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금하가 하는 말을 듣고는 양악도 다시 회상해보더니,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가 매우 비슷해요. 키가 큰 거며, 손발이 긴 거며.”
“넌 생김이 경성 안 어느 가게 제빵사 닮았다고 하지 않았어?”
금하가 일부러 그를 비웃었다.
“됐다, 됐어.”
양정만이 어두운 얼굴로 금하를 보았다.
“그 밤 그는 얼굴을 가렸다. 그런 그를 너는 확정할 수 있느냐?”
“체격과 키, 말하는 사투리로요. 그리고 또 그의 왼쪽 눈썹꼬리에 잘 드러나진 않는 작은 흉터가 있어요.”
금하는 매우 확신했다.
“그가 쌍둥이 형제가 없는 한 확실하죠. 있다 해도, 눈썹꼬리조차 정말 똑같은 곳을 부딪쳐야 해요.”
금하의 말을 들고, 양정만은 한참 침묵했다. 그런 후 일어나서 그들 둘에게 말했다.
“가자, 우리 오안방을 한번 가보자꾸나.”
“오안방 가서 뭐하시게요?”
금하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배마두拜码头하러 간다.”
배마두란 신임이 유경험자나 연장자를 방문하여 인사하는 일종의 의례를 이르는 것이었다.
양정만이 비틀거리자 양악이 급히 손을 뻗어 그를 부축했다.
“아버지, 다리 병 다시 도지셨죠?”
“지장 없다.”
양정만이 몸을 지탱했다.
“우리는 바로 가야 한다. 이 일은 절대 미뤄선 안 돼.”
금하와 양악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알아볼 수 있었으니, 육역도 대략 알아볼 수 있었을 게다. 게다가 운하 수리비용 호송건을 더해, 육역은 아마 오안방의 골칫거리를 머지않아 찾아낼 게야. 사백리와 나는 한창 알고 지내던 사이지. 그래도 내가 가서 한 마디쯤은 알려야겠다.”
“사소가 육역에게 저리 크게 당했잖아요. 아마 사백리는 진작 알았을 테죠. 그 상황에 우리가 가서 알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금하는 목덜미의 옅어진 딱지를 어루만지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들 부자 사이의 골은 매우 깊지. 거기다 그날 밤 사소는 복면을 하고 있었어. 그건 그가 이 일을 사백리에게 알리려 했던 건 아니라는 의미다.”
양정만은 피곤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어쨌든 한 번은 가야 한다. 사백리가 알면 어쩔 수 없고, 만약 모른다면, 대비하게 해야지.”
“아버지, 그런데 이일을 만일 육역이 알면, 우리를 걸고넘어지지 않을까요?”
양악이 걱정스레 말했다.
금하가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역신은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사람을 해할 때 특히 음침하고 독해요.”
“나는 옛 친구를 방문하는 것일 뿐, 그는 잘못된 걸 찾아낼 수는 없다. 그저…….”
양정만은 잠시 멈췄고, 다시 말하지 않았다. 절뚝거리며 바깥으로 나갔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
금하와 양악은 알기 어렵다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급한 걸음으로 함께 양정만이 나간 곳을 쫓아갔다.
* * *
연한 자색의 실로 짠 비단옷, 여의如意 문양의 옥조구(조구绦钩 허리띠를 묶게 할 수 있는 고리), 흰 비단으로 만든 버선에 검은 가죽 장화.
장화는 티끌 하나 묻지 않았고, 비단 버선은 눈같이 희었다. 거기에 값비싼 옥조구를 더하고, 새로 맞춘 반듯한 장포를 입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은 한 가닥의 수염도 남지 않게 깨끗하게 깎았으니, 만약 그의 곁에 상관희가 없었다면, 금하는 방금 눈앞의 교자에서 내린 이 사람이 바로 사소라는 것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뻔했다.
사소는 사 씨의 저택 앞에서 그들을 또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여, 그 또한 한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뒤이어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낯선 손님이 있는 것도 나쁘진 않다.
사소는 즉시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양숙! 왜 들어가지 않으세요?”
양정만이 미소를 지었다.
“노복이 이미 알리러 가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네.”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양숙을 문 앞에 서서 기다리시게 할 수 있어요.”
사소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중에 제가 그들을 교육하겠습니다!”
양정만이 급히 말했다.
“조카, 서두르지 마시게. 난 첫 방문이니, 원래 이렇게 해야지. 그들을 탓할 순 없어.”
금하가 옆에서 빙그레 웃으며 끼어들었다.
“소방주께서 옷을 싹 다 갈아입으셨네요. 진정 풍채가 훌륭하셔서, 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요.”
사소는 그녀의 말을 대충 그러려니 하며 듣고 있었다. 금하가 자신이 새로이 해 입은 옷차림을 얘기하는 거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살짝 멍하니 듣다가, 그는 또 문득 그녀의 말 속에 뼈가 있음을 깨달았다. 경계의 눈빛이 되어 바라보는데, 금하의 웃을 듯 말 듯 한 두 눈과 딱 마주쳤다.
그럴 리가.
그날은 밤이었고, 자신은 얼굴도 가렸다. 그녀가 분명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소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마음은 안절부절 불안해 여러 번 그녀를 흘끔대고 말았다.
옆에서 상관희가 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그녀의 시선도 금하에게 향했다.
사소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상관희에게도 자신이 배에서 사수죽을 구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었다고 대략 말했을 뿐, 금하를 납치했다는 등의 세세한 얘기까지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상관희는 한순간 두 사람 사이의 기이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문 안쪽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검은 옻칠한 대문이 활짝 열렸다.
부드럽고 매혹적인 침향이 스민 비단 담비 외투를 걸친 긴 수염의 노인이 큰 걸음으로 맞으러 달려 나왔다.
그는 바로 양정만을 향했고, 큰 종이 울리는 것처럼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양형, 양형! 몇 년을 기다렸는데, 마침내 이렇게 오셨군요!”
양정만이 미소를 머금고 공수하며 예를 행했다.
사백리는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제가 양형을 강남으로 오라 청했는데, 오지 않았죠. 저는 양형이 다시 재기할 거라고만 여겼는데, 지금…… 이게 무슨 사서 고생입니까.”
양정만이 웃었다.
“나는 늙어서 쓸모가 없어졌지. 여기 내 아들 양악과 저 여자아이는 금하라네. 사건이 있으면 얘들 둘이 처리를 해.”
금하와 양악이 재빨리 단정하게 사백리를 향해 예를 행했다.
“형님 아들…….”
사백리가 손을 뻗어 양악의 두툼하고 실한 어깨를 힘주어 두드렸다.
“눈 깜짝할 새 십몇 년이 되어 모두 이렇게 컸군요. 아마 내 아들과 비슷하게 크겠구나…….”
그가 말을 잠시 멈췄다. 더는 계속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
그들 뒤편에 서 있던 사소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사백리의 등이 돌연 뻣뻣해져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소는 어색하게 장대처럼 서 있었다.
아버지의 반응은 그를 헛갈리게 했다. 대체 그를 못 보았다는 건가, 아니면 그를 전혀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인가?
상관희가 가볍게 사소를 쿡 찔러 사소는 다시 한번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저…… 돌아왔습니다.”
사백리가 그제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은 지극히 평정을 유지했으나, 거칠어지는 호흡은 제어하기 힘들었다.
그는 사소를 뚫어지게 보며,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입을 열면 스스로 자제하기 힘들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3년이었다. 꼬박 3년.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서로 얼굴 한 번 못 본 것이.
사소는 진즉 양주로 돌아와 있었으니, 사백리도 그의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이 부자 둘은 모두 천성적으로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사소는 양보하려 하지 않았고, 사백리는 억지로 참으며 기어이 아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여기 귀한 손님이 오신 걸 못 보았느냐? 얼른 와 인사 올리거라.”
한참이 지난 후,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양정만을 향해서는 가까스로 웃으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버릇이 없더니…….”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백리의 목소리에는 이미 흐느낌이 섞였다. 두 눈은 가눌 수 없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양정만이 하하 웃으며 사백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이런 건 자네를 닮았군! 자네가 고분고분한 성격이었으면, 어떻게 이 가업을 이어갈 수 있겠나!”
대략 마음을 진정한 사백리가 또 금하를 바라보았다. 그가 주저하며 말했다.
“혹시 이 여자아이가 바로… 바로…….”
“자네 기억 못 하나?”
양정만이 웃었다.
“얘가 소아霄儿와 싸워서 함께 강에 떨어졌었지. 아직 기억하지?”
“기억해요! 기억합니다!”
사백리가 하하 크게 웃었다.
“환장하겠네. 정말 너였어?”
문득 모든 것을 깨달은 사소가 그녀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 질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금하도 상당히 놀랐고, 그러면서도 여자라고 지고 싶지는 않았다.
“뭐? 제기랄, 어째서 너야!”
“흠!”
양정만은 입을 가리고 연거푸 기침 소리를 내며 금하에게 아가씨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뜻을 전했다.
사백리는 더욱 흉금 없이 웃었다.
“보십시오. 이 아이들은 여전히 예전과 같습니다. 만나니 조금도 낯설지 않은 것을요. 자자자, 우리 모두 안으로 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