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21)화 (21/224)

21화

북교에는 새싹이 막 돋아나고 있다.

연한 것이 마치 세밀하게 옥으로 조각해 놓은 것 같았고, 제비는 낮게 날아올라 허공을 배회했다.

인근에는 산장이 없고, 멀리 봐도 마을은 없었다.

금하가 상당히 실망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니, 확실히 밥 먹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양악을 찌르며 가서 대장에게 물어보라고 눈짓했다.

“아버지, 전 왜 여기가 연고 없는 공동묘지 같을까요?”

양악이 양정만에게 가까이 가 물었다.

양정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주현이가 여기에 묻혔다. 경력 대인이 묘를 파내 다시 검시하시고자 해.”

“당연히 검시항목에 있어야 하죠.”

“경력 대인은 일을 함에 있어 엄격하시지. 직접 검시하고자 하신다.”

“그런데…… 이제 곧 밥 먹을 때인데요……. 대장도 시장하시죠?”

금하는 다소 실망한 면이 있었다. 좋은 술과 좋은 안주는 없다 해도, 하필 지금 무덤 파고 시신을 파낼 필요는 없잖아. 차이가 실로 지나치게 크지 않나.

양정만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 너희 둘도 가능한 한 배고프다고 하지 마라. 묘를 판다는 건 정말 고된 일이지.”

금하는 대장에게 감히 말대답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양악과 소곤거렸다.

“저 사람은 당당한 금의위 경력인데, 왜 수행 하나 데려오지 않았을까. 일부러 우리 부려먹으려고 그런 거지?”

양악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역 노릇 이렇게 오랫동안 하면서, 나는 두 글자를 배웠다. 너랑 함께 격려나 하련다.”

“어떤 두 글자?”

“인명认命, 운명으로 받아들이다.”

다 들은 금하가 그에게 눈을 흘겼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아.”

휘장 친 가마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불안정했다.

육역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은 담담했다. 또한 길고 매끈한 손가락은 줄곧 가마의 창가에 가볍게 걸쳐 있었다. 가마의 발이 가벼이 나풀거렸고, 밖의 움직이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계속 나아가던 가마가 한 그루 늙은 버드나무 옆에 이르자, 길을 인도하던 사옥이 몸을 돌려 말에서 내렸다. 가마꾼에게 가마를 멈추라 하고, 그는 휘장 친 가마를 향해 공손하게 보고를 올렸다.

“경력 대인, 주현이의 묘가 바로 이곳입니다.”

가마꾼이 재빨리 가마의 발을 들어 올렸다. 다른 가마꾼은 이미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육역은 느릿한 걸음으로 나와 그 새로 만들어진 묘를 둘러보았다. 쓸데없는 말은 전혀 없었다.

“파라.”

그는 누구에게 파라고 하는 건지 말하지 않았다.

금하는 어리둥절해 하며, 아마도 이곳의 사옥에게 파라고 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양정만이 이미 주현이의 묘로 발길을 옮겼다. 그를 본 금하와 양악이 재빨리 그의 앞을 따라잡았다.

“아버지, 제가 할게요.”

양악이 급히 말했다.

“대장, 이런 궂은일은 우리가 해요. 대장은 지켜보시면 됩니다.”

그녀는 사옥의 손에서 삽을 받았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양악과 한쪽씩 맡아 한 삽 한 삽 파 내려갔다.

흙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날리니, 옆 사람은 모두 한 장 밖으로 나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연고 없는 공동묘지에까지 밀려왔다는 것은 일을 아무렇게나 처리를 했다는 것일 수 있다.

묻은 것이 깊을 리 없고, 관이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대부분은 낡은 돗자리로 둘둘 말아 묻고 만다.

이 두 사람은 일하는 모양새가 매우 거칠었다. 어느 삽질이 주현이의 머리를 반으로 쪼갤지, 육역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 무언가 말을 하려 하는데, 금하의 ‘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뭔가 있어요!”

말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물건을 집어 들어 코끝에 대고는 냄새를 맡았다. 또 호기심 어린 얼굴로 자세히 살폈다.

“향 주머니인데요…….”

육역이 큰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받아 들고 살폈다.

연보라색의 향 주머니로 윗면에는 비단 실로 한 쌍의 나란한 연꽃을 수놓았다. 상당히 아름다워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바느질한 게 정말 산뜻한데요.”

금하가 고개를 내밀고 혀를 차며 말했다.

“시장에 가져가면, 적어도 이천 전 이상으로 팔 수 있어요.”

“계속 파거라. 시신에 상처 입히지 않도록 주의해.”

육역이 그녀에게 담담하게 분부했다. 그런 후, 향낭을 가지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는 양정만의 옆으로 가서 그에게 전하며 말했다.

“양 선배님이 이 향낭을 좀 보시죠.”

양정만이 등을 굽혀 공손하게 향낭을 받았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보고 또 보고, 다시 냄새를 맡았다.

“향기를 맡으니, 안에 든 것은 분명 난초 꽃잎입니다. 여인이 쓰는 물건 같은데…….”

그가 고개를 들고, 향낭을 돌려주며 육역에게 말했다.

“제가 알기로 주현이는 양주에 가족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제삼자가 여기에 떨어뜨린 것은 아닐까요?”

육역이 머리를 끄덕이며 향낭을 소매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때 퉁퉁퉁 하는 둔탁한 울림이 들렸다. 쇠삽이 관에 부딪혀 나는 소리였다.

“다 팠어요. 뜯을까요?”

금하가 쇠삽을 짚은 채 고함을 질렀다.

그녀는 너무도 배가 고파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육역이 머리를 들어 하늘빛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뜯어라.”

관 속의 주현이는 매장된 지 이미 수일이 지났다. 시신은 필시 부패하기 시작했을 터였다.

금하는 속으로 이 운수 사나운 공무를 원망하는 한편, 품속에서 천을 꺼내 입과 코를 가리고 잘 감쌌다. 그리고서야 삽으로 관 뚜껑을 들어 올렸다.

양악도 그녀와 함께 삽으로 관과 뚜껑이 이어진 곳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하고 동시에 힘을 쓰니, 관 뚜껑이 끽끽 소리를 냈다.

관을 고정했던 몇 개의 못이 억지로 꺾이고, 관의 틈이 벌어졌다. 그곳에서 악취가 쏟아졌다.

“안은 아마 다 썩었을 거예요. 그래도…… 검사하나요?”

그녀가 육역에게 물었다.

육역은 냉막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당연히. 빨리 열어라.”

금하는 멀지 않은 곳의 양정만을 흘끔 보았다. 끝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구덩이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양악과 연달아 한 삽씩 팠고, 관에 박았던 못을 전부 다 비틀어 뺐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관 뚜껑을 한쪽으로 치웠다.

진동하는 악취 속, 관복 입은 남자의 시신 한 구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 검푸른 얼굴이 어두침침한 하늘을 향해있었다.

금하가 고개를 내밀어 보니, 구더기가 시신의 노출된 손 위를 기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손은 이미 썩어 몇 개의 구멍이 생겨있었다.

그녀의 경험상, 이때쯤 되면 시신은 전혀 옮길 수가 없다.

몸이 완전히 부패해서 옮기려고 하면, 핏물이 밖으로 콸콸 쏟아져 나온다. 아마도 팔다리, 그리고 눈알 같은 것이 전부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육역을 바라봤다. 그는 높은 곳에서 관 안의 시신을 훑어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조금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 * *

육역은 일찍이 주현이를 본 적이 있었다.

3년 전, 호부에서 그는 주현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주현이는 호부급사중, 정9품이었다. 비록 언관言官(*감독과 간언을 하는 직책.)이라 해도, 과묵하고 말수가 적은 이름 없는 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육역이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것은 주현이의 신발 때문이었다.

그때는 엄동설한이었다. 눈이 온 후엔 관원들은 장화, 녹피화 혹은 양피화를 신는다. 아무리 못하다 해도 솜이 든 신발은 신었다.

그런데 주현이는 헌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고, 가장자리마저 터져있었다. 눈 녹은 물에 발이 많이 젖었을 터인데, 그는 아무 말 없이 화롯가에서 말리고 있었다.

경성의 관원이 궁색하다는 것은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관원 대다수는 부수입을 챙길 방법이 있었고, 때문에 주현이처럼 가난한 이는 오히려 정말 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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