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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40)화 (40/224)

40화

해가 지도록 육역은 돌아오지 않았다.

고경은 그에게 다른 분부가 있을지 몰라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관참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양악은 마침 아버지에게 저녁밥을 차려드리던 참이라 칼자루를 안은 고경이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손짓하여 그를 불렀다.

“대인, 괜찮으시면 우리와 함께 식사하시죠?”

고경이 매우 건방진 눈빛으로 안쪽 탁자 위의 밥과 반찬을 흘낏 보았다.

관참 안에서 일반 사역에게 제공하는 식재료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런데도 반찬은 소박하나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였다. 고구마 맛탕인 발사산우 같은 것은 촛불의 불빛 아래 황금빛으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설탕 실의 가닥가닥이 유난히 선명했다.

고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으로 들어서 양정만을 향해 공수했다.

“폐를 끼칩니다.”

“대인, 사양치 마시고, 얼른 앉으십시오.”

양정만이 온화하게 웃었고, 양악 또한 고경에게 밥과 젓가락을 놓아주며 웃었다.

“무슨 진기한 음식은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대인도 맘껏 드십시오.”

양정만이 젓가락을 움직이려다가 발사산우를 보고는 문득 멈춰 물었다.

“금하 줄 밥은 남겼니?”

“밥과 반찬 모두 남겼어요. 따뜻하게 부뚜막에 두었죠.”

양악이 밖의 하늘을 살피니, 해가 져 날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 시간쯤 되면 배가 고파서, 걔도 아마 돌아와야 할 겁니다.”

마침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입구로 들어왔다. 금하가 아닌 육역인지라 고경은 급하게 젓가락을 놓고는 신속히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대인!”

육역은 급히 일어나려 하는 양정만에게 앉으라는 뜻을 표했다. 그가 세 사람뿐인 자리를 담담하게 훑어보며 물었다.

“원 포쾌는 아직 안 돌아왔나?”

“분명 곧 돌아올 겁니다.”

재빨리 말한 양악은 육역이 믿지 않을까 하여 설명을 붙였다.

“금하는 배고픈 걸 못 참아요. 게다가 밖에서 돈 쓰기 아까워해서, 대부분은 서둘러 돌아와 밥을 먹습니다.”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육역이 무언가 얘기하기 전,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급히 들어왔다.

“겨우 시간 맞췄다!”

심호흡을 하는 금하는 매우 기쁘고 안심이 된다는 어조로 방글방글 웃었다.

“대양 밥 차리는 시간에 늦을까 봐 급히 서둘렀어요. 대장, 다리는 좀 어떠세요? 의원이 뭐라 해요?”

양정만은 대답하지 않았고, 긴장한 양악은 그녀에게 옆을 보라고 눈짓했다.

“응?”

뒤늦게 깨닫고 돌아선 금하는 육역과 시선이 마주치고는 한순간 멈칫했으나, 바로 표정이 기쁨으로 넘쳤다.

“대인, 여기 계시니 정말 잘 됐어요! 제가 마침 보고드릴 일이 있어요.”

“주현이의 연인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지?”

“일부 조사했죠……. 그녀의 집에는 두 마리 개를 키우는데, 매우 흉포해요. 듣기론 서역 쪽에서 사 왔고, 창예, 또는 설산사자라고 부른대요. 대인은 모르실걸요. 이 개가 생긴 것이 곰 같은데, 털이 정말 길고, 이빨은 뾰족하고…….”

육역의 물음에 금하는 손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변을 토했다.

“문에서 팍 뛰쳐나왔는데…….”

육역이 금하의 말을 끊었다.

“그 여자에 대해 말해라.”

“그 여자는 성이 적이고, 이름이 란엽……, 안타깝게도 못 봤어요. 외출했답니다.”

금하의 말투는 성실했다.

“그런데 제가 또 알아보았어요.”

미간을 찡그린 육역은 계속 말을 이어갔지만, 말투엔 만족스럽지 않다는 감정이 드러났다.

“너는 밖에서 온종일 사건 조사를 했으면서도 사람조차 만나지 않았다는 건가?”

“대인 서두르지 마시고, 제 말 좀 들으세요! 제가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요.”

금하가 비위를 맞추며 그를 바라봤다.

“대인이 누군지 맞혀보시게 제가 제시어를 하나 드리죠. 대인께 이건 정말 하늘만큼 큰 경사예요!”

여기까지 말하면서도 금하는 본인이 기쁨에 겨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육역의 무표정과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도 사뭇 어울려 주변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흠흠.”

양정만이 두어 번 목을 가다듬어, 금하를 일깨웠다.

“대인께 보고를 드리면서, 오히려 맞혀보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

“아……. 네, 그럼 제가 말씀드리죠.”

금하가 열정적으로 육역을 바라봤다. 그녀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앞으로 나오자, 그는 알 수 없을 만큼 미묘하게 뒤로 살짝 물러섰다.

“육 대인, 저는 오늘 대인의 조부님을 만났습니다!”

바로 실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육역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양악, 고경까지 전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대인, 기뻐서 말도 못 하시는 거죠?”

금하는 육역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었다.

“생각도 못 하셨죠?”

육역이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어 별별 상황에 익숙해졌다 해도, 그 역시 우선 숨을 깊게 들이켜야 했다.

“내 조부님은 돌아가신 지 이십여 년이다. 그런데 네가 그분을 만날 수 있었다니, 정말 생각지 못한 일이군.”

“대인 친 할아버님이 아니라, 집안 할아버님이요.”

금하가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육역은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그는 어쩌면 말을 할 수 없거나 아니면, 아예 할 말이 없어서 일지 모른다.

“집안 할아버지?”

양악이 가까이 다가와 이상해하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관계가 가까워?”

“가깝지. 상당히 가깝지. 그야말로 한 가족이야.”

금하는 육역에게 상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대인을 위해 자세히 물어봤어요. 관계는 이래요. 그와 대인의 할아버지는 몇 대에 걸쳐 내려온 집안 형제예요.”

“집안 형제라 하면, 대체 몇 대를 걸친 거야? 촌수가 멀지?”

금하는 의심스러워하는 고경을 째려보고는 계속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와 대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친형제야?”

옆에서 양악이 추측하며 끼어들었다.

“아직 집안 형제야.”

금하의 말이 이어졌다.

“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 대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친형제다?”

고경이 참지 못하고 다시 끼어들었지만, 바로 금하에게 무시당했다. 그녀는 육역을 향해 홱 돌아 벅찬 감동을 이기지 못하며 말했다.

“……같은 사람입니다! 대인 이제 이해하셨죠?”

양악이 손가락을 꼽아 셈을 하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면 송나라 때 사람이겠다? 세상에, 8대는 되겠구나!”

육역은 한참을 무표정하게 서 있었는데, 그는 지금 마치 호흡 수련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런 소식을 전해주니 대단히 감사하군. 네게 고마워……. 전 일가를 대신해 원 포쾌에게 감사를 전한다.”

“대인 뭘 이런 걸 갖고요!”

금하는 연신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모양새를 갖췄다.

“이는 모두 소관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대인 할아버지께선 비록 거지이긴 하나, 사람이 참 좋으십니다. 특히 친절해 보이셨죠.”

육역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서 나갔다. 분명치 않은 몇 마디를 흘린 터라, 금하는 살짝 멈칫해서 양악에게 물었다.

“뭐라셨냐?”

양악도 자세히 듣지 못했다.

“대인은 말씀하셨다.”

고경은 청력이 매우 좋아 똑똑히 들었다.

“……네 큰아버지라 해라!”

“내 큰아버지? 어떻게 내 큰아버지야, 분명 그분 할아버지신데.”

문득 금하는 뒤늦게 모든 것을 깨달았다.

“뭐야, 제기랄?(*육역이 말한 ‘你大爷的’는 욕으로도 쓰임.) 대인은 왜 욕을 하셔? 횡설수설할 만큼 너무 감동하신 거야?”

고경은 매우 유감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흘끔 보고는 재빨리 육역을 따라 나갔다.

“갑자기 거지 할아버지가 튀어나왔는데, 누구라도 감동할 리가 없지. 하물며 육 대인 같은 신분은 오죽하겠어.”

양악이 계속 머리를 저으며 금하를 밥 먹으라고 눌러 앉혀다.

“도련님아, 너 좀 쉬는 게 낫겠다.”

“속담에 그랬어. 황상께도 두루 살피면 가난한 친척이 있다고. 그한테 거지 할아버지가 있는 게, 무슨 얼마나 희한한 일이라구.”

금하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양정만에게 질책의 눈총을 받고는 급하게 화제를 바꿨다.

“대장, 다리치료 잘하셨어요?”

“넌 우리가 보러 간 게 신인 줄 알아? 의원이 안쪽 뼈가 제대로 안 붙어서, 잘라 다시 붙여야 한다더라. 그 후에 3개월 정양해야 하고.”

“잘라서 다시 붙인다고!”

양정만 대신 답한 양악의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아파 금하는 쓰읍, 입술을 늘여 가지런한 이를 드러냈다.

“잡담 그만하거라.”

양정만이 정색하고 물었다.

“금하야, 너 정말 적란엽을 만나지 못했느냐?”

“진짜 못 봤어요. 듣기론 주현이의 사고가 난 후, 그녀는 그 집에 안 살았대요. 하지만 육 대인 할아버지의 덕을 봤죠. 거지의 소식은 빠르잖아요. 적란엽은 멀지 않은 호숫가로 이사했고, 그리고 날이 좋기만 하면, 그녀를 키운 적 원외가 그녀를 데리고 나와 호수에 배를 띄운답니다. 돈 많은 사위라는 금구서金龟婿를 낚으려는 거죠.”

“금구서?”

“적란엽은 적 원외의 양녀고,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면, 은자 천오백 냥이 필요해요.”

여기까지 들은 것만으로도 양정만은 이미 깨달았다.

“양주 수마.”

금하는 빙그레 웃으며 여전히 영문 몰라하는 양악을 쿡쿡 찔렀다.

“밥 다 먹고, 우리도 호수에 구경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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