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2월, 내괘는 건괘가 되고, 외괘는 진괘가 된다. 이 괘의 이름이 뇌천대장雷天大壮이다.
뇌천대장은 주역 64괘 중 34번째의 괘로 위로 우레, 아래로 하늘이 있다는 의미로, 대장大壯은 ‘강건하여 크게 번성하다.’라는 뜻이다.
이 괘는 두 개의 음의 기운이 위에 있고, 4개의 양의 기운은 아래에 있게 되어, 양기는 벌써 땅을 뚫고 올라오고, 음기는 쇠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정만은 의관 안의 대나무 침상 위에 반쯤 기대어 있었다.
“아버지, 이건 마비탕이에요.”
양악이 약사발을 들고 왔다.
“심 의원께서 이 약을 드시면, 반 시진 후에는 다시 접골할 수 있다 하셨어요.”
양정만이 약사발을 받고도 여전히 조금은 망설였다.
“내 이 다리는…… 됐다는 데도…….”
“그러지 마세요, 대장.”
금하가 급하게 권했다.
“육 대인은 직접 대장을 모셔 오셨고, 심 의원은 특별히 시간을 내셨어요. 게다가 대양은 어젯밤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이게 다 대장 다리 때문이에요. 지금껏 다들 애를 쓰고, 마지막 고비 하나 넘기면 성공인데, 대장이 정말 이러시면 안 돼요…….”
이 계집애의 입은 재잘재잘 떠드느라 쉴 틈이 없다. 양정만도 그녀는 이길 수 없었다.
“육 대인께서 아직 밖에 계시잖니. 넌 좀 점잖게 있거라. 어찌 되었건 우린 관차 일 하는 사람이다.”
“네!”
금하가 잽싸게 대답했다.
양정만은 마비탕을 모두 마셨고, 양악이 그를 모셨다.
틈을 보아 빠져나온 금하의 눈에 육역이 대나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무료하게 탁자 위 난초를 만지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좋아하진 않는다 해도, 대장의 다리를 치료해 주는 일에 관해선 그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육역은 확실히 자신의 성의를 다했다.
그가 그리한 이유는 잠시 접고, 이 일만 두고 보면 그에게 신세를 졌다.
“대인, 목마르시죠? 차를 좀 끓일까요?”
그녀는 비위를 맞추며 다가갔다.
육역은 시선도 들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금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난초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크게 깨달았다.
“대인, 적 낭자 생각하고 계시군요?”
난초 란에 잎 엽 자를 쓰는 란엽, 금하는 싱글싱글 웃었다.
“어제 적 낭자에게 향료 갖다 줄 때, 낭자가 대인께서 좋아하는 걸 물었어요. 그게요. 이 며칠 그녀는 직접 주방에 가서 요리 몇 가지 할 거예요. 대인 드셔보시라고요. 대인은 조만간 분명히 그녀를 만나시게 될 겁니다.”
이번에 육역은 결국 그녀를 보았다. 그가 여유롭게 천천히 물었다.
“내가 무얼 좋아하나?”
“아…….”
금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육역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시간이 나실 때, 요리의 도를 즐기시고, 항상 직접 주방에 가서 요리하시죠.”
육역은 침묵했다. 한순간 눈매가 희미하게 찌푸려진 것 외에,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더는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저 어설픈 꼬마 여우가 무엇을 한 건지 궁금해졌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때, 매끄러운 나무 병풍을 사이에 두고, 의동 둘의 대화가 금하의 귀로 들어왔다.
“넌 물을 더 많이 끓여서 뒤채로 보내. 그리고 갈아입은 옷가지, 천은 모두 끓는 물로 삶아. 동양인의 이 독은 사부님께서 지금까지 해독해본 적이 없으시니, 더 조심해.”
다른 한 사람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들 병세로 봐선 오래 못 갈 것 같아. 몸이 거의 반은 썩었어. 이건…….”
금하가 듣고 있는 사이, 육역이 벌떡 일어나 병풍을 돌아갔다.
“너희가 말하는 건, 3일 전 동양인에게 다쳤던 그 두 사람이냐?”
육역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인……, 그, 그렇습니다.”
“상황이 어떻지?”
“동양인이 무슨 독을 썼는지 모르는 상황이고, 몸이 뭉텅뭉텅 짓무르고 있어요.”
“설마 해독약이 없더냐?”
“그게……, 만약 그 동양인을 잡을 수 있다면 그들에게 해독약을 내놓으라 할 수 있고, 그건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의동이 공손하게 답했다.
동양인이 쓴 독!
금하는 문득 어제 오안방의 다친 사람이 떠올랐다.
설마 그들이 중독된 것이 같은 독일까, 역시 암기에 당한 상처일까?
“그들이 중독된 상처는 어떤 모양입니까?”
금하가 급하게 나서서 물었다.
“상처는 매우 작습니다. 살이 패인 것도 깊지 않고요. 그런데 상처가 대단히 반질반질합니다.”
금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품속에서 어제 잘 챙겨뒀던 그 암기를 꺼내 물었다.
“이것으로 인한 상처와 비슷합니까?”
이 암기는 여섯 마름모형으로 육 면에는 모두 볼록하게 칼날이 튀어나왔고, 남색의 빛이 살짝 돌았다. 육역이 한 번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은 동양인의 수리검袖里剑이다. 넌 어디서 손에 넣었느냐?”
“어제 저는 왜구와 싸웠습니다. 그들에게 오안방의 많은 사람이 다쳤어요. 4명이 죽었고, 6, 7명이 중독되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 그녀는 이 일을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육역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표정이 복잡하여 어떤 의미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금하는 저도 모르게 움찔 시선을 피했다.
의동이 수리검의 끝을 자세히 보고서야 말했다.
“제가 감히 완전히 이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칼날형태로 봐서 이것으로 인한 상처일 가능성이 8할 이상입니다.”
금하는 의동에게 감사해 하고, 머리를 숙인 채로 생각했다.
어제 관청에서 이 일을 알게 된 후, 왜구들을 토벌할 군대를 보냈을까?
이 왜구들은 내륙의 시골까지 들어와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길 안내자 외에도 그들을 도와주고 있는 다른 사람이 설마 또 있어?
만약 관청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오안방의 중독된 6, 7명의 생명도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사소나 상관희에게 해독약을 구할 방법을 생각하라고 가능한 한 빨리 알려야 하나.
한순간, 금하는 머릿속이 얼기설기 뒤엉켰다.
그녀는 근심하며 이마를 문질렀고, 시선을 들다가 마침 육역과 딱 마주쳤다. 옆에 있던 의동은 언제인지 모르게 이미 가버린 후였다.
“왜구에 관해선 네가 한마디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왜 그랬지?”
육역이 담담하게 물었다.
“이건……, 그게……, 저는 이 일이 우리가 맡은 사건과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인은 업무가 매우 많으신데, 더 신경 쓰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육역은 돌아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 와. 내게 자세히 얘기해.”
금하는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가야 했고, 어제 왜구를 만난 일을 아주 상세히 설명했다.
“장비?”
“음, 그런데 이 사람은 매우 간사해요. 전 이 이름이 그의 진짜 이름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표준어를 유창하게 했고, 동양어도 매우 잘합니다. 대체 어느 지방 사람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육역은 계속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금하는 고개를 갸웃하고 기억을 떠올리다가 머리를 저었다.
“그는 온몸을 동양인으로 꾸몄고, 어떤 허점은 보이지 않았어요. 피부색이 검고 거칠어서 그가 말한 왕직의 배에서 몇 년 일했다는 진술에 잘 들어맞았어요.”
“외모에 어떤 특이점은 있나?”
“얼굴이 길고 눈이 작고 수염이 없고, 눈썹은 성글어요. 광대뼈가 높고, 콧방울 왼쪽에 작은 사마귀가 있습니다.”
금하는 금의위의 정보망이 온갖 수단을 다 갖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명나라의 국토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와 일본도 모두 염탐하고 있었다.
만약 이 사람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다면, 육역은 분명 그녀보다 훨씬 우세할 터였다.
* * *
의동 하나가 내실로 들어와 말했다.
“바깥에 생선 파는 젊은이가 양악이라 부르는 분을 찾습니다. 여기 있으십니까?”
생선 파는 젊은이? 그런 사람이 왜 의관으로 찾으러 오지?
양악은 영문을 몰라 했다.
“저예요. 내가 나가볼게요.”
양악이 의관 밖으로 나가자, 과연 햇빛을 가리는 흑색 조릿대 삿갓을 쓰고 오래된 무명 홑옷을 입은 젊은이가 보였다. 그는 옆에 생선 매대를 매달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당신이 양악 양 포쾌군요. 우리 소방주께서 내게 그쪽한테 말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가 급한 일이 있어 그쪽과 상의한다고 하시네요. 빨리 성의 서쪽 도화림으로 와서 보자셨어요.”
알고 보니 사소가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양악은 곤란해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일이 있어 가질 못해요. 내일 가면 안 될까요?”
그 젊은이는 유감스러워했다.
“저는 말을 전할 뿐, 다른 건 모릅니다. 제 생각으로는 소방주께서 분명 매우 급하셔서 서둘러 그쪽을 찾는 걸 겁니다. 그 도화림은 찾기 아주 쉬워요. 서성문西城门을 나가, 서남쪽으로 1리가 안 걸립니다.”
말을 마친 그는 양악의 대답에 상관없이 생선 매대를 들고 바로 가버렸다.
양악은 고민하며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금하를 바깥의 조용하고 외진 곳으로 불러 급하게 말했다.
“사소가 사람을 보내 말을 전해왔는데, 급한 일이 있으니 내게 성의 서쪽 도화림에서 만나재. 그런데 내가 지금 갈 수가 없어, 어쩌지?”
“사소가 널 찾아?”
금하는 먼저 왜구의 일을 떠올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아했다.
“사 오빠는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아?”
“어젯밤 내가 말했겠지.”
양악의 주량은 세지 않아, 술 마신 후의 일은 흐리멍덩했다.
“그가 날 왜 찾지? 게다가 그렇게 먼 도화림까지 가야 하잖아. 나는 여길 떠날 수가 없는데.”
금하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너 대신 갈게.”
“네가 간다고?”
양악은 주저했다.
“마침 나도 일이 있어서 오빠를 봐야 했어. 넌 마음 놓고 대장을 지키고 있어.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돌아와 알려줄게.”
“그래. 도화림은 서성문으로 나가서 서남쪽으로 1리를 못 가 있대. 길 조심하고. 일찍 갔다가 일찍 돌아와. 엉뚱한 다른 일은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