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5)화 (25/224)

25화

금하는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구레나룻을 주시했다.

육역은 아주 잠시 멈칫했다가 매우 빠르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안방의 소방주셨군요. 미처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이따위 짓 좀 하지 말지. 본좌는 당신네 관가 사람들과 왕래하는 거 싫어해!”

구레나룻은 육역에게 알 수 없는 어떤 분노를 품은 듯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쇠망치로 돌판을 깨는 것처럼 무뚝뚝했다.

그러나 육역의 얼굴에는 일말의 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온화하게 물었다.

“이렇게 관가 사람들과의 왕래를 싫어하는데, 어찌하여 오안방은 주현이를 대신해 운하 수리자금을 호송했습니까?”

“본좌가 하는 일을 당신네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해?”

구레나룻은 매우 난폭한 모습으로 계속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소방주.”

상관희는 구레나룻과 관가 사람의 충돌을 꺼린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소방주의 체면도 충분히 살렸다.

“육 경력께서 처음 오셔서, 아마 틀림없이 오해가 있으실 거야. 이 일은 나중에 내가 조 통판通判(*관직 이름. 주의 장관 아래.)에게 부탁할 테니…….”

그녀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구레나룻이 큰 손짓으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 거칠고 굵은 눈썹이 높디높게 치켜올라갔다.

“저쪽이 우리 구역에 쳐들어왔는데, 오해라니!”

“진짜 오해입니다. 오해…….”

주 사옥이 재빨리 해명했다.

“저흰 원래 무연고 공동묘지에 시신 검시를 갔다가 밥때가 지나서 가까운 곳에 밥 먹으러 온 겁니다.”

그러나 구레나룻은 주 사옥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육역 한 사람을 죽어라고 노려볼 뿐이었다.

“아마도 밥 먹는다는 건 구실이고, 실상은 우리 방을 조사하려는 거겠지!”

“아닙니다, 아닙니다. 정말로 아닙니다.”

주 사옥은 하도 급해서 혀가 다 꼬일 지경이었다.

“이 일, 이 일은 모두 제 탓입니다.”

그는 대체 이 소방주란 사람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또 무엇 때문에 그들을 한사코 곤란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주위는 방 소속의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어쩌면 안전하게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상관희도 무엇 때문에 구레나룻이 기어코 육역을 걸고 넘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소방주이고, 사람들 앞에서 그의 체면을 깎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완곡한 어조로 말했다.

“소방주, 우리에겐 ‘사리’라는 것이 있어. 어떤 오해가 있으면, 안으로 들어가 차라도 한잔하자. 말로 설명 못 할 것은 없어.”

“흥! 내가 이 자와 무슨 친분이 있어서? 안 마셔.”

구레나룻이 계속 육역을 노려보며 거리낌 없이 말했다.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일이야? 화끈하게 얘기나 해 보슈.”

육역이 담담하게 말했다.

“소방주는 어떤 말을 듣고 싶으십니까?”

“본좌가 듣고 싶다면, 당신이 그대로 얘기하나?”

구레나룻의 눈썹이 높이 높이 치켜올라갔다. 그의 눈 속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내가 당신한테 ‘본좌께서 들어줄 테니, 두 번쯤 소리 질러 봐라’, 하면 기꺼이 할 거야?”

“넷째야!”

끝내 상관희가 입을 열어 그를 크게 꾸짖었다.

필경 금의위에게 밉보이면, 그리 재미는 없을 터였다. 하물며 상대는 육역이었다.

이때였다. 양정만이 절뚝거리며 식당에서 나와 구레나룻 앞까지 쭉 걸어왔다. 온화한 웃음을 띤 얼굴로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자네, 소소小霄인가?”

구레나룻이 순간 멍해졌다. 영문 모르는 눈빛으로 눈앞의 늙은이를 노려봤다.

“자네 어릴 땐 어머니를 똑 빼닮았는데, 지금은 수염이 있어선가 자네 아버지를 매우 닮았어.”

양정만이 웃었다.

“자네 아버님 건강은 괜찮으신가?”

구레나룻, 바로 사백리의 아들이자 오안방의 소방주인 사소谢霄가 얼떨떨해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 그쪽이 어떻게 내가 우리 어머니 닮은 걸 아시오?”

“어르신께서는……?”

상관희도 참지 못해 물었다.

양정만이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내 성은 양이네. 자네 아버님이 아직은 표사镖师(*표국의 호송원.)일 적에 알게 되었지. 자네들은 아마 날 기억 못 할 게야.”

“혹시 양숙杨叔……? 아버지 대신 옥으로 된 불상 되찾으셨던 양숙이시군요!”

사소가 재차 양정만의 다리를 확인했다. 문득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정중하게 예를 차렸다.

“조카가 예를 갖추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제 기억으로는 아버지께서 저를 데리고 경성으로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늘 아저씨 덕을 많이 입으셨고,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목숨을 보전치 못하셨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숙, 조카의 절을 받으십시오!”

소방주의 신분인 그에게 이 절 한 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이어 곁에 있던 상관희와 주위에 있던 방의 사람들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양정만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육역은 속으로 조용하게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 옥불상은 어떤 사연이지? 그리고 양정만은 어떻게 사백리를 구했기에, 사소가 이렇게 그를 존경할 수 있지?

이 일은 양정만이 금의위에 있을 때의 일인가, 아니면, 육선문에 들어간 후의 일일까?

* * *

양주성 내, 관역官驿(*역참에 마련된 숙소.)의 주방.

옥란화, 치자꽃, 그리고 옥잠화의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잎을 한 장 한 장씩 떼어내고 감초 우린 물로 반죽한 밀가루 반죽에 담갔다가 기름에 넣어 살짝 튀긴다.

그다음 마지막으로 대나무 쟁반에 잘 놓는다.

이렇게 하면, 한 줄기 맑고 은은한 향이 콧속을 파고들고, 바삭한 식감에 맛이 좋은 간식이 되었다.

다른 한쪽 화로에서는 명전차明前茶(*청명절 전에 딴 부드러운 잎으로 만든 녹차.)도 끓고 있었다.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생선 눈 같은 물거품이 올라왔다.

양악은 쟁반에 찻주전자와 간식을 담아 관역의 후원으로 가져갔다. 후원 정자에는 육역이 양정만이 방금 막 다 쓴 검시 격목을 살펴보고 있었다.

양정만은 옆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있는 금하는 주현이의 묘에서 주워온 향낭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작은 칼로 향낭의 실을 끄집어내 향낭의 안과 밖을 뒤집어 버렸다.

문득 그녀가 냄새를 맡고는 벌떡 일어났다. 쟁반에서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이렇게 빨리 다 만들었어!”

“아버지, 경력 대인, 드셔보십시오.”

양악은 말을 하는 한편 금하를 한 발 걷어찼다.

“……망할 도련님아, 불 땔 때는 널 찾을 수도 없더라. 빨리 차나 따라!”

“이 꽃 대부분은 내가 따준 거라는 거 잊지 마라.”

금하는 한 번 걷어차 주고서야, 그를 도와 마실 차를 모두 따랐다.

그들이 교외에서 돌아오던 길, 양악은 길 양편에 활짝 핀 꽃들이 많은 것을 보았다.

연하고 하얀 것이 향기도 분분하여 사람의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는 금하를 끌고 와 꽃잎을 많이 따게 했고, 돌아와 바삭바삭 튀긴 간식을 만들었다.

검시 격목을 다 확인한 육역이 젓가락을 들어 한 조각 맛을 보았다. 입에 넣으면 바삭하게 부서지고 음미하니 입안 가득 잔향이 남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드님이 신경을 많이 쓰는군요. 선배님 복이 많으십니다.”

양정만이 금하에게 받은 찻잔을 건넸다.

“어리숙한 아들이 본업에서 벗어난 일들을 잘하니, 대인께 부끄럽습니다. 하아야, 향낭에 대해 말해 보거라. 단서가 있느냐?”

“음…….”

금하는 튀긴 꽃송이를 눈이 빠지게 보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앉았다. 향낭을 들고는 정색했다.

“이 향낭의 바늘땀은 촘촘해요. 바느질 기법으로 평수, 채수, 조수를 썼는데, 그중 조수의 난이도가 가장 높고, 가장 정교하죠. 이 사람은 필시 여자들이 하는 일에 익숙한 이에요. 뜯어보니, 안에는 난초 꽃잎 말고도 이게 있었어요!”

그녀는 붉은 실로 세밀하게 잘 감긴 한 가닥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집었다.

“이 위에 묻은 머릿기름에는 쪽으로 만든 검푸른 물감인 청대青黛가 첨가되었어요. 염색 효과를 내죠. 이 아가씨는, 아, 열에 아홉의 확률로 아가씨인데요. 이 아가씨는…….”

그녀는 잠시 말을 쉬었다. 자못 슬퍼하고 낙담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병을 앓고 있는 몸일 거예요. 또 남들이 알아보길 바라지 않았어요. 이 원단은 정낭자포丁娘子布(*명대에 천을 잘 짜던 이의 이름.)로 원래 강남에서 나오는 것이고, 드문 것은 아니에요.”

“이 향낭은 옆에 있던 사람이 떨어뜨린 건 아닐까?”

양악이 물었다.

“공교롭게도 마침 우리가 주운 것에 불과하고.”

“색과 광택으로 봐서, 향낭이 땅에 묻힌 건 5일을 넘기지 않았어. 만약 전에 비라도 내렸다면, 3일을 못 넘겼을 테고. 그런데 주현이는 7일 전 매장됐지. 거기다 주현이 시신이 입고 있는 중의(*제복 안에 입던 옷.)는 공교롭게도 연보라색의 정낭자 천이야. 내가 보기에 바늘땀이 이 향낭과 동일한 사람의 솜씨였어.”

금하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한마디 칭찬을 덧붙였다.

“……이 아가씨의 수놓는 솜씨는 정말 좋아. 옷도 참 잘 만들고.”

“아마 예쁘게 생겼을 거야.”

양악이 알아서 차를 마셨다.

“그래서 주현이는 일부러 가족을 데려오지 않았고.”

양정만이 분부했다.

“너희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 반드시 이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주현이와의 관계가 이렇게 가까우니, 그녀는 분명 단서를 갖고 있을 게다.”

“알겠습니다.”

금하가 재빨리 대답하고는 젓가락을 들어 튀긴 꽃송이를 집었다. 그녀는 연달아 몇 조각을 입속에 밀어 넣었다.

육역이 몸을 기울여 그 가는 머리털 한 가닥을 집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털은 늘었고 누르스름한 빛이 돌았고, 그 끝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졌다.

확실히 이 머리카락의 주인 몸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는 입을 크게 벌려 먹고 있는 금하를 흘끔 보았다.

검시할 때는 그녀가 이래저래 선뜻 내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신의 옷까지도 이만큼 철저히 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육역의 시선이 다시 금하에게 향했다. 눈매가 가늘어지고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든 금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버릇처럼 그를 향해 생글생글 웃었다. 무심히 마주쳤다는 듯 그는 고개를 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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