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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71)화 (71/224)

71화

금하는 상관희의 어조에서 불평 아닌 비난이 섞인 것 같아 자신의 귀를 조금 의심했다. 확실히 하려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오히려 웃음기 섞인 육역의 음성을 듣고 말았다.

“만약 무례를 범했다면, 후일 제가 꼭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지요. 다만 지금은…….”

그는 양해를 구하는 말투였다.

“내 수하들이 공무를 먼저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겠습니까?”

상관희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말했다.

“좋아요. 우리 강호인들은 예의에 밝진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대인이 저를 존중하신 것을 봐서, 저도 조금 물러서지요. 오늘 대인께서 기왕 좋은 말로 제게 양해를 구하신 이상, 우리도 대인의 체면을 구길 수야 없지요. 동숙께서 이 관원 나리들을 모시고 몇 바퀴 돌아주시죠.”

“당주, 이건…….”

“방 내에 만약 정말 도적이 숨어있다면 국법이 용서할 수 없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 방도 결단코 그를 용납하지 못해요. 다만!”

상관희가 아름다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육역을 바라봤다.

“만약 도적을 찾지 못한다면, 또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가 오늘 온 것이 만약 무례를 범한 것이라면, 상관당주의 처분에 따르지요. 벌로 술 한 단지를 마시라 하면, 주시는 대로 다 마시겠습니다.”

육역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 진심이길 바랍니다.”

상관희가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 동숙에게 금의위를 데려가라 눈짓했다.

바로 고경 등의 금의위는 사수죽을 호송하여 식당 하나하나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상관희는 육역과 함께 밖에 서 있었다. 옆에 있던 금하는 몇 번 상관희의 표정을 훔쳐보았으나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뭔가 이상해.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한참 후, 고경이 사수죽을 호송해 돌아와 육역에게 보고했다.

“대인께 보고드립니다. 이놈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고는 시선도 한 번 들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알아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육역이 차가운 눈빛으로 사수죽을 바라봤다.

“그러하군. 되었다. 그를 다시 호송하라.”

사람들이 떠나려고 하자, 상관희가 팔을 뻗어 육역을 막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대인, 방금 하신 말씀은 책임지셔야지요?”

“당연히 책임집니다.”

육역이 걸음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대인께서 이곳의 변변치 못한 술과 음식을 꺼리지 않으신다면, 남으셔서 저와 함께 술 한잔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이 말에 육역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상관당주의 말씀이시니, 그럼 저는 더는 사양치 않겠습니다……. 너희는 사수죽을 옥으로 다시 호송하라. 나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대인…….”

고경은 그다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머뭇거리는 표정이었다.

“괜찮다.”

육역이 손을 내저었다. 그들을 빨리 배에 오르라 하고, 자신은 상관희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금하는 그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속으로 탄식하였다.

예로부터 영웅도 미인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하였지. 진정 일리 있는 명언이로다. 육역 같은 냉담하고 거만한 사람도 상관 언니 같은 자태 늠름한 여중 호걸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손가락에 감길 정도로 부드러워지는구나.

* * *

달빛이 서리 같아 광활한 호수 위는 아득히 넓은 은백색이었다.

“아가씨, 바깥은 바람이 붑니다. 안으로 드세요. 조심치 않으면, 감기에 걸리십니다.”

시중드는 동그란 얼굴의 계집종이 권했다.

적란엽은 선실 문에 기대어 눈이 닿는 멀리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계집종의 말은 마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물기 머금은 밤바람이 가벼이 그녀의 치마를 날렸다.

달빛같이 화사한 얼굴, 바람에 흩날리는 눈부신 옷자락, 몸놀림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감미롭고 아름다웠다.

“아가씨, 물길이 3, 4리는 되어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러니 들어가 기다리세요.”

계집종이 계속 권했다.

“괜찮다. 집에서 앉아 있던 것이 오래되었어. 나는 잠시 서 있겠다.”

적란엽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눈빛은 여전히 호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숨긴다 해도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났다.

계집종은 더는 권할 수 없어 선실로 들어가 피풍披风(*부녀자들이 입던 지금의 망토와 비슷한 겉옷.)을 가지고 나와 그녀에게 걸쳐줬다.

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약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 여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매우 큰 야항선夜航船이 소리도 없이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 켜진 등불이 어렴풋이 보였다.

3년이었다. 드디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적란엽은 손수건을 쥔 손으로 가슴 위를 꽉 눌렀다. 심장이 거의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뛰었다.

“아가씨, 이쪽으로 배에 오르세요.”

계집종이 부축하러 와 적란엽은 살짝 망설였다.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그녀는 그 야항선에 올랐다.

* * *

겨우 배에 오르고 나서, 적란엽은 얼이 빠졌다.

그녀의 발밑은 목판이 아니라, 온통 부드럽고 하얀 양가죽이었다. 그녀의 발밑뿐 아니었다. 갑판 위도 양가죽으로 깔아 사람이 다니는 길을 만들었다.

“아가씨 오셨어요…….”

배에 있던 시녀 하나가 앞으로 나와 맞이했다.

“주인님께서 분부하셨어요. 아가씨께 신발과 버선을 벗고 들어 오시랍니다.”

적란엽은 다시 어리둥절해졌다.

“신발과 버선을 벗어요?”

그녀가 본 그 시녀 역시 맨발이었다.

“네. 이것은 주인님의 분부십니다.”

그의 분부라 해도, 여자의 발을 어찌 마음대로 남에게 보일 수 있을까.

적란엽은 불안한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시선이 닿는 곳에는 어떤 남자도 없었다.

“아가씨?”

잠시 망설이던 적란엽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녀는 둥근 걸상 하나를 가지고 와서 적란엽을 앉혔다. 몸을 굽혀 그녀의 신발과 버선을 벗기고, 그녀를 부축해 잘 서게 했다.

맨발로 양가죽 깔개를 밟으니, 부드러운 양털이 발가락 사이로 삐져 나왔다.

적란엽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선실로 통하는 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길을 바라보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아가씨 저를 따라오세요.”

시녀가 앞장섰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들어선 바깥 선실에는 불빛이 어두컴컴했다. 적란엽은 발밑의 촉감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비록 여전히 촘촘한 보드라움이 느껴졌지만, 조금 전의 부드러움만 못했다. 확실히 베일만큼 상당히 단단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고개 숙여 바라보았다. 바닥은 이미 양가죽이 아니라 늑대 가죽 깔개로 바뀌어 있었다.

다시 안쪽을 향해 걸었고, 점점 더 어두컴컴해졌다.

시녀는 선실 벽에서 등불 하나를 들었다. 그녀는 그 뒤를 바짝 쫓을 뿐, 감히 멀리 떨어지지 못했다.

시녀는 적란엽을 데리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 위는 또 깔개가 바뀌었으며, 그녀는 단지 다르다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 대체 어떤 동물의 가죽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위로 두 구역의 계단을 올랐고, 다시 통로를 지나, 이어서 또 한 구역의 계단을 올랐다.

그제야 적란엽은 눈앞이 확 트였다. 결국 배의 가장 꼭대기 선실에 도착한 것이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있고, 땅에는 온통 검은 여우의 가죽과 여우 털이 깔려 바늘처럼 번들거렸다.

적란엽은 맨발로 거무스름한 빛을 내는 여우 가죽 위를 밟아나갔다. 그런데 발밑은 점점 더 희고 보드라운 것으로 변해갔다.

적란엽은 무심코 고개를 숙여 보고는 멍해졌다.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왔느냐…….”

낮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는 어두운 곳에서 들렸다.

원래 길을 안내한 시녀는 모르는 사이, 소리도 없이 물러갔고, 적란엽은 그곳에 서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녀는 한참이 지난 후 겨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세요?”

“3년을 보지 않았다고, 내 목소리도 알아보지 못하나?”

부드러운 낮은 침상에 기대어 있는 남자가 낮고 가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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