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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63)화 (63/224)

63화

“육…… 대인…….”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목이 마른 것을 알아차렸다.

심상치 않아!

그래도 기하단을 쓴 이상, 장기가 가득해도 적어도 반 시진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차 한 잔 마실 짧은 시간에 당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서일까. 육역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금하는 그를 정확히 알아볼 거리만큼 가까워졌을 때야 겨우 알아차렸다. 복숭아꽃에 어울린 그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하얗다는 것을…….

대인도 장독에 당했어?

그녀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육역이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그녀와의 거리가 아직은 열 보가량 떨어져 있던 그때, 그가 돌연 꽃송이 가득 달린 복숭아 나뭇가지를 꺾었다. 비를 머금은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지금이 어느 땐데, 대인은 꽃을 꺾어 꽂을 생각을 하지?

금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고관댁의 철부지 도련님은 과연 철부지 도련님이었다. 설마 본인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 그 복숭아 가지가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바로 날카로운 무기로 변하여 똑바로 그녀에게 날아왔다.

아마도 장독이 원인이리라.

그녀의 머리는 놀라는 것도 느려져 엉겁결에 피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이 매우 익숙하다고 느꼈다.

왜 익숙하게 느껴져?

그녀는 애써 생각했다.

――그랬다. 그 밤, 참선 위, 구절편의 은빛 칼날이 곧장 목으로 향할 때, 그때 그녀는 바로 이런 ‘나 죽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복숭아 나뭇가지는 그녀의 귓가를 쏜살같이 지나갔다. 꽃잎이 그녀의 볼을 스쳤고, 그윽한 매화 향이 함께 떠다녔다.

그리고 한 줄기 오싹한 한기가 그녀의 머리 뒤에서 솟았다.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쉭-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빨리 가!”

육역이 언젠지 모르게 그녀의 앞에 도착했다. 그는 그녀의 팔을 세게 끌어당겨 급하게 빠져나갔다.

그에게 잡힌 금하는 빠르기가 마치 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뒤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뒤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보는 거야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놀란 나머지 눈이 휘둥그레지고, 다른 건 거의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여긴 어딘지, 자신이 누군지.

눈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건 비교할 수 없이 큰 진홍색의 거대한 이무기였다. 거의 절반쯤 몸을 곧추세웠는데, 이미 사람보다 컸다.

쉬쉬쉭, 선홍색의 혀가 날름거리는 사이로 새빨간 안개가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방금 육역이 날린 그 복숭아 나뭇가지는 녀석의 강철같은 비늘에 막혀 상처를 입히진 못했다. 이무기의 몸이 나무줄기를 스쳤고, 그들을 향해 헤엄치듯 움직여 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금하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감탄했다.

“……저놈은 뭘 먹어 저렇게 커다랗대요?”

당연히 육역이 그녀의 말에 답할 리가 없었다. 그녀를 끌고 숲속을 누빌 뿐이었다.

그들이 왔던 길은 붉은 이무기에게 막혀, 원래의 길로 되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만약 목숨만 구하고자 덮어놓고 뛴다면, 오히려 도화림의 깊은 곳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어떤 더 두려운 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좌우의 측면으로 움직여 붉은 이무기를 돌아가려 했다.

그렇지만 이 붉은 이무기는 뜻밖에도 매우 총명했다. 게다가 몸체가 매우 길어, 머리로 가로막고 꼬리로 막는 것이 대단히 민첩했다.

결국 녀석은 두 사람을 숲 가운데 가둬두었다.

한바탕 도망을 치다가, 금하는 돌아가는 상황을 조금 파악했다. 헐떡이며 육역에게 물었다.

“대인……, 느끼셨어요? ……쟤가 우리를 먹고 싶어 하지 않고, 그냥……, 우리를 여기에 가둬두려는 것 같은데요?”

“눈치챘어.”

육역은 안 그래도 조금씩 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바로 이무기도 속도를 늦추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여기던 중이었다.

지금 금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아예 위험을 각오하고 멈춰버렸다.

이렇게 급하게 뛰다가 멈춘 금하는 나무둥치에 기대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사실 평소 이 정도의 길은 실제로는 별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몸에 장독이 침투해 두 다리는 철로 만든 저울추처럼 무겁게만 느껴졌다.

육역은 기를 단전으로 내리고, 힘을 두 손바닥으로 옮겨 모았다.

그리고 경계의 시선으로 붉은 이무기를 주시했다. 정말 금하의 말대로, 녀석은 확실히 그들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녀석은 두 장丈 거리 밖에 멈춰있었고, 가볍게 몸을 살랑거렸으며 쉭쉭쉭 거리며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금하는 간신히 호흡을 고르긴 했지만, 머리는 점점 몽롱해져 갔다.

그녀는 머리와 꼬리를 열심히 흔들며 ‘스스스’ 거리는 붉은 이무기를 한참이나 주시했다. 그러다 한숨을 내쉬고, 녀석과 상담을 하기로 했다.

“너 우리가 관차라는 거 알고, 억울한 일 있다고 호소하려는 거야? 억울한 게 있으면 말을 해. 이렇게 스스 거리기만 하면 안 되지. 네가 이렇게 크게 자랐을 정도면 말이야. 분명 몸에 도력 정도는 익혔겠지. 입으로 사람 말 같은 것도 할 줄 알지……?”

말을 채 끝내기 전이었다. 그녀의 입안에 무언가 쑥 들어왔다.

“삼키지 마, 머금었다가 녹으면 천천히 넘겨.”

육역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금서禁书를 너무 많이 봤어! 앞서가지 마. 녀석은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게 아니라, 아마 장독을 내뿜어 우리를 기절시키고, 제 굴로 끌고 가려는 거야.”

“굴로 끌고 가요? 녀석의 대대손손까지 먹이게요?”

금하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다시 주의를 기울여 보니, 과연 붉은 이무기가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주위의 새빨간 안개가 더욱 농후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때, 처음에는 차갑던 머금고 있던 물건이 마치 입안에 불이 난 것처럼 맵고 뜨거워졌다. 이런 고통은 또 상당히 익숙한 것이었다.

그야?

설마……, 어떻게 그일 수 있어?

그녀는 느리게 고개를 돌려 육역을 바라봤다. 순간 어떤 말로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쉬익…….

쉬익…….

쉬익…….

그녀는 정신을 집중해 자세히 들었다. 사방에서 지극히 희미하게 쉭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역은 안색이 변하여 금하를 잡아당겼고, 복숭아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그가 잔가지를 밟고 몸을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쉭쉭 소리는 점점 더 많아졌다. 먼 곳으로부터 가까워지고, 가볍게 시작하여, 울림이 되었다.

이쪽으로 몰려드는 것들이 분명하게 보이자, 금하는 두 다리에 힘이 빠진 나머지 중얼거림을 참지 못했다.

“……젠장, 뭘 이렇게 많이 낳았어!”

시선이 닿은 곳마다 작은 홍사가 몸을 흔들며 헤엄치고 있었다.

언뜻 보면, 검붉은 조수가 일파만파로 출렁거리는 것이 나무 가득 핀 복숭아 꽃과 서로 잘 조화를 이루어 어우러진 것 같았다.

“이렇게 많아. 우리 둘로는 쟤들 먹기에 부족하겠는데요.”

금하는 다시금 ‘내 목숨은 끝났구나.’를 느꼈다.

육역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흘끔 보았다.

“넌 이래도 저것들 먹는 데 모자랄까 걱정하나?”

이런 뱀들은 분명 나무를 타고 오를 수 있을 거다. 그때는…….

금하는 육역을 바라봤다. 비록 마음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었다.

독장毒瘴은 더욱 짙고 강렬해졌다.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가득 올라와, 그녀는 한바탕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금하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다행히 육역의 눈썰미가 좋고 동작이 빨라 한쪽 팔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대인, 전 대인의 경공이 뛰어난 걸 알아요. 제가 엮이지 않았다면, 대인은 분명 벗어나실 수 있으시겠죠. 대인 먼저 가세요. 전 신경 쓰지 마세요.”

그녀의 말은 확실히 진실한 말이었다.

육역의 경공은 원래 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금하의 몸은 장독에 중독됐고, 손으로는 그녀를 끌어안고 있어, 크게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녀를 내버려 두고 육역이 힘을 모아 발을 박차 복숭아 나뭇가지 사이로 뛰어올라 움직인다면, 분명 그는 도화림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말에 육역은 손으로는 비록 그녀를 끌어당기고는 있으면서도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군, 그럼 너는 알아서 해라.”

그가 이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

금하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진지하게 그의 옷소매를 꽉 붙들었다.

“제가 유언 몇 마디는 남기게 해 주실 거죠? 돌아가면 대인께서 대장에게 말씀해 주세요. 이곳은 괴상하고 위험하니, 제 뼈를 거두러 오지 마시라고요. 또 있어요. 대인은 절대 잊으시면 안 돼요, 저기……, 제게 누리게 해주시는 거, 포두 대우?”

육역이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어렴풋하고도 끊임없이 징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

쾅쾅쾅, 쾅쾅쾅, 둥둥둥, 둥둥둥, 울리는 것이 매우 시끌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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