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46)화 (46/224)

46화

육역은 장포를 걷어 올리고 자리에 앉아, 모두가 들어온 것을 보고 말했다.

“전부 말해봐라. 저 적 낭자의 신변에서 어떤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지?”

고경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루선에 있던 것은 차 반 잔 마실 정도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심문도 하지 않았고, 여기저기 살피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실 무슨 실마리가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육역은 적란엽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

고경이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대인, 용서하십시오. 소관은 미처 발견 못 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보아, 그 적 낭자는 운하 수리자금 건에 대해서는 거의 사정을 모르는 듯합니다.”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금하와 양악을 향했다.

“너희는?”

양악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는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금하는 좋은 뜻으로 그에게 상기시켰다.

“대인께서 적 낭자와 함께 반 시진을 머무르셨죠. 단서라면, 대인이 저희보다 더 많이 아실 겁니다.”

“그래서…….”

육역이 눈썹을 세웠다.

“넌 지금 내가 너희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건가?”

“……소관이 그럴 리가요.”

육역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인내심은 한계가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던 금하는 뜸을 들이며 말을 시작했다.

“단서는 많지 않습니다. 적 낭자는 옛정을 상당히 잊지 않고 있고, 계집종에게도 매우 잘 대해준다는 정도를 겨우 알 수 있었지요.”

금하는 숨을 쉬느라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낭자가 사는 곳은 나루터에서 매우 가까워요. 분명 호숫가에 붙어있을 겁니다. 최근에 그녀는 비를 맞으며 몰래 빠져나가 감기에 든 적이 있죠. 그리고, 소관이 외람되이 직언하자면, 적 낭자는 대부분의 행동에 눈치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고관대작에게는 자신의 본심을 거스르고, 남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대인께도 분명 다른 의도하는 바가 있을 겁니다.”

육역은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히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녀의 양가는 돈이 아쉽지 않아요. 그런데 그녀가 병중임에도 호숫가에서 뱃놀이하라고 했죠. 대인께 다른 의도가 있지 않다면, 그럼 또 무엇일까요?”

금하가 그에게 반문했다.

고경은 흥 콧소리를 냈다.

“우연히 감기에 걸린 것에 불과해. 무슨 큰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

금하가 그를 흘끔 보았다.

“우연히 감기에 걸린 것은 보통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러나 그녀는 선천적으로 심맥心脉에 손상이 있어요. 이 감기는 그녀 처지에서는 엄청난 생고생을 하는 겁니다.”

“그 낭자가 선천적으로 심맥에 손상이 있어? 너는 어떻게 알아?”

고경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매번 기침할 때마다 모두 심맥에 영향을 미쳐요. 일반적인 감기의 기침과는 다르죠. 설마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럼 그녀가 사는 곳이 나루터에서 매우 가깝다는 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고경이 또 물었다.

“……저는 정말 대인이 부러워요. 머리는 생각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그냥 고문만 할 줄 알면 되잖아요.”

금하는 몇 마디 투덜거리고 나서 이어 설명했다.

“적 낭자의 신발과 버선은 매우 깨끗해요. 그러나 그 계집종의 신발 위에는 진흙 얼룩이 묻었어요. 그건 그들이 배를 타기 전 가마를 타서 그렇죠. 만약 거리가 멀었다면, 그들은 마차를 탔을 거예요.”

금하는 듣고 있냐는 듯 사람들과 시선을 맞추고 신중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했다. 육역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세상 무엇도 원금하를 떨게 하진 못한다. 하지만, 주시하는 그의 시선만은 아무리 그녀라 해도 긴장하게 했다. 은근히.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킨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또, 적 낭자의 신발 위쪽에는 대여섯 개의 긁힌 자국이 있어요. 분명 계집종이 많은 진흙 얼룩을 없앨 때 세심하게 하지 않아 그런 거예요. 적 낭자 같은 아리땁고 연약한 아가씨에게 이렇게 많은 진흙은 비 오는 날 외출해야만 묻을 수 있어요. 그것도 그녀가 가마나 마차에 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몰래 외출했다고 한 거예요.”

고경은 한참이나 멍해 있다가 겨우 말했다.

“……그녀를 데려오려면, 은자 천오백 냥을 써야 하잖아. 이건 분명 양가가 그녀를 이용해 은자를 챙기려는 건데, 넌 어떻게 양가가 돈이 아쉽지 않다고 말해?”

금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오빠, 루선 위의 그 붉은 사향 주렴만 해도 은자 이천 냥이 넘어가요. 그녀가 뜯던 그 금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고경은 말을 하지 못하고,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육역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가볍게 몇 번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넌 그녀가 내게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나?”

금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양가는 지부의 막내 처남으로 양주 지방에서 그는 충분히 평안하고 한가하게 살아왔을 겁니다. 대인께선 경성에서 오셨고, 또 좋은 집안 출신이시죠. 아마도 그는 경성으로 갈 연줄을 찾고 있을지 몰라요.”

육역이 고경을 바라봤다.

“이 막내 처남을 조사해 보게. 그가 언제 적 낭자를 입양했는지, 적 낭자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그녀가 어떤 사람들을 접촉했는지, 그리고 그의 명의로 된 재산까지 모두 확실히 알아내.”

“알겠습니다.”

* * *

배는 천천히 돌아오는 중이었고, 양악은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금하는 옆에서 수시로 그에게 장난을 치고 말을 해보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끝내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열 마디를 하면, 그는 기껏해야 ‘응응’ 두 마디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 배가 곧 기슭에 닿으려 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대장이 너 이런 모습을 보시면, 분명 의심하실 거야. 뭐가 어쨌든 기운 내는 척이라도 해.”

양악은 그 말을 듣고, 손으로 얼굴을 세게 문질렀다. 힘이 워낙 세서, 원래부터 거칠던 피부는 온통 빨개졌다.

“생각 안 해. 생각한다고 또 무슨 소용이냐!”

그의 어조는 매서웠다.

말로는 비록 생각 안 한다고 했으나, 미간은 여전히 쇳덩이같이 무섭게 굳어 그의 말이 마음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냈다.

금하는 솔직한 말로 하기 어려워 그에게 그저 동조할 뿐이었다.

“맞아, 맞아. 제대로 된 정상적인 일을 생각해 보자. 우리 이따가 뭐 먹을까? 대장은 이틀 뒤 대대적으로 치료를 받으셔야 하니까, 먼저 보양시켜드려야겠지? 나한텐 은자가 좀 적지만 우리 성 밖 숲에 가면 야생닭이나 야생오리 같은 걸 잡을 수 있어. 운이 좋으면, 어쩌면 야생토끼를 잡을지도 몰라…….”

배는 서서히 기슭에 닿았다.

육역도 더는 다른 분부를 하지 않아 일행은 바로 관참으로 돌아갔다.

양악은 양정만에게 배에서의 일을 보고했다. 하지만 양정만이 어떤 사람인가. 양악이 ‘적 낭자’의 세 글자를 말할 때마다 부주의하게 이상한 모습을 내보이는데, 어찌 그의 눈을 속일 수 있겠는가.

“네 이 정신 나간 모습이 설마 그 여자 때문이냐?”

그가 양악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

양악은 정신이 멍해졌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빨리 간파당할 줄은 생각지 못해 한순간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금하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대장은 못 보셨잖아요. 그 적 낭자가 생긴 게 정말 정말 예쁘거든요. 대양도 그냥 몇 번 더 봤을 뿐이에요. 육 대인 그분은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말 몇 마디 하지도 않고, 바로 그녀의 손을 만지고, 그야말로 색마예요!”

“하아야…….”

양정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예요, 대장도 그가 위엄있고 엄숙하게 꾸민 낮의 모습만 보지 마세요. 상관 언니를 만나면서는 문을 닫고 얘기했어요. 향 반 개 탔을 만큼 얘기했나, 우리가 안쪽 동정을 듣고, 뭔가 이상해서 들어가자마자! 대장, 어땠는지 아세요? 그의 손이 상관 언니 허리에 가 있었어요! 분명 색정광이에요.”

그녀는 안에서 열변을 토해내고 있느라, 창밖에 때마침 육역이 서 있는 것은 몰랐다.

육역은 원래 어떤 일이 있어 지시를 내리러 왔었다. 예기치 않은 이런 얘긴 듣고 싶지 않았다.

육역은 바로 외면하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안에 씁쓸함이 퍼졌다. 양주로 내려오며,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경우가 더 있던 것을 그는 기억한다. 예기치 않게 그가 듣고 싶지 않은 것, 상대의 속마음을 듣게 되는 그런 상황.

육역은 그녀를 훈계하러 들어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돌아서 가버렸다.

금하는 밖에서 발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아마 관역의 잡부일 거로 생각하고, 더는 생각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