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3)화 (13/224)

13화

양악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했다.

“난 눈치 있게 굴고 싶긴 해. 하지만, 이 일을 아버지가 알게 되시면…… 넌 정말 은자 챙길 거야?”

금하는 머뭇거리며 망설였다.

“이 생신 선물들은 대장이 원래 우리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잖아. 누가 강탈하든, 누구의 손에 있던 우리한테는 모두 같아. 게다가 이 도련님이 물속에 그렇게 오래 있었건만, 고생만 죽어라 하고, 공은 하나도 없잖아. 품삯 좀 받는다고 지나친 건 아니지…… 참, 그 사람은 어떻게 물에 들어온 거야?”

양악은 이 말에 잠시 멈칫했다가, 무슨 생각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돌아서 나갔다.

“내가 방금 주방에 검은깨가 있는 걸 보았어. 탕위엔 만들어 줄게.”

“기다려!”

금하가 그를 불러 세우고, 의심의 눈빛으로 그를 관찰했다.

양악은 금하의 시선에 온몸이 불편해져 기어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쭈빗쭈빗 입을 열었다.

“네가 물에 막 들어가자마자 그가 뛰쳐나왔어. 나야 당연히 속이려 했지만…….”

“너.”

두 사람은 불안한 마음으로 제각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로 이때, 사공이 문을 두드리며, 금의위 경력 대인이 그들을 위쪽 선실로 부른다고 전했다.

“정말 우리 입을 막으려나?”

양악은 불안해졌다.

“아니면, 내가 먼저 아버지께 가서 말씀드릴게.”

“급하지 않으니 일단 가보자. 아마 뭔가 하겠지.”

그들이 위쪽 선실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는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와.”

금하와 양악이 선실로 들어가 제일 먼저 본 것은 육역이었다.

연한 자색의 일상복을 입은 그는 묶지 않은 젖은 머리를 뒤로 늘어뜨렸고, 황양목의 팔걸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미간을 찡그린 채 바닥의 상자들을 보고 있었다.

“……저거 봐. 비취 박은 은사자야!”

금하가 양악을 쿡쿡 찔러 상자를 보게 했다.

흘끔거리며 훔쳐본 양악이 금하와 낮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금사정기린호, 금앵무여지잔, 저 잔은 무게가 4, 5냥은 나가겠다.”

“아마 그러겠지.”

금하가 와, 하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두 말단 포쾌는 조금의 규율도 없이 소곤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그 소리에 눈썹을 치켜든 육역이 냉랭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주시했다.

“너희 두 사람이 몰래 물속으로 들어간 건 이 생신 선물의 횡령 때문인가?”

금하는 멈칫했다.

지금 상자는 당신 선실에 있고, 분명 당신이 이 생신 선물을 통째로 삼키려던 거 아냐. 이건 또 무슨 적반하장이야.

양악이 당황하여 급히 말했다.

“소인들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대인이 명백히 조사해주십시오. 소인들은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고자, 물속으로 들어갔을 뿐입니다.”

“양 포두는 알고 있나?”

육역이 연이어 물었다.

금하가 재빨리 말했다.

“모르십니다.”

“아십니다.”

양악이 금하와 동시에 말했다.

두 사람이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 육역은 눈썹을 위로 추어올렸다.

“아십니다.”

“모르십니다.”

두 사람은 의견을 바꿔 또다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금하는 말을 하자마자 화가 나 양악을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넌 왜 말을 바꿔? 네 눈치가 평소 이렇게 빠른 걸 본 적이 없다.

양악은 괴로워하며 계속 이마를 두드렸다.

두 사람은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었고, 이런 그들을 보는 육역의 눈빛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가 연이어 물었다.

“너희는 상자가 물속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네가 말해 봐.”

그가 가리킨 것은 양악이었다.

“……음, 음…….”

양악은 방금 육역에게 횡령이란 죄명으로 압박을 당한 터라 머리가 조금 얼떨떨했다.

“……그게 이렇습니다. 그 상자들은 윗면에 밀랍이 있었고, 아, 아니요, 바닥에 밀랍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 흔적들이…… 바로 이래서, 그 뒤로 우리가 추측하길…….”

육역이 양악의 말 전반부는 간신히 인내할 수 있었다고 해도, ‘추측’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양악에게 더는 말하지 말라고 의사를 전한 후 금하를 바라봤다.

“네가 말해.”

금하가 손을 말아쥐며 말했다.

“사실 막연한 추측입니다. 운이 이렇게 좋아 정말로 물 아래서 찾을 줄 몰랐어요.”

“그랬군.”

육역이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제 다시 추측해 봐라. 내가 너희를 상자에 담아 강 밑으로 던져버릴지, 아닐지.”

“경력 대인 정말 농담도 잘하십니다, 하하…….”

금하는 어색하게 두어 번 웃어 보였으나, 육역의 눈 속에 한기가 으스스 서린 것을 보고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과 표정은 이제 단정해졌다.

“첫째, 의식불명인 군사들은 결코 미향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몽한약을 마셨습니다. 선실에 남은 각종 흔적, 특히 신발 자국으로 보면, 그들과 가까운 사람이 한 짓이죠. 적어도 6인 이상이고, 여기에 망보던 이들은 셈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만약 상자가 배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면, 배는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어제 정박한 후 지금까지 배의 흘수선은 뚜렷한 변화가 없어요. 셋째, 선실 바닥에 가득했던 밀랍을 보아, 대량의 밀랍이 사용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방습을 위함이라면, 이렇게 많이 쓸 필요는 없었죠. 그래서 저는 상자를 물속에 넣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판단한 겁니다.”

“너는 이미 다 추측했으면서도 애써 진상을 숨겼다. 그런데도 횡령하려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육역의 어조는 느릿했다.

“왕방흥, 그리고 그의 수하들 전부 혐의가 있는 이상 저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가 당연히 곤란했습니다.”

금하가 그의 기분을 맞추며 웃었다.

“게다가 저희는 상자를 물속에 숨겼을 거라는 사실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찾은 후에 대인께 다시 말씀드리려고 생각했던 겁니다.”

육역으로선 금하의 마지막 말은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는 찻잔을 들어 올려 천천히 차를 마시며 머릿속으로는 왕방흥의 언행을 돌이켜 떠올렸다.

확실히 왕방흥의 놀람과 당황은 억지로 꾸며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옆에 있던 그 기패관, 그리고 기타 군사의 표정은…….

생신 선물 강탈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으니,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절대 군졸일 리가 없다. 군대 내에서 적어도 중간급은 되어야 신망으로 다른 사람들을 선동시켜 함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터였다.

차 한 잔을 채 다 마시지도 않아 육역의 마음속에는 이미 계획이 섰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양악을 가리켰다.

“너. 가서 왕방흥, 그리고 기패관을 오라 해.”

양악은 어리둥절했지만, 당연히 이의를 달 수 없어 재빨리 나갔다.

그들을 부른다고? 설마 육역은 생신선물을 그들에게 돌려주려는 거야?

금하는 육역이 도대체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는지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육역이 이때 다시 입을 열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너희 둘은 돌아간 후 먼저 양 포두에게 보고했고, 그 후에야 물로 들어갔어. 맞나?”

기왕 그가 다 본 이상, 금하는 반박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너희는 양 포두에게 선상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 했나?”

금하는 그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슬쩍 얼버무려 말했다.

“대략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양 포두는 선상 내부의 적이 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겠군.”

“그분은 모르세요. 전 이 추측한 내용을 사부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금하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금의위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생신선물횡령시도라는 육역이 의도를 갖고 만든 죄명을 피하고자, 금하는 차라리 모든 것을 자신이 먼저 떠맡기로 했다.

“제 한순간의 호기심으로 고집을 부려 조사하러 들어간 겁니다.”

육역의 길고 매끈한 손가락이 반들반들한 황양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고개를 약간 기울여 그녀를 보고 있던 그가 한참이 지난 후 물었다.

“넌 포쾌의 신분으로 왜 야시장에서 노점을 차렸나?”

“……그건 우리 어머니의 노점이에요. 어머니 몸이 안 좋아서 제가 도와드린 겁니다.”

금하는 그가 갑자기 왜 이 일을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육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 같군. 네 어머니가 너를 선생님 댁으로 시집 보내려 하는 것도 당연해. 꽤 많은 돈을 아낄 수 있겠지.”

“대인…… 우리가 하는 말을 엿들으셨어요?”

이런 창피한 일들을 그가 들었다고 하니, 금하는 얼굴이 온통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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