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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45)화 (45/224)

45화

“저도 대인을 속일 필요가 없군요. 양부께서는 저를 다년간 가르쳐 키우셨고 규율을 정하셨으니, 은자 천오백 냥의 예물을 준비해야 저를 출가시키실 수 있다 하셨습니다. 이 은자 천오백 냥이 물론 적지는 않습니다. 허나, 십만 냥 운하 수리자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많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녀가 약한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릴게요. 주 대인께서 진정 저에 대한 애모를 버리기 어려우셨으면, 은자 천오백 냥을 가져와 저를 맞이하시면 되셨습니다. 어찌 전혀 필요도 없는 그 십만 냥짜리 은덩이를 탐하시려 했을까요?”

이 말을 끝낸 그녀는 얼굴이 희미하게 달아올랐다. 비단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는 고개를 돌려 한바탕 기침을 해댔다. 치민 화가 가볍지 않음이 분명했다.

얼굴 둥근 계집종이 황급히 찻물과 헹굼 그릇을 받쳐 들었다.

또 손수건을 들고 오는 등 바쁘게 돌아다녔다.

금하는 계집종을 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주인이 기침 몇 번 했을 뿐인데,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니. 계집종 노릇도 정말 쉽지 않구나.

양악은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버드나무 같은 적란엽의 몸을 보고는 따라서 기침을 하며 가볍게 떨었다.

몹시 마음이 짠해졌다. 한순간 자신이 어떤 신분인지 잊고,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아가씨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

육역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 눈썹을 치켜세우고 양악을 보며 거듭 헛기침을 해댔다.

양악은 어리둥절하다가 이때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이 지금은 하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한 말이 매우 주제넘은 것도 깨달았다.

급하게 말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때서야 육역이 말을 했다.

“낭자의 말이 지극히 옳습니다. 제가 경솔했군요. 이번 양주에 온 것은 이 사건 처리를 위함인데, 며칠 단서 없이 헤매어 매우 고민이 깊습니다. 오늘 배를 띄운 것은 원래 기분전환을 하기 위함이었건만, 뜻밖에 낭자의 노여움을 샀군요. 제 쪽에서 낭자께 사죄를 드립니다.”

그는 말을 하는 한편 일어나 적란엽에게 공수하며 허리를 굽혔다.

“대인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복이 박한데, 어찌 감당할 수 있겠어요.”

적란엽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말을 하는 사이, 그녀의 손은 이미 육역의 두 손을 가볍게 받쳐 들었다.

손이 닿은 곳은 따뜻하고 매끄러우며 보드라웠다.

육역은 살짝 멈칫해서는 고개 숙여 내려다보았다……. 적란엽은 자신의 이 행동이 적당치 않다는 것을 깨달아 볼에 홍조를 띠었다. 급하게 손을 거두려 했으나, 이번에는 오히려 그에게 손을 단단하게 잡혔다.

“낭자 날 용서하시겠습니까?”

육역은 손을 놓지 않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풍류 달인이시군.’

고경이 속으로 탄복했다.

‘색마!’

금하가 속으로 손가락질했다.

‘금수!!!’

양악이 속으로 분노했다.

적란엽이 가볍게 벗어나려 했다.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띠고 작디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대인의 말씀이 과분하십니다……. 보는 이가 있습니다. 대인 얼른 놓아주시어요.”

육역은 이때서야 그녀의 손을 놓고,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

“너희는 모두 나가고, 배로 돌아가 기다려라.”

역시 색마가 본색을 드러냈다. 미색이 눈앞에 다가오니, 다른 것들은 모두 하늘 끝 저 멀리 던지고 까맣게 잊었다. 그는 아마도 이번 여정이 원래 사건 조사를 위함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금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런 종류의 애정행각은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양악을 잡아끌고 배로 돌아왔다.

* * *

바깥의 비는 이제 점차 그쳐가고 있었다.

그녀는 객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닥치는 대로 차를 따랐다.

탁자 위의 장미 구움과자 접시를 흘끔 보고는 그것도 손이 닿는 대로 집어 먹었다.

고경이 발을 걷고 들어왔다. 그녀가 신나게 먹는 것을 보고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결국은 참지 못했다.

“네가 어떻게 이걸 먹냐?”

“배고파요.”

금하가 당연한 소리라는 듯 말했다.

“이건 육 대인 전용이야.”

금하는 한 손으로 구움과자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구움과자의 부스러기를 받았다. 루선 방향을 향해 화가 나 입술을 삐죽거렸고, 무시하는 말투로 말했다.

“됐다고요. 적 낭자의 생김이 저리도 탐스러울 만큼 아름답고, 육 대인은 미인이 품에 있는데, 어디 이런 걸 드시고 싶겠어요. 내가 안 먹으면 완전 낭비예요. 대인도 한 조각 드실래요?”

고경은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금하는 더는 그를 상관치 않았다. 밖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대양, 대양!”

두어 번을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

방금 분명 양악과 함께 배로 돌아왔는데, 왜 그는 들어오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나?

입가의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낸 그녀는 의혹에 가득 차서 일어나 발을 걷고 나갔다.

양악은 점토나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뱃전에 앉아 있었다.

입고 있는 옷자락이 호수 바람에 날려 쏴쏴 소리를 냈다.

“대양, 너 왜 그래?”

그녀는 몸을 숙이고,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양악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호수를 바라봤다.

이때, 루선에서 금소리가 들려왔다.

양악은 무언가에 맹렬히 얻어맞은 것처럼, 재빨리 고개를 들어 루선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을 곰곰이 살피던 금하는 잠시 후, 홀연히 모든 것을 깨달았다.

“대양, 너 적 낭자한테 반한 건 아니지?”

양악은 매우 근심과 고뇌에 차 그녀를 한 번 보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간이 쇳덩이를 매단 것처럼 단단히 일그러졌다.

“정말 그녀한테 반했구나!”

금하는 매우 동정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걱정했다.

“……너, 이일은 좀 난처하겠다.”

이 일이 또 난처한 것으로 그치겠나, 그야말로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

적란엽이 양악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안 하는지는 다른 얘기였고 그녀를 아내로 얻고 싶으면, 최저 은자 천오백 냥은 필요했다.

설령 하늘에서 은자가 떨어진다 해도 또 양정만이 있었다.

그는 결코 양악이 양주 수마를 집으로 들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넌 온유한 현모양처에 일도 할 수 있는 이를 찾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어?”

금하는 차라리 구움과자를 접시째 들고 나왔다. 또 삿갓을 가져와 그의 머리에 씌웠고, 그 옆에 앉아 한담을 나눴다.

“낭자를 어떻게 보면, 혼까지 다 나가니?”

그가 길고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

“뭐를, 뭐가…….”

금하는 그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원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거야. 그녀를 보기 전에는 내가 원하던 그 사람은 반드시 이런 모습에 이런 성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녀를 보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예전에 했던 모든 생각이 전부 우스워. 어떤 모습, 어떤 성격이든,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였어.”

그녀는 들어도 아리송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았다.

양악이 적란엽을 본 것은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불과했건만, 그는 철저하게 그녀에게 혼이 나갔고 푹 빠졌다.

루선의 금 소리는 한차례 울리다가 다시 한차례 조용해졌다.

금소리가 들릴 때 양악은 근심 고뇌했고, 금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그는 더욱 근심 고뇌했다. 금하는 옆에서 그를 매우 동정하며 바라보았다.

반 시진이 거의 지나 비는 조금씩 그쳤다. 그리고 육역은 그제야 루선에서 돌아왔다.

그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금하가 쟁반에 있던 구움과자를 거의 다 먹은 것을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을 모두 선실로 불렀을 뿐이었다.

두 배는 조금씩 멀어졌다.

양악은 아쉬움 속에서 루선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고서야 천천히 선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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