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그때 갑자기 뚱보 고양이 아호가 나타났다. 금하는 반갑다는 듯 웃었다.
“나 마침 너 생각하고 있었다?”
금하는 친숙하게 뚱보 고양이를 한쪽 팔로 들어 올려 품에 안고 체온을 나눴다.
“너한테 물어보자. 근처에 닭이 있니? 있어? 네가 잡아먹진 않았지?”
“냐옹, 냐옹…….”
비가 오동나무 잎을 때리는 투툭 소리가 계속 울렸다.
금하는 별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돌연 멍하니 굳었다.
이 시각, 불이 켜진 집은 아직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서북쪽의 창문으로 보이는 한 집은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곳 역시 작은 집이었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육역의 서안 위에서 보았던 지도가 떠올랐다.
……적란엽이 예전 살던 곳이 바로 여기, 이곳의 서북쪽이었어!
설마 이건…….
금하는 뚱보 고양이를 내려놓았다.
품속에서 황동으로 만들어진 눈 하나짜리 경통镜筒을 꺼내어 눈앞까지 들어 올렸다. 그리고 초점거리를 잘 맞췄다.
경통 너머로 그 작은 집의 창도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빼어나게 준수한 사람의 모습이 창가에 기대어 있었다. 그의 표정은 조금 짜증을 내는 듯했다.
문득 금하는 머리가 살짝 얼얼해졌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고, 괴로워 죽을 지경인 와중에도 금하는 굳이 또 육역의 손짓을 알아들었다.
오라고? 저기, 적란엽의 집으로?
왜?
금하는 순간 떠오른 생각으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말 그대로 상사 육 대인이니까.
* * *
급하게 나오느라, 금하는 우비나 우산을 전혀 챙기지 못했다. 그냥 겸사겸사 미인초美人蕉 잎을 꺾어 머리에 놓아 비를 가렸다.
이제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아호가 복도에서 야옹야옹거리며 계속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녀석을 보았다.
“나한테 먹을 게 없어.”
아호는 계속 울다가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바라보는 눈빛은 기대와 불만이 함께 담겼다.
“그래, 그래. 나랑 함께 가자.”
금하는 마음이 크게 약해져서는 되돌아가 녀석을 품에 안았다.
“좀 이따가 맛난 거 있으면 한 입 줄게.”
적란엽의 집으로 가는 건 가깝다 하면 가깝고, 멀다 하면 또 멀었다.
금하가 겨우 반쯤이나 갔을까.
이제 막 청석이 깔린 비 오는 골목을 돌아서는데, 맞은편에서 청죽青竹의 유포油布(*기름을 먹여 방수, 방습한 종이.) 우산 하나가 마주 오는 것을 보았다.
우산 아래의 사람은 몸이 늘씬했고, 용모가 준수하고 수려했다.
바로 육역이었다.
금하는 살짝 멍해져 멈칫하다가 급히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렸다.
“소관이 늦었습니다. 대인, 용서하십시오.”
서로의 두 눈이 상대를 응시했다.
실망, 혹은 안도 그리고 그도 자각하지 못한 더 깊은 어떤 감정, 육역의 눈빛에 서렸던 복잡한 것들이 한순간 투둑투둑 우산을 때리며 내리는 빗줄기에 씻기듯 사라졌다.
육역은 잠시 말이 없었다.
“……듣기론 어젯밤 칠분각에서 매우 유쾌하게 먹고 마시며, 술도 적잖이 마셨다지?”
과연 저 고경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금하는 그가 육역에게 이 일을 보고할 것을 예상했었다. 다행히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녀는 진즉 생각해두었다. 즉시 근심과 고뇌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인도 아실 거예요. 대장은 예전 오안방 방주에게 은혜를 베푸셨어요. 어제 저희가 적란엽이 새로 이사 간 곳을 알아보는데, 그 오안방 소방주가 매우 열정적으로 도와줬어요. 그러면서 저희에게 꼭 칠분각에서 대접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아버지가 분명 그의 철없음을 탓한다면서요.”
금하는 입가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숨을 훅 불어 날렸다.
“술과 안주를 끊임없이 권하니, 먹지 않으면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거였죠. 게다가 저와 대양은 그와 조금 더 친숙해질 것을 염두에 두었어요. 그럼 앞으로 대인을 대신해서 일 처리를 하기에도 편해질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판사판 필사적으로 먹고 마셨습니다. 대인은 못 보셨죠. 대양은 걸어 들어가, 누워 나왔습니다. 저는 주량이 대양보다 조금 낫지만, 지금까지도 머리가 정말 어질어질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너희는 나를 위해, 그 내키지 않는 일을 ‘마지못해’ 했다는 것인가?”
육역은 자못 인내심 있게 금하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사설을 다 들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감사라도 해야 하나?”
“별말씀을요. 소관은 대인의 근심을 나누기 위해서였을 뿐, 이 모든 것은 다 제 본분의 일입니다.”
금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대인, 소관의 일편단심 충심을 보셔서, 그 은자 두 냥은…….”
은자 두 냥 소리를 듣자마자, 육역은 돌아서 앞으로 걸어갔다.
“급하지 않다. 그 일은 나중에 다시 의논하지……. 넌 위층에서 단서를 얻었나?”
“소관은 주현이가 목매달아 죽을 때, 분명 적란엽을 매우 원망했을 거라고 봐요.”
“음?”
빗방울이 유포산을 두드렸다. 육역은 우산을 들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갔다.
“저도 추측일 뿐이나…….”
금하는 여전히 미인초 잎을 머리에 얹어 비를 막고 있었다. 뚱보 고양이는 온순하게 그녀의 어깨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만약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녀에게 자신이 죽는 참혹한 모습을 보게 하죠?”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금하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는 고의로 적란엽에게 자신이 목을 매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이건 대부호의 첩이 총애를 다툴 수가 없어, 대놓고 대청에서 목매달아 죽은 것과 상당히 비슷해요. 그런 일이 생기면 주인의 아내는 역겹다며 사람을 불러 굿을 해야 했죠.”
이 비유는 사실 어색하긴 했다. 별다른 반응 없이 육역은 침묵을 하다가 물었다.
“너는 주현이가 적란엽이 다른 이를 사랑하고 있기에 목을 매었다고 생각하나?”
“정확히 무슨 까닭인지는 말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이 몇 년간 사건 처리한 제 경험에 의하면, 전 그가 죽을 때, 분명 마음속에는 원망과 증오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희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이 목매다는 것을 밤새 보게 하는 건 정말 인정사정없는 일이예요.”
빗방울이 그녀가 머리에 이고 있는 미인초 잎을 때려 똑똑 울리는 소리가 매우 듣기 좋았다.
육역은 고개를 기울여 빗방울이 초엽을 따라 그녀의 옷소매 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금하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후, 적란엽은 저 집을 떠났어요. 이렇게 보면 그녀는 확실히 이 일에 대해서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는 거죠.”
금하는 고개를 들어 육역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옮긴 청죽의 유포산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마음에 감동이 일었다.
이 금의위 대인에게도 드디어 조금쯤 인간미가 생겼어!
“이 고양이는 물을 무서워해. 비에 젖어 매우 가련하군.”
육역이 담담하게 말했다. 뚱보 고양이는 매우 공감한다는 듯 육역을 애원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
금하는 고양이를 멋쩍게 품에 안았다. 그녀는 소매로 녀석의 꼬리 끝에 묻은 물방울을 닦아내고는 고양이를 그의 품에 안겨주었다. 억울함을 참지 못해 물었다.
“대인, 저는 정말 불쌍하지 않으세요?”
그는 그녀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우산은 여전히 그녀를 가리고 있었고, 그 자신의 옷 반쪽은 빗물에 흠뻑 젖어 들었다.
한 구역 끝까지 와서, 금하는 돌연 다른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대인, 아까 왜 제게 건물에 머물다가 닭이 3번 운 후에야 내려오라고 하셨어요?”
육역이 그 밤 적란엽이 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시험해보고자 했어도, 자신에게 하룻밤 꼬박 머물게 할 필요는 없었다.
“아…….”
육역이 고개를 기울여 잠시 생각했다.
“그건 이렇다. 지난번 너는 주현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했지. 나는 건물 위층이 좋지 못한 기운으로 가득할까 염려했고, 너는 온몸에 바르고 당당한 기운이 넘친다고 했으니, 네가 오래 머물러 바른 기운으로 누르면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
금하는 울고 싶었으나 눈물이 나질 않았다.
“대인 이건 절 놀리시는 거죠?”
“네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인가?”
육역이 미미하게 눈썹을 세웠다.
말문 막힌 금하가 정색하고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요. 소관은 대인이 하신 일은 저를 단련시키기 위함이라는 걸 완벽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가 그리 생각하는 것도 괜찮군.”
육역은 천천히 앞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