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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74)화 (74/224)

74화

“……계집애가.”

사소는 정신이 멍해졌다.

“어깨를 베는 게 좋겠어. 내 경맥은 다치게 하지 마.”

금하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빨리! 육 대인 앞에서 임무 완수하지 못하게 하는 건 내 밥줄 끊는 거야.”

“너 이 하찮은 공무, 망치면 망치는 거지. 무슨 대단한 게 있다고.”

사소는 화가 치밀었다.

“그만. 공무 망치는 건 내가 손가락 빨게 된다는 의미야. 빨리해! 내가 베면, 벤 자리 깊이가 달라서 육 대인한테 들통나…….”

사소는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녀가 하는 말을 딱 자르고 불쑥 말을 내뱉었다.

“공무 망치면 내가 너 부양할게.”

이 말에 금하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때, 바깥 뱃머리의 망보는 사람은 마음이 조급해 다시금 재촉했다.

“소방주, 우리 빨리 가야 해요!”

금하는 정신을 차렸다.

“이 일…… 우리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지금은 신속하고 재빠르게 나를 한 번 베.”

사소는 비록 단도는 쥐고 있다 해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그는 여자에게 손을 대본 적도 없는데, 심지어 금하에게 칼을 휘둘러야 한다고?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수죽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례를 범하겠소.”

그가 사소의 단도를 빼앗았다. 번개처럼 한 번 휘두르자, 금하의 왼팔 위부터 아래로 한 줄로 상처가 그어지고, 빠르게 선혈이 솟구쳤다.

“감사합니다.”

금하는 아픔을 참으며 어깨를 감쌌다.

“얼른 가!”

“난 이럴 줄은…….”사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꼼짝도 못 하고 그녀를 쳐다봤다.

“계집애, 내가 네게 신세 진 거다!”

“빨리 가, 오빠.”

금하는 힘겹게 오른손을 흔들면서 그들을 빨리 가라고 했다.

사소 일행이 떠난 후, 과연 바로 어선 한 척이 지나갔다. 사공은 슬그머니 사방을 살피더니 이쪽을 바라봤다. 분명 사소가 보낸 이였다.

상황을 모르는 척한 금하가 왼팔을 짚고는 힘들게 외쳤다.

“오라버니, 살려 주세요! 배가 가라앉으려 해요.”

어선이 가까이 다가오고 그녀는 배에 올랐다.

사방은 어두웠다.

금하도 고경과 다른 이들을 찾으러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사공에게 일단 나루터로 가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우선 육역에게 이일을 보고해야만 했다.

* * *

배가 나루터에 닿고, 금하는 비틀거리며 뭍으로 올랐다.

나루터에는 사람이 많았다. 젖은 옷을 입은 금하가 왼팔엔 피마저 스민 것을 보고는 모두 크게 놀랐다. 그녀가 무슨 설명을 하기 전 이미 누군가 통보를 했는지, 육역과 상관희가 매우 급히 나왔다.

“대인께 보고 드립니다. 배가 가는 도중 습격을 당했습니다. 한 무리 도적이 배에 올라 사수죽을 강탈해 갔고, 다른 사람은 행방불명입니다.”

육역은 보고를 하는 금하의 왼팔을 쏘아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표정이 한없이 어두워졌다.

그가 잠시 후에야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네 명이 하나를 지키지 못하다니. 쓸모없는 것들!”

“……소관이 죽어 마땅합니다.”

금하는 이를 악물고 머리를 더욱 아래로 숙였다.

금하의 연루를 피하고자, 사수죽이 그녀의 왼팔에 그은 상처는 매우 깊었다. 지금까지 계속 흐른 피도 적지 않아 금하는 한바탕 현기증이 일었다.

옆에 있던 상관희가 공수하며 말했다.

“육 대인, 이 부근은 우리 방 형제들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그들에게 먼저 관원 나리들을 찾게 함이 어떤지요. 만일 그들도 다쳤다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합니다.”

“그렇게 하지요. 상관 당주께 폐를 끼칩니다.”

고개를 끄덕인 육역의 시선은 여전히 금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상관희는 돌아서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했고, 다시 금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처가 가볍지 않아요. 제가 먼저 상처를 싸서 묶으면 어떨까요?”

이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도, 육역은 말이 없었다. 그러니 금하는 상관희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고, 더욱 한 걸음도 차마 옮길 수 없었다.

육역이 냉랭하게 말했다.

“먼저 가서 상처를 묶어라…… 상관 당주께 수고를 끼칩니다.”

온화하고 부드럽게 웃어 보인 상관희가 금하를 부축해 식당 안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금하의 반쪽 소매는 물과 피로 흠뻑 젖어 검붉은 색이었다. 아래로 옷을 벗으려 하면, 젖은 천이 상처에 달라붙어 그녀는 아픔에 이를 악물었다.

상관희는 할 수 없이 가위로 옷 소매를 어깨를 맞추어 잘랐다. 그리고 다시 상처를 깨끗이 처리했다.

“그거…… 버리지 마세요. 돌아가 제가 깨끗이 빨면, 그래도 다시 꿰맬 수 있어요.”

금하가 통증을 참으며 상관희를 막으니, 멈칫한 상관희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원 포쾌 몸이 다 젖었어요. 이따가 우선 내 옷으로 갈아입어요. 이건 여기 뒀다가 내가 깨끗이 빨고 잘 꿰매서 그쪽으로 보내줄게요.”

“그렇게 수고스럽게 해드릴 수는…….”

금하의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상관희가 그녀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원 포쾌를 힘들게 했군요. 나와 넷째 모두 낭자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어요.”

상관희도 내막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바로 이 수인 강탈을 계획했으리라.

조금도 놀라지 않은 금하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죽은 사람이 없을 거라고 했어요. 진짜죠?”

“진짜예요. 시간 지나면 알 거예요.”

상관희는 금하의 상처를 깨끗이 정리한 후 약을 바르려고 했다. 그때 삐걱거리며 열린 문으로 무표정한 얼굴의 육역이 들어왔다.

상관희가 급하게 자신의 피풍으로 금하의 반쪽 팔을 가리고, 그를 나무라며 말했다.

“대인, 아직 제대로 상처를 묶지 못했습니다.”

“제가 상처를 보겠습니다.”

육역의 어조는 냉랭했다.

금하는 육역이 자신의 말을 쉽게 믿지 않고, 분명 상처를 확인하러 올 거라고 진즉 예상했다. 다행히도 이 칼은 자신이 벤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은근히 마음을 놓았다.

“대인, 원 포쾌는 뭐라 해도 아가씨입니다. 이건…….”상관희가 손으로 피풍을 눌러 조금도 금하의 팔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언니, 괜찮아요.”

피가 많이 흘린 탓으로 금하는 입술마저 하얗게 뜬 채 가까스로 웃어 보였다.

“범인을 놓쳤으니, 제게도 혐의가 있어요. 육 대인께서는 원래 이렇게 분명하게 밝히셔야 해요.”

말을 하는 사이, 금하는 제 스스로 피풍을 한쪽으로 걷었다.

둥글고 새하얀 어깨가 드러났고, 상처가 어깨 위쪽부터 아래팔까지 쭉 이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상처 위로 피는 여전히 흐렀다.

육역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그는 바짝 짙어진 눈빛으로 손을 뻗어 등잔불을 가져왔고, 금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은 육역은 금하의 어깨 위 상처를 지극히 세심하게 확인했다.

이 칼은 사수죽이 휘두른 것이고, 그는 사소의 단도를 썼다. 힘과 위치까지 금하는 조금도 빈틈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훔쳐본 육역의 얼굴이 들어올 때보다 더욱 냉혹하고 준엄해져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시 후, 드디어 금하의 손을 놓은 그가 품속에서 병 하나를 꺼내 상관희에게 전했다.

“이 약을 쓰시죠.”

육역은 간단히 말한 후 돌아서 나갔다.

금하와 상관희는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다음 순간, 병을 향해 눈썹을 치켜든 금하가 작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이건 상처를 짓무르게 하는 약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말은 이렇게 했으나, 상관희 역시 주저했다. 그녀는 작은 병을 열어서 냄새를 맡고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육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인지, 지금껏 금하는 그에 대해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상처는 너무 아파 생각의 여지도 사실 없었다.

금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그게 뭐든, 먼저 쓰고 다시 얘기할래요.”

“내 쪽에도 상처에 바르는 금창약이 있어요.”

상관희가 맡은 이 약의 냄새는 코를 찔러 그녀는 이 약의 효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면…… 원 포쾌가 결정해요.”

“언니 거 써요.”

선택할 수 있게 된 이상, 금하는 육역의 물건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 약이 문제가 없다 해도, 만일 그가 나중에 자신에게 은자를 청구하면 어떡해.

상관희는 바로 금창약을 꼼꼼하게 그녀에게 발라주고, 다시 잘 묶어줬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시켜 그녀의 옷을 가져오라 하고 먼저 문을 잠근 후 조심스럽게 금하가 옷 갈아입는 걸 도왔다.

“상처가 깊어요. 그냥 약만 발라선 아마 안 될 거예요. 의원 불러 약 몇 첩 지어 마셔야겠어요.”

금하를 잘 정리해 준 상관희는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된 것을 보고 마음을 놓지 못했다.

“괜찮아요. 작은 찰과상일 뿐이에요.”

금하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 숙여 자신이 입은 옷을 보았다. 감촉이 매끈매끈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부러워 한마디 했다.

“언니 옷이 정말 예뻐요. 나중에 경성에 돌아가면, 우리 엄마한테 이런 모양으로 한 벌 만들어달라 해야겠어요.”

금하의 이 말은 이유도 모르게 상관희의 마음을 살짝 아프게 건드렸다.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주, 형제들이 관원 몇 명을 찾았습니다.”

사소와 상관희 모두 인명사고가 발생치 않을 거라 말했다. 그렇다 해도 금하는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고, 팔을 붙든 채 상관희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세 분의 관원이 외상을 입고, 물을 먹었을 뿐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분의 부상은 조금 심한 것이 갈비뼈 두세 대가 부러졌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군요.”

상관희에게 동숙이라 불린 중년인이 보고했다.

상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매우 깊은 뜻을 담고 있었다.

금하도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금하는 사소가 무분별하게 손을 쓸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럭저럭 상황은 괜찮아 보였다.

다만 궁금한 것은 있었다.

갈비뼈 부러진 그분이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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