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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54)화 (54/224)

54화

금하는 고경이 그들을 본 순간, 이미 머릿속으로는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

고경이 이 일을 육역에게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 그리고 그녀는 육역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완벽한 계획이야.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흠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하다는 생각으로 만족스러웠고, 얼굴에는 가벼운 웃음기가 떠올랐다.

대개 고경 같은 관리들은 품계 없는 하급관리를 하찮게 생각했다. 고경도 들어와 그들과 인사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사소를 몇 번 훑어봤을 뿐, 그는 별다른 내색 없이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다른 쪽 별실로 갔다.

양악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금하가 먼저 안심시켰다.

“괜찮아. 육 대인 쪽에는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생각해 뒀어. 저 사람은 우리한테 이상한 점을 찾아낼 수 없을 거라고 내가 보장하지.”

사소는 금의위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봐, 빨리 음식 안 올려?”

그는 밖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점원에게 얼른 음식을 내오라며 재촉했다.

칠분각의 유명 요리 몇 가지는 확실히 명불허전이었다. 그중 양악이 얘기했던 춘순증육春笋蒸肉은 먹는 내내 금하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경성으로 돌아가면, 다시 이런 걸 먹을 복은 없겠지.”

금하는 그 생각을 하면,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워졌다.

양악은 평소와 달리 음식에 대한 흥미가 없었다. 고개를 숙여 우울하게 먹고, 마실 뿐 말도 거의 없었다.

바라보던 사소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탁자를 돌아와 그의 어깨를 연달아 두드렸다.

“사내가 어찌 여자 없을 걸 근심하냐. 고작 여자 하나 갖고, 뭘 이렇게까지 근심해?”

“오빠, 말하는 게 영 거북하네.”

금하가 매우 불만스럽게 미간을 찡그렸다.

“뭐가 고작 여자 하나야! 여자가 어때서? 어쩌면 이렇게 당신네 남자들은 깊은 정이며, 사모며, 근심할 가치가 없을까. 잘 생각해 봐. 오빠가 엄마가 없었으면 어떻게 태어났어? 상관 언니가 없으면 어떻게 밖에서 3년을 생각 없이 어슬렁거릴 수 있었겠어? 내가 없으면, ……에, 이건……, 헉, 이 엄청난 음식을 누가 다 먹으라고?”

사소는 말이 없었다.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가 말했다.

“계집애, 너 많이 마셨지?”

금하는 트림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분명하게 부인했다.

“무슨 소리야. 이 도련님은 태어난 후로 취해 본 적이 없어.”

“나한테 경고 안 해 줬다고 뭐라 하지 마라. 이 술이 마실 땐 좋은데, 뒤끝이 대단해.”

“상관없어……. 상관 언니는 어째서 아직도 오지 않지?”

금하가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았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 위로, 향선과 그림을 그려 아름답게 장식한 놀잇배인 화방画舫이 오고 갔다.

그중 화방 한 척이 멀지 않은 곳에 정박해 있었다.

얇은 휘장은 몇 겹이나 내려와 있었고, 고급스러운 모시로 만든 외출복 차림의 남자는 어렴풋이 보일 듯 말 듯 한 휘장 안에서 여자를 안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여자의 얼굴은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꽉 감은 채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고, 얼굴에는 고통과 슬픔의 감정이 다소 스민 듯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 기대어 있었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그저 선체를 따라 가볍게 흔들릴 뿐이었다.

人生自是有情痴,此恨不关风与月。

인생이란 당연히 정에 미친 이도 있겠지만, 오늘의 이 원망이 이 바람과 달과는 상관이 없네.

― 欧阳修구양수, <玉楼春옥루춘 중, (송사宋词)>

금하는 고개를 돌려 이제 막 술 한 잔을 다 마셔버린 양악을 바라보았다.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음?

포쾌의 본능이었다. 그녀는 여자를 감싸고 있는 남자의 팔이 조금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다친 건지도 몰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그때 바로 등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양악이 인사불성이 되어 탁자에서 굴러떨어진 것이었다.

* * *

가느다란 눈썹 같은 초승달이 하늘가에 비스듬히 걸렸다.

사소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양악을 등에 업고 돌판길을 걸었다.

내가 다음에는 이놈에게 술 주나 봐라.

그는 속으로 조용히 투덜거렸다.

금하는 설탕에 절인 과일 꾸러미 두 개를 들고 흔들흔들하며 그 뒤를 따라갔다.

대장은 내일 다리의 상처를 치료하셔야 해. 아마 한동안은 탕약이 계속 끊이지 않겠지.

입가심하시게 말린 과일 절임을 마침 잘 챙겼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원만하게 끝난 하루.

그런데 마음에는 어딘지 걸리는 것이 남아있었다. 마치 오늘 무슨 일을 다 끝내지 못한 것 같은…….

뭐야. 뭘 잊었지?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애써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머리만 어질어질하고 도대체 무얼 잊은 건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렇게 금하는 관역으로 돌아왔고, 양악을 잘 챙겼다. 사소와도 작별한 뒤, 그녀도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바로 침상에 올랐다.

잠이 들기 전, 그녀는 여전히 몽롱한 상태서 생각했다.

“이 술 좋다. 어머니 몰래 아버지께 두 단지 가져다드릴 수 있을까…….”

* * *

이 잠은 절대 편치가 않았다.

깊은 밤, 보슬보슬 내리는 빗소리는 이른 봄 추위를 머금고 창문 너머에서 스며들었다.

그녀는 몸을 뒤척이다가 순간 술이 확 깼다. 마침내 자신이 대체 무얼 잊고 있는지 생각해냈다.

망했다!

금하는 벌떡 일어나 겉옷을 걸치고 검정 장화를 신었다.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고, 비옷마저 챙길 틈도 없이 그녀는 곧장 주현이의 작은 집으로 뛰어갔다.

달은 어둡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금하는 익숙하게 담을 넘어 열쇠를 비틀어 땄다. 그렇게 허둥지둥 위층으로 올라갔다. 육역이 위층에 없고, 전혀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한숨을 돌렸다.

설마 그도 지시한 걸 잊었어?

밖에서 딱따기 소리가 들렸다. 벌써 오경五更(*지금의 오전 세시에서 다섯 시까지에 해당함.)이었다.

나무 그림자는 비바람에 출렁거리고, 빗소리는 차갑고 썰렁하여 이 작은 집이 유난히 처량하게 느껴졌다.

금하는 피곤함에 지쳐 하품하며 품속에서 부싯돌을 꺼내 등불을 켰다.

그녀는 육역이 당부하던 말을 곰곰이 떠올렸다.

─……불을 켜고, 다시 창문을 열어…….

그래서 그녀는 서북쪽의 창문 두 개를 열었다. 바람 섞인 빗줄기가 얼굴을 때려 목을 움츠리며 한쪽으로 피했다.

─……주현이가 목매달던 그 밤과 같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대들보를 바라봤다. 자못 난처해졌다.

내가 목을 매달 수는 없잖아.

“목숨은 중요하지…….”

그녀가 사방을 둘러보니 탁자 위에 난꽃 화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긴 천을 이용하여 화분을 다른 용도로 만들었다. 천으로 화분을 빙 돌려 감싸 묶은 후, 그 화분을 대들보에 매단 것이다.

─……그런 후, 넌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닭이 세 번 운 후, 그때 불을 불어 끄고 아래로 내려와…….

닭? 이 근처에 닭 키우는 집이 있나?

만약 닭울음을 못 들으면, 나는 이 집에 눌러앉아 새해를 맞아야 하나?

금하는 상당히 근심에 젖었다.

사소는 이 술 뒤끝이 매우 좋지 않고, 술 마신 다음 날 특히 속이 거북하다고 했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아 머리가 어지럽고, 갈증이 났다. 그러나 한 바퀴를 둘러 봐도 마실 물을 찾을 수 없었다.

“냐옹, 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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