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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72)화 (72/224)

72화

“내가 보게 이리 와. 그렇게 멀리 서 있지 말렴. 너도 내 눈이 불편하다는 건 알고 있잖니.”

적란엽은 천천히 걸어 부드러운 낮은 침상 앞까지 갔다.

한 쌍의 아름다운 눈이 남자를 향했다. 그러나 그 남자의 두 눈은 그녀의 가녀린 발을 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손등을 가볍게 그녀의 발목에 가져다 댔다. 피부가 닿은 순간, 적란엽은 전신을 맹렬히 떨며 발을 움츠렸다.

“앉거라. 우리 둘이 얘기를 해 보자.”

남자도 화를 내지 않고, 여우의 털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란엽은 검은 여우 가죽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치마로 뽀얀 발을 단정하게 가렸다. 그런 후, 소심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남자가 그녀를 잠시 바라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손바닥을 가볍게 쓰다듬고, 웃으며 물었다.

“듣기로 네가 신선한 어탕을 좋아한다던데. 그러냐?”

적란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경성에 있으면서 늘 먹었지.”

그가 또 말했다.

그 뒤로 두 사람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그를 몇 번 훔쳐보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번에 오신 것은 저를 데려가시기 위함인가요?”

남자가 웃었다.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굳은살이 엷게 박인 손끝으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래턱을 살짝살짝 스치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지난번 너를 본 것이 3년 전이구나.”

“3년 전, 마침 그날이 상강霜降이었어요.”

남자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경성에서 몸을 뺄 수가 없어. 만약 내 어머니의 상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이번에도 오지 못했겠지.”

“당신 어머니는…….”

적란엽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눈빛에 안타까움이 담겼다.

“당신은 분명 견디기 힘드셨겠죠?”

“그분은 서방 극락정토에 오르셨는데, 내가 왜 견디기 힘들어야 하지.”

남자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내 아버지가 오히려 매우 상심하셨지. 나는 그에게 장자庄子가 아내를 잃고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고 위로해드렸다. 안타깝게도 아버진 듣지 않으셨어. 나는 차라리 나와서 피하는 것이 홀가분해. 내친김에 너를 보러 올 수도 있고.”

“…….”

그녀는 어떻게 말을 받아야 할지 몰라 반복하여 물었을 뿐이었다.

“저를 데려가려고 오신 거죠?”

남자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가벼운 목소리로 탄식했다.

“듣자니 그 밤, 주현이가 너를 놀라게 했다지? 그 집에도 차마 살 수가 없고?”

이 말에 적란엽이 놀랍고 두려워 고개를 숙였다.

“저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왜 갑자기 그렇게……, 목을 매 자살했죠? 저는 당신 분부대로 했고, 그가 기껏해야 며칠 슬퍼할 거라 여겼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그럴 수가……. 제가 그를 죽인 건가요?”

“바보 아가씨, 이건 그 자신의 일이야. 너와 무슨 관계가 있나.”

남자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손은 그녀의 귓가로 미끄러져 귓불을 어루만졌다.

“넌 계속 매우 잘해왔지. 나는 경성에서 매번 너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매우 기뻤다.”

“왜 저를 당신 곁에 두지 않으세요? 저도 무엇이든 잘할 수 있어요.”

그녀가 절박하게 말했다.

“알아. 너는 항상 잘해왔어. 넌 육역을 만났지? 그의 인품이 어떻더냐?”

그는 적란엽을 안심시키며 눈빛은 손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그녀의 치맛자락을 대수롭지 않게 걷어 올리고는, 옥으로 조각한 듯한 그녀의 두 발을 자세히 보았다.

“한 번 봤을 뿐이에요. 만나자마자 그가 주현이의 일을 물어서 전 조금 화가 났어요. 나중에는 더는 묻지 않았고, 그저 사소한 일로 한담만 했어요. 후에 그가 사람을 보내 향료와 간식을 제게 보내왔어요.”

“간식?”

남자가 미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좁쌀떡이요. 저도 왜 간식을 보낸 건가 이상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한가할 때, 직접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고 해요.”

남자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넌 누군가에게 놀림을 당했구나. 그가 어찌 그런 걸 하겠니. 분명 누군가 중간에서 방해한 것이지……. 하지만 이렇게 보면, 그는 네게 전혀 관심이 없구나. 형식적이었던 것뿐이야. 아니면, 다른 이가 널 이렇게 희롱하게 두겠느냐.”

“……제가 무능했군요.”

남자가 웃었다.

“상관없다. 나는 진즉 그가 쉽게 네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어.”

“공자는 절 탓하지 않으시나요?”

“당연히.”

그는 건성으로 답했다. 그녀의 발 가운데에 가볍게 빙글빙글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적란엽은 부끄럽고 어색하여 발을 움츠렸다. 그러나 오히려 그에게 꽉 잡혔다.

이른 봄바람은 차가웠다.

발목은 외부로 노출되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을 정도건만, 그의 손은 기이할 정도로 뜨거워 순간 그녀를 부르르 떨게 했다.

“공자…….”

그녀가 불편함을 못 이겨 작은 소리로 불렀다.

“내 기억으론 내가 떠날 때, 이것은 겨우 6촌 2였어.”

남자가 다른 손을 들었다. 가냘픈 작은 발의 윤곽을 따라 어루만졌다. 마치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절세의 진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적란엽의 얼굴은 부끄러워 빨갛게 됐으나 감히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속으로는 누군가 갑자기 들어올까 걱정할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한없이 애석해하며 말했다.

“지금은 6촌 7이군.”

적란엽은 그의 정확함에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안타깝군, 안타까워…….”

남자는 유감이라는 듯 그녀의 발을 내려놓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와 함께 경성으로 갈 수 있으려면, 발 크기가 6촌 6을 넘어서면 안 돼.”

“뭐, 뭐라고요…….”

적란엽은 얼이 빠졌다.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원래 세웠던 규정이지. 봐라. 나도 방법이 없지?”

그는 여전히 미미하게 웃었다. 말투가 꿀이 뚝뚝 떨어질 만큼 부드러웠다.

“이 몇 해를, 나는, 나는……, 나는 줄곧 당신을 기다렸어요…….”

적란엽은 있는 힘을 다해 두 눈을 부릅떴다.

차마 깜빡이지도 못하는데, 이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저는 오직 당신만 생각했어요. 당신이 시킨 것은 지금껏 거역한 적이 없어요.”

“알아, 나도 다 알아.”

그는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녀의 눈물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한 방울 한 방울 마치 진주처럼 검은 여우의 털 안으로 스며들었다.

* * *

나루터를 떠난 지 이미 차 한 잔 마실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긴 노를 휙휙 저어가고, 물결은 달빛을 비추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금하는 선미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래 시선이 닿는 곳에 2, 3척의 배가 있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귀를 기울여 세심히 들었으나 물소리 외에는 고요한 정적뿐이었다.

뱃머리 쪽의 고경도 주위가 유달리 조용한 것을 느꼈다. 수상쩍은 기분이 들어 본능적으로 수춘도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한 쌍의 사나운 눈이 조금도 경계를 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의 물길은 복잡하다. 조금 더 빠르게 노를 저어, 성의 물길로 진입하라.”

그가 사공에게 분부했다.

사공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손동작을 조금 더 빨리했다. 뱃노는 콸콸거리며 무수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배는 나는 듯이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금 후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체가 마치 물 밑의 어떤 단단한 물체에 부딪힌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금하는 비틀거리며 비바람을 막기 위해 배 위를 덮은 선봉船蓬을 붙들고서야 가까스로 몸을 세웠다.

고경도 하마터면 물속으로 떨어질 뻔해 사공에게 화를 냈다.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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