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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8)화 (8/224)

8화

육역이 시선을 들어 담담하게 음, 소리를 냈다.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보아도 그의 얼굴에는 특이한 기색이 없었다. 그제야 금하는 육역이 자신을 못 알아봤다는 생각으로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양정만, 양 포두는 어디에 계신가?”

육역이 물었다.

“저희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셔서 선내에서 쉬고 계십니다.”

양악이 답했다.

육역은 손을 살짝 들어 그를 안내하라는 뜻으로 선실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며 들고 있던 찻잔은 아주 자연스럽게 옆쪽, 바로 금하가 있는 방향으로 건넸다.

아마도 그의 이 행동이 지나치게 순조롭고,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어서일 거다.

머릿속에서 생각하기도 전, 금하는 이미 자발적으로 찻잔을 받아 그 대신 받쳐 들었다.

양악은 육역을 데리고 양정만이 쉬고 있는 선실로 갔고, 그 뒤의 금하는 손안의 찻잔을 멀뚱멀뚱 보다가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순식간에 포쾌에서 어린 머슴의 처지가 된 그녀는 침묵했다.

정신을 차린 후, 금하는 재빨리 따라붙으며 의아해했다.

이분은 왜 유 상좌가 아니고, 양 대장을 먼저 만나려고 할까?

양정만의 선실 앞에 이르자 양악이 가볍게 문을 두드려 불렀다.

“아버지, 경력 육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반응도 없었다.

“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으셔서 귀도 좀 어두우십니다. 듣지 못하셨을 듯합니다.”

양악이 급히 육역에게 해명했다.

“육 대인, 제발 언짢게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조금 후 깨시면, 제가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육역은 얼음조각 같은 얼굴로 조용히 선실 앞에 서 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돌아가려는 기색이 보이지도 않았다.

“경력 대인…….”

금하는 이 금의위 경력이 고의로 양정만을 찾아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됐다.

그래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그때 선실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겉옷을 걸친 양정만이 입구에 서 있었다.

“경력 대인, 양정만 이 모자란 사람이 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죄를 용서하십시오.”

“양 선배님 무슨 그런 말씀을요.”

육역의 어조는 매우 온화했다.

양정만은 담담히 웃어 보이고는 안쪽으로 물러서 육역을 선실로 들어오라 했다. 양악과 금하 또한 호기심이 가득하여 그의 뒤를 놓칠세라 따라 들어갔다.

육역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양정만과 무슨 얘긴가 나누려고 하다가 두 사람이 문신门神처럼 좌우에 서 있는 것을 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희 둘은 나가거라.”

양정만이 둘을 향해 말했다.

양악과 금하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순순히 밖으로 나가 선실 문을 다시 잘 닫았다.

“양 선배님…….”

육역이 막 입을 열었을 때였다.

“경력 대인, 잠시 기다리십시오.”

양정만이 문 앞으로 가 선실 문을 한 번에 잡아 열었다.

안으로 거의 넘어지듯 밀려 들어온 이들은 금하와 양악으로, 이들은 각자 가져온 가죽제의 작은 청옹(*도청장치.)을 선실 문에 붙여 몰래 듣고 있었다.

작은 도청기를 전부 회수한 양정만이 그들 둘에게 눈을 부릅떴다.

“해가 지기 전 이 배, 그리고 배에 탄 사람들에 대해, 나는 너희가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길 바란다.”

“아버지…….”

“대장…….”

두 사람이 동시에 애원했다.

“내가 아무 때나 불러서 검사할 거다.”

양정만은 간단명료하게 말한 후, 문을 닫아 버렸다. 몸을 돌려 육역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식(*아들을 낮게 이르는 말.)과 제자가 어리석어 부끄럽습니다.”

육역은 이때서야 담담하게 웃었다.

“부친께서 일찍이 당시 금의위 중 귀하의 추종술을 당해낼 자가 없고, 유일무이하다고 말씀하셨죠. 지금 뒤를 이을 이가 있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양정만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

“아버님의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여전히 지병이 있으셔서, 무리하면 쉽게 가슴 통증을 느끼십니다.”

육역이 감정이 나타나지 않은 얼굴로 양정만을 주시했다.

“저도 항상 아버님께 쉬시라 권하지만, 듣진 않으십니다. 한가할 때면 늘 이전의 많은 일이 떠오르시나 봅니다. 부친께선 여러 차례 귀하를 언급하셨습니다. 마음은 귀하가 돌아와 당신을 도와주길 매우 바라십니다.”

“이 늙은 몸을 여전히 기억해 주신다니 대단히 감사한 일입니다.”

양정만이 담담하게 웃으며 인사치레를 했다.

“아버님께서 제게 이 말을 귀하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육역이 그를 주시했다.

“죽은 자는 이미 그것으로 끝일뿐입니다.”

이 말에 양정만은 조용히 앉아 있다가 오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저도 종7품 금위의 경력 한 분을 알았습니다. 직위는 대인과 같고 성은 심이었습니다.”

육역은 말이 없었다. 이 성이 심沈인 종7품 금의위 경력을 그는 알고 있다.

심련沈鍊, 자는 순보로 강서 회계 사람이다.

가정 17년 진사가 된 후, 금의위 경력에 임명됐다.

성격이 강직하였고, 직접 자신의 눈으로 ‘경술지변’(*몽고의 알탄 칸이 북경까지 내려와 약탈한 사건.)으로 백성이 가족과 집을 잃는 참변을 보게 되었다.

이에 심련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엄숭의 10대 죄상을 일일이 나열해 상소를 올렸다.

그 결과, 심련은 장형에 처해지고, 거용관 밖으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그 후, 심련은 선부(宣府,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에서 죽임당하고, 아들 심곤과 심포는 감옥에 갇혀 무참하게 맞아 죽었다.

양정만이 말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쓰게 웃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금의위 최고지휘사이셨지만, 저와 심련은 특별히 대해주셨습니다. 심지어 형제라고 부르셨지요. 저를 알아봐 주고 발탁해 주신 이 은혜는 제 이생으로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양정만은 이미 늙고 불구가 되어 쓸모가 없습니다. 그저 아문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뿐 더는 그분이 생각하시는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눈앞의 사람은 사십여 세에 불과했다. 그러나 머리는 반백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기묘한 사건을 여러 차례나 해결한 금의위 천호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대체 이것은 겉모습뿐일까, 아니면 그는 진정 마음마저 바짝 메마른 것일까?

잠시 그를 주시하던 육역은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일은 선배님께서 지금 바로 성급히 결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양주행에서는 제 나이가 적으니, 선배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경력 대인, 겸손이십니다. 어찌 제가 감히.”

양정만이 급하게 말했다.

육역은 더는 말하지 않고, 일어나 공수하여 인사를 하고 나갔다.

선실 안에 혼자 남은 양정만은 의자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맞은편 찻잔의 찻물을 바라보는 눈빛은 고요하고도 복잡했다.

* * *

밤이 되어 정박한 참선에서는 한밤중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동이 희끄무레 틀 무렵 큰 소동으로 시끄러워졌다.

자던 금하는 선실 문을 부서지라 두드리는 소리에 어리둥절해 깨났다. 불이라도 난 건가 싶은 생각에 그녀는 급히 옷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순간, 흑색의 전모를 쓰고, 청의의 군복을 입은 두 명의 관병이 난폭하게 들이닥쳤다. 그들은 별다른 말도 없이 바로 선내의 물건들을 완전히 뒤집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다시 금하를 향해 돌아섰다.

“몸수색해!”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어어, 잠깐!”

예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 금하는 이미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다 함께 나랏밥 먹고 있는 처지면서, 당신들이 물건 잃어버린 게 나와 무슨 상관이죠? 뭘 근거로 뒤져요?”

“겁이 없구나. 별것도 아닌 일개 미천한 하급 관리가 감히 그런 말을 해!”

키가 큰 관병이 화가 나 큰소리를 치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잃어버린 것은 구 대장군 모친의 생일 축하연을 위한 생신 선물이야. 네 몸수색은 말할 것도 없고, 네 목숨을 가져가도 보상하기 부족해!”

알고 보니 구란의 수하였구나. 어쩐지 이렇게 날뛰더라니.

금하가 쌀쌀맞게 흥 소리를 냈다.

“비록 당신네 장군께서 지금 성상의 총애를 받고 있다 해도, 내 충고 한마디나 들어보슈. 관청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사이끼리 매사 이렇게 빡빡하게 처리하는 게 말이 돼?”

키가 큰 관병은 그녀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금하의 몸을 뒤지려고 다가오자, 그녀는 급히 뒤로 두보 물러서고는 시원스럽게 날려 차기를 해버렸다.

“억!”

관병은 비틀거리며 나가떨어졌다.

“이 도련님이 만만해 보이냐? 흥!”

“이 어린 계집이!”

키 큰 관병이 선실 벽을 짚고 일어나, 허리에 찼던 칼을 뽑으며 크게 화를 냈다.

“이 몸께서 네까짓 것은 갈가리 썰어 주겠어!”

금하는 냉정한 눈으로 다가오는 칼의 기세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로 피하지 않다가 눈앞까지 와서야 재빠르게 고개를 틀었고, 박도는 바로 문짝 가운데를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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