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아예는 이쪽 수역이 매우 익숙해 전혀 거리낌도 없이 배를 요리조리 꺾었다. 마치 물고기처럼 가볍고 날렵했다.
“천천히 해! 너무 빨라서 뒷놈들이 못 쫓아오면, 그땐 본좌가 널 손볼 거다.”
사소가 아예에게 소리를 질렀다.
상관희는 그쪽은 신경 쓰지 않고, 귀를 기울여 잠시 물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은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맴돌고 있어.”
왜구가 비록 물에 익숙하다지만, 이곳은 환경도 물도 낯선 곳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대로 갈대숲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저 개자식들, 다시 돌아가!”
사소가 분노에 차 말했다.
“넷째야…….”
상관희가 그를 바라봤다.
“저 동양인들이 대체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아직 잘 몰라. 우리는 경솔하게 손대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해.”
사소는 상관희가 왜 이렇게 몸을 움츠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어디가 혼자서 동가의 수채를 뒤흔든 여중호걸女中豪杰 같은가.
사소가 화가 나 말했다.
“방의 형제가 죽고 상한 게 몇인데, 뭐라고? 그들을 개죽음당한 걸로 하라는 거야?”
상관희는 그를 바라볼 뿐, 미간을 찡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소는 그녀를 한참 뚫어지게 보고는 초조하게 이마를 힘줘서 문질렀다.
“누나, 나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누나가 기어코 내게 돌아와 이런 시시껄렁한 소방주를 맡아야 한다고 했잖아. 그래, 좋아! 지금 내가 맡았는데, 나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어! 하다못해 노 젓는 놈 하나도 나는 부릴 수가 없다고!”
그의 손가락이 아예를 향했다.
“방 내부의 사무는 내가 간섭할 수 없고, 통쾌하게 한 판 싸우겠다는 것도 안 돼, 죽은 형제들 대신 울분 터트리는 것도 안 돼. 누나가 나가서 아무 그림이나 하나 사서 걸어놓는 게 허수아비인 나보다 낫겠다. 말해 봐, 대체 내가 돌아와 뭘 하길 바란 거야!”
그가 상관희를 향해 분노해 소리쳤다.
상관희의 입술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여전히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게 천천히 방의 일을 파악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이해할 거라 여겼어.”
“난 이해 못 해!”
사소는 단단히 화가 치밀어 그녀의 말을 일축해버렸다.
“조심해!”
눈 깜짝할 사이에, 금하는 사소를 덮쳤다.
암기 하나가 두 사람의 정수리 피부를 비스듬히 스쳤다. 그것은 갑판에 박혔는데, 여차했더라면 사소의 머리통에 쟁기질한 것처럼 도랑을 낼 뻔했다.
사람들이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이 연이어 다시 두 발이 좌우 다른 방향으로 발사됐다.
한 발은 아예가 젓는 노에 박혔고, 다른 한 발은 상관희의 옷소매를 찢었다. 다행히 갈대로 막혀 있기에, 암기의 정확성은 떨어졌고 상관희도 몸을 다치지는 않았다.
금하는 여전히 사소를 위에서 짓눌러, 그를 꼼짝 못 하게 했다. 그러다 한 손을 뱃전 밖으로 뻗어 살살 물을 저었다. 아예와는 호흡을 맞춰 배를 옆쪽으로 미끄러뜨렸다.
사소는 그를 계속 찍어 누르는 금하를 바라봤다. 몸이 불편해 움찔거렸고, 어조는 꽤 떨떠름해졌다.
“고맙다. 본좌가 한 번 빚졌어.”
“쉿…….”
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 눈빛은 여전히 갈대 틈 사이를 긴장을 놓지 못한 채 탐색하고 있었다.
“……너, 우선 내 몸에서 내려갈 수 없냐?”
사소는 곤혹스러워했다.
상관희가 두 사람을 흘끔 보고는 바로 옆으로 고개 돌려 외면했다.
“아.”
금하는 옆으로 굴러 내려왔고, 아예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들 뒤로 돌아갈 수 있어요?”
아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의견을 구하는 듯 상관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소방주의 지시를 들어.”
사소는 반쯤 몸을 받치고 일어나 상관희를 흘끔 보았다. 그런 후, 아예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저 자식들 뒤로 돌아가!”
아예는 무표정하게 노를 저었다.
그 옆의 금하는 품속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냈다. 그들이 날린 암기를 갑판에서 조심스럽게 뽑아내어 손수건으로 싸 품속에 넣었다.
아예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작은 배는 갈대밭을 한바탕 뚫고 나가 얼마 지나지 않아 멈췄다. 그리고 그들에게 왼편 앞쪽을 보라고 지시했다.
금하는 조용히 갈대를 젖히고, 그 배를 바라봤다.
동양인은 가끔 갈대밭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아마도 갈대숲 안에 있는 것이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보통의 어부라고 생각했는지, 지금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쳐들고 물속의 고기를 찾는 중이다.
그때, 맹렬한 바람이 금하의 귓가를 스쳤다. 놀랍게도 사소가 선실 안의 작살을 발로 끄집어내 힘껏 밖으로 던진 것이다.
작살은 중앙의 왜구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아마도 거센 바람을 느꼈는지, 왜구는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작살은 그의 귀를 뚫고, 갈대숲으로 날아갔다.
좌측의 왜구가 그들을 발견하고, 손목을 살짝 흔들었다. 두 발의 암기가 소매 속에서 세차게 발사되어 나왔다.
동시에 상관희의 쌍도가 칼집에서 나왔다. 맑고 낭랑한 ‘땅! 땅!’ 두 번의 소리가 들렸을 뿐인데, 암기는 그녀의 쌍도에 맞고 날아갔다.
중간에 있던 왜구는 오른쪽 귀에서 선혈이 줄줄 흘렀다.
그가 한 손으로 귀를 막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른 한 손으로는 이미 장도를 뽑았다. 그는 눈부신 칼날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배를 젓는 왜구에게 크게 소리쳤다. 배로 가까이 다가가라는 의미였다.
사소는 무기를 가져오지 않았고, 주변에 집을만한 것들이 없었다. 그는 몸을 숙여 선실 안을 살피고, 맑은 물을 담아 두는 나무통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고는 온 힘을 다해 던졌다. 꽥꽥 소리 지르던 왜구를 내리찧었다.
왜구는 칼을 들어 막았다. 나무통이 갈라지고, 물이 콸콸 정면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순간 더욱 화를 참지 못했다.
이때 두 배 사이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사소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는 또 급한 성격이었다.
사소는 장신을 훌쩍 솟구쳐 왜구의 배로 직접 뛰어올랐다. 상관희는 그가 혼자 몸으로 불리할까 걱정하여, 바로 그 뒤를 이어 민첩하게 배 위로 뛰어올랐다.
그 배는 원래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작은 배였다.
선체는 협소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이를 태우니 발 디딜 틈도 없이 좁았다. 서로 왔다 갔다 싸움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왜구가 긴 칼을 뽑아 휘두르려면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당장 이렇게 비좁으니 칼은 절반도 휘두르지 못했고, 오히려 사소에게 복부를 거듭 강타당했다. 놈은 아파하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사소는 칼을 쥔 그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눌러놓고, 무릎으로 연달아 강타했다. 왜구는 칼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맞아서 녹초가 되었다.
옆에 있던 상관희도 암기를 쓴 왜구를 제압하고, 그를 선실 바닥에 내리눌렀다.
배를 젓던 왜구는 이 상황을 보더니, 단숨에 동료를 버렸다. 그리고는 바로 몸을 돌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소가 손 내밀어 잡으려 했으나 조금 늦었다. 그는 눈을 빤히 뜨고 왜구가 입수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제기랄! 미꾸라지 같은 놈!”
사소는 호되게 욕을 내뱉었다. 한 발로 왜구의 몸을 밟고 서서 긴 칼을 집어 작살처럼 물속으로 내던지려 했다.
그가 막 긴 칼에서 손을 떼려 했을 때였다.
수면 위로 파팍 물보라가 일고, 두 개의 머리가 솟구쳤다. 바로 금하와 물속으로 도망친 그 왜구였다.
금하가 언제 물속으로 뛰어들었는지, 또 물속에서 어떻게 왜구를 제압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왜구는 조금의 반격할 힘도 없이 축 늘어져 그녀에게 순순히 끌려오고 있었다.
더는 칼을 던질 필요도 없었다. 사소는 손에 있던 긴 칼을 간판 위에 박았다.
“악!”
사소는 암기를 쏜 왜구의 손을 뼛속까지 확실히 뚫어 갑판에 함께 박았다. 왜구는 아픔으로 통렬하게 울부짖었다.
사소는 본체만체하며 금하에게 턱을 치켜들고 물었다.
“넌 언제 물속에 뛰어들었냐?”
금하는 아직 물 위에 떠 있어서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왜구를 배 위로 힘껏 밀어 올리며 아예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빨리 이놈 끌어 올려요. 보기는 삐쩍 말랐는데, 무겁기가 쇳덩이 추 같아.”
이때 두 배는 이미 가까이 붙었다.
아예는 왜구를 위로 끌어올렸고, 그에게 배 바닥에 엎드려 물을 토하게 했다. 금하는 뒤를 이어서 온통 젖은 채 배 위로 기어올랐다.
“나는 이 동양인들이 그래도 대단한 게 좀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하는 것들이었네.”
사소가 긴 칼을 뽑아 들었다. 왜구를 힘껏 차 뒤집었다.
“너희를 방 형제들과 순장시켜주지. 많이 봐 준 거야!”
그가 말을 하는 사이, 긴 칼은 왜구의 명치를 향해 내리꽂혔다.
“오빠 안 돼!”
금하게 급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포쾌였고, 지금껏 민간에서 자행해 온 사형은 반대해왔다.
그때 상관희가 퍼뜩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넷째야, 조심해!”
그 왜구는 이제 곧 사소의 칼에 죽을 찰나였다.
그 순간, 눈빛이 기이해지고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그 입안에서 한줄기 은광이 빠르게 발사되어 곧장 사소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 상관희가 사소를 밀었다. 동시에 아예는 상관희를 덮쳤다.
사소의 긴 칼은 왜구의 명치에 박혔고, 그는 숨이 끊어져 죽었다. 그리고 그가 쏜 가는 침은 아예의 어깨로 파고들었다.
아예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이마의 파란 핏줄이 파닥파닥 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