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육역은 이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흘끔 보았다.
“네가 달려나간 건 이 일 때문인가?”
“주현이 사건과 관계가 있을지도 몰라서요. 전 우선 확실히 확인하고……, 대인께 보고드리려 했어요.”
금하는 다시 한 마디를 보충했다.
“적 낭자의 일은 네가 더 이상 신경 쓰지 말 거라.”
육역이 간단하게 지시했다.
“그건 네가 개입할 수 없는 일이야.”
“……예.”
금하의 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육역이 계속 이어서 지시했다.
“너는 일단 돌아가. 다친 이상, 네 본분을 지켜 상처를 잘 치료해. 양 포두 쪽은 내가 만나 봐야겠다.”
금하는 대답하고 일어나 육역의 방에서 물러 나왔다.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정리해보면, 육역은 그 배에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적 낭자와 어떤 관계인지까지 알고 있었다.
대인은 주현이의 사건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기다려!”
뒤에서 육역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하가 돌아보니, 육역은 이미 방을 나와 그녀의 손에 청죽의 유포산을 쥐여 줬다.
“대인.”
육역은 순간 눈이 커진 금하를 쳐다보지도, 심지어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가 문마저 닫았다.
“감사합니다, 대인.”
금하가 급히 말했으나, 그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 안, 육역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빗방울이 우산 위로 투둑투둑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듣고 있었다.
* * *
사수죽은 침상 가에 앉아 자신의 다리를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그가 다리를 뻗었다 접는 것을 반복하자 무릎 쪽에서 피가 배어 나왔고, 그는 아픔을 참다못해 이를 악물었다.
이건 의원의 당부였다. 다리에 엉겨 뭉친 피가 그의 무릎을 만두 두 개 만큼이나 부풀어 오르게 했으니, 그는 자신의 힘으로 반드시 이걸 밖으로 빼내야 했다.
“형님…….”
사소는 옆에서 보다가 격분하여 이를 갈았다.
“오늘 형님이 받으신 이 고통, 제가 훗날 그 육가한테 반드시 배로 갚아 주겠습니다!”
단지 두어 번 폈다 구부렸을 뿐인데, 사수죽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스며 나왔다. 사소의 말을 들은 그가 쓰게 웃었다.
“아우, 감옥 안의 다른 사람에 비하면, 내 이 다친 상처는 그야말로 모기 물린 것과 같아.”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쉿.”
숨소리도 죽이고 자세히 들어보니, 소리는 길게 세 번, 짧게 두 번으로 반복하여 들렸다. 그제야 한숨을 돌린 사소가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칠기 합을 든 아예가 서 있었다. 사소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하여, 그의 태도가 공손한 것인지 태만한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들어와.”
사소는 원래 누군가 그를 한 자(*약 30.3cm.)만큼 존경하면, 그는 상대를 한 장(*약 3미터.)만큼 존경하여 열 배는 되돌려 주는 성격이었으니, 당연히 아예같은 이런 성격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인사 좀 해라.”
사소는 툴툴거리며 다시 문을 잠갔다. 칠기 합을 탁자에 둔 아예가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이건 어혈을 풀고, 열을 발산시키는 탕약입니다. 사가 형제가 다 드시면, 상관 당주께서 다리 지압을 해드리라고 제게 분부하셨습니다.”
“네가? 지압할 줄 알아?”
사소가 의아해했다.
“제가 수련한 내가권에서 경맥 지압은 기초적인 지식과 기술입니다.”
사소는 눈썹을 치켜세운 채 아예와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럼……, 동생에게 수고 좀 끼치겠네.”
“이건 상관 당주 분부시니, 예의 차릴 필요 없으십니다.”
사수죽의 말에 아예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말에 담긴 뜻인즉, 그는 분부에 따라 하고 있을 뿐 그들의 감사 같은 건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이었다.
사소도 그와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탁자로 가 칠기 합을 열었다. 그 안에서 탕약을 꺼내 사수죽에게 건넸다.
“너무 진하다.”
사수죽이 받은 탕약은 걸쭉하여 마시기도 힘에 겨웠다.
“원 낭자 쪽은……, 난처해지진 않았어?”
사수죽이 탕약을 마시고 사소에게 물었다.
“괜찮을 거예요. 제가 보기에 걔는 방에서 멀쩡하게 요양 잘하고 있어요. 그저 그 육 씨의…….”
사소는 육역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기분이 바로 불쾌해졌다.
“그 육 씨는 금의위인데, 육선문에서 파견한 사람을 어쩌면 그리 당연하게 부리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가요.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미치겠어요.”
사수죽이 탄식했다.
“벼슬이 한 등급 높은 걸로 사람을 압사시킬 수 있다고 하지. 너는 관아 사람이 아니니, 그 안의 규정을 몰라.”
“본좌는 이해 못 합니다.”
사소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전 금하가 거기서 그 모욕을 다 받는 것도 눈에 거슬려요. 걔한테 내가 널 아내로 맞을 거고, 그러면 이후엔 더는 이런 불쾌한 일 당할 필요 없을 거라고 말했어요.”
사수죽이 무슨 말을 하기 전이었다. 옆에서 조용히 있던 아예가 벌떡 일어나 사소에게 화를 벌컥 냈다.
“뭐라 했어요, 누구를 아내로 맞아요?”
사소는 삐딱하게 그를 노려보고는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예는 사소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기세등등하게 물었다.
“조금 전에 당신이 여 포쾌를 아내로 맞겠다고 말한 겁니까?”
“맞아.”
사소도 일어섰다. 덩치가 큰 그가 이렇게 마주 보고 서니 아예보다 키가 머리 반 개는 컸다.
사소의 말투는 친절하지 않았다.
“본좌께서 누굴 아내로 맞든 그게 네가 참견할 일이야?”
아예의 눈 속에 서린 분노는 이미 뚜렷해져 그는 사소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하려던 그가 옆에 있던 사수죽을 흘낏 보았다.
“나와요! 할 말 있어요!”
아예는 제 할 말만 끝냈다. 그는 사소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았고, 바로 문짝을 쾅 차고 밖으로 나갔다.
“저 새끼가!”
화가 난 사소가 사수죽을 향해 말했다.
“형님은 쉬고 계세요. 가보고 올게요.”
사수죽은 그들 사이의 얽힌 일을 알지 못해 고개만 끄덕였고, 사소가 큰 보폭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예는 앞쪽에 있었다. 사소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성큼성큼 앞을 향해 걷다가, 구석지고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 뒤를 따라간 사소가 화를 내며 말했다.
“너 이 자식아, 도대체 무슨 일로…….”
순간, 아예가 돌아서 정확히 그의 얼굴을 향해 빠르고 거센 일장을 날렸다. 사소는 말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고, 너무도 갑작스러운 터라 이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아예가 자신에게 싸움을 걸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결국 사소는 이 일장을 맞고 입술에서 순간 피가 터졌다.
“너…….”
일시에 분노한 사소가 다리를 날려 걷어찼다. 아예가 두 손을 교차하여 자세를 잡는 것을 보고는 이어서 한 다리로 상대를 걸어서 넘어뜨리고, 아예의 왼쪽 다리 쪽도 차 버렸다.
아예는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두 다리에 힘을 줘 버티며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뻗어 사소의 다리를 잡아채 맹렬한 힘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사소는 그 힘을 되받아 공중으로 뛰어올라 몇 바퀴 회전하며 그의 명치와 급소를 계속해서 걷어찼다.
미처 피하지 못한 아예가 연달아 몇 걸음 물러났다. 명치에 답답함이 밀려들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어 권법의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다시 덤비려고 하는데…….
“잠깐!”
사소가 아무리 싸움을 좋아한다 해도, 이런 이유도 모르는 싸움은 사절이었다.
“너 이 새끼, 며칠 전 다친 주제에. 네가 지금 살려달라고 빈다 해도, 본좌 체면이 서질 않는다. 너, 말 좀 해 봐. 난 널 귀찮게도 안 하고, 건드리지도 않았어. 이유도 없이 본좌한테 덤비는 건 대체 재수 없게 뭐 하자는 거야?”
이를 악문 아예는 분노로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이 호되게 일장을 휘둘렀다.
다행히 사소는 미리 방비하고 있었다. 몸을 홱 돌려 아예의 주먹을 피한 그가 단단히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내 사저가 어떻게 너 같은 새끼를 방에 거뒀냐!”
상관희를 들먹이지 않으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상관희가 한 번 입에 오르자, 아예는 더욱 화를 참을 수 없어 고함을 질렀다.
“상관 당주는 본래 인과 의로 사람을 대하시고, 당신에겐 더욱 정이 깊고 두터우셔. 그런데 당신이 이러면 그분께 면목 없지 않아요?”
사소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정말 영문을 몰랐다.
“내가 왜 사저한테 면목 없어야 해?”
“3년 전, 당신은 그분과 혼인하기로 해 놓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인의를 저버린 겁니다. 지금 당신은 돌아왔지만, 언제 그분한테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느낀 적 있습니까? 그러고도 당신은 다른 사람을 당장 아내로 맞이하려 하다니. 당신은 상관 당주를 대체 어디까지 궁지로 몰려는 겁니까?”
아예는 평소 거의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은 한 글자 한 글자 무섭게 몰아붙이고, 두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올라 마치 사소를 완전히 태워 재로 만들 것 같았다.
“무얼 두고 대체 어떤 지경으로 몰아넣는다는 거야? 누나는 내 사저고 주작당 당주야. 나는 누나를 마음 깊이 존중하고 감사하고 있어. 이건 이 한평생 한결같았어.”
“당신이 정말로 그분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분을 당연히 아내로 맞아야 합니다!”
아예의 말투는 포악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