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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6)화 (16/224)

16화

반 시진이 지난 후, 참선은 계속 수도를 따라 운항했다.

금하와 양악은 양정만의 선실 밖에 성실하게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귀에는 억누르지 못한 고통의 신음소리가 아래쪽 선실로부터 때때로 들려왔다.

두 사람 곁을 왔다 갔다 하던 사공들은 처음에는 곁눈질로 보더니 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마지막에는 그들을 완전히 배 위의 쓸모없는 진열품처럼 여겼다.

근처에 있는 저장실 안에서는 선원 두 명이 정리를 하며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저장실 문은 꽉 닫히지 않아 말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금하의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다리가 부러졌어. 발길질 한 번으로 그렇게 됐대!”

“……다행히도 의원을 불러 붙였대. 안 그랬으면, 그 사람 다리는 못 쓰게 됐지.”

정말 의원을 불러 사수죽의 다리를 붙여줬다고?

육역 이 사람의 행동은 진정 종잡을 수가 없다.

그는 아무런 사전 조짐도 없이 사수죽의 다리를 밟아 부러뜨렸다. 아무리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확실히 잔인했다. 사수죽은 그래도 강골로 버티려는지, 다리가 부러져 그렇게 아픈데도 죽기 살기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릎에서 전해지는 은근한 통증에 금하는 참기 힘들어 몸을 움찔거렸다. 바로 그때 선실 문이 열리고 양정만이 굳은 얼굴로 안에서 나왔다.

“아버지.”

양악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대장…….”

금하는 몹시 불쌍한 얼굴로 양정만을 바라봤다.

매섭게 그들을 주시하던 양정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이런 상황이니, 두 사람은 계속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모두 육역 치사한 놈 때문이야!”

금하가 격분해 이를 갈았다. 옆에 있는 양악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목소리는 작았다.

사실 육역은 그 두 사람을 창밖에서 발견한 후, 질책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다만 양정만을 불러 예의 있게 말했을 뿐이었다.

“제자들은 왜 제 창문 아래 숨어서 엿듣고 있었을까요? 저는 일을 할 때면 언제나 공명정대한가를 자문하여, 타인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선배님께서 제게 무슨 오해나 서운한 마음이 있으실까 걱정입니다.”

양정만은 연거푸 부인하며, 자신은 내막을 잘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자들의 짓궂음에 용서를 청하며, 당연히 더욱 엄히 단속하겠다고 했다.

그 후, 금하와 양악은 일의 처음과 끝을 낱낱이 양정만에게 고해야 했다. 어떻게 물에 들어가 생신 선물을 찾고 또 어떻게 육역에게 발각되었는지부터, 생신선물을 배로 옮긴 것이며 육역과 왕방흥의 대화 등을 포함하여 조금도 빠뜨릴 수 없었다.

다 들은 양정만은 한참이나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차가운 얼굴로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너희는 이제 다 컸다. 내가 당부하는 말도 마음에 두지 말고, 다시는 나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친아들인 양악은 말할 것도 없고, 그는 금하에게도 사부이자 아버지였다.

그런 그의 말이었으니 두 사람은 그냥 있을 수가 없었으나, 뾰족한 방법도 없어 양정만의 문 앞에 얌전히 꿇어앉아 뉘우치는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 * *

둘은 이렇게 꼬박 하루를 꿇어앉아 있었다. 밥도 먹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동안 양정만은 선실을 몇 번 드나들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두 사람 누구도 섣불리 일어서지 못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날이 또 저무는 것을 바라보았다.

“대장이 이번에는 화가 단단히 나셨어.”

금하의 두 무릎은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였고, 풀조차 죽어 있었다.

“설마 우리 내일 아침까지 꿇고 있으라 하실까?”

“아마도.”

양악은 더할 수 없는 고통에 조금씩 두 다리를 움찔거리며 다행스러워했다.

“그래도 운 좋게 선상이라 깔린 게 모두 널빤지야. 돌판 정도는 되어야 아프다는 소릴 하지.”

“내 다리는 진즉에 죄다 마비됐다. 어디 꿇어도 꿇는 건 다 같아. 하, 배고파 죽겠어.”

금하는 애처롭게 탄식했다.

“그때 아침에 말야. 네가 참깨로 탕위엔 만들 거라고 했잖아. 내가 막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배의 통로 저쪽으로 사람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즉시 입을 닫은 둘은 계속 고개 숙여 참회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곁눈질로 보니 양정만이 비틀거리며 오고 있었고, 그의 옆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금의위의 비어복, 난대(*폭이 넓은 허리띠.)에 수춘도를 든 이는 바로 육역이었다.

“저들은…….”

육역은 금하 두 사람이 꿇어앉은 것을 보고는 자못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졸렬한 제자가 본데없이 경력 대인께 무례한 짓을 하였습니다.”

양정만이 말했다.

“신경 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금하와 양악은 머리를 숙이고 단정히 무릎 꿇은 채, 조금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한바탕 오해에 사소한 일일 뿐이니, 선배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들을 일어나라 하시지요. 아니면 제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육역이 말했다.

“기왕 경력 대인께서 그리 말씀하신 이상, 저도 이들을 용서하겠습니다.”

양정만이 꿇어앉은 두 사람을 향해 매섭게 말했다.

“들었으면, 일어나 경력 대인께 감사하지 않고 뭐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꿇어앉았던 금하의 두 다리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선실 벽을 짚고서 어렵사리 몸을 일으킨 후, 내키지 않았지만 대장의 얼굴을 보아 육역을 향해 웅얼거렸다.

“경력 대인의 관대함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금하는 두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질 않아 똑바로 설 수 없었다. 그녀는 쿵 하며 다시 무릎을 꿇었고, 심한 고통으로 이를 악물었다.

바라보던 육역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이런 절은 할 필요가 없지. 얼른 일어나라.”

이때 금하는 이미 속으로 그의 가문 오백 년 조상까지 거슬러 두루두루 욕을 퍼붓고 있었다. 그래도 얼굴은 공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간신히 일어나 절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양악도 순순히 일어나 육역에게 감사를 표했다. 같은 모양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며 금하를 따라갔다.

“어쩐지 대장이 말을 안 하시더라. 그 인간이 말해주길 기다리신 거구나.”

당장 먹을만한 것을 찾지 못한 금하는 홍당무를 하나 꺼내 야무지게 한 입 베어 물고는 힘을 내 와드득 씹었다.

“간사한 소인배! 분명 우리가 온종일 꿇고 있었다는 걸 알면서 겨우 나타나 하는 말이 ‘사소한 일일 뿐이다.’? 분명 우리를 작정하고 못살게 굴려는 거야.”

양악은 큰 냄비에 물을 퍼 넣으며 한숨 쉬었다.

“고마운 줄 알어. 그가 만약 내일 아침에서야 그 말을 했으면, 우린 밤새 꿇고 있어야 했어.”

맹렬하게 배가 고픈 탓에 금하는 두세 입 만에 작은 홍당무를 모두 먹어치웠다.

“이 도련님은 너무도 화가 나. 우리를 반나절이나 부려먹더니 범인은 그가 잡고, 생신 선물도 그가 얻어 놓고는 막판에 우리를 왕창 음해하다니.”

“어떤 부분은 네가 인정해야 해. 그는 관직이 우리보다 높으니, 아무리 널 마음대로 해도 그를 어쩔 방법은 없어. 게다가 그는 무공도 대단하잖아. 한 발로 기패관의 다리뼈를 부러뜨렸단다. 이 힘을 네가 따라갈 수 있어?”

양악은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기 시작하며 두 그릇의 국수를 만들려고 했다.

“넌 어째 늘 다른 사람 기만 세워줘? 그런데 탕위엔 만든다고 안 했어?”

“나는 진실을 말한 거야. 탕위엔용 가루를 못 찾겠어. 아쉬운 대로 국수나 먹자.”

금하는 부뚜막에 엎드렸다. 사수죽이 쓰러져 아파하던 표정을 떠올리고는 이모저모로 생각해 봤다.

“……그 사람 신발에 무슨 절묘한 도구라도 숨겨둔 걸 거야.”

“그만 생각하고, 빨리 불이나 때!”

양악이 그녀를 재촉해 금하는 불을 때러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생각 중이었다.

“대양, 저 생신선물을 그 사람은 어떻게 처리할 것 같아? 설마 양주까지 가져갈까?”

양악의 머리가 부뚜막 근처에서 불쑥 나왔다.

“도련님아, 상의할 게 있어.”

“말해.”

“생신선물은 잊어버려. 그가 어떻게 처리하든 우리와는 상관없다. 이 일은 우리가 관여해선 안 되고, 저 사람도 우리가 건드릴 수 없어. 아버지한테 일 보태지 마라.”

이 도리를 금하가 이해 못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머리가 이해한 것과 몸으로 행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동생의 선생님이 늘 수염을 잡고 머리를 흔들며 지이행난知易行難, ‘도리를 알기는 쉬우나 실행하기는 어렵다.’ 라고 탄식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건 틀림없이 지금 눈앞의 이런 상황일 것이다.

* * *

배의 부엌에서 제대로 먹을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양악은 양춘면 두 그릇을 만들었고, 두 사람은 허둥지둥 급하게 먹은 후 각자 선실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금하의 선실은 육역의 넓고 쾌적한 선실과는 비교할 것이 못 될 만큼 오랫동안 묵은 곰팡내가 떠다녔고, 창 또한 작고 협소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불도 켜지 않고, 옷도 입은 채 자리에 누웠다. 아릿하게 느껴지는 무릎 쪽은 마치 개미 떼가 지나가며 이로 갉는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양악의 목소리였다.

“빗장 떨어졌어. 그냥 밀고 들어와.”

문의 빗장은 어젯밤 기세 사납던 군사 둘이 떨어뜨렸다. 금하는 줍기도 귀찮아서 내일이나 다시 손보리라 생각하던 중이다.

양악이 문을 밀고 들어와 작은 약주 한 병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갖다 주라셨어. 혈액을 돌게 하고, 어혈을 풀어준대. 다리에 바르면, 내일이면 좋아질 거야.”

“아. 넌 썼어?”

“나도 있어. 게으름 피우지 말고 얼른 발라. 문도 잘 잠가라.”

“알았어.”

금하는 그의 잔소리가 싫어 손을 흔들어 그를 내보냈다. 양악은 그녀 대신 빗장을 주워 잘 맞춰서 다시 문에 끼우고는 자신도 쉬기 위해 돌아갔다.

금하는 침상에 반쯤 기대어 바짓자락을 걷어 올렸다. 약주를 손안에 따라서 두 손을 비벼 열을 내고는 상처에 발랐더니, 잠시 후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무릎 쪽에서 은근히 열이 나고 매우 편해진 것이다.

금하는 그들이 종일 무릎을 꿇고 있던 것을 양정만이 분명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사부는 육역에게 보여야 해서 마음이 약한 걸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피곤함에 쓰러진 금하였지만, 양정만이 절뚝거리며 걷는 그림자는 줄곧 그녀의 머릿속에서 흔들렸다. 깊은 잠으로 빠지기 전의 곤한 느낌 속에서도 그녀는 생각했다.

더는 대장에게 문제를 일으켜 드려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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