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궁안에 잠들어 있는 꽃-43화 (43/44)

四十六花 * 소유아 이야기 (4)

가뜩이나 교역 일로 밖으로 끌려다니는 일이 잦은 요즘.

그 시간에 해야 하는 일들은 많은데 정작 할 수가 없었으니. 할 수 없이 오전 오후의 일정들은 자연스럽게 저녁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덕분에 유아는 요즘 들어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있지 못했다.

시하루는 밤늦게까지 신입관리 교육실에 남아 일을 하고도 약속대로 잠은 꼭 희수궁에 와서 자는 그녀를 대견하게 생각해야 했다.

“또 책상에 엎드려서 잔다. 도대체 궁녀들은 뭐 하는 건지.”

늘 와보면 그녀가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것을 궁녀 탓으로 돌려봤지만, 사실은 그녀가 집중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낸다는 걸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깨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잠들어 있는 그녀의 손에 여전히 붓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일하는 도중에 잠이 든 것이라.

“여기서 깨우면 나쁜 놈이겠지…….”

그녀를 깨울까 말까 고민하는 그의 손이 몇 번을 움찔거렸지만, 결국 그는 그녀를 깨우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왔으면 깨워요. 꽃따리 오빠.”

하지만 그의 배려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이미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방 안을 둘러볼 때까지. 잠귀가 밝은 유아는 그 소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잠에서 깬 것이다.

“괜찮아? 나보다 더 바쁜 거 같아.”

“바빠요. 요즘 들어 갑자기 빨리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어졌어요.”

“얘는. 몇 살인데 벌써 노후야?”

진심으로 웃긴 건지, 아니면 어이가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웃으며 유아의 이마를 꾹꾹 눌렀다.

“시간이 한 십 년 정도만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어요.”

“십 년 후라고 해도 노후는 멀었을걸.”

지금으로부터 십 년 후라고 해도 30대 초중반일 텐데 ‘노후’라는 단어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겠지.

“네가 생각하는 우리들의 십 년 후는 어떤 모습인데?”

어쩌다가 나온 대화 주제였지만, 시하루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십 년 후면……. 일단은 나랑 꽃따리 오빠 사이에 자식이 있겠죠. 아들 하나에 딸 하나일 거예요.”

“그렇게까지 구체적일 줄이야.”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 들려 달라 해놓고, 막상 말하니 시하루가 놀랍다는 듯 웃으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좋아.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다음에는?”

“아들은 제가 직접 교육시킬 거고. 딸은 서하연에 보낼 거예요.”

“우리 아이들은 교육열 높은 어머니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공부만 하겠구나.”

그는 생각했다.

아직 없는 아들딸이지만, 어렸을 때라도 자신이 최대한 놀아줘야겠다고.

그나저나 아직 없는 자식들의 공부를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이다.

물론 불쌍한 미래의 자식들 걱정이 아닌, 가뜩이나 많은 일을 하고 있어 늘 바쁜 자신의 부인이. 그리고 십 년 후에도 아이들에게 부인을 빼앗겨 쓸쓸해할 거 같은 자신이.

“네가 그럴 시간이 있을까? 지금도 많이 바쁘잖아.”

“십 년 후면 희안궁 일밖에 안 할 텐데요 뭐.”

“응? 궐내의 일은?”

십 년 후에는 희안궁의 교사 일만 하고 있을 거라는 유아의 말에 시하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일하기 좋아하기로 유명한 유아가 하나를 포기할 리는 없는데?

“십 년 후면 꽃따리 오빠가 좀 더 믿음직스러운 왕이 되어 있을 거라 믿어요.”

“그렇게나 오래 걸려?”

나라 걱정에 밤 잘 못 이룰 정도인 유아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긴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된다는 말이네.”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를 빤히 바라보던 유아는 저도 모르게 따라 웃기 시작했다.

확실히 결혼한 뒤부터 그는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긍정적인 자세로 바뀐 거 같았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십 년 후면 너도 더 이상 애가 아니겠지.”

그럼 그렇지.

훈훈한 마무리 따위 그들에게는 없었다.

“뭐라고요? 지금 애라고 했어요? 그것도 십 년 후에나? 나 같은 어른스러운 숙녀가 어디 있다고.”

“책 읽다가 엎드린 채로 잠드는 게 어른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저도 모르게 이 상태로 잠이 들었으니, 그의 말에 반박할 게 없었다.

변명거리가 없는 입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짜증을 담은 눈만이 번뜩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왜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아직도 피곤한지 책상에 엎드린 채로 그와 대화를 하고 있던 유아가 툴툴거렸다.

그녀의 투덜거림을 가만히 들어주고 있던 시하루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는 듯 엎드려 있는 그녀의 옆에 머리를 대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난 너 없으면 못 자겠는걸. 너도 그래야 할 텐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건 일종의 저주인가요?”

힘겨운 하루를 끝낸 뒤에 취하는 꿀맛 같은 휴식이건만.

예쁜 부인이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건가 싶어 유아가 그의 손등을 쿡쿡 찔렀다.

뭔가 불만이 있거나 그가 자신을 놀릴 때마다 나오는 그녀만의 버릇과도 같은 작은 형벌이었다.

하지만 아프기는커녕. 가렵다는 듯 시하루는 웃을 뿐이다.

아니, 이번에는 오히려 그녀의 볼을 꼬집는 것으로 반격까지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가 나쁜 거야. 네가.”

심지어 내 잘못이란다. 아니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다 있나.

벗어나려 나름대로 저항해 보지만, 이미 그동안 ‘유아 괴롭히기’의 시행착오로 인해 내공이 많이 쌓인 그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미안.”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마는 유아와 엄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가에 매달린 눈물에 바로 기겁을 하며 사과하고 마는 시하루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래서. 하휘도에서 오신 사신은 어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먹는 걸 엄청 좋아하시는 분이에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너랑 잘 맞겠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요. 저보다 더 심해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도대체 뭐가 불만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울먹이는 그녀다.

자랑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식신(食神)이라는 이름에 나름대로 애착이 있었나 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참고로 여자예요. 그것도 엄청나게 예쁜 여자 분이세요.”

묻고 싶은 건 이거였으면서.

기본 하루의 4할 정도를 함께 했으니 남자인지 여자인지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없었다.

사실은 어떤 사람인지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묻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속이 좁아 보일지도 몰랐으니…….

묻고 싶어서 계속 우물쭈물거리는 그를 보다 못한 유아가 먼저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자 다행이라는 듯 피식 웃는 그를 보며 유아는 몸을 일으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 일하러 가야죠. 일.”

사신이라는 말에, 다시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을 떠올린 그녀가 재촉했다.

조금 더 있겠다는 말은 못 하겠고……할 수 없이 괜히 일찍 일어난 대가로 아침조회 전에 책이라도 읽든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덕분에 나는 더 똑똑해지겠어.”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오늘은 밖을 돌아다니지 않는 건가요?”

유아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앞서 정자에 오르던 사유(궁후)가 싱긋 웃으며 뒤돌아 그녀에게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지금 밖이잖아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 전 그걸 물어본 게 아니라…….”

분명 어제.

오늘은 서하연에 가기로 약속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유아는 궐의 문을 지나 곧장 서하연을 향하는 발걸음이 야속하게만 느껴져 왔다.

주변에 있는 먹거리들의 유혹을 견딜 수가 없는 유아는 그 짧은 거리 동안 몇 번을 두리번거렸는지 셀 수 없는 정도였다.

오늘도 엄청 돌아다니며 먹을 거 같아, 미리 마음의 준비와 충분한 휴식. 그리고 최대한 많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시하루에게 반항까지 하며 아침도 걸렀는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낭패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침밥은 거르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최대한 걸음을 느리게 해봤지만, 서하연은 궐 가까이 있어서 소용이 없었다.

결국, 순식간에 서하연의 정문에 도착한 유아는 배고픈 걸 참으며 안으로 들어서야 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삼화(三花)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확히는 명예삼화.

그동안 희안궁 일 때문에 서하연을 찾는 걸음이 적었던 탓인지 서하연의 꽃들은 그녀를 반갑게 반기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이쪽 분은……?”

유아의 등장에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던 서하연의 꽃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낯선 이에게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제 손님이세요.”

그녀의 말에 그제야 경계심을 풀고 유아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의 관심사는 새로운 손님이 아닌 오랜만에 방문한 유아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유는 어느새 찬밥 신세가 되어 버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님!”

이미 결혼을 해서 ‘소유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역시 서하연이어서 그런지 그녀를 ‘이랑’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신의 또 다른 이름에 유아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부른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수아야!”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이 나라의 왕후이신 삼화를 반갑게 맞이하던 작은 여자아이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원래 서하연에서는 뛰어다니면 안 됐지만 얼마나 기뻤으면 저럴까.

지적을 하기보다. 모두들 흐뭇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맞다. 이제 ‘아랑’이지.”

유아가 깜빡했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정정했다.

몇 번 불러 봐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니요. 괜찮아요. 저도 아직은 수아라는 이름이 익숙하니까요.”

유아가 정식으로 왕후가 되어 명예 삼화직을 받았을 때쯤.

수아는 당당하게 서하연 입학시험에 통과해 지금은 서하연의 꽃이 되었다.

‘아랑’이 바로 그녀의 서하연의 호.

되도록 유아의 호와 가장 비슷한 이름을 받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에 려화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러고 보니 소식 들었어. 입학한 지 몇 개월 만에 바로 승격했다면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수아가 서하연에 막 입학한 꽃이 갖고 있어야 할 하얀 노리개가 아닌. 붉은색의 노리개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대단한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제 꿈은 려화니까요. 이건 꿈을 향한 작은 한 걸음일 뿐이에요.”

안에서는 이랑이. 밖에서는 아랑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것참 믿음직스럽네. 밖은 너에게 맡길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걱정하지 마세요!”

수아가 걱정하지 말라며 활짝 웃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저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런.”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에 유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고 있던 사유의 존재를 깨달은 유아가 그제야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죄송해요. 오랜만에 와서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괜찮다고 말하며 사유가 웃어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곳에서 꽤 유명한 가 봐요?”

평범한 대신일 텐데. 아무리 이곳의 졸업생이라고는 해도 환영이 너무나 거창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전 이곳의 삼화(三花)였거든요.”

유아의 대답에 사유가 살짝 놀란 듯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삼화(三花)라니. 아무리 외부인이라고는 해도 서하연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고, 당연히 ‘려화’와 ‘삼화’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이 큰 서하연의 많은 서하연의 꽃 중에서도 단 세 명만이 오를 수 있다는 삼화.

설마 옆에 있는 이 여인이 그 세 명에 들 정도의 실력자였다니!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존경의 눈빛이었어요.”

부담스럽다는 듯 유아가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너무 간단하게 서하연에 외부인을 출입시킨다 했어.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죄송해요. 지금 려화님은 만나실 수 없다고 하네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괜찮아요. 그냥 한번 둘러보고 싶었어요.”

워낙에 바쁜 려화였기 때문에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찾아와 미안하다 사과하는 그녀에게 사유는 웃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대신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릴게요! 서하연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유아가 앞장서며 서하연의 내부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서하연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그것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유. 아니, 서궁후이다.

그런 그에게. 물론 려화를 만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서하연에 들어왔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곳을 떠나 궐 안에서 일하는 건 힘들지 않아요?”

굳이 이렇게 좋은 서하연을 떠날 이유가 있었나 하는 질문이었다.

그가 둘러본 서하연은 아주 좋은 곳이었다.

며칠간 만나본 그녀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그런 그녀가 서하연을 떠나 조용할 날이 없는 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선택하다니. 사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궐에 들어가야만 하는 아주 큰 이유가 있었거든요.”

물론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다 못해 싫어했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바람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거 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유국의 왕은 좋겠네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런가요? 오늘은 아침부터 시비를 걸더라고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시하루의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아침부터 자신에게 장난을 걸어온 그를 떠올린 유아가 툴툴거리듯 말했다.

유아는 별생각 없이 말했지만, 그녀의 말에 궁후. 그는 혼란스러워졌다.

한 나라의 왕이 대신에게. 그것도 신입 대신을 아침부터 직접 괴롭혀 주다니. 이거 사이가 나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친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도대체 이 여인은 왕과 어떤 관계란 말인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친하신가 봐요……. 두 분의 관계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저번에도 말했지만. 아주 많이 친해요.”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부부 사이’의 친밀도를 그녀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 ‘아주 많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천유국의 왕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꽃……전하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특징적인 거 몇 개만 가르쳐주세요.”

순간 또. 자연스럽게 ‘꽃따리 오빠’라고 말할 뻔한 그녀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말하기 전에 알아차리고 ‘전하’라고 수정했다.

하지만 이번 역시. 서궁후.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다.

서궁후. 그가 어렸을 때 만난 시하루는 제멋대로에 고집불통인 사람.

하지만 그건 어렸을 때이기도 했으니, 지금은 완전 다른 인간이 되었을지도.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유아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나라의 사신이 왕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달라고 하고 있다. 설마 여기다가 안 좋은 말을 할 리가 없고. 그럼 좋은 것만 이야기한다는 건데…….

남편. 꽃따리 오빠의 칭찬을 늘어놓아야 한다는 말인가……. 남편 자랑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

생각하는 시간이 매우 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전하는……노래를 아주 잘 불러주세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결국, 생각한다는 게 이것이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그런데 그렇게 잘 부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건 비밀이에요.”

무슨 생각인 것인지 유아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사유의 모습인 서궁후는 정신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뭐? 왕이? 노래? 대신에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음. 그리고 또……. 아. 착하세요. 아! 이걸 빼먹었네. 엄청 잘생기셨어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툭하면 애 취급을 하고. 자기주장이 별로 강하지 않아 조금은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십 년 후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전 믿어요.”

이미 칭찬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칭찬할 게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남편자랑을 늘어놓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창피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은 전하를 많이 좋아하는가 봐요…….”

그렇게 말하는 서궁후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거 같았지만, 그것은 본인은 물론이요. 듣고 있던 유아 역시 느끼지 못한 거 같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아주 많이 좋아해요.”

어쩌면 이미 이 대답을 들었을 때. 잠시 아무 말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유아를 바라보고 서 있는 서궁후. 그는 어렴풋이 눈치를 챘을지도 몰랐다.

눈앞에 있는 여인과 이 나라의 왕 사이의 거리는 단순한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닌 더욱더 특별한 관계일 거라는 것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여전히 친하게 지낼 수는 없을 거 같네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그가 뭐라고 중얼거린 거 같지만, 유아는 시하루의 장점을 생각하느라 듣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한 건지 묻는 유아에게 그는 대충 ‘아니에요.’라는 말로 넘어가 버렸다.

유아가 왠지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서궁후는 눈을 찌푸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자. 우리 이제 그만 궐로 돌아가죠.”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그게 좋겠네요.”

아무래도 유아라는 존재는 이 천유국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인 게 분명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유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돌아가는 길. 가만히 뒤를 따르고 있던 궁후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유아가 약간은 슬프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돌아섰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휘도로 오지 않을래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  *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라고 하더라고요. 나 섭외 받았어요. 대단하지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지금이라도 당장 담당 바꾸는 게 어떨까?”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유아는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안고 있던 남자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턱으로 유아의 머리를 쿡쿡 찍으며 투덜거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흥. 보는 눈은 있어서.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물론 그녀가 했을 답은 딱 하나로 정해져 있었지만. 안 물어보고 넘어갈 수가 없지 않은가.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거절했지요. 낭군님이 여기 계시는데 어디를 가요?”

웬일로 시하루의 기습 끌어안기가 아닌, 먼저 그의 품안에 안기며 그녀가 말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한 건지 그의 표정에서 보이던 자신의 부인을 섭외한 하휘도의 사신에 대한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다.

최근 희안궁에서 히연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어느새 히연의 ‘낭군’이라는 말이 그녀에게도 옮은 거 같았다.

물론 꽃따리 오빠라는 말도 좋아했지만, ‘낭군’이라는 말 역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그 새로운 호칭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렵게만 생각하던 히연에 대한 인식이 바뀐 건지. 유아가 그녀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흥. 이번에 만나면 확실히 말 해둬야겠어.”

거절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그녀의 말에 기분이 좋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짐했다.

제대로 된 교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번에는 그도 동참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 너무 일찍 나온 탓인지 둘은 차를 마시며 사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그나저나. 언제 오는 거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곧 오겠지요. 아. 이번에는 꽃따리 오빠도 함께 한다는 거. 미리 말 안 했으니까요. 갑자기 왕과 만나면 놀랄지도 모르니……아! 저기 오네요.”

시하루가 갑자기 함께 가겠다고 말한 탓에 아직 사유에게 그의 동참을 말하지 않은 상황.

그녀가 놀랄까 봐 걱정이 된 유아가 주의를 주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저 멀리서 사유가 걸어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유아를 따라.

시하루는 그녀의 시선 끝에 걸린 어느 여인을 바라보았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앉아 있던 그는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얼굴 역시 서서히 찌푸려졌다.

교역관계를 맺을지도 모를 나라의 사신을 맞이하는 표정이 이 모양이라니.

옆에 서 있던 유아가 그를 살짝 치며 주의를 주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지 그는 얼굴에 실린 힘을 풀지 않았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유아. 하휘도에서 왔다는 예쁜 여자 사신이 저 녀석이야?”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이름은 사유.”

유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정자의 기둥에 가려진 탓인지 사유는 아직 시하루를 못 본 거 같았다.

아니면 그가 편한 차림을 하고 있어 그냥 호위 정도로만 생각했다던가.

밝고 가벼운 목소리로 유아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유. 자연스럽게 그 인사를 받으며 다가가려던 유아의 앞을 막아선 시하루가 사유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떨어져.”

갑자기 등장한 시하루에 많이 놀란 건지 사유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두 손을 흔들며 활기차게 인사를 하던 그는 어느새 시하루와 마찬가지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이랑. 오늘은 이 녀석과 함께할 거라는 말 없었잖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 죄송해요. 오늘 아침에 갑자기…….”

미리 말하지 않아 죄송하다 사과하던 유아가 말을 멈추었다.

‘이 녀석’이라니? 다시 생각해보니 분명 시하루 역시 아까 사유를 향해 ‘저 녀석’이라고 했었다.

둘은 서로 아는 사이인가?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사신이 한 나라의 왕에게 ‘이 녀석’이라고 하다니.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혼자 머리를 굴리며 고민하느라 정신없던 유아가 주변이 고요해지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시하루와 사유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눈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그것은 ‘반갑습니다.’가 아닌 ‘노려보다’와 가까운 눈빛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유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네?!”

갑자기 시하루가 자신을 부르자 놀란 건지. 유아가 깜짝 놀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도대체 이 분위기는 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마치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그가 이렇게 나오니 괜히 기가 죽어버렸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여자라며?!”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여자요.”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남자잖아!”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네?”

순간 자신이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반응을 보이던 유아의 시선이 정자 아래에서 시하루를 노려보고 있는 사유에게로 향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에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지.

아래에 있는 사유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유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내 말 못 믿어?”

유아의 작은 부정을 어떻게, 또 들은 건지 시하루가 물어왔다.

잠시 동안 거짓 따위 보이지 않는 그의 눈을 바라보던 유아는 여전히 그의 말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푹 숙여버렸다.

그리고 아주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만일 꽃따리 오빠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울지도 몰라요.”

제발 농담이었다는 말을 들려달라는 듯. 유아가 시하루를 바라봤지만, 오히려 그는 빨리 알아차리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믿을 수 없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아버린 유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어떻게 저게(?) 남자야…….”

이봐. 아무리 충격에 빠졌다고는 해도 저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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