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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8)화 (18/224)

18화

갑판 위로는 물같이 맑은 은색의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육역은 그곳 뱃전에 기대어 그를 등진 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뚝 솟은 자태는 빼어났고, 화려한 비단의 제복 위에는 금실로 수놓은 비어(*발 넷, 뿔 두 개, 꼬리와 지느러미가 있는 상상 속 동물.)가 달빛을 받아 잔잔한 빛을 내며 밤빛 속에 일렁거렸다.

“움직이는 게 너무 느리군.”

육역이 여유롭게 돌아섰다. 복면인을 훑어보는 얼굴에는 귀찮음이 묻어났다.

정신을 다시 바짝 차린 복면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큼성큼 걸어 앞으로 나왔다.

“네가 사 형님의 다리를 못 쓰게 한 놈이냐?”

육역은 복면인의 말은 전혀 들은 척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복면인이 허리춤에 찬 구절편에 꽂혀 있었다.

“구절편은 공격은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지. 다른 무기는 안 가져왔나?”

“이 몸께선 빈손이라도 널 박살 낼 수 있어!”

순간 몇 걸음 내달린 복면인이 하늘로 솟구쳐 육역의 얼굴을 공격해 들어갔다.

강한 바람이 매섭게 일어난 즉시, 육역은 머리를 기울여 피했다. 그러나 복면인의 이 날려차기가 빈 초식이었고, 바로 뒤이어 복면인의 구절편이 혀를 날름거리는 은빛 뱀처럼 튀어나온 것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복면인이 몸을 휘감았던 구절편을 팔로 내뻗었다. 그 즉시 쨍한 소리가 정신없이 뒤엉키고, 날은 차가운 빛을 뿌렸다. 그 끝에서 구절편은 육역의 3대 요혈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 구절편은 정련된 강철로 만든 것으로 모두 13절로 구분되어 13연환으로도 불린다.

복면인이 육역의 정면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구절편은 맹렬한 춤을 시작했고 편 위의 향환(*속이 빈 금속제 고리 안쪽에 작은 철구가 들어 흔들리면 소리가 나는 악기.)은 비바람이 몰아친 것처럼 급박하게 울렸다.

육역은 무기는커녕 맨손이었으나, 얼굴에는 전혀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구절편의 초식을 따라 움직였다. 편이 소맷자락을 가볍게 스쳐 장포의 소매가 잘려나가자, 육역은 그 기회를 살려 잘린 소맷자락으로 구절편을 둘둘 감았다. 편의 본체를 단단하게 휘감은 것이다.

순간, 은색의 빛이 현저히 줄었다. 마치 달빛이 응결된 것처럼 한 줄 직선으로 사그라들었고, 이번에는 한기로 사람을 압도했다.

복면인은 구절편의 손잡이를 잡고, 소맷자락에 단단히 감긴 다른 한끝은 육역의 손에 잡혀 있었다.

마주 보고 선 두 사람 사이로 물기 머금은 밤바람이 불어 장포 자락을 날렸다. 쏴아 하는 강물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 * *

사수죽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이대로 선실에 남아 기다릴 수 없던 그가 금하의 목덜미에 칼을 댄 채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일어나. 나랑 나가!”

“형님분, 제가 말씀드리지만, 소인은 미천한 관리에 불과해요. 육역의 눈에 제 목숨은 개나 고양이보다도 가치가 없을걸요.”

금하는 사수죽이 어찌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절 납치하는 건 조금의 쓸모도 없어요. 차라리 날 놓아줘요. 내가 나가 육역의 주의를 끄는 것이 나아요.”

사수죽이 그녀의 목에 칼을 바짝 대고 크게 외쳤다.

“닥쳐!”

속으로 한숨을 내쉰 금하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다리를 절룩거렸지만, 사수죽에게 한낱 여인의 몸에 의지해 움직인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비수를 금하의 목덜미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그녀를 밀치며 밖으로 나왔다.

하.

금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의 능력으로 사수죽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도 사수죽을 도망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우선은 그가 하는 대로 두고 기회를 보아 행동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선실 입구를 나온 두 사람은 한 걸음도 걷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육역과 복면인이 구절편의 한쪽 끝을 각자 잡은 채 내력으로 싸우고 있었다. 두 개의 큰 힘이 구절편 위로 집중되어 향환은 계속해서 끼긱거리며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파파팍!

강한 소리와 함께 정제된 강철로 만든 구절편이 몇 토막으로 부러져 나갔다.

동시에 그 힘을 이기지 못한 복면인이 비틀거리며 몇 보 물러섰고, 겨우 몸을 지탱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육역은 내력을 겨룰 때부터 눈치챈 것이 있었다. 상대를 주시하던 그가 냉랭한 어조로 내뱉었다.

“너는 부상을 당했군. 지금 완강히 버티는 건 시간을 지체시키는 것에 불과해.”

“동생, 빨리 가!”

사수죽은 이때서야 복면인이 다친 것을 눈치채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천천히 돌아선 육역이 담담한 눈빛으로 사수죽과 금하를 훑어보았다. 비수가 금하의 목덜미에 놓인 것을 보았지만, 동요 한 점 없는 눈동자는 평소처럼 냉막했다.

“형님, 빨리 선미로 가요! 나는 이 자와 싸울 겁니다.”

구절편은 부러졌고, 복면인은 육역이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남은 구절편을 휘두르며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겨 사수죽을 뒤로 감쌌다. 하지만 사수죽은 육역에게 크게 당한 기억이 있어 당장 어디로 가지도 못했다.

사수죽이 육역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네놈이 다가오면 나는 이 년을 죽일 거다!”

그는 시위라도 하듯 금하의 목덜미에 비수를 더 바짝 들이밀었다.

“형님분, 조금 냉정해져 봐요.”

금하는 재빨리 좋은 말로 그를 타일렀다. 비수는 눈이 없었고, 그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미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육역이 미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별다른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는 금하에게 담담히 말했다.

“나는 너와 저들이 한패란 걸 처음부터 알아차렸지. 설마 넌 이런 것으로 나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금하는 머릿속이 윙윙거리며 울렸다. 그녀에게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한가지뿐이었다.

망했다.

이대로 누명을 쓰면 분명 대장도 연루되실 거야. 이번엔 진짜 큰일 났어.

“억울해요, 대인. 저는 정말 이들에게 납치된 거예요…….”

육역이 냉랭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더는 연극할 필요도 없지. 시간이나 절약하게 너희 셋 모두 함께 덤벼.”

“흥!”

복면인이 거듭 콧방귀를 뀌었다.

비록 육역의 능력을 안다 해도, 그의 이런 건방짐은 눈에 거슬리고도 남았다.

“여기나 신경 써.”

복면인이 구절편의 남은 부분을 손으로 가볍게 내뻗으며 쉭쉭쉭 소리를 내며 공격해 들어갔다. 육역도 쥐고 있던 반 남은 편으로 대응했다.

챙!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두 줄의 은광이 보였을 뿐이건만, 검처럼 칼처럼 서로 격돌한 곳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내가 당신이라면, 이때를 틈타 빨리 도망가겠어요!”

육역이 듣지 못하도록 금하는 잇새로 작은 소리를 짜내어 사수죽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덜미에 놓인 비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수죽은 자신의 협박이 육역을 조금도 위협하지 못함을 알았다. 그는 마음을 놓을 수도, 그렇다고 저 싸움에 도움이 될 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형제가 당하게 될까 두려워하며, 그들의 싸움을 지켜볼 뿐이었다.

오히려 곁에 있던 금하가 안타까워하며 재촉했다.

“그만 좀 보고, 도망가요. 저들이 얼마나 더 피 터지게 싸우길 기다려요? 난 당신들 형제때문에 완전히 결딴나고 있는데.”

“닥쳐!”

사수죽이 복면인을 향해 소리쳤다.

“형제, 그 자식 수법이 아주 지독해. 넌 그놈의 적수가 아니야. 나 상관 말고 빨리 가!”

사수죽의 마음과 달리 복면인은 오히려 오기를 부렸다.

“형님, 공연히 내 사기 떨어지게 이놈 기 좀 세우지 맙시다! 이건 엄숭이 키우는 개 아닙니까. 개 패는 건 내가 제일 잘해요!”

복면인이 잠깐 말하며 한눈을 파는 사이, 육역의 손에서는 강렬한 힘이 급증했다. 순간, 격렬한 초식이 뻗어왔지만, 복면인이 막아내기엔 너무도 급작스러웠다. 그의 팔이 한 줄로 길게 찢어지고,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비겁한 자식!”

복면인이 크게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그의 얼굴을 가린 흑건이 숨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

“형제 빨리 가!”

사수죽은 복면인이 상처 입은 것을 직접 보고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내 육역은 다시 공격해 들어갔고, 두 사람은 뒤엉켰다. 지금껏 기세가 상당하던 복면인도 점차 밀리는 것이 뚜렷해 그의 몸에는 핏줄기 몇 줄이 더 그어졌다.

이때, 양악이 선실 입구에서 재빨리 뛰쳐나왔다.

싸우는 소리에 다급하게 달려나온 그는 눈앞의 광경을 직접 보고는 놀라 말을 잊었다. 게다가 비수가 금하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으니 거듭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 빨리 그 애를 놔 줘. 말로 하면, 우리가 잘 들어줄게.”

양악의 마음이 급해졌다.

“대양, 난 괜찮아.”

금하는 가장 작은 몸짓으로 아래턱을 치켜올리며, 그에게 한쪽으로 비키라고 눈짓을 했다.

“우린 선미로 가야 해. 얼른 비켜.”

“어어, 그래그래.”

양악이 재빨리 옆으로 비켜서 사수죽에게 길을 내줬다.

“빨리 가!”

급할 대로 급한 것은 사수죽이건만, 그는 오히려 복면인이 육역과 맞붙어 싸우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다급해진 사수죽의 손에서 비수가 움찔했다.

그는 원래 금하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지만, 육역의 조금 전 태도가 떠올라 생각을 바꿨다.

이 어린 포쾌는 지위 낮은 하급관리일 뿐이라 정말로 죽인다 해도 육역은 눈도 깜빡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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