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유모帷帽(*휘장이 달린 모자.)에 달린 성글게 짠 긴 천이 허리까지 내려와 얼굴은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그저 허리춤에 수수하고 질박한 칼 한 자루를 매달고 있다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이 여자가 지나가면, 주변 사람들이 분분히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향해 공수하며 예를 올렸다. 심지어 공경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저 이가 바로 오안방의 주작당주, 상관희입니다. 듣기론 무당파를 스승으로 모셨다지요. 그리고 쌍도에 일가견이 있어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주사옥이 가까이 와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라고만 보지 마십시오. 지독한 성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3년 전 강녕江宁의 동가董家 수채水寨(*물가에 방비용으로 세운 울타리, 보루. 근거지를 이름.)에 홀로 찾아가서는 결국 수채를 오안방으로 병합시켰지요.”
* * *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동안, 상관희도 육역의 존재를 인식했다.
검붉은 빛, 회청색과 옅은 구름 등 주변 모두 어둡고 가라앉은 색채 가운데, 그가 입은 진홍색의 비어복은 사람의 눈길을 상당히 끌었다. 사실 시선을 끌지 않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그녀는 살짝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옆 사람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금의위가 여기 있느냐? 누가 문제를 일으켰는가?”
말은 뒤로 갈수록 어조가 다소 무거워졌다.
“……분명 아닐 겁니다. 제가 바로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수행원이 나는 듯이 말에서 내려 알아본 후에 돌아와 보고했다.
“그들은 식당에 밥 먹으러 왔을 뿐 다른 이상행동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군.”
상관희의 눈동자가 유모의 가볍고 얇은 천 너머로 육역을 살폈다. 동시에 식당 안 금하 등의 사람도 주시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말에서 내렸고, 곧장 그들 방향으로 다가왔다.
“대장, 밖에 조금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요. 제가 나가 볼게요.”
금하는 바깥이 조금 전보다 상당히 조용해진 것을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그녀는 만두를 입에 물고 밖으로 뛰어나갔고, 상관희가 이제 막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주위의 소상인과 심부름꾼들은 소리도 내지 않고, 숨조차 쉬지 않았다.
“상관당주, 오랜만입니다. 근래 평안하시죠?”
주 사옥이 조금의 소홀함도 없이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공수하며 맞이했다. 다정다감하게 웃어 보였다.
상관희 역시 공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저희야 생계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지요. 관원 나리의 보살핌으로 밥벌이는 하고 있습니다. 기와가 있어 지붕이 되어 가리니, 바로 좋은 시절입니다.”
그녀의 말은 타인의 덕을 본다는 뜻이었다. 주사옥이 싱글싱글 웃었다.
“노방주老帮主의 건강은 괜찮으시죠? 제가 원래는 댁으로 가서 안부를 여쭙는 게 마땅한 것이나 공무가 바쁘군요. 아쉽게도 몸을 뺄 수가 없습니다.”
“사옥 대인의 염려를 제가 꼭 방주께 전하겠습니다.”
상관희의 눈빛이 육역을 향했다. 그녀가 가볍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 관원 나리는 낯선 분이신데…….”
주사옥이 재빠르게 말했다.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경성에서 오신 금의위 경력 대인 육역, 육 경력이시고……. 대인, 상관희, 오안방 주작당의 당주십니다.”
육역의 눈빛이 성글고 얇은 천 아래의 용모를 예리하게 훑고, 가늠했다. 잠시 후에야 공수하며 말했다.
“일찍이 존함을 들었습니다.”
금의위 최고지휘사인 아버지 육병의 덕으로, 육역의 관직은 비록 높지 않으나 이름은 오히려 크게 알려졌다. 상관희 또한 그에 대해 당연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미소를 지었다.
“두루 문무를 겸비하셨고, 청출어람이라는 육 경력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들었지요. 이번 강남에는 어떤 공무로 오셨는지요?”
“육 경력께서는 이번에 주현이 사건으로 오셨습니다. 십만 냥 운하 수리자금은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여 참으로 저희들 걱정이 많습니다.”
육역이 아직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주 사옥이 그 대신 먼저 대답했다.
이왕 말이 여기까지 나온바, 육역이 직접 물었다.
“귀방에서 운하 수리자금을 강남까지 호송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소인의 방에서 호송을 책임졌습니다. 하지만 은자는 이미 창고에 입고하여 점검하였고, 인수인계가 종료되었죠.”
여기까지 말하고는 상관희는 손을 들어 유모의 얇은 천을 걷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가 드러났다. 옻칠한 듯한 새카만 두 눈이 육역을 주시했고, 입매가 미미하게 들렸다. 감출 수 없는 굳건함이 드러났다.
“육 경력께서는 설마 저희를 의심하십니까?”
육역은 웃을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보고 있던 주 사옥은 양측이 충돌할까 두려워져 바로 이어 말했다.
“그럴 리가요. 당연히 아니시죠…….”
이때, 육역의 뒤에 서 있던 금하는 마침내 상관희의 모습을 엿보게 됐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칭찬의 말로 끼어들었다.
“언니, 엄청 예쁘게 생기셨어요. 게다가 쌍도도 할 줄 알고. 정말로 재능과 미모를 완벽하게 겸비하셨네요.”
비록 금하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상관희는 그래도 그녀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분위기도 이로 인해 누그러들었다.
“아직 방에 할 일이 남았습니다. 제가 함께하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그녀가 육역을 보고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웃었다.
“경력 대인께서 하루빨리 이 사건을 해결하시고, 저희 같은 평민에게 태평천하를 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보겠습니다.”
상관희는 재빨리 돌아서 나루터로 향했다. 얇은 천이 보슬비가 내리는 사이로 팔랑거렸다.
육역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그녀의 말 속에 든 비아냥거림을 알아들어 담담히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성가시게 끼어든 금하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깡충깡충 뛰어 양정만의 탁자 쪽으로 돌아간 뒤였다.
육역은 가늘어진 눈매로 그 뒷모습을 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대장, 대장도 상관 당주 보셨어요?”
금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당의 대나무 창문으로 모습을 보인 그녀는 상관희의 뒷모습을 조금은 부럽게 바라보며 탄식했다.
“일찍 알았으면 무슨 포쾌 같은 거 안 하고, 당당한 당주 같은 거나 하는 건데. 정말 위엄 있어!”
양정만이 고개를 저었다.
“저이는 혼자 몸으로 강녕의 동가 수채를 접수할 수 있었다. 네가 가능하더냐?”
“그렇게 대단해! 정말 몰라봤어요.”
금하는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양악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덕’으로 사람을 복종하게 할 수 있잖아.”
“음, 도련님은 재덕을 겸비했지. 뭐야. 인정 안 해?”
금하는 양악에게 바짝 다가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양악은 천성적으로 간지럼을 타지 않는다. 어떻게 찔러도 얼굴이 태연하니, 정말 재미가 없었다.
“대양, 네가 나보다 나은 점은 눈이 바르고 마음이 맑다는 거지. 어쩌면 사람들이 널 마음에 들어 해서 넌 강남 어느 집 데릴사위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안 돼. 내 마누라는 절대 드세선 안 돼.”
양악이 계속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온유하고, 어질고 총명한 걸 원해. 일도 할 수 있어야 해. 내가 밥할 때, 그녀는 불을 때는 거지…….”
“너는 밥하고, 그녀는 불 때고, 때 되면 나는 식탁에 앉았다가 먹으면 되겠다.”
금하가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고, 실눈을 뜨며 웃었다.
“진짜 좋네, 훌륭해!”
양악은 비스듬히 그녀를 흘겨보며 싫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 얘기에 넌 왜 또 껴?”
“미색을 알게 되면, 인생의 중요한 의리를 잊는 거냐. 네가 아내를 얻으면, 나는 네 집에 가서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없는 거구나.”
금하가 그에게 눈총을 주고는 연이어 만두를 먹었다.
“만두소가 양고기야. 이 소는 정말 부드러워. 대양이 만든 만두보다 낫네. 대장, 하나 드셔보세…….”
말을 하는 사이, 무심코 대나무 창을 스쳤던 그녀의 시선이 돌연 굳었다.
창밖, 식당과는 자욱한 안개를 사이에 둔 부두에 상당히 큰 야항선夜航船(*밤에 항행하는 배.) 한 척이 정박해 있다. 뱃머리에는 오안방의 어응기鱼鹰旗가 꽂혀 있어 매우 눈에 띄었다.
상관희가 그 앞 삼판선(*항구 안에서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는 중국식의 작은 배.)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구레나룻을 기른 남자도 있었다.
그는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몸집이 매우 우람하고 튼실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댄 채 무언가 얘기 중이다.
반쯤 남은 만두를 입에 물고, 금하는 씹는 것도 잊은 채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그 구레나룻의 남자를 주시했다. 얼굴은 온통 무슨 생각에 잠긴듯했다.
구레나룻의 남자는 상관희와 매우 잘 아는 것이 분명했다. 얘기 도중,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너울 달린 모자를 걷어버렸고, 손으로 돌리며 갖고 놀았다. 상관희도 화를 내지 않았다.
양악이 금하의 눈빛을 따라 같은 곳을 바라봤다.
“여전히 저 사람이 부러우냐?”
“쉿, 떠들지 마.”
금하는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몇 차례 만두를 씹었지만, 두 눈은 여전히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상관희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 구레나룻의 남자는 식당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아래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뜻밖에 이쪽을 향해 곧장 다가오는 것이 먼빛으로 보였다.
“예전에는 말이야. 내가 입고 있는 이 포쾌복이 사람들한테 미움 사기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금의위 비어복이 우리보다 더 미움을 사고 관심을 끈다는 걸 지금서 알았다. 대양, 너 저 구레나룻 잔뜩 난 사람 말야. 유난히 눈에 익은 거 모르겠어?”
금하가 입술을 비죽 내밀어 가리켰다. 양악이 실눈을 뜨고 세심히 바라봤다.
“……키가 크고, 구레나룻이 있고……, 경성 동쪽 과자가게의 제빵사 좀 닮았네.”
“시력하고는!”
금하가 야유를 날렸다.
이때, 구레나룻의 사람은 이미 큰 걸음으로 식당 앞까지 와서는 곧바로 육역의 앞에 섰다. 그의 말투는 좋지 않았다.
“경성에서 온 금의위 경력, 맞소?”
육역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 돌려 주 사옥을 바라봤다. 뜻은 매우 명백했다.
이 사람은 누구지?
그러나 주 사옥도 이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운하 수리비용은 우리 방이 한 푼도 모자라지 않게 은자 금고로 호송했소. 지금 당신들 스스로 은자를 잃어버려 놓고, 설마 우리 방에 덮어씌우려는 게요?”
구레나룻의 사람은 기세가 매우 거셌다. 안쪽에 앉아 있던 양정만까지도 젓가락을 멈추고는 관심을 두고 바라봤다.
“소방주少帮主!”
상관희가 그 뒤를 따라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소방주. 화낼 필요 없어. 그들도 아마 관례에 따라 물었을 뿐, 다른 뜻은 없을 거야.”
소방주!
그는 뜻밖에 오안방의 소방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