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돌아온 참선 위로는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있었다. 수면 위에는 새벽안개가 자욱했고, 스산한 한기가 스몄다.
“흥! 도련님이 한 번 봐줬더니, 그 자식이 오히려 우릴 만만하게 봐!”
금하는 으스스한 기운에 목을 움츠리며 분노했다.
“은혜도 모르는 자식!”
양악이 고개 돌려 왕방흥의 참선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셨잖아. 너 아까 왕 대인 앞에서 뭔 말 했게? 내가 말을 돌려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또 골치 아팠다.”
“제 욕심 다 채우고도 거들먹거리는 행태가 눈꼴사나워.”
금하가 불만이 가득했다.
“다른 건 말도 안 해. 내 꿀잠을 방해하고, 시끄럽게 소란피운 게 결국 이 배 사람들로 걔들 위한 증거 만들려던 것뿐이었잖아.”
양악이 어찌 왕방흥의 의도를 모를까.
단지 그들은 보잘것없는 포쾌일 뿐이었고, 강과 바다를 뒤엎을 기세는커녕 물 한 방울도 튕길 힘이 없어, 벼슬아치를 만나면 울분을 참으며 아무것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금하 어르신아, 네가 어느 날 재상이 되었을 때, 그때 다시 재주를 뽐내면 안 되겠냐…… 아문의 월봉이 적다 해도 어쨌든 은자잖아.”
양악이 그녀의 이마를 톡톡 찍었다.
“알았어, 알았어. 은자를 봐서, 다음엔 내가 인내하고, 인내할게.”
금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양정만의 선실로 돌아가 왕방흥 배의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생신 선물을 지키는 군사는 미향에 중독되거나, 몽한약을 마신 후,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양악이 아버지에게 보고했다.
금하도 쓸데없는 말 없이 전부 말했다.
“선실 내의 모든 발자국은 군사의 발자국으로 근본적으로 외부인이 들어온 적이 없었어요. 분명 왕방흥 본인이 생신 선물을 통째로 삼키려는 거예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죠.”
양정만은 다 듣고도 이상해하는 기색이 없이 담담할 뿐이었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보니, 그가 조급해하는 모습은 꾸민 것 같지 않았거든. 오히려 그 옆의 기패관이 다소 문제가 있었지.”
“기패관이요?”
“너희들은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느냐?”
“처음에는 그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의 장포 아래위로 밀랍이 많이 묻고, 신발에도 밀랍이 묻어서 관심을 두었죠……, 그때는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나중에 선실에서 밀랍을 보고 수긍했어요.”
금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다른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아버지 말씀은 그가 생신 선물을 훔쳤다는 건가요? 그럼 어디에 뒀을까요?”
양악이 물었다.
“분명 아직 배 위에 있을 게다.”
양정만이 조금 불만스럽게 그들 둘을 바라봤다.
“너희는 돌아온 후에 배의 흘수선吃水线(*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배와 수면이 접하는, 경계가 되는 선.)을 신경 쓰지 않았느냐? 이 배는 정박 후 지금까지 흘수선의 변화가 없었다.”
금하는 뒤늦게 모든 것을 깨닫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 밀랍! 습기 방지가 아니라 방수 목적이었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 그는 상자를 물속에 넣어뒀어요. 분명히 이 물건들을 눈앞에 둬야 안심이 된다고 생각한 거죠.”
양정만은 금하의 말투에서 뭔가 해 보고 싶은 들썩임을 이미 알아차리고, 경고의 표시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구란의 가정사는 우리와 무관해.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거야. 끼어들어선 안 된다.”
금하와 양악은 예예 대답하며 물러났다.
* * *
한밤중에 들볶인 양악도 매우 피곤하여, 하품하며 선실로 돌아가 쉬려고 했다. 이제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그는 등 뒤의 금하에게 붙잡혔다.
“왜 또 그래?”
금하는 조금 전 피곤함에 지쳤던 모습과 반대로 두 눈이 반짝거리고 생기가 넘쳤다.
“쉿…… 나 물에 들어가 보고 싶어!”
금하가 그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양악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딸랑이 장난감처럼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버지가 우린 끼어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어.”
“너 왕 참장이 무슨 말 했는지 기억해? 우리가 하는 일 없이 말만 번지르르하다잖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다시 생각해 봐. 구란의 참장이야. 구란은 말 시장을 만들어 시장을 교란하고, 다른 천인공노할 짓도 많이 했어. 저 패들 전부 다 그다지 좋은 놈들이 아니야!”
금하는 차근차근 타이르며 그를 일깨웠다.
“우리가 몰래 잠수해서 말이야. 저 생신 선물을 전부 강바닥에 처박는 거야. 그들은 못 찾더라도 감히 떠들지도 못하고, 냉가슴만 끙끙 앓는 손해를 보는 거지.”
양악도 왕방흥에게 화가 났지만, 입장이 확고하여 연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안 돼.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알아. 대장 말은 내가 듣지. 들어. 들어…….”
금하가 그의 말을 잘랐다.
“대장이 우리에게 이 일에 끼지 말라 하셨으니, 나는 낄 생각이 없어! 난 그저 왕 참장에게 교훈을 좀 주고 싶을 뿐이야. 누군 눈앞에서 천년 도 닦은 여우 못 보고, 오만가지 일 안 겪어 봤나? 자기가 뭔데!”
“……그만둬. 쓸데없는 일은 삼가는 편이 낫다.”
금하는 양악의 표정을 자세히 보다가 그가 여전히 주저하자,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됐다. 너한테 지장 주지 않고, 혼자 갈게.”
말을 하면서 이미 그녀는 혼자 걸어 나가버렸다.
이 계집애가 일부러 이러는 걸 안다 해도, 양악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숨을 내쉰 그가 금하를 쫓아갔다.
“난 수영 진짜 못 해. 너 알잖아.”
“걱정하지 마. 넌 물에 들어갈 필요 없고, 배에서 날 지원하면 돼.”
금하가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중요한 건 발각되지 않는 거야.”
“……관부 사람이 기어코 도둑놈 행세를 하는 거냐.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야.”
양악은 계속 고개를 저었지만, 어떤 방법을 쓴다 해도 그녀에게는 소용없음을 알고 있었다.
* * *
하늘은 조금 더 밝아졌으나, 강 표면의 한기는 사람을 더욱 섬찟하게 했다. 양악은 엶은 안개가 덮인 강 표면을 보며 몸서리를 치고, 금하를 다시 한번 타일렀다.
“역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사건 조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찬물에 뛰어드는 건 수지가 맞지 않아.”
“그건 안 돼. 난 그 자식 반드시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게 할 거야!”
금하는 배 측면의 으슥한 곳을 골라, 능숙하고 재빨리 신발과 겉옷을 벗었다. 얇디얇은 속옷을 입었을 뿐이라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먼저 재채기를 했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냐고.”
양악은 여전히 설득하려 했다.
“쉿…….”
금하는 그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는 간단히 준비운동을 했다. 물보라가 가볍게 들렸을 뿐인데, 뱃전에 기대 몸을 뒤로 한 번 젖혔던 그녀는 이미 수월하게 입수하여 보이지 않았다.
양악은 금하가 수영을 잘하는 것을 알아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으나, 그녀가 왕방흥의 뱃사람들에게 발견될까 몹시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시도 때도 없이 그 배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았다.
뿌연 강물 속으로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쳤다. 수면 아래까지는 빛이 투과하지 못하여 어두웠고, 눈앞의 흐릿한 형체는 흔들거리며 모습이 변했다.
물속 금하의 시야는 두 자에도 못 미쳐, 그녀는 기억에 의지해 왕방흥의 참선 방향으로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금하가 헤엄쳐 감에 따라 참선의 윤곽은 아주 빠르게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천천히 선체 한 바퀴를 돌았지만, 어떤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선체에 붙어 자세히 하나하나 관찰하며 때때로 수면 위로 올라와 한숨을 돌렸다.
이 참선의 배 바닥에는 모두 여덟 개의 수밀봉창이 있다. 수밀봉창은 이름 그대로의 뜻으로 각 선실 모두 방수, 밀봉된 짐칸이다. 그중 한 선실에 부주의하여 물이 들어온다 해도, 다른 객실로는 범람하지 못하게 하여, 배의 안전을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수밀봉창 하나에 물이 들어온다고 해도, 배 전체로 봐서는 절대 위험하지 않아 배를 정박한 후에 다시 수리하면 그만이었다.
금하가 5번째 수밀봉창의 자리를 더듬었을 때, 기어이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
이곳은 배의 판자가 밀봉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손을 가져다 대니, 선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에 따라 심지어 갈라진 틈 사이로 물이 드나드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바로 여기야!
금하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 자식들, 사람들 눈 피하려고 생신 선물을 이런 수밀봉창에 숨겨뒀어.
수면 위로 올라가 한숨을 돌린 후, 그녀는 다시 잠수했다.
물 아래는 정말 어두웠기에 여닫는 장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고, 손을 선판 사이의 갈라진 틈으로 넣어 조금 조금씩 더듬어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장치가 없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선판 아래의 가장자리를 두 손으로 파고들어 잡아당겨 보려 했지만, 이 선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녀가 다시 살펴 보니, 이곳은 아예 대못으로 완전히 박아버렸다.
이 무식한 것들! 직접 못 박아버렸어. 너희들이 일일이 손 가는 섬세한 일을 할 리가 없지.
금하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비수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발에 힘을 줘 몇 번이나 걷어찼지만, 여전히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돌아가 양악에게 비수를 던져 달래서 선판을 비틀 방도밖에는 없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금하가 물속에서 몸을 돌렸을 때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까운 곳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검은 형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순간 눈앞이 흐릿해져서 그녀는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체를 등지고, 검은 그림자를 응시하던 금하는 긴장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 자가 만약 왕방흥의 수하라면 난 도망쳐야 해, 아니면 싸워야 해?
금하가 어떤 대응책을 생각해내기도 전, 검은 형체는 그녀가 자신을 알아본 것을 눈치챘다. 출렁거리며 물결 속에서 금하를 향해 다가오는 상대의 얼굴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는 결코 왕방흥의 수하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상대하기 힘든 이…… 육역이었다!
온몸이 남빛의 물에 잠긴 그의 얼굴은 훨씬 차가운 옥 같고, 주변으로 일렁이는 머리카락은 까마귀처럼 검었다.
그가 어떻게 물에 들어와 있지?
설마 이 사람도 생신 선물을 배 밑에 숨겨 놓은 걸 눈치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