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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30)화 (30/224)

30화

맑고 서늘한 목소리가 유달리 익숙했다.

금하는 멈칫하다가 신속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돌아서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여 공손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경력 대인, 이렇게나 일찍 돌아오셨군요.”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투덜거렸다.

이 사람은 고양이야? 어떻게 걷는 데 소리 하나 없어!

육역이 그녀를 잠시 빤히 보다가 담담하게 물었다.

“일찍인가? 그럼 넌 내가 이 시각에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 여기지?”

금하는 코끝으로 이미 그의 장포 자락에 묻은 옅은 술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지극히 공손하게 억지로 웃어 보였다.

“대인이 가시는 곳을 소관이 어찌 함부로 짐작하겠습니까.”

“내가 홍초红绡(*붉은색의 얇은 비단을 뜻하며, 가무에 능한 기생의 이름으로 많이 쓰임.)의 비단 자락 아래 있지 않아, 너는 매우 실망했더냐?”

육역이 미미하게 눈썹을 들어 올렸다.

빌어먹을! 이 남자는 역시 그녀가 앞서 한 말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대인, 진정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하……, 하하…….”

금하는 억지로 웃으며 주춤주춤 뒤로 몇 보를 물러나 언제라도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날이 이미 늦었으니, 소관은 대인의 달 감상을 방해치 않겠습니다.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급하지 않다. 달빛이 마침 좋으니, 낭비할 필요가 없지.”

“예?”

“지금부터 날 따라 사건 조사를 간다.”

육역은 바로 몸을 돌렸다.

“이런 야밤에 무슨 조사를…….”

금하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육역에게 절대 공손함을 잃지 말라던 대장의 당부가 떠올랐다.

“육 대인, 소관이 할 말이 있는데, 말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해.”

“소관이 포쾌의 신분이긴 하나, 뭐라 해도 여인의 몸이죠. 그게……, 한밤중입니다. 저야 당연히 아주아주 대인을 따라 조사를 가고 싶으나, 어디까지나 고남과녀孤男寡女, 성인의 미혼 남녀이지요. 대인의 청렴한 명성에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육역이 걸음을 멈추고는 옆으로 돌아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진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되었다.”

잠시 후, 그는 뜻밖에도 물러섰다.

이렇게 좋은 수가 될 줄은 생각지 못한 금하는 한순간 멍했다. 그러나 바로 빙글빙글 웃으며 공수를 했다.

“그럼 소관은 물러가겠습니다.”

말이 끝나고, 그녀가 막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양 포두에게 나를 따르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군.”

육역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뒤에서 온화하게 얘기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금하가 걸음을 멈췄다.

대장은 지금 다리의 고질병이 도져서 걷는 것조차 불편하다.

바야흐로 휴식이 필요할 때인데, 야밤에 어떻게 다시 그를 따라 사건을 조사하러 갈 수 있나. 그러나 만약 육역이 말하면, 대장도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아, 이 자식 진짜 얄밉네!

그녀는 분노하며 생각했다.

그녀는 즉시 몸을 돌려 머리와 눈을 내리깔고 공손한 모양새를 갖췄다.

“대인께서 상관없으시면, 그래도 소관이 가지요.”

“성인의 미혼남녀, 좀 그렇지 않나?”

육역이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내 평판에 해가 될 테고.”

“헤헤, 방금 그건 소관의 우스갯소리에요. 대인께서 절대 안심치 마시라는 것이죠.”

금하는 이를 악문 채 본심과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조정을 위해 일을 하는 이상, 남녀구별이 없습니다. 대인께서는 기풍에 위엄이 있으셔서, 보자마자 여색에 좌우되지 않는 진정한 군자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코, 감히 쓸데없는 말을 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향이 하나 타기 전 그때, 넌 내가 혈기왕성하여 마음이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또 어디 있는지도 모를 거라 하였지?”

육역이 담담하게 말했다.

금하는 잠시 멍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억지로 웃었다.

“……대인 정말 농담 잘하신다니까요. 대인이 어찌 그런 사람이시겠어요. 분명히 잘못 들으신 겁니다!”

“내가 여색에 동요되지 않는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니지.”

육역이 그녀를 비스듬히 곁눈질했다.

“단지 너 같은 이는 흥미가 없을 뿐이야.”

“…….”

육역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그녀가 소매 속에 반쯤 숨긴 손을 바짝 말아쥐는 것을 빤히 보았다. 그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지고 깊어졌다. 금하는 알 수 없는 찰나였다.

육역이 재빠르게 돌아서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안 가나?”

금하는 급하게 그를 따라나섰다.

관역을 나와 왼쪽으로 돌고, 다시 조용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육역의 뒤를 따르던 금하는 의심의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야심한 밤에 그가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얼룩얼룩 검은 칠을 한 나무문 앞에서 육역은 걸음을 멈췄다. 그가 사방 주변을 둘러보며 살폈다.

“분명 이곳이군.”

“여긴 어느 저택의 옆문인가 봅니다?”

금하가 달빛에 의지해 문 위의 동으로 만든 문고리를 살폈다. 윗면에 얇게 발렸던 회록색의 동은 녹이 슬었다.

“……여기는 사람이 거의 오가질 않는군요.”

그녀가 말을 하는 사이, 옷자락만이 가볍게 빙그르르 도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육역은 이미 높은 담으로 뛰어올랐다.

금하가 머리를 들자, 달빛에 비친 그의 수려하고 꼿꼿한 옆얼굴이 보였다.

평소의 얼음처럼 차디찬 모습과는 조금은 달라 보였다.

“올라와.”

금하는 멈칫하다가, 목청을 가다듬고, 고개를 든 채 설득했다.

“대인, 우리는 관가 사람입니다. 남몰래 개인의 저택을 침범하는 이런 도둑 같은 짓은 그래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육역은 조금 인내심을 잃었다. 그는 금하 모르게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는 주현이가 생전에 살던 곳이다.”

“아…….”

금하는 문득 모든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어 말했다.

“그럼 차라리 내일 아침이 되어 세상이 태평하고 맑아지길 기다리는 것이…….”

“넌 경공이 너무 부족하여 올라올 수 없는 건가?”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이에 금하가 대답했다.

“……소관의 경공이 부족하진 않고요. 그저 이 담장이 아주 조금 높을 뿐이죠.”

그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흘끔 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돌아서 조용히 소리도 없이 담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주위는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금하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잠시 기다렸다. 간간이 벌레가 한두 번 울뿐 다른 움직임은 들리지 않았다.

짐작건대 육역은 그녀가 그다지 쓸모가 없어졌다 여겨 여기에 버린 것이다.

잘됐네, 돌아가 잠을 잘 수 있어!

“일이 없으시면, 소관은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금하가 억눌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에서 육역이 듣거나, 듣지 않거나 상관없었다. 당연히 가장 좋은 건 듣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막 발을 옮기려 하자마자, 옆쪽의 검은 칠을 한 나무문이 삐꺽 소리를 내며 열렸다.

육역이 표정 없는 얼굴로 문 안에 서 있었다.

“이십 년 전, 양정만의 경공은 금의위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었지. 그런데 그가 데려온 제자가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진정 생각도 못 했다.”

금하는 원래 몇 마디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되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장은 예전에 금의위에서 위풍당당하셨죠?”

육역이 그녀를 가볍게 훑었다.

“예전 일을 그가 지금껏 너희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나?”

예전 일에 대해, 양정만은 줄곧 깊이 감춰왔다.

눈가와 미간의 주름은 칼로 그은 것처럼 깊어 그는 결코 젊은 시절이 없던 사람 같았다.

“이십 년 전, 그때는 대인도 어리셨을 텐데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런 것은 아버님께서 말씀해 주신 건가요?”

금하는 일전 육역이 대장과 얘기하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마치 놓쳤던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육역이 그녀를 바라보며 눈썹을 미미하게 치켜올렸다.

“너는 아무리 그래도 포쾌인데, 설마 지금껏 의심해본 적이 없던가?”

“대인 아버님도 대장을 아셨군요?”

금하가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그가 네게만 숨긴 건가, 아니면 양악에게도 함께 숨겨온 건가?”

육역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어 물었다.

“대인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데요? 무얼 말씀하셨어요?”

“…….”

육역은 기어이 말을 멈췄다. 금하를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이번 대화는 문제가 많았다. 누구도 대답은 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말만 하고 있었다.

“내가 네게 묻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알아요, 알아. 대인께서 먼저 말씀해 보세요. 근데, 대인 아버님은 대장을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금하는 호기심이 가득 차서 어디가 잘못된 지 전혀 느끼지도 못한 채 또 물었다.

“대장은 그때 어떤 직책이셨어요? 대인보다 높으셨어요? 위엄이 대단하셨죠?”

더는 그녀와 말하고 싶지 않아 육역은 매우 단호하게 돌아서 걸어갔다.

“저기요! 대인, 저기요! ……흥, 말 안 하려면, 그만두라지.”

중얼거리며 따라가던 금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계급이 당신보다 높았겠지! 체면 잃을까 봐 알려 주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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