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42)화 (42/224)

42화

금하는 그들 둘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들으려 했었다. 그녀는 멈칫하여 육역을 쳐다보다가 이내 눈을 내리깔아 공손히 말했다.

“귀한 손님이 계시는데, 노비가 남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차를 드리는 것도 조금은 편할 겁니다.”

육역이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말을 하기 전, 상관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강호인은 사소한 일은 신경 쓰지 않지요.”

“들었으면, 나가거라!”

육역이 금하를 향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금하는 어쩔 수 없이 물러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 닫아!”

안에서 또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살금살금 문을 닫았으나, 특별히 작은 틈새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눈을 그 틈새에 가까이 댔다.

그 순간, 금하는 육역과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그는 눈도 깜짝이지 않은 채 그 틈새를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얌전하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양악을 향해 손짓했다.

양악은 그녀의 뜻을 알아들어 탁자 위에서 도기 잔 두 개를 가져와 금하에게 하나를 던졌다. 두 사람은 잔을 문 위에 붙이고 숨을 죽인 채 안쪽의 동정을 들었다.

“너희들 뭐 하는 거…….”

고경이 그들을 떼어놓으려 했다.

“쉿!”

금하가 그에게 급하게 소리를 죽이라는 손짓을 했고, 억누른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에 오안방의 상관당주가 있어요. 육 대인의 안전이 걱정도 안 돼요? 만일 뜻밖의 일이 벌어지면, 어떡해요?”

고경은 걱정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의 이런 방식은 사실 그다지 상황에 맞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고, 두 사람은 진즉 문에 계속 붙어있었다.

이때 안에서 육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경, 그 두 사람의 행동이 도를 넘는다면, 그들을 호수에 던져 물고기와 새우의 밥으로 주게.”

“소관 명에 따르겠습니다!”

고경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하고는 두 사람을 예리한 눈으로 천천히 훑었다.

금하와 양악 또한 매우 눈치가 있었다. 멋쩍게 웃으며 몇 발자국 움직여 잔을 탁자 위에 돌려놓았다.

* * *

푸른빛의 찻물이 선체의 움직임을 따라 미미하게 찰랑거렸다.

“제가 오안방의 지난 몇 년간 문서를 살펴보았는데,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매우 깨끗하게 일을 하셨더군요. 당주님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육역이 매우 태평하게 차를 음미했다.

상관희가 희미하게 웃었다.

“저희가 본래 하는 일은 정당한 장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당신들은 소금방으로부터 이익을 나누었더군요. 게다가 강녕, 양주, 상주의 사채업도 그리 결코 깨끗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아마 오해가 좀 있는 듯합니다. 오안방이 사람도, 하는 일도 워낙 크다 보니, 소인들의 질시와 헛소문으로 인한 말썽은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상관희가 육역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대인께서는 양주라는 곳은 첫 방문이시죠? 소인의 말을 곧이듣지 마십시오. 저는 조정에 줄곧 충심을 다해 왔고, 그런 법률에 저촉되는 일은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일들은 말입니다. 누군가 조사하지만 않으면, 늘 무사평온하겠으나…….”

육역은 온화한 얼굴로 상관희를 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일이 떠오른 듯했다.

“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물건 하나가 있습니다.”

그가 요대腰带의 작은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둥글고 반질반질 매끄러운 진주는 윗면에 작은 은사의 직물이 붙어있었다.

상관희는 물건을 보았지만, 가져가지 않았다. 얼굴색은 평소와 같았으나, 진주를 흘끗 본 시선은 순간 예리해졌다.

“소방주의 무공은 훌륭합니다. 성격이 좀 급할 뿐이지요. 당주는 그와 어릴 때부터 청매죽마, 소꿉동무였고, 또 같은 스승을 모시고 함께 기예를 배웠습니다. 감정이 깊겠죠.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역의 말은 느긋했다.

“……그러나, 제형안찰사사를 폭파한 것은 그래도 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상관희는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대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왜 알아듣지 못하겠는지요?”

“당주가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하니, 나는 그럼 차라리 그쪽 소방주를 찾아 얘기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육역은 강제하고 싶은 뜻이 전혀 없었다. 민첩하게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상관희의 등이 경직되었다. 조금 후 갑자기 일어나 바로 뒤에서 육역의 어깨까지 손을 빠르게 뻗었다.

“기다려!”

육역은 미리 등 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몸을 비틀어 그녀의 공격을 피하니,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그가 돌아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으나, 상관희가 손바닥을 뒤집어 그 힘에 오히려 밀렸다……. 좁디좁은 실내,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무공이 엇갈렸다.

육역은 그녀가 가진 무공의 수준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라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녀의 수에 말린 것처럼 오히려 조금씩 그의 무공이 드러났다.

수 초를 겨루고, 상관희는 이미 자신은 절대 그의 적수가 아님을 알았다. 다만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초식이 작은 이 권법은 쓰기에 매우 좋으나 애석하게도 당신은 당주이고, 근심이 너무 많지. 이 청조홍건青鸟红巾의 초식은 만족할 만큼 빠르질 않아.”

육역이 오른손을 뒤집었다. 그러면서 그가 갑자기 시전한 것이 이 청조홍건의 초식이었다. 그가 주먹을 쥐자, 봉황 같은 권안拳眼(*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갈라진 사이로 주먹을 쥘 때 엄지와 검지가 말려 만든 구멍을 뜻함.)이 그녀의 태양혈을 공격했다.

주먹으로 일어난 바람이 맹렬했다. 상관희는 미처 피하지 못하여 탁자에 부딪혀 넘어졌다. 찻잔과 찻물이 바닥으로 굴렀다.

육역의 손은 그녀의 관자놀이에 닿으려는 순간 멈췄다. 즉시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가는 허리를 잡아당겨, 상관희는 가까스로 바닥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 * *

안에서 잔과 접시가 떨어져 내는 쨍쨍한 소리가 들렸다.

고경이 아직 머뭇거리는 사이, 옆의 금하는 이미 무엇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돌진해 들어갔다. 문이 펑 소리 나며 열린 후, 그녀는 급히 걸음을 멈췄다.

육역의 손이 상관희의 허리를 끌어당겼고, 두 사람은 상당히 가깝게 붙어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관희의 얼굴이 놀란 빛이라는 것이다.

“이건……, 육 대인, 상관당주는 엄연한 양갓집 규수예요! 대인이 이러시는 건 정말 적합지 않습니다.”

금하는 기풍과 위엄있는 모습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고경과 양악은 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각자의 눈빛으로 판단컨대, 육역이 상관희에게 강제로 무언가 하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육역은 여전히 조용하게 그녀를 놓아줬다. 그리고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는 상관 당주의 솜씨를 시험해 본 것에 불과해. 너희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떨며 뛰어들어와 뭐 하는 거지? 넌 바닥 물건을 수습하여 치워라.”

그가 한 마디로 금하에게 분부했다.

상관희는 이미 제대로 섰다. 표정과 태도도 신속하게 평상시대로 돌아갔다.

“일찍이 육 경력의 무공이 평범치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늘 보니, 과연 허황한 것이 아니군요. 이 평범한 여인은 진심으로 패배를 인정합니다. 진정 탄복했습니다.”

정말 무공을 겨루는 중이었다고?

금하는 의혹의 눈빛을 한 채 두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두 사람을 몇 번이나 훑었다. 그래도 단서가 될만한 건 찾지 못했다.

“빨리 치우고, 다 치웠으면 나가라!”

육역이 금하를 바라봤다. 말투는 이미 그리 좋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금하는 깨진 자기 조각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놓을 곳이 없어 옷으로 감쌌고, 나가서는 와르르 호수 속에 전부 쏟아 버렸다.

* * *

깨진 자기 조각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육역의 입매가 슬쩍 휘었다.

눈앞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하는 것이 귀찮기는 해도, 본인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토라진 표정이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육역은 더는 신경 쓰지 않고 문을 닫았다. 돌아서 상관희를 보고, 웃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 소방주 몸에 아직 내상이 있어 아쉽습니다. 아니었으면 그의 능력으로 그날 밤 배 위에서 나와 잘 겨뤄볼 수 있었을 텐데요.”

상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또 이어 말했다.

“말하자면, 그에겐 정과 의리가 있지요. 배에서는 사수죽을 구하지 못했고, 부상은 낫지 않았는데, 감히 제형안찰사사에 침입하고, 본인 또한 안에 갇힐 뻔했고……. 틀림없이 당신도 이것으로 매우 머리가 아플 겁니다.”

상관희가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기왕 경력 대인께서 저를 기꺼이 부르시어 상대하고 계시니, 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값을 불러 보시지요?”

“상관 당주께서는 과연 거센 비바람도 익숙하시군요. 호쾌하십니다.”

육역이 칭찬하며 살짝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