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7)화 (17/224)

17화

밤은 길고 길었고, 흐르는 강물은 잔잔했다.

고통 속에서 사수죽은 혼절과 깨어남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가 갇힌 이 선실은 본래 참선에서 죄수를 가둘 목적으로 설계된 감옥이었다. 철제 창살로 나눠놓은 이 세 칸의 감옥은 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애당초 그가 낮과 밤을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사수죽은 상처 입은 다리 쪽에 다시 예리한 통증이 전해지자 무의식적으로 끙끙거렸다. 그럴수록 더욱더 몸을 엄지손가락만큼 굵고 차가운 철근에 가까이 붙였는데, 이렇게 하면 고통이 조금쯤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형님, 형님.”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으…음…….”

사수죽은 힘을 다해 눈을 떠보려고 했다.

“형님! 소리 내지 말아요, 접니다.”

사수죽의 옆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들고 있던 화절자(*밤길을 걸을 때 쓰는 등불.)의 빛으로 작은 공간을 비췄다. 그는 검은 옷에 복면을 하고, 옆에는 구절편(*허리에 감거나 접어 숨길 수 있어 휴대에 편리한 채찍.)을 찼다.

복면인은 의심스러운 사수죽의 눈빛에 바로 가리개를 잡아당겨 본래 얼굴을 드러냈다.

“저예요, 형님.”

사수죽은 그의 얼굴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어떻게 온 거야?”

“이 일에 형님을 끌어들인 건 저인데, 어찌 앉아만 있어요. 게다가 형님이 금의위 조옥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달려왔습니다.”

복면인은 얼굴을 가리개로 다시 잘 덮었다. 말하는 사이에도 그의 손은 쉬지 않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철책문의 열쇠를 풀었다.

“형님, 얼른 나오세요!”

그러나 사수죽은 마음만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 다리가 부러져 걷기가 불편해. 정 깊은 형제야, 너나 빨리 가거라! 더는 날 상관치 마!”

복면인은 매우 놀라 화절자를 아래위로 움직였다.

드러난 사수죽의 왼쪽 다리는 무릎부터 아래로 겹겹이 백포로 감싸인 채 은근히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어떤 놈이 이런 악랄한 수를 쓴 겁니까? 형님을 위해 제가 복수하겠습니다.”

“넌 얼른 가. 매복 조심해. 발견되면 큰일이다!”

사수죽의 말은 다급해졌다.

“사방 다 살폈으나 매복은 없어요. 형님은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복면인이 앞뒤 가리지 않고 말했다. 그는 당장 안으로 들어가 사수죽을 등에 업고, 화절자도 껐다.

“형님, 소리 내지 마세요. 바로 갑니다.”

사수죽을 업은 복면인은 조용히 선실을 나서서 나무 사다리를 타고 위로 기어 올라갔다.

선실 중 가장 낮은 이 층은 사공이 머무는 곳으로 지금은 밤이 깊어 인기척이 없었다. 종일 일로 피곤한 사공들은 유난히 깊게 잠들었다.

비록 한 사람을 업었다 해도 복면인의 걸음은 매우 가볍고 날렵해 소리도 없이 발을 디뎠다. 그런데 그가 빠른 움직임으로 배 위쪽의 갑판에 이르렀을 때였다.

선실이 시작되는 끝쪽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여, 복면인은 상당히 놀랐다. 두렵지는 않았지만, 자신은 다친 사수죽을 업고 있었고 더는 형님을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복면인이 주위를 살폈지만, 숨을 만한 곳은 없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선실 문을 밀고는 업힌 사수죽을 재빨리 밀어 넣어야 했다.

하지만 이 선실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 * *

“쉿!”

복면인은 침상 곁으로 다가서 그 위에서 한창 비몽사몽인 사람의 목덜미에, 들고 있던 비수를 가져다 댔다.

이때 사수죽이 은근히 신음을 흘렸다. 복면인이 그를 침상에 내린 순간, 상처가 부딪힌 그는 숨이 막히고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사수죽은 이를 악물어 신음을 삼켰다.

“소리 내면 죽인다.”

복면인의 경고가 나직하게 울렸다.

침상 위에 있던 사람은 작은 창으로 들어온 달빛에 상대의 용모를 똑똑히 보았다. 동시에 복면인도 제가 위협하는 사람을 제대로 확인하고, 기막혀했다.

그는 상대가 여자일 거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이 배에 계집도 있었어?”

복면인은 지금껏 여인의 목덜미에 칼을 대는 이런 짓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바로 비수를 거둬들이려 어물쩍거렸고, 동시에 낮게 억눌린 목소리로 경고했다.

“본좌가 여자를 때리지는 않지만, 날 화나게 하지 마라. 화나면 어떻게 변할지 몰라.”

포쾌라는 직업의 본능이 발동한 금하는 복면인과 사수죽을 재빠르게 훑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말투로 탐색하듯 넌지시 물었다.

“용사, 대장부, 대협…… 갇힌 사람 빼내려고 온 거죠? 위에 생신 선물도 있는데, 그건 필요치 않아요?”

복면인이 어리둥절한 사이, 사수죽이 금하를 기억해냈다.

“이년 금의위 앞잡이야.”

“금의위 앞잡이!”

복면인의 흥 소리와 함께 비수가 다시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금하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불만스러워했다.

“그 말 정말 마음 상해요. 금의위가 육선문의 사건을 얼마나 뺏어가는지 알아요? 내가 어떻게 걔들 앞잡이가 돼요?”

“본좌 앞에서 잔머리 굴리지 마.”

복면인이 그녀의 목덜미에 칼을 바짝 더 대며 위협했다.

“구구절절 가슴에서 우러난 참된 말입니다. 대협, 나는 원래 금의위에 불만이 많았어요. 나도 사 교위를 구하고 싶었고, 그러니 사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한 거죠.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사 교위를 데리고 나가려면…….”

금하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아 말을 멈췄다.

그녀와 육역이 알게 된 시간은 매우 짧으나, 금하는 육역이 일하는 방식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한 누구라도 자기 뜻대로 뭔가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이건 그의 방식이 아닌데.

금하는 걱정스럽게 복면인을 바라보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의기군요. 나도 대협의 흥을 깨고 싶진 않지만, 선상의 매복은 걱정 안 해요?”

복면인이 짙은 눈썹을 높이 치켜 올리며 그녀를 주시했다.

“본좌를 위협하냐?”

“감히요.”

금하는 말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포쾌로 일한 지 두 해 동안, 몰래 숨어 지켜보는 매복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사수죽의 다리가 아무리 부러졌다고 해도, 가둔 곳에 지키는 이 하나 없었다?

이건 육역이 고의로 드러낸 큰 허점이지, 자만하여 제 도끼에 제 발등이 찍힌 것이 아니었다.

금하는 다시 말하지 않았으나, 복면인은 선실 입구 쪽에서 눈앞을 스쳤던 사람 그림자를 떠올리며 눈썹을 세웠다.

설마?

“넌 빨리 가! 더는 날 상관하지 마.”

사수죽의 다친 다리는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매복이 있다면, 자신이 짐이 되어 결국 두 사람 모두 도망가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형님 그만 말해요. 내가 형님 꼭 데리고 갑니다.”

복면인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결단을 내렸다.

“육역이 경성에서 자못 명성을 떨쳐서 난 진즉 그자와 싸워보고 싶었어요. 그자가 만약 우리를 막지 않으면 그는 목숨을 건질 거고, 감히 우릴 막으면 나는 그자의 다리를 분질러 형님 복수를 할 겁니다.”

“대협, 진정 배포가 크시군요!”

금하는 진심으로 그를 칭찬했다.

그러나 사수죽은 육역의 지독함을 직접 겪은지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제.”

“형님 걱정 마요. 그자는 제 적수라 할 수도 없어요. 뭐, 살짝 밀린다고 해도 난 어릴 때부터 물가에서 컸잖아요. 물에 뛰어들기만 하면, 그자가 팔 여덟 개인 나타(*중국 고대 신화 속 인물.)라 해도 날 잡을 순 없어요.”

복면인이 금하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는 비수를 사수죽에게 건넸다.

“형님, 여기서 잠깐 기다리십시오. 전 갑판으로 나가 상황을 좀 보고, 조금 후 돌아와 형님을 데려가죠.”

“제발 조심해라! 만약 매복이 있으면, 네가 여길 벗어나는 게 중요해. 나는 상관하지 마.”

사수죽이 신신당부했다.

“형님 걱정말아요.”

복면인이 선실 문을 조용히 열고 밖을 살폈다. 주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선실이 시작되는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선실의 입구를 나왔을 때였다. 복면인은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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