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열두 굽이를 휘돌아 온 강, 그 어귀의 작은 마을.
이곳은 하구라는 우수한 지세의 이점으로 매년 봄이면 갈치가 산란을 위해 떼 지어 몰려든다.
하여 현지인은 물론, 이곳을 지나던 행인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밥을 먹어야 할 때는 신선한 갈치를 맛보고자 했다.
‘희동주루’의 2층, 점원이 한 마리 ‘곰갈치’를 공손하게 들고 와 웃으며 말했다.
“두 분 손님, 이 갈치는 저희 가게 최고입니다. 일단 두 분께서 맛보시고, 맛이 없다? 그럼 제 얼굴을 때리십시오.”
자색포를 입은 행상은 이런 점원들의 정성 가득한 태도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는 성가신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그를 가라고 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어 다시 점원에게 분부했다.
“마부한테 오늘 밤, 길을 재촉해야 하니, 말 잘 먹이라고 전해.”
점원이 흔쾌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길에서 드실 음식도 싸드릴게요. 길 가시다 배고프면 먹을거리가 있어야지 않을까요?”
자색포를 입은 행상 맞은편의 부인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는 불평 반, 애교 반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밤길을 또 가요? 여긴 경성에서 이미 먼 곳인데. 제 생각에는…….”
자색포의 행상은 손을 들어 그녀가 다시 말하는 것을 막고, 젓가락으로 갈치 한 점을 집었다.
“그래도 확실히 안전한 게 좋아. 당신 생선 좋아하지? 빨리 듭시다.”
부인은 부군의 말을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바로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기 시작했다.
* * *
잠시 후, 밥 두 공기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온 점원이 이제 막 탁자 위에 그릇을 놓았을 때였다.
바람이 한바탕 몸을 휩쓸고 지나간 듯한 눈 깜짝할 사이였다. 갑자기 나타난 한 사람이 자색포의 행상과 부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도련님 배고파 죽겠다!”
부인 옆에 앉은 그 사람은 과피모(*비단이나 모시천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평범한 푸른색의 옷을 입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상인의 차림이었지만, 얼굴에 때가 묻은 것을 보니 온갖 고생을 다 한 모양새였다.
그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수저통에서 대나무 젓가락을 집어서는 소매로 상 위를 제멋대로 쓸고 다녔다.
밥그릇이 입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음식을 퍼 넣었고, 이따금 젓가락을 바람처럼 움직여 반찬을 연이어 집었다. 허겁지겁, 그리고 게걸스레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점원이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벌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색포의 행상과 부인 또한 한동안 멍하니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다.
이 과피모는 열심히 먹으면서도 엄지를 치켜드는 것을 잊지 않았고 감탄했다.
“이 생선 진짜 맛있어요!”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점원이었다. 그는 이 사람과 자색포 행상이 일행이라는 생각으로 재빨리 웃어 보였다.
“저희 가게의 곰갈치는 이 부근 동네를 통틀어 최고입죠. 화퇴탕, 계탕, 죽순탕으로 고아서 맛이 비할 데 없이 좋아요.”
과피모는 입안에서 자근자근 씹어보고는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어떻게 가시가 없어?”
그는 말하는 도중에도 몇 번의 젓가락질로 갈치를 입안에 넣었다.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갈치는 본래 가시가 많죠. 그래서 우선 예리한 칼로 갈치살만 발라내고 그다음에 집게로 잔가시를 다 발라냅니다.”
결국 정신이 돌아온 자색포의 행상이 화를 참지 못하여 점원을 향해 고함을 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 사람은 어디서 튀어나와 남의 밥을 공짜로 먹어?”
“손님께선 이 사람을 모르세요……?”
점원 또한 매우 놀라 재빨리 그를 돌아봤다.
입으로 여전히 쉬지 않고 씹던 과피모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점원 얼굴 앞으로 슥 들이밀었다.
“……관계자 아니면 빠집시다.”
점원은 과피모가 들이민 것을 보자마자 눈치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기다려!”
과피모가 그를 불렀다. 눈대중으로 밥이 담긴 그릇 크기를 가늠했다.
“음……, 여섯 그릇 추가!”
“바로 옵니다, 바로 와요!”
그들에게 괜스레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아, 점원은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자색포의 행상은 과피모가 들고 있는 물건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은연중 마음이 불안해져 한 손으로 탁자 가장자리를 움켜쥐었고, 두 눈은 긴장한 채 그를 바라봤다.
“너……, 너 대체 누구야?”
과피모는 젓가락으로 그릇 바닥을 몇 번이나 긁고, 남은 쌀알까지 전부 입안에 털어 넣은 후에야 그릇을 내려놓았다. 연이어 소매로 입을 한 번 훔치고, 미간을 찌푸리며 자색포 행상의 면전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당신도 참나, 온몸에 살은 뒤룩뒤룩 쪄서 뭘 계속 도망가! 이 도련님께서 며칠이나 서둘러 쫓아오느라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잖아!”
자색포 행상의 어조는 어렴풋이 떨렸다.
“대체 뉘시오?”
과피모는 수중에서 꺼낸 물건을 탁자 위에 툭 던졌다. 동으로 만든 묵직한 패 위에는 울퉁불퉁 굴곡진 모양으로 ‘포捕’라는 글자가 지극히 또렷했다.
“경성 육선문(*명청시대 사법기관인 형부, 도찰원, 대리시의 삼법사를 통칭하는 말.), 누군가가 내게 당신한테 물건을 가져다주라고 부탁했지.”
과피모가 기름 묻은 손을 품에 쑥 넣어 더듬더니 종이 한 장을 꺼내 자색포의 행상에게 건넸다.
자색포의 행상은 그를 펼쳐 보자마자, 표정이 바로 굳었다.
그것은 지명수배 현상금이 걸린 종이로, 위에 가장 커다랗게 그려진 것은 바로 그의 얼굴이었고, 그 뒤로 조혁曹革 남, 42세……, 등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과피모는 고개 숙여 그의 모습을 대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은 그래도 참 비슷하네. 얼굴 좀 보자. 당신은 코가 이렇게 예쁘질 않고, 살이 너무 없네. 어떻게 생각해?”
그가 말을 하는 사이, 옆의 부인은 이미 큰일이 벌어졌음을 알아차렸다.
부인은 떨면서도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옆쪽으로 붙었다. 그런데 순간 젓가락의 형체가 빠르게 번쩍거린 동시에 그녀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에서는 통증이 전해졌다.
부인이 고개 숙여 보니, 자신의 새끼손가락이 과피모의 대나무 젓가락에 단단히 붙들려 꿈쩍하지 못했다.
과피모가 웃는 듯 마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제구씨, 아니, 이젠 조구씨라 불러드려야 해?”
제구씨는 있는 힘을 다해 몇 번이나 발버둥 쳤다. 하지만, 대나무 젓가락은 더욱 조여져 마치 쇠집게 같았다.
“앉아!”
과피모가 말과 동시에 젓가락 잡은 손을 살짝 뒤집어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뒤로 틀었다.
“악!”
부인은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으면서도 얼굴은 애통한 기색으로 가득했다.
“너희 둘은 너무도 악독해. 사통도 사통이지만, 자기 집 하녀를 죽여 머리를 잘라냈어. 그 머리 없는 시체에 제구씨의 옷을 입혔고, 제수성의 집에 갖다 놓아 제수성이 아내를 죽였다고 모함하려 했지.”
과피모가 머리를 두어 번 흔들었다.
“어쨌든 부부였잖아. 네가 다른 이를 사랑한다 해도, 어떻게 이럴 정도로 음험하고 악독하냐?”
제구씨는 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제수성이 안 죽었어?”
과피모가 흥, 소리를 내고는 쯧쯧 혀를 찼다.
“그 하녀가 비록 당신과 체형은 같지만, 처녀의 몸이야. 미세한 차이가 얼마나 큰데, 이 도련님이 그런 걸 모를까.”
조혁은 부들부들 떨며 품속에서 한 뭉치의 은표(*은자로 바꿀 수 있는 지폐.)를 꺼냈다. 한 장에 이십 냥짜리, 오십 냥짜리가 섞여 있는 것으로 그는 그 뭉치를 천천히 탁자에 놓았다.
“이 정도 은표면 현상금의 열 배 이상이죠. 관원 나리가 눈 좀 감으셔서 우리 부부를 놔주십시오.”
그가 애원하는 눈길로 바라봤다.
한 뭉텅이 은표를 보고는 과피모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이제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은표를 집어 든 채 기쁘게 왔다 갔다 했다.
“삼백이십 냥!”
“예예예, 약소합니다만, 관원 나리가 챙기시지요.”
“넌 내가 달마다 적자인 걸 어떻게 알았냐?”
과피모가 혼잣말을 하며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내 동생 글방 학비도 보내야 하고, 지난달에는 숯 한 바구니를 선생한테 보내야 해서 샀더니, 남는 게 하나도 없었어.”
조혁의 마음속에는 지금 막 한 가닥 희망이 솟았다. 그것도 한순간, 과피모는 다시 한없이 낙담했다.
“이 일이 만약 알려지면, 나는 관차(*관아에서 파견하던 군뢰, 사령 등의 아전.) 일조차도 할 수 없게 돼. 걱정되네. 내가 이 은자를 위해, 너희 둘 모두 죽여 입을 막을 수는 없지.”
조혁 부부는 동시에 놀라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과피모는 더욱 고개를 기울여 진지하게 이 일의 가능성을 생각했고, 그러다 주저하며 말했다.
“……당연히 그럴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