 널 용서하지 않아.”

아예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비통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매우 빠르게 고개를 숙여 표정을 숨겼고, 말없이 그곳을 떠났다.

아예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상관희는 사소를 향해 미간을 찡그렸다.

“넌 평소 사람하고 쉽게 싸우지 않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알아. 나는 금하를 아내로 맞이하겠다, 그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바로 저 자식이 화를 내네.”

사소는 입술 끝이 아릿아릿하게 아파 입술을 비틀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돌이 된 것 같아 상관희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가까스로 느린 어조로 물었다.

“……넌 원 낭자를 아내로 맞으려고?”

“어.”

사소도 이런 얘기를 하려니 어딘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에 금하는 아가씨고 관청 일하는 건 너무도 불리해. 차라리 아내로 맞는 게 좋겠어.”

“그랬구나. 나는 아직 일이 있어서…….”

상관희는 더 이상의 말 없이 급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 * *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신기한 것이 육역이 준 약은 냄새는 코를 찌르는데, 상처에 바르면 유난히 차갑고 시원해 매우 편안했다.

금하는 원래 열이 있었다.

양악과 함께 있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고, 또 유 상좌와 육역을 상대하느라 억지로 기운을 짜냈다. 그런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니 머리는 어지럽고, 눈앞은 캄캄한 것이 온몸에 남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금하는 옷을 입은 채 침상에 누워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모른다. 그녀는 갈증을 참을 수 없어서 잠에서 깼다. 실내는 어두컴컴해서 바깥의 비 오는 소리가 더욱 거세게 들렸다.

버둥거리며 겨우 일어난 금하는 신을 꺾어 신고 탁자로 갔다. 바로 등을 켜기 위해 주변을 더듬다 보니 이것조차 귀찮을 정도였다.

하.

옅은 한숨을 내쉰 그녀가 짚으로 엮은 작은 광주리 안에서 배가 불룩한 자기 주전자를 꺼내 물을 따르던 순간이었다.

문득 그녀는 바깥의 빗소리 중 발소리가 섞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금하는 순간 멈칫 굳었다.

발소리는 바로 그녀의 문 앞에 멎었다.

문짝 하나 사이로 금하는 심지어 바깥에 있는 사람의 헐떡거리는 숨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남자야!

그녀의 방문이 몇 번이나 밀렸으나, 안쪽에서 걸쇠가 걸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바로 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또 억지로 억누른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금하야, 금하야, 금하…….”

대양!

왜 대양이?

금하는 다급히 일어나 빗장을 열고 문을 열었다. 그제야 그녀는 양악이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 그는 등에 아가씨를 업고 있었다.

그녀는…… 적란엽이었다.

“너…….”

금하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놀라 말을 잊었다.

“너 적 낭자를 어떻게 여기로 데려왔어?”

“들어가 얘기해!”

양악은 반 혼수상태의 적란엽을 업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금하는 급하게 문을 잠갔고, 또 그 대신 우산을 받아 물을 털어 구석에 놓았다. 그런 후, 돌아서 양악을 보니 그는 적란엽을 가볍고 부드러운 손길로 침상에 내려놓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네가 아무리 적 낭자를 걱정해도, 사람을 이렇게 약탈해 올 수는 없어. 우리는 강도나 도적이 아닌 관차야.”

금하는 다급해지고 화가 났지만, 차마 목소리는 키우지 못했다. 하지만 당장 열이 뻗쳐 양악의 목을 조를 뻔했다.

“대장께서 아시면, 분명 네 다리를 부러뜨리실 거야.”

“내 말 좀 들어 봐!”

양악이 물로 푹 젖었던 얼굴을 훔쳐내고,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적 낭자는 죽으려고 강에 뛰어들었어. 내가 건졌어.”

“에?!”

금하는 순간 얼이 빠져 침상의 적란엽을 바라보았다.

“적 낭자가 강에 뛰어들어? 누군가에게 던져진 건 아니고?”

양악은 축축하게 젖은 그대로 원형 걸상에 앉아 다시 얼굴의 물기를 닦았다.

“아니야. 내가 직접 보았어. 삼경三更이 막 지나서 낭자 혼자 나왔고, 강변을 따라 쭉 걸었어. 잠시 멈췄다가 바로 뛰어든 거야.”

“……너는 그 집 밖에서 계속 지키고 있었고?”

금하가 그를 바라보니, 양악이 어색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아버지가 쉬시면, 나는 어차피 아무 일도 없어. 잠도 안 오고……. 너 우선 낭자 젖은 옷 좀 갈아입혀 줘. 감기 걸릴까 봐 걱정된다.”

금하는 자신의 옷을 가져다 힘들게 정신이 없는 적란엽의 옷을 갈아입혔다. 그러고 다시 양악을 바라봤다.

아무리 뭐라 해도, 오랜 친구인 금하는 양악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너, 적 낭자 집에 데려다줄 생각 없지?”

“어떻게 돌려보내! 만일 낭자가 또……, 또 죽으려 하면, 어떡해?”

양악은 다급해 했다.

“낭자의 양가는 그녀의 생사를 전혀 상관 안 해.”

“그렇다고만 할 수 없어. 양가는 그녀로 돈을 벌고 생계를 꾸려야 해. 어떻게 낭자의 생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어.”

금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양, 내가 널 도와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이건 이치에 어긋나! 넌 낭자를 구했지만, 도리상으로는 그녀를 당연히 집으로 보내고, 사람들한테 잘 돌봐달라고 부탁해야 해.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낭자를 여기로 데리고 와?”

양악이 벌컥 화를 냈다.

“설마, 내게 낭자가 죽는 걸 다시 한번 보라는 거야? 생각해 봐! 다음에도 내가 옆에 있을 수 있을까? 또 낭자를 구할 수 있을까?”

“…….”

금하는 이마를 짚고 고민하다가 한참 후에야 다시 물었다.

“그럼 넌 어쩔 셈이야?”

“나는……, 나는 그래서 너랑 상의해 보려고 왔어. 어찌 되었든, 낭자를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어.”

양악은 말은 결단력 있고,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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