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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79)화 (79/224)

79화

양악은 몹시도 심란한 마음에 조리 있는 분석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조용히 금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즉, 그 배에 탄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어. 첫째, 그녀의 양가 역시 배에 탔다. 그래서 뜻밖의 사고가 일어날 걸 걱정하지 않았다. 둘째, 배에 탄 사람이 양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설령 그녀가 능욕을 당했다고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주먹을 꽉 쥔 양악의 손 등 위로 푸른 핏줄이 도드라지고, 순간 그가 탁자를 사납게 내리쳤다.

금하는 막을 틈도 없이, 눈을 빤히 뜬 채 탁자 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대양, 진정 좀 해!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이런 건 모두 추측일 뿐이고, 네가 방금 얘기한 적 낭자의 모습은 내 생각에 누군가에게 능욕당한 거 같지는 않아.”

“그, 그녀의 모습을 보면, 그럴 리가…….”

“내가 알아. 넌 내 말 좀 들어 봐! 적 낭자는 확실히 매우 큰 충격을 받은 거로 보여. 그 의원이 뭐라 했댔지, 격렬한 비통함에 마음이 어지러워진 상태라면서. 그런데 적 낭자가 만약 누군가에게 힘으로 당했다면, 하나, 계집종이 그녀의 옷을 갈아입힐 때 분명 뭔가 눈치챘어야 해. 하지만 계집종은 이 부분은 전혀 생각한 적도 없지. 둘, 너와 심 의원 모두 남자야. 그녀는 두 사람을 두려워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어. 이 부분도 뭔가 맞지 않아.”

양악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그래!”

금하는 양악에게 차를 따라 주며 위로했다.

“대양, 이건 전형적으로 제삼자가 더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일이야. 대장이 너한테 뭐라 하실 거나 걱정해.”

“그러면 적 낭자는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양악은 이해할 수 없었다.

금하가 의아해했다.

“넌 왜 그녀에게 안 물어봤어?”

“나는 그녀가 당한 거로 생각해서……. 이런 일을 내가 어떻게 물어보냐.”

“우리 바보 오라버니야, 넌 낭자 마음이 다칠까 두려워서 감히 묻지도 못했으면서, 돌아와서는 쓸데없이 조급해하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우리는 포쾌야. 어쨌든 우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야 조사를 할 수 있어.”

금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건 내가 가서 물어볼게. 해도 되지?”

“되긴 되지만 적 낭자가 만약 말하기 원하지 않는 거면 너도 그녀에게 강요하지 마. 적 낭자를 상처입히지 말고, 놀라게도 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난 팔도 다쳤는데, 어떻게 그녀를 다치게 해. 안심해. 달래기만 할 게.”

금하는 빠르게 씻고 양악을 따라 적란엽이 사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적가의 대문은 잠겼고, 한참을 두드려서야 하인이 나와 문을 빠끔히 열었다.

문틈 사이로 양악을 훑어보던 가복이 그를 알아보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우리 어르신께서 우리가 외부인을 들였다는 걸 들으시고, 엄히 꾸짖으셨소. 다시는 오지 마시오!”

가복은 말을 하자마자 문을 닫고는 바로 이어서 잠그기까지 했다.

양악은 매우 화가 났으나 그가 무슨 짓을 해서 두드리고 불러도 그 문은 끝내 다시 열리지 않았다.

“대양…….”

양악의 손뼈 마디가 터져 선혈이 스며 나왔다. 금하는 그를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양악에게 힘껏 밀려서 그녀는 옆으로 비틀거렸다.

지금 양악은 흥분한 표정이 역력하여 평상시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대양!”

금하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했다.

“너 이런 모습을 보면 아가씨가 얼마나 놀라겠어!”

이 말에 양악이 별안간 손을 멈췄다.

그는 넋이 빠져 그 자리에 섰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몇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문 옆의 담 모퉁이로 가 웅크리고 앉아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죽어라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금하는 지금껏 양악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그녀가 양악을 흔들며 작은 소리로 위로했다.

“대양, 이러지 마.”

양악이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멍한 그의 두 눈에는 상심이 가득했다.

“……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녀를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어.”

금하 또한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저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정신을 놓았을 뿐이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어두워진 하늘에 금하는 비가 올까 걱정되어 양악을 일깨웠다.

“너, 대장께 돌아가 봐야지 않아? 이렇게 오래 네가 보이지 않으면 대장이 분명 의심하실 거야.”

양악은 아버지를 생각해 어렵사리 일어났다.

두 손으로 맹렬하게 얼굴을 문질러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그는 다시 적가의 문을 바라보고 나서야 무거운 발을 끌며 의관으로 돌아갔다.

금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양악을 따라 의관까지 갔다. 하지만 팔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 섣불리 들어가 양정만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렇게 담 밑에 서서 양악과 양정만이 대화하는 걸 몇 마디 듣고는 그녀도 관역으로 되돌아왔다.

아직 열이 나기 때문일까. 금하는 온몸에 힘이 없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빙빙 돌았다.

겨우 관역의 측문으로 들어와 한참을 걷고서야 그녀는 늙은 버드나무에 기대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멀지 않은 복도에서 역졸 둘의 잡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본래 호기심이 강한 금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귀가 쫑긋 섰다.

“……어디서 은자가 나서 비둘기에, 암탉이야?”

그중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이가 답했다.

“안심해. 아침에 육 대인이 은자 두 냥을 내려주셔서 쓰기 충분해. 남은 건 우리끼리 술 사 먹을 수 있어.”

“저 낭자는 어쩌다 다쳤기에, 육 대인이 낭자를 이렇게까지 보살펴줘?”

“그걸 누가 알아! 아이고! 나는 계탕 다 됐는지 보러 간다.”

금하는 한동안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 일을 제 귀로 직접 듣고서야 이해한 자신은 정말 바보다. 아침에 바로 분명하게 깨달았어야 했는데.

단지 평범한 포쾌일 뿐인 그녀가 다친 것이다. 부엌에서는 기껏해야 쌀죽을 끓여줄 수 있을 뿐이지 번거롭고 귀찮은 시금치 쇠고기죽과 비둘기탕을 어떻게 일부러 끓인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도 육 대인이 은자를 줬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는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테니까.

멍한 그녀의 눈앞에서 방금 돋아난 여린 버드나무 가지가 살랑거렸다.

육 대인이…….

금하는 육역이 했던 일을 하나하나 곰곰이 돌이켜 보았다.

대장의 고질병 치료를 돕고,

그녀가 기습당한 줄 알고 한밤중에 뛰어오고,

도화림에서는 손을 써 도와주고,

부엌에는 은자를 건네 그녀를 위해 음식을 하게 하고…….

육역은 늘 무표정했고 말 한마디도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었건만, 이상하게도 하는 일은 전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 쓰는 것들이었다.

말이라도 한마디 해 줬으면 좋잖아.

금하는 입술을 실룩거렸지만, 그래도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축 처졌던 몸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금하는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뒤채로 돌아갔다. 그녀가 채 건물로 들어서지 않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원 포쾌!”

금하는 이 목소리를 들으니, 걱정으로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 후,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만들고서야 돌아서 공손하게 말했다.

“유 대인.”

양주에 온 지 이미 수일이 지났으나, 사건의 조사는 전혀 진전이 없었다. 유 상좌의 성격이 비록 느긋하다지만, 그 역시 하루가 다르게 초조해져 갔다.

양정만은 육역이 데려가 다리치료를 받고 있었으니 그도 간섭하기 쉽지 않았고, 주변에는 그의 힘이 될 이조차 하나 없었다.

그런 상황이건만, 금하가 느긋한 걸음에 한없이 한가로운 것을 보게 되니 유 상좌는 저도 모르게 화가 불끈 치밀었다.

“내 잠시 네게 묻겠다. 우리가 양주에는 무슨 일로 온 것이지?”

유 상좌가 무거운 얼굴로 물었다.

금하는 유 상좌의 말투가 좋지 않음을 알고, 한층 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십만 냥 운하수리비 때문입니다.”

“여기 온 지 이미 여러 날인데, 단서는 찾았느냐?”

“대인께 보고 드립니다. 아직……,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유 상좌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양 포두는 다리에 부상이 있으니 됐다고 하자. 그럼 수하인 너희가 더욱 열심히 해야지, 어째서 종일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게을러. 그래서 어찌 조정에 면목이 서냔 말이다! 군주의 녹을 먹으면, 군주의 근심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이런 도리쯤은 알아야 하잖아!”

“대인의 가르침이 맞습니다. 소관이 죽어 마땅합니다.”

유 상좌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금하는 어리석지 않았으니, 그에게 당연히 반박하지 않았고, 그가 말하는 대로 듣고 있을 뿐이었다.

“지난번 주현이에게 연인이 있어 조사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는 왜 잡아 들여 묻지 않는 것이냐?”

“그 낭자의 양가는 양주지부의 막내 처남입니다. 제가 몇 번 찾아갔으나 모두 문밖에서 거절당했습니다.”

금하는 사실대로 말했다.

“지부의 막내 처남……, 그건…….”

유 상좌도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도 방법을 생각해야지. 그 집의 계집종, 유모, 요리사 이런 이들,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기만 하면 너는 그들 모두를 낱낱이 조사해야 해! 낭자야 규방 안에 있어 못 본다지만, 설마 이 사람들도 못 보는 것이냐?”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빨리 안 가!”

하늘에서 한바탕 무겁고 나지막한 천둥소리가 구르듯 울렸다. 시선을 들어보니 큰비라도 당장 쏟아질 것 같아 금하는 난감해졌다.

“지금 가나요?”

“당연하지! 이미 얼마의 시일을 낭비했는지 아느냐? 침식을 잊고 밤낮없이 쉬지 않고 사건조사에 임하여 조금이라도 육선문 다운 모습을 보여라. 나태와 게으름이 버릇이 된 너희에게 정녕 나라를 위해 충정을 다하고, 군주를 위해 근심을 나누는 것을 바랄 수 있겠느냐?!”

금하가 유 상좌의 불룩한 배를 흘끔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대인 가르치심이 옳습니다. 소관, 바로 가겠습니다.”

“유 대인.”

그때였다. 손에 문서를 든 육역이 복도를 돌아와 유 상좌에게 인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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