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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44)화 (44/224)

44화

그녀는 껑충껑충 뛰어 선실로 들어갔다. 이미 이전의 당혹스러웠던 일은 모두 잊고는 육역에게 보고했다.

“대인, 이 적 낭자가 정말 보통사람은 아니네요. 그녀는 금으로 벗을 사귀고자 한대요……. 대인이 얼른 한 곡조 뜯어서 들려주시죠.”

그녀는 말하는 한편, 재빨리 움직여 옆에 있던 금을 옮겨와 그의 눈앞에 놓았다.

전부터 육역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악기를 익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금하는 아마도 그가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가 웃음거리가 된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나이가 어렸고, 여전히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그녀의 이런 마음과 감정은 모두 얼굴에 쓰여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사람을 속일 수 있을까.

육역은 그녀를 힐끔 보았다.

그녀가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보고 이미 알아차렸을 뿐, 그녀의 속을 캐묻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 숙여 금을 바라보았으나 한참이 지나도 손을 움직여 금을 뜯지 않았다.

* * *

“육 대인, 적 낭자가 정말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금하가 삿갓을 벗어 옆에 두고는 그를 일깨웠다.

육역은 고개를 들었을 뿐 금을 뜯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깥의 고경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가서 적 낭자에게 전하라. 나는 이미 한 곡의 연주를 끝냈다.”

“…….”

분명 아무런 금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미 곡을 끝냈다고 말하지?

고경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도 잘 이해가 되질 않아 이상하게 여기며 선실로 들어왔다.

“가보게. 연주가 이미 끝났다고 하고, 적 낭자의 감상평을 청한다고 말하게.”

육역이 다시 말했다.

고경은 그 저의를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명령을 따라 나갔다.

“적 낭자가 귀머거리는 아니잖아요.”

금하는 영문을 몰라 육역을 바라봤다.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래도 돼요?”

육역은 팔꿈치로 버텨 머리를 받치고는 여유롭게 말했다.

“되고, 안 되고는 기다려 보면 알겠지.”

잠시 후, 계집종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인께 배를 잠시 옮겨 타 움직이실 것을 청합니다.”

“그 여자 정말 귀머거리예요?”

금하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육역은 그녀를 흘끔 보더니 고개를 젓고 탄식했다.

“육선문에서 헛되이 2년을 굴렀으니, 아직도 꼬맹이 병아리지. 넌 어째 생각을 못 해? 지금 과연 그녀가 나를 더 보고 싶어 하겠나, 아니면, 내가 더 그녀를 보고 싶어 하겠나?”

“…….”

금하는 말대꾸를 하려 했지만, 바로 육역의 분부가 들렸다.

“조금 후 배에 타거라. 시녀로 분장한 너는 시녀의 행동을 하되, 서투르게 덤벙거리지 마. 내력을 드러내는 것 정도는 사소한 일이나, 내 체면을 잃게 하는 건 그야말로 큰일임을 명심해.”

말을 끝낸 그가 돌아서 선실을 나갔다.

금하는 그에게 노여움을 살 수 없어. 그저 혀를 낼름 할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두어 마디 구시렁거리고는 꾸물거리며 그를 따라 나갔다.

배에 오르니, 얼굴 둥근 계집종이 그들을 위층으로 안내했다.

계단을 이제 막 오르는데, 코끝에 먼저 청향이 맡아졌다. 금하는 양악을 한 번 돌아보았다.

양악은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짙은 백합 향으로 조합했어. 위험하지 않아……. 이런 조향법은 힘이 들 뿐 아니라, 정밀도가 높아야 해서, 지금은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쓸 수 있어.”

향을 맡으니 온몸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 속에 칭찬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

금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소리로 그를 놀렸다.

“아직 사람은 만나지도 않고, 먼저 그 향에 취했구만. 오빠, 너 이건 빠져들 것 같은 모양새야.”

“됐어, 가, 가…….”

위층의 꾸밈은 아래층과 비교하여 더욱 우아했다. 창문이 반쯤 열려 있어 가볍게 부는 바람에 향기가 있는 듯 없는 듯 실렸고, 귀한 사향의 향이 서린 한 폭의 붉은 주렴이 아름답게 늘어졌다. 그 주렴에 반쯤 가려진 사이로, 호리호리하고 낭창낭창한 여자가 금이 놓인 대 앞에 앉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인께서는 금을 한 곡 타셨습니다. 소리가 없는 곳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있는 것을 들으니, 란엽은 매우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온유하고 완곡한 그녀의 목소리가 주렴을 사이에 두고 흘러나와 구슬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떨어졌다.

“금소리는 비록 좋으나, 한 음을 낼 때 다른 음을 낼 수 없게 되지요. 오직 한 음도 내지 않고서야 비로소 오음 전부가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옛날 유명한 악사인 조문昭文은 금을 뜯지 않고도 완전무결한 음을 얻는 도리를 얘기했지요. 그걸 저는 오늘에서야 깨우쳤습니다. 오늘 대인을 뵙게 됨은 저의 크나큰 행운이옵니다.”

이렇게 한차례 말로, 육역이 방금 한음도 연주하지 않은 곡을 씨알이 먹히게 해석해 냈다.

성심성의껏 자신이 매우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고, 육역에 대해서는 지극히 적절하게 경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에 금하는 침통하게 깨달았다.

지금껏 그녀는 자신의 낯가죽이 매우 두껍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자신의 기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빠르고도 심각하게 자아 성찰에 들어갔다.

“낭자는 지나치게 겸손하시군요. 뛰어난 음악과 음률에 정통한 이는 만나기 어렵다 하였죠. 이것은 언연言渊(육역의 호)의 행운입니다.”

육역이 희미하게 웃었다.

“대인 앉으셔요.”

적란엽이 여유 있는 몸짓으로 일어서는 한편 얼굴 둥근 계집종에게 분부했다.

“계아야, 멍청히 무얼 하느냐, 빨리 차를 내오지 않고.”

계집종을 책망하는 것이라 해도, 그녀의 말투는 매우 온유하고 우아하였다.

대답한 얼굴 둥근 계집종이 나가고, 적란엽은 주렴 옆으로 걸어와 본인 스스로 주렴을 말아 올렸다.

한 쌍의 가늘고 매끈한 하얀 손이 보였을 뿐이었다. 그 손이 가볍고, 부드럽고, 그리고 섬세한 동작으로 향나무로 만든 구슬을 손안에 모아서는 조금씩 조금씩 말아 올렸다.

향나무 구슬은 알알이 매끄럽고, 불그스름한 빛이 나서, 피부의 투명함과 윤기를 새하얗게 빛이 나는 것 같이 한층 돋보이게 했다.

주렴은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 그에 따라 끊어질 듯 가는 허리를 볼 수 있었고, 다시 위로 올라가니 옥으로 조각한 듯한 새하얀 목덜미가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달 같은 얼굴이 나왔다. 입술은 바르지 않아도 붉고, 눈썹은 그리지 않아도 짙고…….

금하의 시선은 우선 그녀의 머리에 멎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 향 주머니 안에 있던 머리카락과 매우 비슷함을 알아볼 수 있었다. 향 주머니의 주인이 그녀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금하는 습관적으로 양악을 바라보며, 그가 무언가 발견한 것이 있는지 보려고 했다.

그런데 양악은 멍한 표정으로 적란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랍게도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대양?”

금하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아예 조용히 발을 뻗어 그의 양발을 콱 밟았다.

양악이 아파서 잠꼬대 같은 말을 투덜거렸다. 하지만 두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여전히 바보처럼 적란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렴이 다 말리자, 계아도 다반을 받쳐 들고 올라왔다.

적란엽이 자리를 옮겨 앉고는 육역을 향해 아름다운 얼굴로 생긋 웃으며 권했다.

“이것은 평소 제가 늘 마시는 차입니다. 대인께서는 초라하다 꺼리지 말아 주셔요.”

부끄러움과 주저함을 담은 웃음이 아름다운 눈에 감돌았다. 남자는 말할 것 없고, 금하가 봐도 마음이 노곤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육역은 다완의 뚜껑을 들어 올려 흘끔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안휘성의 육안과편六安瓜片……. 제가 차를 가리지는 않습니다만, 그때 주현이가 배에 올랐을 때도 이 차를 마셨습니까?”

주현이!

적란엽은 놀라 한 쌍의 아름다운 눈이 마치 응고된 것처럼 굳었다.

금하도 살짝 의아해졌다. 원래도 그가 적란엽에게 정신없이 푹 빠지지는 않고, 약간 마음이 약해질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물어도 완곡하게 물을 거로 생각했지, 육역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온 이유를 까발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야말로 분위기 왕창 깬 살벌한 풍경 아닌가.

“낭자가 기억 못 하진 않을 겁니다.”

육역이 차를 가볍게 음미했다. 눈빛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적란엽을 바라보았다.

“저는……, 저는 당연히 그분을 기억합니다.”

적란엽은 두 눈을 내리깔았다. 얼굴에 드러난 비통을 감출 수 없었다.

“주 대인은 말씀하시는 것이 속되지 않으셨죠. 그가 그렇게 되실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내가 듣기론, 그 전 몇 개월간 낭자와 주현이의 교제가 매우 친밀했다지요. 운하 수리자금 건에 대해, 낭자는 그가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적란엽이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저는 그분이 이번 양주에 온 것은 제방 보수 책임 때문이란 것만 압니다. ‘교제가 매우 친밀하다’에 관하여, 대인께서는 어디에서 들으셨는지요? 저는 그분을 전부 합하여 서너 번 만났을 뿐이고, 조용히 앉아 담론을 나누었을 뿐이라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적습니다. 그분도 제 앞에서는 조정의 일을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으세요.”

“그런데…….”

육역이 다완을 내려놓았다.

“내가 또 듣기로는 그는 낭자에 대한 애모를 떨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로 낭자를 위해 위험스러운 행동을 마다 않고, 운하를 수리할 공금을 횡령했지요.”

“제가 비록 명문 출신은 아니라 해도, 어릴 때부터 <열녀전烈女传>을 읽어 왔습니다. 대인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제가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시려는 건가요?”

적란엽은 조금도 겁먹지 않은 눈으로 꼿꼿하게 육역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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