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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36)화 (36/224)

36화

“사수죽은 제가 잡은 이이고, 오늘 밤 도적은 그를 구하러 왔습니다. 외람된 요청이오나, 이 사건은 제게 전권을 위임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 가능하오.”

윤 부사가 급히 말했다.

“일손이 충분할까 모르겠군. 부족하면, 내가 사람을 좀 더 파견해줄 수 있네.”

“감사합니다, 대인. 제가 보기에 이 친구의 마음 씀이 매우 세심하더군요. 저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육역이 금의위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당연히 할 수 있지.”

윤 부사가 분부했다.

“고경高庆, 지금부터 자네는 육 경력의 지시를 따르라. 조금이라도 태만해선 안 된다.”

“고경, 명을 따르겠습니다.”

윤 부사가 육역을 향해 말했다.

“그의 수하가 대여섯 명이지. 좀 적지 않소?”

“충분합니다.”

육역이 말했다.

“이 두 포쾌도 이번에 저와 함께 사건을 처리하라는 명을 받았고, 그럭저럭 쓸 만합니다. 당분간 더 많은 일손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들렸다. 하지만 금하는 이미 속으로 비난할 힘도 없어져 말없이 눈만 흘겼다.

“그렇군…….”

윤 부사는 육역이 왜 육선문의 사람을 쓰려는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그도 더 묻기 어려웠다.

“그럼 필요할 때 주저 말고 얘기하시오. 절대 어려워하지 말고.”

육역이 윤 부사에게 재차 감사해 하며 공수를 하고 작별을 고했다.

그가 두어 걸음 걷다가 멈추고 고개를 돌려 금하와 양악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두 사람 가지 않는 것은 옥에 들어가 내통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당신…….”

금하는 이미 그에게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당신’이라는 말만 뱉었을 뿐, 바로 풀이 죽어 입을 다물었다. 묵묵히 그를 따랐다.

그 와중, 양악은 옆에서 잊지도 않고 그를 붙잡아 온 금의위에게 상냥하게 작별을 고했다.

“여러분, 배웅하지 마세요, 나오지 마십시오, 나오지 마세요…….”

애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금의위는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봤다.

* * *

관역으로 돌아오니, 시각은 상당히 늦었다. 가늠해보니 한 두 시진 더 있으면 바로 날이 밝을 터였다.

“대인 다른 분부 없으시면, 소관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양악이 예의 있게 육역을 향해 말했다.

그의 뒤에서 금하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 입에 발린 말도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피곤하고 졸려 방으로 돌아가 자고 싶을 뿐이었다.

“원 낭자!”

금하가 하품을 반쯤 하던 그때, 육역이 일부러 무거운 목소리를 내 그녀를 흠칫 놀라게 했다.

“……대인, 또 무슨 분부신지요?”

“내일 너는 주현이의 연인을 조사하여 밝혀라. 그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알았는지, 어떻게 교류했는지, 여자의 신상배경, 성격, 기질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자세할수록 좋다. 모두 조사하여 밝혀야 해.”

“아니, 저, 소관은…….”

육역의 성격으로 보아, 그가 시키는 일은 분명 죽도록 고생해도 좋은 소리는 못들을 터였다. 금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았다.

“소관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대인께서는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사람을 쓰실 필요가 정말 없으십니다. 차라리 금의위의 협조를 받는 것이 공무를 지체하지 않기 위해 낫지 않을까요?”

육역은 이 말을 듣고 그녀를 주시했다.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양악은 금하가 육역을 감정을 상하게 했을까 걱정이 되어 급하게 자신이 나섰다.

“내일 제가 이 일을 조사하겠습니다. 반드시 대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양주에 뼈를 전문으로 하는 명의가 한 분 있는데, 성이 심, 이름은 밀이다. 내가 사람을 미리 보내 알려놓았으니, 내일 일찍 그에게 양 포두 다리의 지병을 보이도록 해.”

육역의 어조는 담담했다.

“설마 자네는 아버지를 시중들지 않을 텐가?”

육역이 양정만의 다리 병을 계속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명의 심밀에게 그의 진료를 청했다는 이것은 금하와 양악이 미처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해야죠, 당연히 해야죠.”

금하가 급히 말했다.

“대양이 대장 모시고 가. 내가 그 여자 조사할게. 대인, 걱정하지 마세요. 쥐가 그녀의 집에 구멍 몇 개를 뚫어 놓았는지까지 제가 모두 명명백백, 아주 소상히 조사할게요. 절대 어떤 실마리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네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힘을 다해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기만 하면,”

육역은 웃을 듯 말 듯 했다. 말에 뼈가 있는 듯했다.

“이런 작은 일들은 네 능력으로도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해낼 수 있다.”

“……대인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그가 명의에게 대장을 진찰하라 청한 것을 어여삐 보아, 금하는 그와 같은 수준이 되지 않기로 했다.

* * *

양악은 아버지를 의사에게 모시고 갈 일을 생각하다가 잠깐 누웠는데, 바로 하늘이 밝아 왔다.

그는 일찍 일어나 좁쌀죽을 끓이고, 또 하는 김에 파전병을 부쳤다. 그런 후에야 아버지를 깨워드렸다. 금하의 방에서는 아직 기척이 없어, 다시 문을 두드렸다.

“금하야, 얼른 일어나! 지금이 몇 시인데.”

안은 매우 조용하여 움직이는 소리도 없었다.

“배 안 고프면, 파전병 안 남긴다.”

양악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안쪽에서 바스락거리며 신 끄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 금하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오빠야, 난 방금 눈 붙였다. 너도 나 좀 애처롭게 생각하면 안 돼?”

그녀가 밖을 향해 나가며 중얼거렸다.

“너 두 시진 이상 잤어, 충분해, 충분해. 냉수로 씻으면 정신 들 거야. 오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양악이 축 늘어진 그녀를 보고는 밀며 구리 대야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이고…….”

금하는 눈도 다 못 뜬 채, 양악한테 떠밀렸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방에 있던 격자무늬의 문이 달린 가구에 부딪혔다. 그녀가 아프다고 한마디 외쳤다. 그리고 다른 말을 하기 전, 양악이 먼저 그녀를 탓했다.

“조심 좀 할 수 없냐.”

금하는 이마를 짚고는 눈을 부라렸다.

“대양, 포쾌 노릇도 인성을 갖춰야 해.”

“그래서 내가 파전병 부쳐서 너 공경하잖아. 인성 충분하다.”

양악은 그녀를 세면대 앞으로 밀고 갔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내가 말해두는데 말야. 육 대인이 네게 주현이의 연인을 조사하라 했잖아. 넌 꾸물거리지 말고, 부지런하게 해. 꼭 육 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라.”

금하가 물을 떠 얼굴을 씻었다. 차가움에 놀라 몸을 떨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 나귀한테 머리 차였냐?”

“모든 일을 우린 멀리 보고 생각해야 해. 봐봐, 이 강남에 명의가 심밀 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만일 심밀이 아버지 다리를 제대로 못 보면, 나는 육 대인에게 다른 명의 다시 찾아달라고 부탁해야 하거든.”

“역시 멀리도 내다본다. 어쩐지 네가 우리 엄마랑 유난히 말이 잘 통한다 했다.”

금하가 그를 야유했다.

“중요하지 않은 말은 그만하자. 어쨌든 넌 계속 겸손하고 신중해야 하고, 근면 성실해야 해. 육 대인이 시킨 일은 아무리 사소해도 큰일이라는 걸 기억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들하고 충돌하지 말고, 육 대인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불경한 말도 하지 마. 뒤에서 하는 말도 안 돼.”

양악은 온통 정색한 얼굴로 이어서 또 한 마디를 보탰다.

“벽에도 귀가 있잖아.”

금하는 작은 솔에 소금을 묻혀 입안을 푹푹 닦다가, 양악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웅얼거렸다.

“지금 그 사람은 분명 자고 있을걸.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해.”

“육 대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후원에서 무공 수련 중이시다.”

금하는 멍해져서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일찍? 그 사람은 어젯밤 안 잤대?”

“맞다. 묻는 걸 잊었네. 어젯밤 넌 어떻게 그와 함께 있던 거냐?”

“말도 마라…….”

금하는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너 아냐, 어젯밤이 주현이의 두칠이었어. 나는 육 대인과 그가 목매단 그 집에서 하룻밤 대기했다.”

양악은 살짝 어리둥절해져, 그녀를 따라가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담 한 번 크네. 듣기론 원한 품고 죽은 귀신이 매우 흉악하단다. 너 뭔가 마주치지 않았어?”

금하는 걸음을 멈추고,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도 그가 원통하게 죽었다고 생각해?”

“네가 쭉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내가 말한다고 넌 바로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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