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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52)화 (52/224)

52화

“아예.”

상관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서둘러 아예의 상태를 살폈다.

사소는 파르르 큰 화를 내고 있었다.

“곧 죽어도 본좌를 물고 늘어지려고!”

말을 하는 사이에도, 사소의 칼솜씨는 빠르고 날렵했다. 또 다른 왜구 하나를 깔끔하게 죽여버린 것이다.

죽음 직전에 용케 도망쳤던 왜구는 옆에서 온통 살려 달라 애원하고 있었다.

“대협, 대협, 여협……, 살려 주세요, 저는 저들과 한패가 아닙니다. 전 어쩔 수 없었어요. 강요당해서…….”

그는 뜻밖에 표준어를 쓰고 있었다. 말투도 오랫동안 경성에 산 금하보다 더 정확해서 모두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그 법석을 떨었는데, 너희는 가짜 동양인이었냐!”

사소는 칼끝으로 가볍게 한 번, 다시 또 한 번 그의 귀를 찍었다. 놀란 그 사람은 감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니요. 그들은 정말 동양인입니다. 저는 저들에게 잡혀 왔어요. 저들에게 내륙은 사람도 길도 모두 낯설어 저를 잡아 온 겁니다. 저는 조금의 무공도 할 줄 몰라요…….”

상관희는 아예의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자세히 살폈다. 그의 어깨에는 붉은 점 하나만 보일 뿐으로 가는 침은 피부를 뚫고 들어가 한참을 살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상처 부근의 피부가 검게 변하지 않아, 상관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직 괜찮아. 이 암기는 입속에 머금고 있던 것이라 독이 발리진 않았어.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자석으로 침을 빨아내야 해.”

“괜……, 괜찮습니다.”

그녀의 앞에서 맨살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지 않은 거다. 아예는 어색해져서 재빨리 옷을 끌어 올렸다. 통증 때문인지 모르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졌어요?”

금하가 그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의아해했다.

“정말 괜찮아요?”

아예는 화가 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요.”

사소의 칼끝이 가짜 동양인의 귓가를 몇 번 그었다. 다치지는 않았으나, 잘려 쏟아진 머리카락이 적지 않았다. 사소는 놈을 눈을 부릅뜨고 보다가 소리 질러 물었다.

“네 동양어가 이렇게 유창한데, 본좌를 속이려 해?”

“전 정말 아니에요…….”

잘린 머리카락이 어수선하게 날렸다. 다음 칼질은 머리통을 자르는 것이 아닐까.

가짜 왜구는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금하는 사소에게 먼저 손을 멈추라 하고, 반쯤 몸을 굽혔다. 왜구의 손바닥을 들어 몇 번 훑어보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성과 이름은? 어느 지방 사람? 동양어는 왜 이렇게 잘해?”

“소인은 성이 장张, 이름은 외자로 비非 자를 쓰고, 휘주徽州 사람입니다. 일찍이, 일찍이 바다에서 배를 타고 몇 년 돌아다녔고, 동양인과 장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쪽 말을 조금 할 줄 압니다.”

“아이고, 이 시절에 감히 바다에서 배를 타다니, 참으로 인물이십니다. 미처 인사를 못 했습니다!”

금하가 쯧쯧 혀를 찼다.

“누구 따라다니며 밥 먹고 살았는지 물어도 되나?”

장비가 말했다.

“그때는 젊어서 세상 물정을 잘 몰랐어요. 듣기론 바다에 나가면 돈을 빨리 번다 해서, 왕직汪直을 따라다니며 몇 년 일했습니다.”

왕직, 자는 오봉, 호는 오봉선장으로 휘주 흡현 웅촌 척림 사람이었다.

그는 바다에서 사람들과 일본 낭인들을 규합하여 밀수선단을 꾸렸다. 그들의 수는 대단히 많고, 갖춘 장비가 우수하였으며, 스스로 휘왕徽王이라 칭했다.

명나라에는 ‘편판부득하해片板不得下海’라 하여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이 있었다. 그러니 밀수선이 횡행했고, 왜구는 거듭하여 환란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강서와 절강의 바닷가 근처 백성은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금하는 계속 혀를 찼다.

“정말 실례했네. 알고 보니 당신이 그래도 왕 두목의 사람이었구나.”

옆에서 사소가 듣다가 더는 참지 못했다.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왕직의 사람이면 왜구 아냐? 본좌가 이놈한테 통쾌한 칼맛을 보여주겠어.”

“소인, 소인, 이미 잘못을 압니다. 그래서 개과천선하고자 선단을 떠났습니다.”

“선단을 떠나서 바로 동양인을 데리고 내륙으로 들어왔지. 너는 그들이 길을 모른다는 걸 알고, 특별히 길 안내를 했잖아.”

사소는 손을 높이 들어 시원하게 그를 한 대 쳤다.

“전 어쩔 수 없었어요. 강요당해서…….”

바로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물소리가 들렸다. 동양인의 말소리도 섞였다.

상관희가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었다.

“적어도 배 7, 8척이야. 넷째야, 이건 지금 우리가 주제넘게 나서는 거야.”

사소는 비록 몹시 분개했지만, 지금 배 위에는 부상자도 있어 확실히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그는 발을 들어 두 구의 시신을 물속으로 차 넣었다.

* * *

아예는 비록 다쳤어도 노를 저으려 했다.

그러나 순간 어깨에서 통증이 오고, 몸의 반쪽이 마비되어, 그는 거의 쓰러질 뻔하였다.

금하가 급히 그를 부축했고 상관희가 뒤를 이어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예를 바라봤다.

장비라고 이름을 밝힌 왜구는 그들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뱃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뒤이어 ‘풍덩’하는 소리가 났고, 배 주변으로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그는 이미 물속으로 뛰어든 후였다. 사소의 반응이 빨라 팔을 뻗어 잡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늦었다.

“저 쌍놈의 새끼! 본좌는 진즉 저놈이 좋은 자식이 아닌 걸 알고 있었어! 애초에 확 다 베어버리는 건데.”

사소는 분노했다.

상관희는 배를 매우 빨리 저었다. 갈댓잎이 파파팍 사람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 그리고 그들은 한참의 시간이 걸려 먼저 배를 탔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상관희는 우선 아예를 부축해 뭍으로 내려놨고, 또 급히 의원을 청하러 사람을 보냈다. 그녀의 안색은 시종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이 왜구들은 인원이 매우 많았다. 게다가 행방은 종잡을 수 없고 거처도 정확하지 않았다. 금하는 서둘러 관아에 알리고 병마를 소집하여, 그들에 대한 토벌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사소가 막았다.

“이미 우리 형제가 관아에 통보했어.”

“나는 관차야. 이 일은 그래도 내가 직접 가는 게 마땅해.”

“넌 밖에서 온 외지인이야. 지명, 방위조차 제대로 말 못 하는데, 간다고 무슨 소용이 있냐.”

사소가 그녀를 무시하며 말했다.

“게다가, 네가 삼품三品의 고관이었다면, 말도 안 해. 넌 품계로 끼지도 못하잖아. 간다고 누가 네 말을 들어. 네가 내 말을 듣는 것이 나아. 우리 방은 관청과 관계가 아직 괜찮은 편이야. 매우 잘 아는 인사가 몇 있어. 달마다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어울리고 있지. 그들에게 통보가 갔으니, 네 말보다는 많이 유용할 거다.”

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금하도 지위가 낮으면 그 의견까지 무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강남에 온 것은 주현이의 사건조사를 위함이었다.

왜구의 일에 끼어들면, 쓸데없이 참견하기 좋아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알았어. 오빠 말, 인정.”

그녀는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안으로 아예의 병세를 보러 들어갔다.

의원이 온 후, 그가 자석을 이용했어도 아예 어깨의 가는 침은 뽑아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예리한 칼로 피부를 째서 가는 침을 꺼내야 했다.

아예는 상처를 치료할 때, 한 마디도 소리 내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상관희가 그의 상처를 직접 매주려 할 때는 놀라 벌떡 일어섰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계속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이럴 수 없습니다…….”

상관희는 미간을 찌푸렸고, 옆에 있던 사소가 직접 면 끈으로 상처를 묶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소를 보고도 끝내 무슨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옷을 한 벌 가지고 와 금하에게 갈아입으라고 주었다.

“고마워요, 상관 언니.”

금하는 상관희에게 웃어 보이고, 옷을 갈아입었다.

의원이 틈이 나기를 기다려,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왜구의 암기를 꺼냈다.

“의원님, 이것 좀 봐주세요. 이 위에 발린 게 어떤 독인가요?”

그 의원은 외상과 타박상에는 능하지만, 독에 대해서는 익숙지 않았다. 그래도 암기를 가지고 옆으로 가서 은침으로 탐색하고 시험해보았다.

이쪽의 사소는 벌써 아예의 상처를 다 싸서 묶었다. 아예는 입술을 꽉 다물고, 소방주에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옷을 걸치고 일어나 곧장 방을 나섰다.

“이 며칠 너는 우선 쉬어라. 잘 요양하고 있어.”

상관희가 아예에게 말했다.

어깨를 하도 단단하게 묶어놓아서 손도 들 수가 없었다. 아예는 한사코 호기를 부리려고 했다.

“쉴 필요 없습니다. 상처도 작고, 별일 아닙니다.”

사소가 밖으로 나와 끼어들었다.

“쉬라면, 좀 쉬어. 상처가 잘 아물어야지. 내가 형제들에게 너한테 좋은 술과 음식을 갖다 주라 했어. 넌 치료만 신경 쓰면 돼.”

상관희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사소를 힐끗 보았다.

“부상 입은 몸인데, 술을 준다고?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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