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두 사람은 작은 안뜰을 지나 그곳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이 층짜리 작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안은 불이 켜지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컴컴했다.
건물에 잇닿은 두 그루의 거대한 오동나무는 가지와 잎이 무성했다. 밤의 어둠 속에서 나무 그림자가 어른어른했다.
그것은 마치 온갖 잡귀가 날뛰는 것처럼 작은 건물에 공연히 음산한 기운을 더했다.
한차례 찬바람이 스쳐 금하는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게다가 밖에서는 야경용 딱따기 소리가 들렸다. 이미 삼경이었다.
“삼경, 마침 좋군.”
육역이 고개를 들어 건물 위의 꽉 닫힌 창문을 바라보았다.
“검시항목에 쓰인 것을 보면, 주현이는 삼경 무렵 이 건물 위층에서 목매달아 죽었다.”
그러니까, 이 금의위 대인이 삼경 야밤에 이곳을 찾은 이유는…….
금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대인도 목매달기 한번 해보시게요?”
육역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칠头七.”
금하는 멍해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맞아. 주현이의 사망일 기준으로 오늘이 바로 그의 두칠이야.
두칠은 망자가 죽은 날로부터 7일째 되는 날로 또한 ‘혼귀일回魂日’이라고도 불린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죽은 이의 혼백이 사람이 죽은 후 여기저기 떠돌다가 두칠일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나서야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이 두칠인게 또 어때서?
주현이의 혼백이 직접 나타나 십만 냥 운하 수리자금의 행방을 말해줄 리는 없잖아?
한동안 잠잠히 있던 금하가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뭐라 해도 우리는 관가 사람이에요. 음, 이런 사건 조사는…… 더구나 공자께서는 군자는 괴이한 일, 힘으로 하는 일, 어지러운 일, 귀신에 관한 일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공자가 말하지 않았다고 반드시 믿지 않은 것은 아니지.”
육역이 그녀를 곁눈질로 보았다.
“너, 설마 귀신을 무서워하나?”
“헤헤, 그럴 리가요…….”
목이 바싹 말라서 금하는 ‘흠흠’ 목청을 가다듬었다.
“소관은 조정의 포쾌로서 온몸에 호연정기浩然正气가 가득합니다. 온갖 잡귀라 한들 감히 가까이 오질 못하지요.”
육역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보았다.
“그래. 실례를 범하였군.”
“천만의 말씀입니다.”
* * *
이 작은 건물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건물은 남향이었고 그들은 처음 북쪽의 후원에서 들어왔으며, 지금은 돌아서 남쪽의 정문 쪽으로 왔다. 건물의 문 위에는 동으로 만든 자물쇠가 꽉 맞춰 채워져 있었다.
이왕 맞닥뜨린 일이었고, 그녀에게는 문따기 정도는 당연히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옆에 경력 대인도 계신다. 그녀는 정말 지나치게 부지런 떨고 싶지 않았다.
“기왕 열쇠도 잠겼는데.”
그녀가 공손하게 말했다.
“대인, 내일 다시 오심이 어떠신지요?”
육역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않은 것처럼 분부했다.
“열어라, 인기척 내지 말고.”
그녀는 할 수 없이 허리춤에 매달았던 3가지 도구를 꺼내어, 그중 가늘고 긴 은 꼬챙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부려 자물쇠 구멍을 잘 맞춘 후, 날렵하게 한 번 넣고 뺐다.
동시에 찰칵, 작은 소리가 들리고 동 자물쇠는 바로 열렸다.
눈여겨보던 육역이 담담하게 물었다.
“자물쇠 따는 기술도 양정만에게 배운 건가?”
“이건 아니에요.”
금하가 재빨리 대장 대신 분명히 설명했다.
“일전 감옥에 죄수가 있었어요.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죠. 그는 가진 돈도 없는데, 또 술을 좋아했어요. 하루가 멀다고 제게 술을 사달라고 하기에, 그의 열쇠 따는 기술과 교환한 거죠. 저는 기술은 많을수록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술을 사줬어요. 반년을 배웠는데, 후에 다 배우지 못하고, 그가 참수당했어요.”
말을 하는 한편 금하는 문을 밀어 만든 작은 틈으로 몸을 빗겨 안으로 들어갔다.
육역도 들어온 후, 그녀는 다시 문을 잘 닫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말투에 슬픔이 다소 느껴졌다.
그 죄수를 애석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 배우지 못함을 애석해하는 것인지 육역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창밖의 달빛에 기대 그녀를 바라봤다. 달빛 때문인가. 어딘가 씁쓸한 모습은 평소 천방지축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어둠 속,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듯하자 육역은 곧장 시선을 돌려 집 안의 광경을 훑어보았다.
바로 맞은편에는 붉은 옻칠을 한 장방형 탁자가 있었고, 위에는 텅 빈 옻칠 쟁반이 놓여 있었다. 긴 탁자 뒤로는 궁궐 인물이 그려진 병풍이 있었는데, 모두 평범한 물건이었다.
병풍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어두컴컴한 목재 계단이 2층으로 통했다.
금하가 한 발을 내딛자, 발밑 목판이 끼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발 가도, 역시 끼끽 소리가 났다.
평소였다면, 연식이 오래된 목제 계단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밤이 깊어 조용할 때다 보니 이 소리는 확실히 귀에 거슬렸다.
이마를 찡그린 금하는 최대한 손과 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층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그녀는 계단 입구 쪽에 갑자기 한 쌍의 푸르디푸른 눈동자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녀는 온몸이 경직되고, 뻑뻑해진 눈을 깜빡거렸다.
푸르디푸른 눈동자도 눈을 깜빡거리며 똑바로 그녀를 응시했다.
금하는 깊게 숨을 쉬었다.
침착하게, 냉정하게 한 보 한 보 뒤로 물러나는데, 때마침 위로 올라오던 육역의 몸에 부딪히고 말았다.
“주현이가 위에 있는 것 같아요. 듣기론 원혼이 가장 흉악하대요. 우리 그냥 방해하지 말고 빨리, 빨리 가요!”
금하는 길을 가로막은 그의 옆을 비집고 내려가려 했다.
육역이 가든 말든 상관없이, 어차피 그녀는 도망가야 했다.
하찮은 목숨도 중요해!
그런데 시력이 금하보다 월등히 좋은 육역은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힘껏 그녀를 끌어당긴 채, 그는 한 쌍의 녹색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건 고양이야.”
“……예?”
금하는 멍해졌다.
고개를 돌려 다시 바라보지만,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입으로 쥐 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찌직…… 찌직…….”
“야옹, 야옹, 야옹.”
파란 눈이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응답했다.
웅크린 몸, 털이 보송보송한 꼬리가 달빛 안에서 흔들거렸다.
금하는 한숨을 돌렸다.
“그만 손 좀 놓지?”
육역의 말투가 좋지 않았다.
금하는 고개를 돌리고서야 자신이 무의식중에 육역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던 것을 알아차렸다.
급하게 손을 놓으니 그녀가 틀어쥐었던 장포가 엉망이 되었다.
그녀는 즉시 미안해하며 서둘러 장포를 툭툭 털며 매만졌다.
“과연 호연정기가 있군.”
육역이 비웃고는 그녀의 손을 치우고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그 고양이는 계단 난간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낯가림도 없이 야옹야옹 울며 육역의 다리 아래에서 비비적거렸다.
금하는 이제야 이 귤빛의 얼룩무늬 고양이를 자세히 보았다. 살이 쪘고, 온몸의 털은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설마 주현이가 키운 고양이일까요? 옛 주인이 생각나서 줄곧 이 집을 떠나지 않고 남았을까요?”
그녀는 위로 따라 올라와 이리저리 추측했다.
“……어쩌면 주현이의 원혼이 고양이 몸에 붙었을 수도 있어요.”
뚱보 고양이는 머리를 힘껏 들이밀어 육역의 장화 표면에 비비적거렸다.
그는 불쾌해하며 발을 들어 녀석을 한쪽으로 떼어냈다. 그러나 뚱보 고양이는 의지 굳건하게 다시 꼬물거리며 다가왔고, 한술 더 떠 본격적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보세요. 대인을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거예요.”
금하는 흡사 뚱보 고양이가 말하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미리 읽어낸 것 같았다.
“너는 왜 주현이 사건에 분명 억울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단정하나?”
육역이 갑자기 물었다.
금하는 멈칫했다.
조금 전 자신이 ‘원혼’이라 말한 것, 지금 또 ‘억울함을 풀다’라고 말한 것을 깨달았다. 비록 모두 무의식이었지만, 이미 이 사안을 대하는 자신의 견해를 드러낸 것이다.
“저는 막연한 추측일 뿐입니다.”
그녀는 어물쩍 넘어가고 싶었다.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육선문은 이렇게 사건을 조사하는군. 단지 엉터리 추측만으로는 선입관에 사로잡히게 된다.”
“저기요, 대인……!”
금하는 그의 말에 욱하며 분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