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77)화 (77/224)

77화

“넌 사소와 상관희 사이의 일을 알고 있나?”

“알죠. 둘은 동문수학한 사이이고, 사소는 항렬이 네 번째로 상관희가 그의 둘째 사저예요.”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3년 전, 둘은 원래 성혼해야 했어요. 그런데 왠지 모르지만 사소가 결혼을 피해 도망쳤고요. 후에 상관희는 본인 스스로 이 혼인을 물렸어요.”

금하는 팔꿈치로 머리를 괸 채 의문에 잠겼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해요. 결혼하기 싫어 도망간다는 건 아가씨한테는 엄청나게 체면을 잃게 되는 큰일인데, 상관희는 사소한테 조금의 원망도 없는 것 같아요.”

“사소가 일찍이 그녀를 위험에서 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육역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아직 강호로 나오지 않았던 상관희가 고소(*소주의 옛 명칭.)에서 강도떼에게 납치를 당했지. 당시 오안방은 고소에 아직 지파가 없고, 인원도 거의 없었어. 사소는 칼잡이 4, 5명을 고용해 데리고 강도떼의 산채로 쳐들어갔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상관희를 구해내긴 했어도, 자신은 중상을 입어 거의 죽을 뻔하고, 반년 이상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 거군요. 어쩐지 상관희가 사소에게 그렇게 잘하더라. 매사 그를 돕고 있어요.”

금하가 탄식했다.

육역은 그녀를 보며 미미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내 말 알아들었나?”

약간 망설이던 금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사소는 왜 혼인을 피해 도망갔을까요?”

“혼인을 피해 도망간 건 사소와 사백리의 싸움이었어. 그들 부자는 3년 전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지. 사소는 사백리가 이 혼사를 빌미로 자신을 오안방에 단단히 묶어두려 한다고 생각했고, 그는 당연히 지려고 하지 않은 거다.”

금하는 비로소 이해했다.

“그래서 상관희가 사소의 탓을 조금도 하지 않는군요. 게다가 스스로 혼인을 물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에게 이렇게 잘하고요.”

육역이 다시 물었다.

“이제는 알겠지?”

“대인은 사소에 대한 상관희의 감정이 단지 남매의 정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싶은 거죠?”

금하가 추측했다.

육역은 매우 어렵사리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길다 할 수 없는 ‘아’ 소리를 내는 사이, 금하는 돌연 많은 일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사수죽을 강탈당한 이 일은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사소는 마음 씀이 그리 세심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계책의 대부분은 상관희가 생각해 냈을 터였다.

그러니까 모든 일을 종합한다면, 상관희는 극장에서 육역이 사수죽을 데리고 나오도록 고의로 덫을 놓았고, 육역은 그런 상관희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육역은 능력으로 보아 다른 이에게 계책을 꾸미기만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다른 이의 계책에 당했을까?

유일한 이유가 있긴 하지.

바로 육역이 상관희를 좋아하게 되어 마음이 어지러워졌고, 정상적인 사고에까지 영향을 미친 거다. 하지만 상관희의 마음에는 또 사소가 있으니…….

어쩐지 육 대인이 사소를 눈에 거슬려하더라. 이거였구나!

“사실 감정으로 일어나는 일은 뭐라 단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금하는 육역을 위로하려고 온갖 머리를 써서 억지로 몇 마디 쥐어짰다.

“상관희가 지금은 비록 여전히 사소를 마음에 두고 있지만, 정말 시간이 지나면 상관희도 그가 생각만큼 좋진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때는 다른 이의 좋은 점도 알아볼 수 있겠죠?”

“넌 그렇게 생각하나?”

육역의 안색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금하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고, 성실하게 이야기했다.

“당연하죠. 감정 방면으로는 제가 또 상당한 전문가입니다.”

그녀를 향한 육역의 눈빛은 마치 귀신을 보고 있는 듯했다.

“진짜예요! 돼지고기를 먹어 본 적 없다고, 돼지가 뛰는 것을 못 본 것이랴. 그런 속담도 있잖아요. 제가 아문에 그리 오래 있었는데, 이런 일들을 얼마나 많이 봤을까요.”

금하는 친절하게도 육역에게 분석해서 설명해줬다.

“바로 이런 남녀 사이의 변덕스러운 감정 때문에 설사약을 쓰는 이, 매대를 부수는 이, 인형을 저주하며 찌르는 이, 몰래 소를 도둑질하는 이, 대인은 생각도 못 하실 만큼 가지가지 너무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요. 너 죽고 나 살자로 완전 난장판이에요. 남녀 사이에 애정이 변한다는 건 이렇게 일상사고, 자주 있는 일이죠.”

금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상관희가 지금은 비록 사소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얼마 지나면 그녀도 아마 알아볼 거예요. 대인에게…… 아니, 다른 이에게 사소에게는 없는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요.”

“너…….”

육역은 일어나 깊게 숨을 들이켰다. 뭔가 말하려던 그는 또 망설이다가 끝내 참지 못하여 냉랭하게 흥, 코웃음 소리를 냈다.

“육선문에 어찌 너 같은 이가 있을 수 있더냐!”

말을 끝내자마자 방을 나간 육역의 뒤로 홀로 남은 금하는 얼떨떨한 채로 영문을 몰라 했다.

“자기 마음이 좋지 않다고, 옆 사람한테 화풀이하고 있어. 흥!”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녀 역시 얼굴이 온통 불만스러워졌다.

“호의를 악의로 받아들여? 이 도련님은 열이 나는 데도 고생스럽게 본인 마음 풀어주고 있는데. 고맙지 않으면 말라지!”

금하는 문을 잘 잠그고,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침상으로 돌아가 누웠다.

그녀는 모르는 체하고 계속 자려고 했으나, 한동안 누워있고서야 애석하게도 자신이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이 생각났다.

“배고프다.”

금하는 뒤척이다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배를 채울 음식을 찾으러 부엌으로 가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겉옷을 걸치고 나간 금하가 문을 여니, 밖에는 이곳의 역졸이 서 있었다. 검은 바탕에 무늬가 있는 칠기 합을 들고 있던 그가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들어와 합을 탁자 위에 놓았다.

역졸이 매우 붙임성 좋은 말투로 말했다.

“관원 나리 맛있게 드세요.”

“이건…….”

금하의 말에는 의혹이 가득했다.

“관원 나리가 다치셨다고 들었어요. 이건 부엌에서 특별히 준비해 드리는 음식입니다.”

금하는 의문을 품은 채 칠기 합의 뚜껑을 열었다.

가장 위쪽에 있는 큰 그릇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금치 쇠고기 죽으로 당장 먹고 싶을 만큼 군침이 돌게 했다.

“잠깐만요. 이건…… 따로 계산해야 하는 거죠?”

금하는 나가려는 역졸을 불러 급히 물었다.

“아니요. 관원 나리가 다치셨으니, 원래 부엌에서 따로 만들어 주셔야 해요.”

이런 말을 듣고서야 금하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그녀는 역졸에게 여러 번 감사한 후, 문을 닫고 앉아서 죽을 먹었다.

짙은 녹색의 시금치와 잘게 썬 쇠고기 알갱이는 윤기 나고 투명했다. 별도로 맛있는 몇 접시의 밑반찬도 있었다.

금하는 야금야금 먹어갔고, 뱃속도 점차 따뜻해졌다.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세월이 이리 고요하고 좋은데, 더 바랄 게 무엇인가.

탄식이 절로 나오는구나.

* * *

“아가씨, 아가씨…… 이건 제가 지금 막 끓인 제비집 죽이에요. 좋든 싫든 한 입 드셔보세요, 네?”

둥근 얼굴의 계집종 계아가 적란엽을 바라봤다. 그녀는 월동月洞식 침상에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배에서 돌아온 후로 아가씨는 이런 상태로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옆 사람이 말하는 것조차 모두 듣지 못하는 듯했다.

처음 아가씨는 그저 멍하니 앉아 눈물만 흘렸으나, 지금은 그 눈물도 거의 말랐다. 그런데도 두 눈은 얼이 빠진 듯 계속 멍했고, 사람이 온통 빈껍데기 같아 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계아는 평소 적란엽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녀가 이렇게 밤을 꼬박 새운 것을 보고는 사람이 어찌 앉아만 있나 걱정하여, 급히 가복을 보내 양가 어르신께 알릴 수밖에 없었다.

오래지 않아 돌아온 가복은 계아에게 어르신이 이미 알고 계시다고 아가씨를 잘 모시라고 하며 이 며칠은 외출하지도 말고, 어르신이 조만간 보러 오신다는 말씀만 전했다.

주위에는 하인들, 여러 명의 주방 하인들, 그리고 반쯤 귀먹은 할멈도 있었다. 그러나 친분이 두텁거나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계아는 적란엽이 인형처럼 앉아 있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속은 점차 불이 난 것처럼 초조해졌다.

아가씨가 어쩌면 사악한 악귀에 당한 것이 아닐까. 의원을 청하여 침이라도 두어 대 맞으면 어쩌면 효험이 있을지 몰라.

이렇게 생각한 계아는 의원을 청하려 했지만, 짐작만으로는 다른 이를 보내 병세를 상세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짓해가며, 할멈에게 적란엽을 잘 보라하고 자신이 직접 의원을 모시기 위해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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