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육역은 조급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으며 일일이 지적해냈다.
“그래서 넌 물속으로 들어간 거다. 사실은 자신이 횡재하고 싶었지. 생신 선물 전체를 횡령하진 못하더라도, 새는 것만 주워도 충분하니까.”
어쩌면 그의 말이 맞았다. 상자 안에 물건 중, 손닿는 대로 기린호 하나만 슬쩍 집어도 집안 살림이 더는 빠듯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금하가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화를 풀려는 것 말고도 새는 것을 줍고 싶다는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속내를 들킨 금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멀뚱멀뚱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무례하게 두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대인, 고명한 견해시군요. 하지만, 소관은 가져간 것 하나 없고 상자는 모두 대인 쪽에 있습니다.”
“네 운이 확실히 좋군.”
담담한 그의 말에 금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잔뜩 분노하면서도 말은 하지 못했다.
이 도련님은 새벽 댓바람부터 물속에서 반나절을 고생했는데, 무엇도 건지질 못했어. 게다가 하마터면 당신한테 생신 선물을 횡령하려 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쓸 뻔했는데, 그러고도 운이 좋다고 하냐! 너야말로 운이 좋네, 당신 온 집안사람 운수나 대통해라!
그때 선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양악이 왕방흥과 기패관을 데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왔다.
“이이…이…이…….”
문에 들어선 왕방흥은 검은 칠을 한 8개의 장목상자가 축축하게 젖어 가지런하게 바닥에 놓인 것을 보고 놀라 말을 잊었다.
육역이 일어나 그를 향해 공수했다.
“조금 전에야 찾았습니다. 이것이 배에서 잃어버린 생신 선물이 맞습니까?”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기쁨과 놀람이 교차하여 왕방흥은 일시적으로 예의를 차리지도 못한 채 상자로 다가가 안의 생신 선물을 점검했다. 이와 동시에 육역은 손을 흔들어 금하와 양악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금하는 기어이 훌륭한 연극 한 편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반 바퀴를 돌고 와서 선실 창 아래 꿇어앉아 안쪽의 기척을 살폈다.
양악이 그녀를 향해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지만, 금하는 오히려 그를 끌어당겨 함께 벽 소리를 들었다.
선실 안, 왕방흥은 황금기물과 은제 그릇, 보석 장식품, 비단 서화 등등이 전부 그대로인 것을 확인했다. 길고 긴 한숨을 내쉰 그가 돌아서 육역에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 상자들을 어디에서 찾으셨습니까?”
“바로 귀하의 배에 있었습니다.”
“우리 배요?”
왕방흥은 의혹이 풀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상자는 배 밑의 수밀봉창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숨겼는지는 당신의 기패관에게 물어보셔야 할 겁니다.”
육역은 비록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칼처럼 예리했다. 그의 눈은 줄곧 왕방흥의 뒤쪽에 서 있는 검은 얼굴의 기패관을 보고 있었다.
왕방흥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소리쳤다.
“사수죽!”
사수죽이라고 불린 검은 얼굴의 기패관은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가슴이 불안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그는 육역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바깥의 금하는 육역이 어떻게 사수죽이 범인인 것을 알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살짝 일어나 그 기패관을 몰래 보았다.
기패관의 키는 칠 척이 넘었다. 일 년 내내 변방에 머무느라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모두 거무스름하고 거칠었고, 두 손의 관절이 굵고 거친 것은 장시간의 노동이나 무예 연습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 * *
“대인, 똑똑히 밝혀주십시오.”
짧은 경악의 순간이 지난 후, 즉시 정신이 돌아온 사수죽이 왕방흥에게 말했다.
“소관은 이 일을 전혀 모릅니다. 이건 분명 오해입니다.”
“이 상자의 밀랍은 네가 사람들에게 바르라 한 것이지?”
육역이 물었다.
“이건…… 이건 방습을 위한 겁니다.”
사수죽은 여전히 빤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랬나.”
육역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의 어조는 결코 빠르지 않았다.
“어젯밤 나는 배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여 자정쯤 갑판을 거닐었지. 네가 맞혀도 무방하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육역의 두 눈이 단단히 그를 주시했다. 사수죽은 좋지 못한 얼굴색이 되어,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와중, 왕방흥은 이미 모든 걸 알아차렸다. 그는 사수죽을 한 대 내려친 다음 매섭게 발로도 걷어찼다.
“너 이 개자식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걸 몰랐구나. 내가 하마터면 네게 죽을 뻔했어! 대장군의 생신 선물에 네가 감히 손을 대, 죽으려고 환장했지!”
사수죽은 매우 우람한 몸에 피부가 거칠고 살집이 있었다. 이 두 대를 맞았어도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화가 난 눈으로 왕방흥을 노려보았다. 피가 머리로 솟구쳐 원래의 검은 낯가죽 아래 은은하게 핏빛이 비쳤다.
“그래요. 내가 약탈했습니다. 그게 어때서요!”
사수죽은 꼿꼿하게 선 채 차고 있던 칼을 풀어 바닥으로 던졌다. 그는 두려워하는 기색 한 점없었다.
“이 일은 저 혼자 하고, 다른 이는 무관합니다. 죽이든 찢어버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너…….”
왕방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가 날 따라다닌 지 8년이 넘었지만, 돌이켜 보아도 널 푸대접한 적이 없었다. 너는 왜 이런 일로 나를 곤경에 빠뜨려?”
사수죽은 무공이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했다. 이로 인해 왕방흥의 신임을 얻었고, 그의 수하로 다년간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갑자기 또 그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 압니다. 제가 당신을 연루시킬까 봐, 구가의 앞에서 임무를 마쳤다고 보고할 수 없을까 봐 대인은 두려우실 테지요. 제 머리를 잘라 구가에게 보내십시오. 저는 집에 가족도 없으니 딱히 걱정될 것도 없고, 종일 원통해서 울분에 빠져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오히려 시원합니다.”
밖에서 사수죽이 하는 말을 듣던 금하는 슬쩍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 사람 의외로 사내대장부네.
“너는 군의 기패관이고 또 왕방흥의 신임을 얻었다. 그런데 왜 종일 원통하고 답답하지? 말해 봐라.”
둥근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육역이 큰 흥미를 느껴 물었다.
다른 때였다면, 금의위 앞에서 사수죽은 저절로 말과 행동을 조심했을 것이나, 이 순간 그는 이미 생사를 초월해 있었다. 또 많은 것을 포기하여 냉담하게 웃었다.
“나는 무식쟁이라 당신 조정 사람들이 빙빙 돌려 말하는 건 모르오. 당신들은 변방에 가서 직접 봤어야 했소. 구란도 장군이라 하나? 그가 감히 출병해? 그때 증 장군께서 어떤 맹위를 떨치셨는데, 오히려 말도 안 되게 구가한테 죽임을 당하시고…….”
“증 장군?”
바깥의 금하가 열심히 기억해내려 하자, 양악이 소리를 낮춰 그녀를 일깨워줬다.
“증선.”
* * *
증선曾铣, 자는 자중子重이다. 절강 태주 황암현 사람으로 가정 8년에 진사가 되었다.
가정 25년, 병부시랑으로 직위가 오르고, 섬서성 삼변(*정변현, 안변현, 정변현을 삼변이라 함.)의 군무를 총괄했다.
가정 27년, 구란은 증선이 전장에서 크게 패한 것을 보고하지 않고, 군수품을 가로채고, 재상 하언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모함하는 상소를 올렸다.
10월, 증선은 법에 따라 참해졌고 아내와 아들은 멀리 유배되었다. 죽을 때 집에는 남은 재산이 없었으며, 그는 유일하게 유언을 남겼다.
‘일심보국一心报国, 일심으로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다.’
“알고 보니 그가 이 생신선물을 훔친 건 증 장군을 대신한 복수였구나. 진정 의로운 데가 있어!”
낮은 소리로 감탄한 금하는 사수죽에 대한 호감이 배나 상승했다.
선내에서는 육역이 담담하게 창문 쪽을 힐끗 훑어보았다. 그가 이어서 사수죽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원래 증선의 휘하에 있었나? 이번 생신 선물 약탈은 증선 대신 분풀이를 한 것인가?”
“나는 그런 개인적 복수만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수죽은 매우 분개했다.
“구가는 적을 호랑이를 보듯 무서워하여 죽은 사람 목을 베어 공이나 가로챌 줄만 압니다. 이런 사람의 휘하에서 나는 울분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타타르인들과 통쾌하게 한판 싸우는 게 죽어도 즐거운 일이겠죠.”
듣던 왕방흥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그는 말없이 침묵했다.
바깥 금하는 입을 막고 낮게 웃으며 양악에게 귀엣말을 했다.
“어쩐지 늘 승전고를 울리더라 했다. 알고 보니 구란은 부정부패만 있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 머리를 잘라 공도 가로챘어.”
“넌 이 생신선물을 어찌 처리하려고 했더냐?”
안에서 육역이 또 물었다.
그를 바라보던 사수죽은 무시한다는 말투였다.
“내가 말한다 해도, 당신 역시 믿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