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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9)화 (9/224)

9화

“훗……. 구 대장군께서 군대 인솔에 일가견이 있고, 가는 곳마다 승전고를 울렸다는 명성은 예부터 듣긴 했지. 몽고인 다섯을 죽인 것까지도 상소를 올려 상을 내려달라고 하였다지. 병사가 무능하고 나약한 건 혼자 일이지만, 장군이 무능하고 나약한 건 군대 전체 일일 수밖에 없다더니, 이 말이 진정 틀리질 않아.”

금하가 웃으며 비웃는 소리에 두 관병의 화는 더욱 심해져 다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때 마침 양악이 뒤쫓아왔다. 그는 금하에게 아무 일 없음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급하게 수습에 나섰다.

“우리 모두 관청 사람으로서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할 말 있으면, 좋게좋게 말로 합시다. 감정 상하는 건 곤란하잖아요.”

양악은 말하는 한편, 금하를 밖으로 밀치며 그녀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얘들 상대하는 건 까다로우니, 쓸데없는 일은 삼가는 게 나아. 아버지가 밖에서 기다리셔.”

양악에게 밀려서 나온 갑판에는 이미 수십 개의 횃불이 타고 있어 배를 대낮같이 밝게 비췄다.

뱃머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사공뿐 아니라 양정만, 유 상좌, 그리고 육역까지도 모두 나와 있었다.

그리고 꼭대기에 붉은 술이 달린 쇠 투구를 쓰고, 모피로 테를 두른 갑옷을 입은 장수가 있었다. 그는 원래라면 풍채가 당당해야 했건만, 지금은 오히려 감당치 못할 커다란 재난이 닥친 것처럼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그 장수의 가까이에 기패관이 한 명 있었고, 그 뒤로 수많은 군사가 서 있었다.

“대장.”

금하가 양정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울분에 가득 차 낮게 울렸다.

“이 사람들 지나치게 날뛰는데요.”

금하의 객실에 있던 두 관병도 선내에서 뛰어나왔다. 그중 우두머리가 금하를 가리키며 큰소리를 질렀다.

“이 계집이 수색을 못 하게 했습니다. 감히 반항하고 대장군까지 모욕했으니, 분명 이 계집이…….”

“웃기는 소리! 안을 다 뒤집어놨으면 됐지. 어디 또 도련님 몸을 뒤지려 해. 내가 말랑말랑한 감처럼 만만해 보이냐. 내가 네 손 안 날리나 한 번 눌러 볼래!”

금하가 폐활량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몸을 뒤져?”

양정만은 이상하게 여기며 표정을 엄숙하게 했다.

“참장 대인께서는 생신 선물 일고여덟 상자라 말씀치 않으셨습니까? 설마 그리 많은 물건을 제 이 작은 제자의 몸에 숨길 수 있겠습니까?”

구란仇鸾 휘하의 참장인 왕방흥은 수하가 이처럼 경솔하니, 금의위 경력과 대리시 좌사승 앞에서 일시에 체면을 다 잃은 것 같았다.

그는 키 큰 관병을 호되게 한 대 내리쳤다.

“쓸모없는 놈! 꺼져!”

유 상좌는 이 자리에서 관직은 가장 높으나, 성격이 제일 뜨뜻미지근하면서 온순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구란 대장군의 사람에게 일말의 체면도 살려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밤중의 소란으로 깨어났지만,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온화하게 물었다.

“왕 참장, 우리는 공무를 수행 중이오. 만약 수색이 끝났다면, 바로 돌아가 쉬겠소.”

왕방흥이 재빨리 예를 갖추며 말했다.

“소관이 제대로 단속지 못하여 수하가 경거망동하고 대인의 휴식을 방해하였습니다. 대인께서 용서하십시오. 후일 반드시 찾아뵙고 사죄하겠습니다.”

“별일이 아니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유 상좌는 천천히 선실로 돌아갔고, 그의 뒷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육 경력…….”

왕방흥이 육역을 향해 돌아섰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데, 냉랭한 육역의 말이 들렸다.

“왕 대인, 이 생신 선물은 언제 잃어버렸습니까?”

“축시 이각丑时二刻(*새벽 두 시 삼십 분 즈음.)이 지난 후이죠. 축시 이각은 교대 시간으로 그때 상자는 모두 있었습니다.”

왕방흥이 신속하게 대답했다.

그들이 사건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금하는 양악의 몸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곤하게 하품하며 더 있을 필요가 없다면 돌아가 새벽잠을 이어 자려고 했다.

금하는 이 구란 대장군에게 호감이라고는 손톱 끝만큼도 없어 그가 생신 선물을 잃어버린 것에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싶었다.

“양 포두.”

육역이 양정만을 향해 말했다.

“귀하의 추종술이 평범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사건 현장으로 가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혹시 단서라도 찾는다면, 왕 참장이 생신 선물 행방을 찾는 것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건 대인께 용서를 청합니다.”

양정만이 몸을 구부리며 고개를 숙였다.

“경력 대인의 부르심에 머뭇거림은 있을 수 없으나, 소인의 눈은 밤이 되면 물건 대부분을 두 개로 겹쳐보곤 합니다. 잘 보이지가 않지요.”

왕방흥은 양정만이 구부정한 모습에 다리까지 절고 있으니 그는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하지만 육역의 체면을 봐서 거절하기는 힘들던 차였다.

“그렇다면…….”

육역이 양정만을 잠시 바라봤다. 그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빛으로 돌아섰다.

“제자에게 가보라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상, 양정만은 당연히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가 고개 돌려 양악과 금하에게 분부했다.

“너희 둘이 배에 오르거라. 꼼꼼해야 한다.”

“대장, 제가 언제 꼼꼼하지 않은 적이 있나요.”

금하가 의아한 어조로 말했다.

양정만이 부릅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거듭 당부했다.

“구 대장군의 생신 선물은 범상치 않은 것이다. 너희 둘은 꼼꼼하고 세심하고, 또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된다. 이해했느냐?”

금하는 순간 멍했다. 그녀는 대장의 뜻을 헤아릴 수 없어 혼란스러웠지만, 당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양악은 결국 양정만과 부자의 관계라, 이 일에 수상쩍은 곳이 있다는 걸 이미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하다가 금하와 함께 다른 배에 올랐다.

* * *

생신 선물을 호송하는 이 참선은 금하 일행이 탄 배보다 매우 컸다.

선물 상자들은 군사들의 선실 아래 보관되어 있었고 또한 군사들이 문밖을 지키고 있었다.

왕방흥이 말한 바에 따르면, 보초는 두 시진에 한 번 바꾸고 선실 안팎은 모두 군사가 지킨다고 한다.

“안에 있던 군사들은 설마 살해당했습니까?”

금하가 걸어가며 무심코 물었다.

“아니요. 그들은 모두 바닥에 기절해 있었습니다.”

“미향迷香에 중독됐나요? 아님 몽한약(*마취약.)? 배의 음식을 책임진 사람은 누구죠? 아직 있어요?”

금하는 습관적으로 연이어 물었다.

대답하던 기패관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

여자는 불과 17, 8세의 소녀였고 생김이 천진난만하게 순진한 모양새였지만, 묻는 것이 매우 노련했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소홀할 수 없어 기패관이 재빨리 답했다.

“배에 탄 모든 이가 먹는 것은 같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야 교대했고, 그 후로 다른 건 먹지 않았습니다.”

군사가 앞에서 생신 선물을 보관하던 선실로 그들을 이끄는 동안, 금하는 매우 느리게 걸어가며 이쪽저쪽을 살폈다. 그러다 허리를 굽혀 선실로 들어가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냄새를 몇 번 맡고는 싱긋 웃었다.

“대양, 맡아 봐. 이 미향 진짜 좋다. 아무래도 부추 냄새야.”

양악도 따라 맡아 보고는 말했다.

“이 배에서는 틀림없이 저녁에 부추 달걀 볶음을 먹었어.”

“내가 방금 말했잖아. 왜 이거 맡자마자 내 배가 고프냐.”

금하가 문득 자각한 것처럼 말했다.

“네 배가 안 고플 때가 있냐?”

양악이 건성으로 농담을 건네며, 몸을 앞으로 내밀어 선내로 들어갔다.

보인 광경은 군사 서너 명이 바닥에 비스듬히 굳은 채 앉아 있는 것으로, 그들은 확실히 미향에 중독된 모습이었다.

육역이 그들 뒤를 따라 들어와 냉랭한 시선으로 창고 안을 훑었다.

이 창고의 길이는 두 장이 못 되고, 넓이는 일 장 정도였다. 창 하나에 문 하나로 보통의 선실과 다를 게 없었다.

“생신 선물은 총 몇 상자입니까?”

육역이 왕방흥에게 물었다.

“모두 8상자입니다. 금은으로 된 머리 장식품뿐 아니라 그중에는 서화와 비단도 있습니다.”

왕방흥이 탄식했다.

“떠나기 전, 구 대장군께서는 거듭 당부하셨죠. 저도 신중하게 생각하여, 사람들이 많아 일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이 배는 생신 선물만 운반케 하고, 다른 사람들은 태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적놈이 이렇게 교활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육역은 왕방흥의 하소연을 가벼이 흘려듣고 있다가 금하가 바닥에 반쯤 꿇어앉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손톱으로 갑판을 살짝 긁어서 코끝에 대고 가볍게 냄새를 맡았다.

바닥 여기저기에는 점점이 떨어진 촛농이 보였고, 그 위로는 발자국이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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