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선배님, 외람되지만, 또 한 가지 여쭈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육역이 말했다.
“경력 대인 말씀하십시오.”
“선배님은 오안방 방주 사백리와 어떤 인연이 있으십니까? 사소는 왜 선배님을 향해 큰절을 올렸습니까?”
육역은 오늘의 그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사소 그 거칠고 버릇없는 자가 갑자기 양정만에게는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분명 양정만은 사 씨 일가에 아주 큰 은정恩情을 베풀었을 터였다.
양정만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십여 년 전이지요. 그때 사백리는 아직 보잘것없는 표사일 뿐이었고, 다른 이를 대신하여 옥 불상 한 존尊을 호송하였습니다. 그 옥 불상은 값이 좀 나갔고, 경성에서 잃어버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요. 당시에 어찌 기회와 인연이 맞아 마침 제가 불상을 찾게 되었고, 그의 위급함을 해결해 준 셈이 되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
육역이 이어서 물었다.
“선배님은 그때 금의위셨습니까?”
양정만이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금하와 양악은 모두 매우 놀랐다.
“대장이 금의위셨어요? 그런데 지금 어떻게…….”
“아버지…….”
손을 살짝 들어 올려 양정만은 두 사람이 계속 묻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간결하게 말했다.
“입 다물어라!”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육역도 조금 놀랐다. 그는 방금까지 양악조차도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 전前 금의위 천백호는 어떤 원인 때문인지 모르나, 옛일을 철저히 덮어버리고 싶은 듯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더는 언급하기를 꺼렸다.
“선배님은 이 몇 년 경성에 계셨는데……, 사백리가 설마 몰랐습니까?”
사백리는 이미 한 방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오안방은 강남 일대에 상당히 명성을 떨쳤다. 만약 양정만이 금의위에서 나와 지금과 같이 초라해진 것을 알았다면, 이론적으로 말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 리 없었다.
양정만이 담담히 웃었다.
“그가 일찍이 청한 적이 있었으나, 저는 북방의 음식에 입맛이 길들어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말에 금하와 양악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으나, 여전히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생각건대, 그는 당연히 자신만의 기개가 있어, 사백리에게 의탁하길 원치 않은 것이다.
육역은 더는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주현이는 오안방에게 운하 수리자금의 운송을 부탁했습니다.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뒤로는 그들과 교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소방주의 성미가 실로 성급하더군요. 선배님은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십니까?”
“저는 그들과 거의 만난 적이 없어, 안다고 할 수도 없지요. 다만, 제가 듣기로 3년 전, 원래는 사백리가 사소의 혼인 후, 그에게 방주의 지위를 넘기려 했답니다. 하지만 사소가 무슨 일인지 혼인 전 가출했다지요. 사백리의 화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가 누구와 혼인하려 했어요?”
금하가 호기심이 가득해 물었다.
“바로 오늘 너희들도 본 그 상관당주, 상관희다.”
양정만이 이어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 상관원룡과 사백리는 의형제를 맺었지. 그녀와 사소는 동문수학한 사이에 죽마고우였고, 두 사람은 정혼했었다. 사소의 가출 후, 상관희는 직접 사백리를 찾아가 파혼했지. 누구는 그녀가 파혼한 것이 사소가 혼인하기를 꺼려 딴 곳으로 도망쳤다는 오명을 쓰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그녀가 진즉 다른 이를 마음에 두었다고도 하지.”
“3년 전은…….”
육역이 주사옥의 말을 회상했다.
“그녀가 강녕의 동가 수채를 도발한 바로 그 해군요.”
“동가의 수채와 싸운 것은 파혼 후의 일입니다. 그 후에 그녀는 주작당주의 자리를 이어받았지요.”
금하는 턱을 괴고, 회상했다.
“제가 봤을 때, 사소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상당히 좋았어요. 말할 때마다 소방주라 했죠. 참, 그녀는 급할 때 어째서 그를 ‘넷째’라고 불러요?”
“그 둘은 동문수학했다. 서열을 논하면, 사소의 항렬이 네 번째고, 그녀는 그의 둘째 사저(师姐)란다.”
* * *
갈대가 가득한 늪지는 더없이 넓고 아득했다. 작디작은 검푸른 물새가 안개비를 뚫고 날아다녔다. 때로는 높이 날고, 때로는 맹렬히 갈대 사이를 헤집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둥지 안의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에게 먹이를 먹였다.
“아니, 난 안 돌아가!”
큰 고함이 마구 들렸다. 선봉(*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띠 따위로 엮어 배 위에 덮은 것, 또는 그런 배.)에 앉아 쉬던 물새가 놀라 날아올랐다.
객실 내, 상관희는 매우 유감스럽다는 표정으로 사소를 바라보았다.
“네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 일, 나는 널 도울 수 없어.”
“누나는…… 정말 의리가 없네.”
“내가 의리 없는 게 아니야. 이 일은 어르신께서 승낙해야 할 수 있지,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
사소는 의혹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누나는 당주예요. 이까짓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나 속이는 거 아니지?”
“넌 이것도 이까짓 일이라고 하는구나. 금의위가 건드릴 만한 곳이야?”
상관희는 고개를 저으며 차를 따랐고, 그에게 잔을 밀어줬다.
“어르신이 작년에 이미 뜻을 밝히셨어. 관가와는 각자의 구역을 지켜 서로 범하지 않겠다고.”
사소는 잠시 멍했다가, 찻잔을 받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거칠게 숨을 쉬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내가 직접 처리할게. 어쨌든 나는 그를 꼭 구해올 거야.”
상관희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 안의 구조를 너는 전혀 알지 못하잖아. 지금은 또 상처 입은 몸이고. 어떻게 하려고?”
“나는…….”
사소는 고민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어쨌든 방법이 있겠지.”
배의 선봉을 때리는 촘촘하고 급박한 빗줄기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상관희는 조용하게 고개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작년 겨울부터, 어르신 몸이 그리 좋지 않으신데…….”
이 말에 사소가 빠르게 시선을 치켜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에는 담담한 근심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말도 안 돼. 나는 계속 소식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아버지 병이 났다는 얘긴 못 들었어.”
“어르신은 강하셔야 하잖아. 밖으로 어떻게 조금이라도 새나가게 할 수 있겠어.”
상관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주를 맡든 안 맡든, 네가 돌아와야 우리는 다시 의논할 수 있어. 어르신은 연세가 많으셔. 몇 년을 이렇게 기다리실 수 있을까.”
사소는 짙은 눈썹을 바짝 일그러뜨린 채 초조함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상관희도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또한, 권하지도 않았다. 내내 빗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근심에 빠져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사소는 사납게 몸을 일으켰다.
“좋아! 내가 누나랑 돌아갈게! 아버지가 죽이시든 살리시든, 본좌가 모두 감수하겠어!”
그가 결국 받아들이고서야 상관희도 일어섰다.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자. 가기 전에 너부터 정리 좀 해야겠다. 먼저 수염 다 깎고, 다시 옷도 갈아입어. 넌 손발이 모두 길어서 옷가게에 만들어 놓은 옷은 분명 안 맞아. 다시 고쳐야 할 거야.”
“누나, 이건 우리 아버지를 보러 가자는 거야, 아니면 날 선보게 하려는 거야?
* * *
등불을 켤 무렵, 비는 어느새 멎었다.
양주지부는 대리사 좌사승 유 상좌와 금의위 경력 육역을 위해 여독을 푸는 술자리를 마련했고, 저녁 무렵, 관교官轿(*옛날 관리가 타던 가마.)로 두 사람을 마중 왔다. 이번에는 육역도 더는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저 끈질긴 망령 붙은 역신님께서 드디어 쉴 수 있게 해주는구나!
금하는 몸을 숙이고 위층의 창 뒤에 몸을 숙인 채 창문 틈으로 관교가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서야 느긋하게 두 팔로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비 온 후의 밤바람이 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바람에는 옅은 꽃향이 실려 와, 실로 사람의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대장! 또 한 가지가 있는데요. 성이 육인 그분이 여기 있어서 제가 감히 말을 못 했어요.”
그녀가 양정만을 향해 돌아섰다.
“오안방의 소방주가 바로 그 밤 저를 납치한 복면인이에요.”
“뭐? 그라고!”
양정만의 안색이 갑자기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