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원래 그들을 향해 달려오던 작은 홍사들이 이 징소리와 북소리를 듣고는 뜻밖에도 모두 방향을 틀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나는 듯이 헤엄쳐간 것이다.
옆에서 머리를 들고 이 한판 연극을 구경하던 붉은 이무기도 가만있지 않았다.
크고 튼실한 몸체를 좌우로 흔들며 움직였다. 녀석이 지나가기만 하면, 복숭아나무는 모두 한바탕 꽃비를 뿌렸다.
“이건, 대인이 보낸 지원군인가요?”
금하는 알 수 없었다.
육역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알 수 없었다.
금하는 뱀 떼가 내달려간 방향을 바라봤다. 잠시 후 뒤늦게 깨닫고서야 긴 숨을 토해내고는 득의양양해 했다.
“전 알고 있었어요. 이 도련님은 금갑신인金甲神人(*중국 민간 신앙의 신선으로 불교의 미타보살을 가리킴.)의 보호가 있어, 재난을 만나면 상서로워지고, 화를 만나면 복이 돼요. 영문도 모른 채 뱀 뱃속에다 장사지내라는 법이 있을 리가.”
육역이 그녀를 흘끔 흘겨보았다. 그리고 바로 나무 아래로 뛰어내리려는데, 뱀 떼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금하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오르려 열심히 나무에 붙어 꼬물거렸다.
이번은 뱀뿐만이 아니었다.
종횡무진 돌진하는 멧돼지와 사력을 다해 뛰고 있는 야생토끼가 함께 뒤섞여,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뱀의 쉭쉭 하는 소리, 야생멧돼지의 울부짖음이 귓전에 끊이지 않았다. 야생토끼와 작은 홍사는 결사적으로 뒤엉켰다.
금하는 눈을 빤히 뜨고 붉은 이무기가 거대한 머리를 휘둘러 멧돼지 한 마리를 한입에 통째로 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보는 것으로도 그녀의 목구멍이 점점 조여들었다. 붉은 이무기는 분명 목이 컥컥 멜 것이다.
향 한 개가 다 탈 시간이 채 안 되어, 이 뱀 떼의 탐욕스러운 걸신의 큰 잔치는 갈수록 멀어져 갔다.
다시 돌아와 나무 위의 그들을 거들떠보는 뱀은 없었다. 붉은 이무기도 어디로 트림을 하러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평온해지고 나서, 육역은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금하도 따라 뛰어내렸으나, 머릿속이 아직 몽롱한 덕에 곤두박질쳐 버렸다. 바로 꼬리뼈로 떨어진 것이다.
“아이고…….”
그녀는 아파서 바로 입을 벌렸고, 또 손으로 비비기도 체면상 곤란했다.
“네 이 경공은……, 아프냐?”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육역이 물었다.
그녀는 곤혹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갑신인의 보호가 있는데도 아픈가?”
그는 가볍게 한 마디로 비웃고는 걸음을 옮겨 가버렸다.
금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막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 사실 기분은 매우 좋았다. 그래서 그와 같은 수준으로 놀지 않기로 했다.
걸음을 빨리 걸어 그를 따라잡았고, 두 사람은 나란히 도화림을 나왔다.
연이어 뱃속이 불에 타는 것 같던 그 감각은 팔다리를 향해 흩어졌다. 게다가 도화림의 장기 범위를 벗어나니, 금하의 머릿속 어지러움과 멍멍함은 점점 사라져 갔다.
어느 정도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고, 그녀는 뒤늦게 매우 중요한 일 한 가지가 떠올랐다.
“대인!”
그녀가 빠르게 그의 앞쪽으로 걸어가 초조하고 간절하게 물었다.
“어제, 대인이 절 구하셨어요?”
육역이 걸음을 멈췄다.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묻지?”
“대인이 아까 제게 먹으라 주신 약이요. 어제 제가 복용한 환약과 완전히 같아요.”
“이 약 이름은 자염으로 불린다. 궁중에서 배합하여 만든 것이라 시중에선 살 수 없어.”
육역이 잠시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단,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금의위 안에 이 약을 가진 자가 이십여 명이 되지 않게 있다.”
금하는 망연해졌다.
“대인 말씀은, 어제 저를 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고 또한 금의위일 가능성이 크다는 건가요?”
“나는 그리 얘기하진 않았다.”
그가 느린 어조로 말했다.
“그건 무슨 뜻이에요?”
금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널 구한 사람은 나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가 그녀를 흘끔 보았다.
“너는 육선문의 포쾌이고, 내가 네게 어찌 사건 조사를 하는지 가르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조차 모르게 할 수는 없지.”
금하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봤다. 사실을 속 시원하게 토해내라고, 정말 그의 목이라도 콱 잡고 짤짤 흔들고 싶었다.
분명 그가 아닐 거다. 아니면, 이렇게 인정 안 해서 뭐 하려고?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성이 육이신 분은 협박을 가장 좋아한다. 이렇게 그에게 몹시 감사해야 할 좋은 일을 다 해 놓고도 그가 모른다고 할 리가 없잖아.
응, 분명 그가 아니야!
금하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다시 육역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가 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오늘은 어쨌든 내가 네 목숨을 구했지. 다시는 어리바리하게 헷갈리지 마.”
“아?!”
금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 하, 하지만 방금 대인은 절 버리고 혼자 가시려고 했잖아요!”
육역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를 일깨워줬다.
“잊지 마라. 그전에 뱀이 네 뒤에 있을 때, 누가 널 도와 화를 피했는지. 아니었다면, 지금 넌 그 야생멧돼지와 함께 눌러앉았어야 해.”
야생멧돼지와 함께 눌러앉아? 뱀 뱃속에서?
생각만으로도 끔찍해 금하는 침묵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맞았다.
금하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 아주 공손하게 읍하며 말했다.
“목숨을 구해주신 대인의 은혜, 소관 평생 잊지 못하며, 내세에 결초보은할 것이며, 집편추등执鞭坠镫(*시중을 든다는 뜻.) 할 것이며…….”
육역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내세까지 기다리지 마. 이생에 잊지 않고 갚으면 돼.”
금하가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대인, 제 마음속에서 대인께선 줄곧 경지가 매우 높은 분이십니다. 전 대인이 이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사소한 일이다. 수고랄 것도 없고, 말할 것도 못 된다, 라고요.”
“너의 목숨을 넌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
육역이 그녀에게 반문했다.
금하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당연히 아닙니다.”
“모두 말하더군. 적수지은 용천상보 (滴水之恩 涌泉相报)라, 남에게서 은혜를 입으면 갑절로 갚아야 한다지.”
육역이 몸을 바짝 가깝게 다가왔다. 금하는 저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섰다. 그는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느린 어조로 말했다.
“넌, 절대로, 잊지 않고 갚아라.”
“……소관, 알겠습니다.”
금하는 자신이 끌고 온 말에게 갔다.
가는 한편 생각하니, 돌연 뭔가 말이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말을 끌고 돌아와 육역에게 말했다.
“대인, 소관 여전히 아주 조금 이의가 있습니다. 그 뱀은 원래 직접 우릴 먹어치우려 하지는 않았어요. 대인이 그때 저를 끌고 뛰지 않으셨어도, 녀석은 장기만 내뿜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이게……, 생명을 구한 은혜라고는 볼 수 없죠?”
육역은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가 침묵하다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넌 자염이 암시장에서 한 알에 은자 얼마로 팔리는지 알아?”
금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웃는 얼굴을 만들어내고는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은공恩公(*은인을 높이 부르는 말.) 피곤하시지요. 얼른 말에 오르십시오. 소관이 은공을 위해 말을 끌고 감이 어떻겠습니까?”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말에 올랐다.
금하는 말을 끌었다. 속으로는 당연히 거듭 한숨을 쉬었다.
육역의 은혜를 입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럭저럭 상관없는데, 어째서 굳이 또 육역인가.
이 사람은 남의 약점을 잡는 데 익숙했다. 지금 이 은혜를 핑계로, 앞으로 그녀에게 물로 가라, 불로 가라, 별의별 일을 시키며 어찌 괴롭힐지는 아직 모른다.
긴 한숨을 내쉰 그녀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어떻다 해도, 그래도 결국은 살아 있으니 갚을 수 있잖아. 이 도련님이 얼마든지 물로 가라면 물로 가고, 불 속으로 가라면 불 속으로 가서, 그에게 이 은혜를 갚으면 되지, 그를 두려워해서 무엇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