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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43)화 (43/224)

43화

대나무 잎을 엮어 만든 청두립青斗笠을 쓴 금하는 매우 무료하게 삼판에 서서 옆쪽 오안방의 배를 살폈다.

뱃머리의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쓴 젊은 사공은 상어가 검을 삼키는 모양이 날밑(*칼날과 칼자루 사이에 끼워서 칼자루를 쥐는 한계로 삼아, 손을 보호하는 테.)에 장식된 단도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그는 금하가 오랫동안 배를 지켜보는 것을 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금하가 두려워하랴. 그녀는 아예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와 마주 보았다.

사실 금하 같은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 그 사공은 부자연스럽게 눈빛을 옮겼다. 금하는 머리를 저으며, 계속 그를 이쪽저쪽으로 살펴보고서야 시선을 거뒀다.

“그래도 아가씨잖아. 그렇게 사람을 뚫어지라 쳐다보면 오해사기 쉽다.”

고경은 옆에서 이 상황을 전부 보고 있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머리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금하가 돌아서 그를 바라봤다.

“무슨 오해요?”

그녀의 눈은 검고 또렷한 눈동자에, 하얀 눈자위가 분명했다. 그 눈으로 사람을 주시할 때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다.

그녀가 이렇게 가깝게 빤히 바라보니 고경은 당황했다. 황급히 돌아서 비켜났다.

“넌 무슨 버릇이 그래. 눈 안 시려?”

“조금 시리네요.”

금하가 몇 번 눈을 깜빡거려 뻑뻑한 눈을 풀었다.

“대장이 말씀하셨어요. 포쾌가 되면, 사람이 바르고 정직해야 한다고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사람을 바라볼 때, 절대 위축되어 피하지 않는 거예요. 힘으론 져도, 기세로는 안 져요. 이리 와서 우리 시합 한번 해 봐요!”

“싫어!”

고경은 단호히 거절했다.

옆에 있던 양악도 충고했다.

“쟤랑 그거 하지 마요. 쟤 그 실력은 오응熬鹰할 수 있을 정도예요.”

오응이란 야생매를 길들이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절차를 말한다. 매를 길들이는 사람은 매와 서로 응시하여, 절대 한시라도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시선을 마주한 채 하루 밤낮을 꼬박 보내는 것이 기본이고, 2박 3일도 보통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동안, 상관희는 이미 선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안색으로 단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을 뿐이었다.

그녀는 금하와 양악을 향해 의미 담긴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려 오안방의 배로 건너갔다. 무언가 물어보려던 금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젊은 사공은 그녀의 분부대로 배를 몰고 떠났다. 그 뒤로 물결이 동글동글 넘실거렸다.

“너 방금 그 자식 봤어? 얼굴색이 벌겋고, 목의 울대뼈가 보통사람과 달리 열려 있었어.”

금하가 양악을 쿡쿡 찔렀다.

“내가권内家拳의 고수야. 허리의 칼이 유난히 뭔가 있어 보였는데, 아마 그냥 장식일 거야.”

“내가권 고수…….”

양악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서 넌 그를 그렇게 뚫어지게 봤어?”

“본 것뿐이야. 그런다고 닳을 리도 없는데, 왜 못해?”

금하가 그의 귓가로 가깝게 다가갔다.

“이런 내가권 고수를 데리고 다니는 건 적어도 그녀는 준비하고 왔다는 거지. 우리도 신경 많이 써야 해.”

“너랑 싸우지 않아서 특별히 유감이냐?”

양악이 웃었다.

“그건 아니야. 내 예상으론 아마 육 대인이 그녀에게 잇속을 차리지 못한 것이야말로 유감일 거다…….”

금하는 헤헤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눈꼬리 시야에 얼핏 보인 것은 바로 육역의 옷 위에 놓인 정교한 자수였다.

반응은 매우 빨랐다. 그녀는 즉시 말투를 바꾸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하지만 육 대인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야! 조금 전 일은, 내가 곰곰이 반성하며 생각해 보았더니, 진정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속을 헤아린 거였어. 정말 절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

양악은 잠시 의아해했지만, 금하와 여러 해 손발을 맞춰온 덕으로, 즉시 알아들었다.

그가 소리를 높여 그녀를 훈계했다.

“네가 알아들었으니 다행이지만, 다시는 이런 식으로 육 대인을 의심하지 마라.”

금하는 닭이 모이를 쪼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육 대인은 이런 분이시지. 풍채는 뛰어나시고, 화사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으셔서 꽃과 같고(华采衣兮若英), 신령께선 이미 맞이해 내려와 구름 속에 머무르시는데(灵连蜷兮既留)…….”

고경은 그녀가 한창 떠들고 있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알아들은 육역은 두 손을 팔짱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구가九歌의 운중군云中君이군.”

그가 한쪽 입술을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너 또한 책을 좀 읽었을 줄 생각 못 했다.”

초사인 구가는 전국시대 굴원이 지은 것으로 신에게 제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였다. 그 구가 중 운중군云中君은 구름의 신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대인, 왜 나오셨어요!”

금하는 이때서야 뒤돌아섰다. 육역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육역은 그녀에게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편안하고 한가로이 물었을 뿐이다.

“운중군의 가장 마지막 두 구절이 무엇인가?”

“사부군혜思夫君兮…….”

입에서 막 읊기 시작하던 금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껴 멈췄다.

마지막 두 구절은 “사부군혜태식, 극로심혜중중 思夫君兮太息,极劳心兮仲仲”으로, 이렇게 신령님을 그리워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매일 마음은 근심에 싸여 불안하다는 뜻이었다.

육역이 웃을 듯 말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네가 날 애모한다는 건 아니겠지?”

금하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혀를 깨물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를 칭찬하면 칭찬한 것이지, 무슨 일부러 어려운 문자를 쓴다고 구가 같은 것을 읊고 있었을까. 그야말로 제 발등 제가 찍은 격이었다.

그녀의 성격대로라면, 지금 바로 받아쳐야 했던 말은 “꿈도 야무지게 꾸고 계시네. 이 어르신이 널 좋아할 수 있겠냐!”, 였지만, 양악이 시기적절하게 그녀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그녀는 너무도 아파 이 말은 목구멍에 걸려 사라졌다.

“대인께서는 젊고 유능하시죠. 경성 안에서, 대인을 흠모하는 아가씨가 어찌 또 얘뿐이겠습니까.”

양악이 웃으며 그녀 대신 대답했다.

“그래?”

육역이 미미하게 몸을 기울여 굳이 또 그녀에게 물어보려 했다.

금하는 그저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참다못해 피를 토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대인이 기쁘시면, 된 겁니다.”

육역이 생각하는 척을 하고는 잠시 후 탄식했다.

“쓸데없는 걱정만 더했을 뿐, 그리 기쁘지는 않군.”

그는 고개를 저었고, 천천히 뒤돌아서 선실로 들어갔다. 그 뒤에는 극도로 화가 뻗쳐 몸의 일곱 구멍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씩씩대고 있는 금하가 남았다.

* * *

향선은 계속하여 안개비 속에서 느릿느릿 나아갔다.

도롱이를 걸친 양악이 손으로 비를 가리며 멀리까지 내다보고는 이상하다며 말했다.

“왜 아직 움직임이 없지. 적란엽의 양가养家가 육 대인에게 흥미가 없을 리 없는데? 충분치 않다는 건가……. 금하야, 우리 쉴 수 있는 거냐? ……이 망할 자식아, 계속 잡아 뜯으면 이 도롱이는 다시 입을 수가 없어.”

가슴 가득한 울적함을 털어놓을 곳 없는 금하는 양악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녀는 열심히 도롱이의 종려털을 하나하나 아래로 잡아 뜯었다. 갑판 위에는 그에서 떨어진 종려털이 가득했다.

“그 사람은 시기를 잘 맞춰 태어나고, 좋은 아버지를 만난 것뿐이잖아. 뭘 근거로 내가 그에게 반해야 한다는 거야?”

그녀가 중얼거렸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양심적으로 말야.”

도롱이를 보니 그녀에게 털이 다 잡아 뽑힐 것 같았다. 양악은 몇 보 피해 물러섰다.

“가문은 논하지 않더라도, 육 대인은 용모와 인품도 품위가 있어. 넌 아문 안에서 한가할 때 떠들던 말도 듣지 못했냐. 전설의 4대 미남자 중 한 명인 위계卫阶가 살아 있어도 육 대인만 못 할 거라 했어.”

금하는 아주 우습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봐서 죽어버렸다는 그 위계? 남자는 문文에 뛰어나든지 아니면 무武에 뛰어나든지 해야지, 기생오라비처럼 생겨서 뭐에 써?”

“중요한 건 그가 글도 잘 쓰고, 무공도 잘한다는 거야.”

금하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낮은 소리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도련님도 뒤지지 않아.”

차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호수 위로 음악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소리는 바람이 불 때마다 때로는 끊어졌다가 때로는 이어졌다 하는데, 한 곳에서만 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금하는 잠시 자세히 듣고는 방향을 구분했다. 그들의 이 향선 부근에는 적어도 8, 9척의 배가 있다고 추측했다.

“어떤 배가 적란엽이야?”

양악이 계속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금하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적 낭자는 음률에 매우 통달했고, 칠현금을 잘한대.”

오래지 않아, 루선楼船(*망루가 있는 큰 배.) 한 척이 안개비 속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조각한 난간과 그림으로 장식된 기둥이 지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배에서는 수려하고 그윽한 악기 소리가 안개비를 뚫고 들려왔다.

다시 눈여겨보니, 배 위에 걸린 등롱에 ‘적翟’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바로 이 배가 틀림없었다.

고경이 급하게 선실로 들어가 육역에게 보고했고, 분부를 받아 나왔다. 곧 사공에게 명하여 배를 몰아 다가갔다.

배가 가까워져 고경이 맑고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대인께서 금 소리가 청아한 것을 들으시고,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한 번 만날 수 있겠습니까?”

잠시 후, 얼굴이 동글동글한 계집종이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우리 아가씨는 지금껏 금琴으로 벗을 사귀시었습니다. 만약 만나고 싶으시면, 먼저 한 곡 연주해 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고경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금하가 재빨리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좋아.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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