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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2)화 (12/224)

12화

금하는 그 답을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녀를 향해 똑바로 헤엄쳐 오는 육역 때문에 눈앞의 이 상황도 충분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육역의 무공은 더는 그 아버지의 아래라 할 수 없었다. 반면 금하가 쓰는 두세 가지의 권법은 겉보기만 그럴싸할 뿐 결코 그의 상대가 아니었으니, 분명 싸운다고 해도 이기지 못할 테고 도망가지 못할 것이 또한 뻔했다.

육병과 엄숭은 사이가 좋아, 따지면 육역도 ‘엄당’인 셈이었다. 구란과도 역시 한통속으로 볼 수 있기에, 당연히 그와는 진실을 얘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여 금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빠져나와야 했다.

‘육대인, 훌륭한 인재시군요. 아침 수영은 건강에 좋죠.’

금하는 속으로 몇 가지 인사치레를 생각하고는 입을 벌렸다. 하지만 입에서 공기방울만 뽀글대며 솟아 나오자 자신이 아직 물속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급히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켜 자신이 위로 가 숨을 쉬어야 한다고 알렸다. 육역의 반응은 보지 않은 채 바로 두 발을 차 위로 반쯤 떠올랐을 때, 그녀는 돌연 왼쪽 어깨가 붙들린 것을 알았다.

휘청한 금하의 몸은 마치 쇠집게에 결박당한 것처럼 거센 힘으로 끌려갔고, 육역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웁웁…… 웁…….

그녀는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그러나 미미하게 고개를 기울였을 뿐인 육역은 연극을 보는 듯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고, 잡은 손도 전혀 풀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 숨 막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기세였다.

금하는 그의 이런 모습에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이 의미가 없음을 자각했다. 그녀 또한 움직임을 멈추고는 그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손을 푼 육역이 금하가 방금 열려고 시도했던 선판 옆으로 헤엄쳐갔다. 그곳을 직접 자세히 보더니 갑자기 주먹을 내리쳐 금하를 순간 깜짝 놀라게 했다.

넘실거리는 물결 속. 선판은 산산이 부서졌고 큰 구멍이 생겼다.

하, 운기하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아무렇게나 휘두른 주먹에도 이런 큰 힘이라니.

금하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 사람은 잘 못 건드리면 확실히 곤란하겠어. 정말 행동을 조심해야 해.

육역이 선판 잔해를 바로 제거하자, 다섯 번째 수밀봉창 안의 상황이 그들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커먼 8개의 장목 상자는 그 안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육역이 금하에게 그와 함께 상자를 옮겨야 한다고 손짓했다.

저 사람은 이 상자를 어디로 옮기려 하지? 자기 혼자 독점하려고? 아니면, 가져가 왕방흥을 한 번 손봐주려고?

금하는 속으로야 걱정근심이 매우 많았으나 묻지도 못하고, 가장 가까운 상자로 헤엄쳐가야 했다.

두 사람은 각자 상자 하나씩을 들고 헤엄쳐 돌아오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금하는 갑작스러운 눈앞의 광경에 멍하니 말문을 잃었다.

참선의 옆으로 헤엄쳐간 육역이 벽면에 손을 짚고 힘껏 일장을 내리친 동시에 물을 박차고 참선 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갑판 위의 그는 상자를 들고 있었고, 물속에 홀로 남은 금하는 눈만 휘둥그레졌다.

평소 그녀도 알고 지내는 금의위가 있었으나, 위세를 과시하려는 이는 많아도 진정한 능력을 갖춘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물며 육역 같은 재주를 가진 이가 어디 있었던가.

육역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성상과 함께 자라 그들의 관계는 친밀하고 두텁다. 게다가 금의위 최고지휘사였으니, 그런 이의 아들인 육역이야 말로 부귀한 집안에서 풍족하고 화려한 생활을 했을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정한 무공을 저렇게 연마할 수 있다는 것은 정녕 드문 일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금하는 상자를 수면 위로 밀었다. 상자가 매우 무거웠기에 미는 것만으로도 금하는 이미 젖먹던 힘을 다해 기진맥진해졌다.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쳐든 그녀가 도와 달라고 작은 소리로 양악을 불렀다.

잠시 후, 기다리던 양악 대신 위에서 갑자기 밧줄 한 개가 던져진 후로 육역의 음성이 들렸다.

“밧줄을 상자에 묶어!”

금하는 그 말을 따라 잘 묶었다.

육역이 잡아당긴 순간, 물에 흠뻑 젖은 상자가 공중으로 솟구쳐 배 위로 날아갔다. 그 후로 밧줄은 다시 던져지고, 육역의 목소리가 여전히 그 뒤를 이었다.

“다른 상자들도 모두 올려라.”

강물에 온몸을 담그고 있던 금하는 가뜩이나 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수면으로 올라와 바람까지 맞으니, 그녀는 더욱 추워서 끊임없이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런 와중 들린 육역의 말에 금하는 어이가 없어졌다. 그때야말로 마구 욕을 해주고, 비난을 퍼붓고 싶었다.

나는 육선문 사람이고, 금의위도 아니잖아. 뭘 근거로 날 시켜!

하지만 지시를 내린 육역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금하 만이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안고 물속에 떠 있을 뿐이었다.

육역은 지금쯤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보송보송한 옷으로 갈아입으러 갔을 거다. 그런데 자신은 그 대신 온 힘을 다하여 중노동을 해야 한다니.

금하는 더욱 분통이 치밀어 올랐다.

이때서야 고개를 들이민 양악이 심상치 않은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그녀에게 소리쳤다.

“상황이 안 좋아. 우리 이 일 육역한테 들켰어!”

영원히 반보씩 늦는 이 정직하고 충실한 오라버니를 보고 있자니, 금하는 더는 힘이 없어 뭐라 하지도 못했다.

“알아. 넌 밧줄은 봤냐? 네가 그쪽 끝을 잡고 있어. 내가 끈을 세 번 힘차게 당기면, 넌 힘껏 끌어올려.”

연신 고개를 끄덕인 양악은 금하가 자맥질하여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다행히 밧줄은 충분히 길었다. 금하는 그것을 끌고 수밀봉창으로 잠수해 들어가 상자를 잘 묶었고, 힘껏 세 번 잡아당기자, 선상의 양악이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녀도 지탱만 하면 되니, 힘은 전보다 덜 들었다.

이렇게 금하가 몇 번 왕복 후, 생신 선물들은 모두 배 위로 옮겨졌고, 그제야 금하는 기진맥진하여 배 위로 기어 올라왔다.

물 밑에 있던 금하는 입술마저 얼어서 온통 창백해졌다. 양악이 그녀에게 급히 겉옷을 걸쳐주었지만, 바람이 한차례 불자 금하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우렁찬 재채기를 해댔다.

“도련님 얼어 죽겠다…… 너 아냐, 저 사람은 뭘 근거로 우릴 부려? 우린 육선문이고, 자기네 금의위 부하도 아니잖아.”

금하는 겉옷으로 둘둘 말고는 화를 이기지 못해 소리쳤다.

“우리 도련님. 얼른 선실로 돌아가 마른 옷으로 갈아입어.”

양악이 그녀를 재촉하며 말했다.

“내가 바로 생강탕 끓여다 줄게. 양주 도착도 안 했는데, 병으로 쓰러지겠다.”

그때, 새로이 보송보송한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육역이 어디선지 모르게 걸어 나왔다. 금하의 낭패스러운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과 냉담한 어조로 분부했다.

“이 상자들은 모두 내 선실로 옮겨 놔.”

제 말만 마친 그는 바로 돌아서 가버렸다.

“……진짜 저분은 우리를 남으로 생각 안 하나 봐, 스스럼도 없으시네.”

양악이 이렇게 말하니, 불만스럽게 그를 보던 금하는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상자는 내가 옮길게. 도련님 너는 얼른 가서 옷 갈아입어.”

양악이 그녀를 안쪽으로 밀었다.

금하도 확실히 몸이 견디지 못할 만큼 얼어붙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화를 내며 선실로 돌아갔다.

* * *

검은 옻칠을 한 8개의 장목 상자가 축축한 물기로 가득한 채 선실에 놓였다.

육역이 크기를 눈대중해보니 금하가 말한 것과 비슷했다.

“상자…….”

육역이 양악에게 상자를 있는 대로 모두 열라고 명령하려고 시선을 들었다. 그러나 양악은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금하에게 끓여줄 생강탕으로 마음이 급한 그는 육역의 지시를 기다릴 새도 없이 상자를 놓자마자 줄행랑을 쳤던 터였다.

만일 금의위였다면 그가 말하지 않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였을까?

육선문은 지나치게 제멋대로군.

육역은 비수를 꺼내 밀봉된 납층을 가르고, 구리 자물쇠를 쪼개 상자를 열었다.

금을 새겨넣은 백로 주전자, 은에 비취를 붙인 수성구학호, 비취와 은을 붙인 사자, 옥으로 된 이호螭虎(*전설 속 용의 자손 중 하나. 기물 위 용의 형상을 가리키기도 함.) 큰 귀의 둥근 잔 등등…… 8상자 안에는 순금의 접시와 술잔, 보석류의 머리 장식, 은제 그릇 및 각종 옥기, 그리고 비단서화가 가득 했다. 육역이 대충 훑어만 봐도 그 가치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아래쪽 선실의 금하는 이제 막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젖은 머리를 대충 닦아 냈다.

마침 양악이 끓여 가져온 생강탕을 단숨에 다 마시고서야 그녀는 겨우 몸이 따뜻해질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분명 본인이 생신 선물을 꿀꺽하려는 거야.”

금하는 그릇 바닥에 남은 생강조각까지 입안에 털어 넣고 씹으며 어떤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설마…….”

양악은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여겼다.

“이 일을 너와 내가 이미 알고 있잖아. 우리가 육선문 사람이라는 걸 대인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이따가 우리 입을 봉하러 오겠지.”

금하가 추측했다.

“네가 말하는 건…… 이거야?”

양악은 손을 목 위에 놓고 베는 시늉을 하고, 금하는 손으로 금덩이 화폐인 금원보金元宝의 모양을 그려 보였다.

“분명 우리에게 먼저 이걸 주고, 우리가 눈치 있게 구는지를 볼 거야. 만약 눈치가 없으면, 그 사람은 다시…….”

금하가 손을 목에 놓고 사정없이 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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