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금하는 금하대로 비수가 목덜미에 바짝 닿자 이미 위기가 닥쳤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팔꿈치에 힘을 모아 뒤로 내리칠 준비를 했고, 동시에 양악은 사수죽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금하를 구할 기회를 노렸다.
모든 것이 순간 동시에 일어났다.
금하는 뒤를 향해 팔꿈치를 힘껏 내리쳤다.
사수죽은 금하를 구절편이 서로 맞붙은 쪽을 향해 냅다 던졌다.
양악은 사수죽을 향해 온몸으로 돌진했다.
육역은 들고 있던 구절편 잔해로 허공 중에 긴 호선을 그어 복면인의 인후를 똑바로 공격해 들어갔다.
이 상황을 어찌 ‘난장판’이라는 글자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음 순간, 사수죽은 복부를 연거푸 얻어맞았다.
그가 고통의 신음을 내뱉기도 전, 양악이 달려들어 그를 안고 갑판 위로 굴렀다. 그리고 구절편의 공격 범위 안으로 던져진 금하는 복면인의 앞을 정확히 가렸다.
이건!
이미 구절편을 휘두른 육역의 눈에 섬뜩한 한기가 번뜩였으나, 기세를 거둬들이기에는…… 늦었다.
금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냉기가 극에 달한 은색의 빛이 자신의 목덜미를 내리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달빛조차 얼어붙은 듯했다.
나 죽는구나!
머릿속이 하얗게 바랜 금하가 유일하게 한 생각이었다.
“금하야!”
양악은 기절할 듯 놀라 성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마치 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휙 쓸고 간 것 같은 섬뜩함.
금하는 매우 느린 동작으로 목을 더듬었다. 미끄럽고 끈적한 것이 느껴져 바라보니, 그녀의 손은 선혈로 가득했다.
“빨리 가!”
사수죽이 복면인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는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로 양악을 사납게 밀치며 육역에게 덤벼들어 죽자사자 다리에 매달렸다. 그래도 복면인이 망설이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빨리 가! 어르신께 면목 없게 하지 마!”
복면인은 이제 마음을 정한 듯이 육역을 향해 구절편을 흩뿌리며 사납게 소리쳤다.
“본좌는 다시 꼭 돌아와 네놈 천한 목숨을 가져가겠어!”
복면인은 그대로 몸을 솟구쳐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이어 육역도 쫓아가려 했지만, 사수죽이 그의 두 다리를 죽어라고 끌어안고 있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뒤로 그는 강물로 뛰어든 물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금하야, 금하야…… 금하…….”
양악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금하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목덜미가 온통 피로 물든 것을 보고 당황하여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너, 너…… 괜, 괜찮아?”
금하는 목덜미의 상처를 손으로 만질 뿐 전혀 볼 수 없었다. 놀란 마음이 가라앉자마자, 통증이 시작되어 이를 악물고 양악을 바라봤다.
“나도 몰라. 죽으려나?”
“아, 아니야.”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던 육역은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고, 장포는 사수죽 때문에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인내심이 다 한 그가 목소리를 높여 양악을 불렀다.
“여기 이놈 끌고 가서 가둬…… 원 포쾌는 찰과상일 뿐인데, 무슨 호들갑이야.”
이런 상황이 되었으니, 양악은 육역의 지시를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또한, 무심한 그의 말에 분노했다.
“애 죽일 뻔했잖습니까!”
육역의 어조는 냉랭했다.
“하나, 원 포쾌는 사수죽에게 별안간 떠밀려서 저 도적 대신 구절편을 막았지. 둘, 그때 나는 이미 내력을 거뒀고, 원 포쾌의 상처는 나뭇가지로 그은 것보다 심하지 않을 거다. 셋, 사수죽은 부상 입은 몸이고, 원 포쾌의 능력으로는 아무리 납치되었다고 해도 도망칠 수 있어야 했다. 원 포쾌는 왜 시간을 끌며 도망치지 않았지?”
양악은 육역의 말에 멍하니 굳었다.
“내가 만약 원 포쾌가 도적과 한패라고 생각했다면, 그 즉시 죽여도 과하지 않았어.”
육역의 어조는 불쾌함이 분명히 드러났다.
“원 포쾌는 지금 약간 다쳤을 뿐이고, 나는 이미 사정을 봐줬다.”
한순간 얼이 빠져있던 금하가 기어이 참지 못해 나섰다.
“제가…… 그들과 한패라고 미리 단정해서 말한 건 대인이셨잖아요?”
육역은 바보라도 보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고, 이내 양악을 향한 그의 어조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얼른 끌고 가 가둬!”
양악은 이제 더는 항명할 수 없어 사수죽을 부축해 선실 쪽으로 걸어갔다.
복면인이 이미 도주한 것을 확인하였으니, 사수죽은 크게 마음을 놓았다. 더구나 다리의 상처는 벌어져 선혈이 온 다리를 적셨고, 더는 반항할 힘도 없어 그는 양악에게 의지해 안으로 끌려갔다.
질색하며 옷자락을 털어낸 육역이 선실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한쪽에 멍하니 있던 금하는 기어이 무언가를 확고히 깨닫자마자 동시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제 알았어요. 대인이 아까 절 그들과 한패라고 말씀하신 건 제가 죽든 살든 신경 쓸 필요 없을 그럴듯한 명분을 위해서였군요!”
육역이 걸음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틀었다. 눈빛은 날카로왔지만,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모두 관부 사람들이다. 말도 너무 솔직한 건 좋지 않아.”
“그…….”
열이 뻗친 금하는 목덜미 상처에 바로 통증이 일어 황급히 손으로 감쌌다.
육역은 가슴에서 은근히 전해지는 통증이 조금 전 자신이 내력을 너무 급히 거둔 탓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운기로 통증을 지그시 누른 그가 곁눈질로 금하를 힐끗 보았다.
“……일을 성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망치고 있군.”
육역은 그녀와 얘기하는 것이 귀찮다는 듯 더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선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금하는 홀로 갑판에 남았다. 목을 삐딱하게 기울인 그녀는 손으로 상처를 감싼 채 가슴 가득한 울분과 지독하게 차오르는 화를 꾹꾹 참고 있었다.
* * *
다음날, 참선은 여전히 남쪽으로 향했다.
떠오른 태양은 갑판을 비추고, 큰 솔을 든 사공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갑판 위의 혈흔을 깨끗이 씻어 냈다.
금하가 머무는 협소한 선실에 떠돌던 곰팡내는 지금 전부 달콤하고 진한 향기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탁자 위에 놓인 투박한 접시에는 가느다랗게 길고 투명한 설탕 실로 말아 튀긴 황금빛 고구마 조각이 놓였다. 보고 있으면 속에서 환희가 저절로 생기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금하는 기뻐 어쩔 줄 모르며 한 조각을 집었고, 볼이 빵빵해지도록 입안 가득 넣고는 진정 즐거워했다.
“저녁밥도 나는 이걸 더 먹을 거야…… 약속한 거다…….”
금하는 입안이 가득 차 발음도 똑똑지 못했다. 팔로 머리를 괸 양악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밥도 다 안 먹어 놓고, 다음 밥을 생각해?”
“그만큼 네 요리 솜씨가 좋아서 도련님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야.”
금하는 또 한 점을 집어서 반짝반짝하는 금사를 감상했다. 그런 후 한 입 베어 물자 입안은 향기로운 달콤함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먹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일어나 문을 연 양악이 공손하게 말했다.
“아버지.”
금하도 양정만을 보고 재빨리 일어났고, 젓가락 놓기가 아쉬워 양정만을 불렀다.
“대장, 대양이 발사산우拔丝山芋(*고구마맛탕과 비슷한 음식.)를 했는데 드셨어요? 대장도 드셔보세요.”
양정만은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속절없이 한숨만 깊게 내쉰 그는 확실히 할 말이 있어 보였다.
그때의 금하는 젓가락에 고구마 한 조각이 여전히 꽂혀 있어 이건 먹는 것도 아니요, 안 먹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양악은 의자가 부족하여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친 덴 어떠하냐?”
양정만이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벌써 아물기 시작했어요.”
금하가 재빨리 대답했다.
“하지만 저 육역은 정말 밉살스러워요. 시작부터 우리에게 호된 맛을 확실하게 보여줬네요.”
양정만이 그녀를 주시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이리된 이상, 너희는 언행을 더욱 삼가야 한다.”
“대장은 왜 그쪽 편만 드세요?”
금하는 대장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젓가락의 고구마를 한 입 베어물었다.
옆에 있던 양악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 어젯밤 그 상황을 아버지는 못 보셨잖아요. 그는 금하가 그쪽으로 넘어진 것을 보고도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사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 그가 만약 마음을 먹었다면, 금하가 목숨을 지킬 수 있었겠느냐? 그건 너희를 겁주는 것에 불과해. 너는 그가 순간 내력을 거뒀다고 말했지. 그렇게 하는 건 진정 내상을 입기 쉬운 일이다.”
양정만은 잠깐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내가 너희들에게 우선 얘기하마. 육 대인께는 반드시 공손해야 해. 사건을 어떻게 조사하든지 간에, 예의는 꼭 지키거라. 확실히 알았느냐?”
양정만의 의지가 이러하니, 금하와 양악도 더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여 답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