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60)화 (60/224)

60화

밤은 먹과 같이 어두워 별도 없고, 달도 없었다. 또한 바람도, 비도 없었다.

금하는 관역 곁채의 침상에 누웠다.

전혀 졸리지 않았다.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이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정신없이 서로 엇갈렸다.

몸속에 정말 장독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은 혼돈으로 가득 차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악이 준 기하단을 삼키려고 꺼냈다. 견딜 수 없이 매울까 두려워져, 물을 따라 야금야금 마셨다.

하지만 이 단약은 그녀가 먼저 먹었던 그 약과는 완전히 달랐다.

입에 넣으면 차디차고, 물마름 열매의 청향이 담담하게 느껴졌다. 상쾌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럼, 그녀가 먼저 먹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또 누가 그녀에게 먹여줬지?

금하는 점점 더 헷갈렸다.

“하, 모르겠다.”

그녀는 발을 끌며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누웠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지만, 바깥의 딱따기 소리를 어렴풋이 두 번 들었고 가물가물 잠에 빠져들었다…….

* * *

잠에 빠져들며 눈앞이 아뜩해진 사이, 그녀의 몸은 낯선 곳이기도, 또한 익숙한 곳이기도 한 큰길 위에 서 있었다.

주위는 불이 켜져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어깨가 스칠 만큼 사람이 많았고, 곳곳에는 웃음이 넘쳐 떠들썩한 것이 시끌벅적한 명절이라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망연한 시선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등불의 광경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언제나 동그마니 혼자였다.

그녀는 달렸고, 허둥지둥 찾았다. 심지어 자신이 찾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때 몸이 돌연 세차게 시냇물로 떨어졌다. 몸은 물을 따라 흐르는 것이 바람에 나부끼는 듯, 떠다니는 듯했다.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화방 한 척이 느릿하게 오고 가는 것이 보였다. 배에서는 악기 소리가 들렸고, 하늘하늘 가냘픈 소녀의 아름다운 눈초리는 사람을 홀렸다.

화방이 그녀의 눈앞을 지났다. 그제야 그녀는 배 안에 남녀 한 쌍이 서로 안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가 천천히 돌아서 금하를 향해 아름답게 웃었다. 도화꽃 같은 얼굴에 버들잎 같은 눈썹, 불쑥 나타난 것은 적란엽이었다.

금하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그 남자도 뒤로 돌았다. 바로 양악이었다.

그는 헤헤 웃고 있었고, 눈, 코, 입, 귀 뚫린 곳 모두 가느다랗게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점점 더 많아진 선혈이 낭자하게 흘렀다. 웃는 얼굴은 일그러져 흉악해졌다.

“악!”

금하는 크게 소리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꿈에서 놀라 깬 것이다.

밖에는 봄 천둥이 끊임없이 치고, 번갯불이 방안을 창백하게 비췄다.

그녀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

오늘이 바로 경칩으로, 이 천둥은 땅의 저 밑에서 일어나 만물을 놀라게 해 깨운다.

금하는 일어서 탁자 주변을 더듬었다. 불을 켜려고 하는데, 부싯돌이 만져지지 않았다. 더듬는 사이, 그녀는 아까 물을 마시던 도자기 잔을 건드려 바닥에 떨어뜨렸다. 깨지는 소리가 맑고 쨍쨍했다.

한숨 쉴 틈도 없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누군가에게 걷어차였고, 동시에 누군가가 강제로 밀고 들어왔다.

금하는 몸에 홑옷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는 손에 닿는 병기 하나 없었다.

그녀는 손에 닿는 대로 찻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먼저 두드려 팬 다음에 다른 것을 따지려 했다.

“원 포쾌!”

들이닥친 이가 말했다.

이 목소리는 조금 익숙했다. 금하의 손이 멈추자마자, 밤하늘에서 또 한 줄기 섬광이 번쩍거려 방안이 드러났다.

그 용모 준수한 사람은 바로 육역이었다. 그런데 그는 검은 머리칼이 어지럽게 흩어졌고, 흰색의 포 또한 반만 걸쳐 매우 급하게 온 것이 분명했다.

“육 대인?”

육역은 전신이 긴장으로 팽팽한 상태였는데, 금하가 아무 일 없음을 보고는 한숨을 놓는 것 같았다.

그가 언짢은 기색으로 그녀가 손에 든 찻주전자를 흘끔 보았다.

“……이것도 손님을 대접하는 접객의 도인가?”

금하는 찻주전자를 받쳐 든 채, 꾸물꾸물하며 부서지고 반쯤 남은 문을 바라봤다.

“대인의 모습도 손님으로 오신 것 같진 않습니다.”

“조금 전 나는 네 쪽에서 비명 소리가 난 것을 들었다.”

그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해명하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다소 어색했으나, 이내 평소의 무심한 표정과 어조로 돌아갔다.

“게다가 자기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 여기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 금하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가위에 눌렸어요. 일어나 불을 켜려는데, 조심하지 않아서 잔이 깨졌고요. 와, 대인께선 진정 내공이 심후하고 청력이 비범하십니다. 이렇게 먼 곳인데도 또렷하게 들으실 수 있으시고.”

두 사람이 각자 지내는 방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고, 거기에 천둥소리까지 섞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육역은 냉랭하게 흥, 소리를 냈다. 그녀의 탄복이 못마땅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비명을 지른 이유가 우습다 하는 것인지, 금하는 알 수 없었다.

간간이 이어지는 천둥소리는 처마 가에서 굴러가는 듯했다.

금하는 번갯불에 의지해 결국 부싯돌을 더듬어 찾았다. 등불을 켜고, 바닥의 파편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 조각을 가져다 그것들을 수습해 싸서는 방구석에 놓았다.

그녀가 정리를 다 하고 돌아서니, 육역이 뜻밖에도 아직 있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그는 앉기까지 했다.

원래 반쯤 걸쳤던 하얀 포는 이미 단정히 갖춰 입었지만, 그의 검은 머리는 여전히 풀린 채였다.

육역이 가지 않으니, 금하도 등한시할 수는 없어 찻물을 따라 밀었다.

“대인, 차 드세요.”

육역은 차를 가져가지 않고 눈썹을 조금 들어 올렸다.

이 금의위 대인의 미세한 표정에 담긴 뜻에 관하여, 금하는 이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경지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해했다.

“차가 식은 건 알아요. 하지만 삼경 한밤중에는 저도 물 끓일 곳이 없어요. 대인께선 도량이 넓으신 분이시니, 아쉬운 대로 한 번 참으시죠.”

그녀도 목이 매우 말라 직접 한 잔 가득 따라 꿀꺽꿀꺽 마셨다.

육역의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가볍게 찻잔을 쓰다듬었다. 그는 자신이 왜 아직 가지 않는지 절대 해명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원래 금의위는 일을 하는 데 있어 줄곧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조금 무심한 듯이 말했다.

“네 꿈에 대해 말해 봐.”

“……별거 없어요. 늘 그런 악몽이죠.”

금하는 본능적으로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어 말했다.

“개한테 쫓기고, 뱀한테 물리는 그런 거요.”

육역이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어조는 느릿했다.

“네가 오늘 성의 서쪽 도화림에 갔다고 들었다.”

금하는 놀라 굳었다.

순간 그가 어디서 들었는지 그리고 대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렇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래도 운이 대단히 좋아 죽지 않은 것인가?”

그가 담담히 말했다.

동시에 금하의 눈동자가 단번에 확 응축됐다. 그녀의 등이 팽팽하게 꽉 조였고,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죽지 않아서, 대인은 매우 실망하셨어요?”

이 말에 육역은 순간 마치 얼이 빠진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표정을 거듭 살피고는 자신의 어조 안에 스민 화를 억눌렀다.

“넌 내가 널 죽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나는 터무니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네가 죽기를 바랐다면, 쥐죽은 듯 조용히 너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서른여섯 가지 이상의 방법을 알아. 그랬다면, 넌 지금 여기 있을 수 없었겠지.”

금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너무 앞서 나가 억측을 한 걸까.

금의위의 수완은 금하 역시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육역에게 그녀를 죽여야 할 어떤 이유가 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당연하게도 그녀는 금의위가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필요하다는 얘긴 듣지 못했다.

“대인 기분 나쁘시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나쁘셨다면, 푸세요.”

그녀도 악몽의 후유증인 듯했다. 이렇게 예민할 일이 아닌데. 그래서,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녀와 따지기가 귀찮았거나, 그녀의 사과가 먹혔을지도 모른다.

육역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어서 물었다.

“넌 도화림에서 무얼 본 거야?”

“한 쌍의 남녀요. 꼭 붙어 안고 있었죠……. 흠흠, 둘이 옷은 모두 입었어요.”

육역이 이상하게 오해할까 염려가 되어 그녀가 보충했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얼굴을 흘끔 보고, 희미하게 웃던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자는 이미 죽었고, 저는 모르는 얼굴이었어요. 그 남자의 생김은 보지 못한 채 기절했고요. 나중에 누가 제 입에 환약을 넣어주며 물고 있다가 녹으면 삼키라 했죠.”

듣던 육역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금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 후 또 누군가 저를 안고 도화림을 나왔는데, 저도 그의 모습은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마지막으로, 사소가 저를 업고 산에서 내려왔고요. 그게, 제가 이 일에선 사소에게 신세를 졌어요.”

육역은 냉랭하게 흥 소리를 내고, 이내 미간을 찡그렸다.

“넌 정말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나? 중독 후의 환각일 수 있지 않아?”

금하는 순간 멍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