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난 상관없어.”
“그럼 오빠는 여기서 잠시 기다려……. 아저씨, 이리 와 보세요. 제가 물어봐야 할 게 있어요.”
금하는 개숙을 곧바로 조금 거리가 떨어진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로 끌고 갔다. 말소리마저도 신경 써서 낮췄다.
사소는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보았다. 두 손은 팔짱을 낀 채 흥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 돌려 그들을 보지 않았다.
평소 그의 성격대로라면, 진즉 가버렸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속 좁은 여자와 같은 수준이 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녀를 조금 기다리는 것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다.
“아저씨, 최근 양주성 안팎으로요. 혹시 버려진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 적이 있어요?”
금하가 매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개숙은 어리둥절하더니 그 또한 목소리를 낮게 억눌렀다.
“최근에 동양인이 출몰하여 이쪽이 온통 조용하질 않지. 강 쪽에 몇 구가 있기는 하더만, 네가 어떻게 생긴 이를 찾으려는지 내가 어찌 알아?”
“음……바로……, 맨발이어야 해요…….”
금하는 고뇌하며 이마를 문질렀다.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본 여자의 기억은 매우 혼란스러워, 그녀의 용모조차 분명치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치명상이 대체 어디인지도 불분명했다. 사실은 명확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럼 매우 기괴한 형구 같은 건 본 적 있으세요? 사람 모습의 인형인데요, 두 팔이 오그라들고, 사람을 그 안에 단단히 가둬요. 그러면 그 인형 몸 안에서 예리한 가시가 튀어나와 사람을 죽게 만들죠.”
그녀가 연이어 물었다.
개숙은 놀라며 탄식했다.
“애별리.”
“아저씨도 이 형구를 아세요?”
“들어봤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오랫동안 쓰는 사람이 없었지. 넌 어떻게 보았니?”
금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두 번이나 보았죠. 어떤 사람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호떡을 봐서, 내가 신경 써서 널 도와주마.”
개숙은 다시 호떡을 한 입 깨물었다.
“그러나 단서가 있을지는 확실치가 않아.”
“아저씨가 도와주시면, 더할 나위 없죠.”
금하는 기뻐하며 연이어 물었다.
“아저씨는 동양인 만난 적 있으세요?”
“네 아저씨는 운이 좋아서 아직 못 만났다. 그러나 듣기로 그들은 사는 곳이 일정치 않고, 신출귀몰한다지. 얼마 전 절의 중들과 마을을 학살했단다.”
금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에게 길잡이가 있어서예요……. 아저씬 아직 안 만난 게 다행이에요. 이 동양인들이 암기를 잘 쓰는데요. 그 암기에 뭔지 모를 독을 발랐어요…….”
그녀는 멀지 않은 곳의 사소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저들 방의 여러 형제가 암기에 맞았는데, 상처가 계속 짓무른대요. 좋은 의원을 데려와도 속수무책이고, 지금도 반죽음 상태로 침상에 누워 있어요.”
“무슨 독이야?”
개숙은 의아해했다.
“몰라요. 의원들 모두 전에 보지 못한 거래요.”
금하는 개숙의 식견이 넓다고 생각해서, 품속에서 잘 싸두었던 수리검을 꺼내 그에게 보였다.
“바로 이거예요. 칼날에 닿지 않게 조심하세요.”
받아든 개숙이 햇빛 아래 비춰 자세히 보았다. 칼날은 기이해 보이는 옅은 청록색을 띠었다. 개숙은 한참을 고민해 보고서야 천천히 말했다.
“조카딸아, 이 물건을 쓸 일이 없으면 내가 가져가 누구 좀 보여주마. 어쩌면……, 에효,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녀의 기분에 달렸어.”
“누구요?”
금하는 그가 더듬거리는 것을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눈썹을 세웠다.
“내가 아는 사람이야. 독에 대한 경험이 아주 많지. 그러나 그이는 외부인과 왕래하는 걸 싫어해.”
금하는 개숙의 낮고 부드러운 어조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예민하게 깨달았다. 헤헤 웃으며 물었다.
“그이? 애인이시구나?”
“가라, 가, 헛소리 좀 하지 마!”
개숙이 그녀를 내쫓았다.
“알았어요. 그럼 아저씨, 이거 조심해서 잘 챙기세요. 본인 찔리지 마시고요.”
금하는 히죽히죽 웃으며 수리검을 잘 싸서 그에게 주었다.
“참, 아저씨는 온종일 신출귀몰하시잖아요. 전 아저씨 찾으러 어디로 가야 해요?”
“내가 널 찾지.”
개숙은 수리검을 옷 속에 잘 넣고 가려고 했다.
금하가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라 그를 불러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손자가 저기 극장에서 연극 보고 있어요. 보러 안 가실래요?”
“어디에 할아버지가 돼서 손자를 찾아가는 도리가 있더냐!”
개숙은 팔을 휘척휘척 내저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멀어지고서야 사소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를 흘겨보았다.
“몰라봤구만. 너 양주 온 지 며칠도 안 되어, 본인 아저씨를 찾고. 아니면 그냥 거지야?”
“소방주, 사람 참 얕보시네.”
금하는 개숙이 사라진 곳을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저분은 평범한 거지가 아니야. 저분 조사祖师(창시자)께서는 원래 궁중의 태감이었어. 그때 경성 황궁에 큰불로 건문제가 실종되고, 행방이 묘연해졌잖아.(*정난의 변을 지칭함.) 오빠, 알지?”
“그 일을 누가 몰라.”
“궁중에는 원래 무공을 연마해서 황제를 보호하는 태감들이 있어. 건문제는 행방불명되고, 그들도 궁 밖으로 도망 나온 거지. 강산의 주인이 바뀌는 건 돌이킬 수 없었으나, 그들은 누구 하나 투항하길 원치 않았어.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누구도 모시지 않고, 어떤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고, 누군가의 녹봉도 받지 않았지. 그들은 떠돌아다니는 한편으로 집집마다 어린 주군을 찾아다닌 거야.”
말을 다 들어놓고도 사소는 한참을 정신이 멍했다. 나중에서야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생각 못 했다……. 저런 사람도 있을 줄은…….”
“저분 무공이 정말 대단해.”
금하는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이상하네. 왜 육 씨는 모두 이렇게 무공을 잘해?”
“모두 잘한다고?”
사소는 고개를 돌리고 냉랭하게 흥 소리를 냈다.
“오빠, 나 얼른 돌아가서 유 대인 앞에서 점호해야 해. 오빠는…….”
금하는 탐색하듯 그를 바라봤다.
“가봐, 가봐. 나는 어떤 사역도 너처럼 바쁜 건 보지 못했다.”
“참, 상관 언니 쪽은……, 꼭 돌아가 상황 봐서 잊지 말고 물어봐. 나까지 불어버리지 않게 하는 거 단단히 기억하고.”
금하는 걷다가 또 뒤돌아서 여러 번 당부했다.
사소는 귀찮아서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금하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지자, 원래 있던 자리에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인 후에야 자리를 떴다.
* * *
등불을 켤 무렵, 양주 관역.
금하는 유 상좌의 심부름으로 사옥으로 가 말을 전했고, 또 유수사留守司에 물건을 가지러 뛰어갔다. 그러느라 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밥때를 넘겼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차가운 찐빵 두 개와 장아찌 몇 개를 찾아냈다. 이를 갖고 방으로 돌아온 금하는 찻물과 함께 끼니를 대충 때웠다.
그런 후 그녀는 유등의 밝기를 조절하고, 품속에서 오늘 자신이 의관에서 그렸던 그림을 꺼냈다. 탁자 위에 펼쳐놓고는 넋을 잃고 보았다.
이 흔적을 그녀는 아직 기억했다. 3, 4촌의 깊이였고, 복숭아나무 한 그루 옆에 있었다.
형구는 분명 복숭아나무에 기대어 있었을 터였다.
그녀는 거듭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때 나무껍질에 흔적이 남았는지 조사했어야 했다.
어떻게 소홀할 수 있어!
맞아, 그 화방 위의 남녀도 뱃전에 기댄 채였어.
이 형구는 몸속에서 예리한 가시가 튕겨 나온다. 분명 반동의 힘이 있어서, 그것을 막아낼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 무의식적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머릿속으로는 죽은 여자의 용모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여자들을 죽였지? 도대체 왜 그들을 도화림 안에 놓아둔 걸까? 그 화방은 우연이야?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그럼……, 누군가 은밀한 곳에서 고의로 그러는 거야? 누구일까?
왜 그녀에게 이 ‘애별리’를 보게 했을까? 그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쿵쿵쿵!”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정신을 놓고 있던 그녀는 놀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깊게 숨을 들이켠 후에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밖에서 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육 대인께서 분부가 있으시다. 빨리 나와!”
그가 미색에 빠져 있으니, 자신이 그래도 반나절 정도의 한가로움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금하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종이를 챙기고 일어서 문을 열었다.
그제야 고경뿐 아니라 육역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넌…….”
육역은 보자마자, 그녀의 안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소의 그녀가 아닌 것 같아 그는 신경이 쓰였다.
“무슨 일이 있나?”
“아니요.”
그녀는 손을 비벼, 얼굴을 세게 한 번 문지르고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대인 용무가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육역이 그녀를 주의 깊게 보았다.
그는 묻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으나, 결국 무엇도 묻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말했을 뿐이었다.
“너희는 나를 따라가 사수죽을 데리고 나온다. 고경, 너는 사람 둘을 더 불러서, 함께 호송해.”
왜 갑자기 사수죽을 데리고 나오려 하지?
금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재빨리 감정을 감추고, 그저 무표정한 모습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